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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이 슬픈 막사 안에서
이송희일(영화감독) 일러스트레이션 김남희(일러스트레이션) 2014-08-12

28사단 윤 일병은 신병 전입해서 죽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구타를 당했다고 한다. 가래와 토사물을 먹어야 했고, 고참들이 얼굴에 치약을 바르고, 안티프라민으로 성 고문을 했단다. 윤일병은 얼마나 고통스럽고 외로웠을까. 온몸이 퍼렇게 멍든 시신 사진을 보고 있자니 명치끝이 아프다.

국방부 장관은 윤 일병 사건이 “문명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규탄했다지만, 윤 일병이 그렇게 잔혹한 고문과 구타 속에서 홀로 숨지는 동안 그 최종책임자인 당신과 국방부는 무슨 일을 했는가. 염치도 없이 문상객 행세다.

한국 국방부는 이런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엄중처벌과 ‘군 기강’을 내세웠지만, 수십년이 흐르는 동안 청춘들을 인질 삼은 이 잔혹극은 결코 멈춘 적이 없다. 그놈의 군 기강은 각 부대에 하달돼 되레 ‘어떤 사건이라도 군 부대 밖으로 절대 발설하지 말라’는 은폐의 원칙으로 둔갑하기 일쑤였지 않은가.

지난 4월 한달 동안, 군 당국이 스스로 적발한 가혹행위자들만 해도 3900명이나 된다. 은폐와 엄폐에 능한 군 당국의 발표가 이런데, 실제는 얼마나 되겠는가. 이렇게 폭력이 방치된 병영문화 때문에 한국 군인들은 일반 남성보다 2.5배 더 우울증에 시달리고, 5일에 한명꼴로 자살하고 있다. 사시사철 비명처럼 터져나오는 총기난사사건과 무장탈영은 또 어떤가.

그렇게 인권단체들이 병영문화를 인권친화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하소연을 할 때마다 고장난 라디오처럼 ‘권위’와 ‘규율’만을 반복하던 당신들이야말로 군바리 목숨값을 갯값으로 여겨 이 끔찍한 비극을 방조한 주범들이다. 자신들이 사건의 ‘원인’이라는 걸 모르는데, 어떻게 해법이 나오겠는가.

그리고 ‘가해자들을 사형시켜라’는 공분의 여론 역시 가해자 몇몇을 악마화해서 자신들의 복수심을 만족시킬 수는 있겠으나, 병영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 그닥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가해자들은 분명 용서 못할 죄를 저질렀지만 가혹한 병영문화를 구경만 하고 방조했던 군당국 역시 암묵적으로 악의 메시지를 전한 것과 다르지 않다. 분노할수록 시스템을 냉철하게 바라보는 것, 그것이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는 살아남은 자들의 비망록일 거다.

63만명이나 되는 청춘들을 군대라는 공간에 구겨넣었다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안전조치와 인권시스템이 필요하지 않겠나. 이 간단한 삶의 셈법이 통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산다는 건 얼마나 비통한 일인가. 누군가가 세월호와 윤 일병 사건이 같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세월호와 저 슬픈 군대 막사에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