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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해서웨이] <인터스텔라>
주성철 2014-11-18

앤 해서웨이

<인터스텔라>

우주는 사랑이다? 멀지 않은 미래, 식량 위기로 혼란에 빠진 지구를 배경으로 하는 <인터스텔라>는 인류의 멸종에 맞서 시공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인간들의 모험기이자 또한 그것을 초월하는 멜로드라마다. 브랜드(앤 해서웨이)를 비롯한 소수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은 지하 벙커에 격리된 채로 더이상 인류를 감당할 수 없게 된 지구에서 떠날 방법을 찾고, 목숨을 걸고 새로운 행성을 찾아 우주로 나설 준비를 한다. 지난 20세기에 범한 잘못이 전세계적인 식량 부족을 불러왔고, 공식적으로 해체된 것으로 알려진 미 항공우주국 나사(NASA)는 마치 비밀 사조직처럼 은거 중인 것. 그들은 토성 근처에서 불가사의한 현상을 발견하는데, 고차원의 시공간으로 향하는 웜홀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우연히 그들에게 가닿은 전직 NASA 우주비행사 쿠퍼(매튜 매커너헤이)가 합류해 ‘나사로 미션’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특별탐험팀은 왕복탐사선과 착륙선, 그리고 내공비행선을 제작해 불가사의한 틈으로 열린 미지의 시공간으로 탐험해나간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뒤로한 채 인류라는 더 큰 가족을 위해, 그들은 이제 희망을 찾아 우주로 간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에 ‘캣우먼’ 셀리나로 출연하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 조우한 앤 해서웨이는 <인터스텔라>를 통해 두 번째 호흡을 맞췄다. 순서상 매튜 매커너헤이 다음으로 캐스팅되며, 확고한 ‘크리스토퍼 놀란 사단’으로 자리매김한 것처럼 보인다. 그 스스로 밝힌 것처럼, 캐스팅 당시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지 전혀 알려진 바가 없었으며 “놀란 감독의 영화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출연’한다”고만 얘기했을 뿐이다. 물론 완성된 영화에서 앤 해서웨이가 맡은 역할은 제작 초기부터 모든 것을 함구해야 할 정도로 어딘가 비밀스럽거나, 히든카드처럼 여겨지는 캐릭터는 아니다. 다만 앤 해서웨이의 진가는 서서히 드러난다. <레미제라블>(2012)의 판틴(앤 해서웨이)처럼 격정의 순간과는 아주 먼 거리에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야기의 중심으로 스며든다.

브랜드가 마치 손발이 오글거리게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유일한 가치”라고 말하며 미션을 수행하는 가운데 사랑은 슬그머니 찾아온다. 그것이 어딘가 새롭거나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다. “<인터스텔라>가 다루는 우주는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지만 동시에 사랑에 대해 아름답게 고찰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역사를 살펴보면 항상 그 속에 사랑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앤 해서웨이의 얘기는 평범하고 익숙한 진리를 담고 있지만, <인터스텔라>의 마지막까지 이르면 그 보편적 담론이 얼마나 묵직하고 먹먹하게 다가오는지 알게 된다. 밀폐된 우주선 내부와 창문 밖으로 보이는 광활한 우주의 대비 속에서, 마치 방 안의 공기가 모두 빠져나간 것 같은 우주의 고요와 맞닥뜨릴 때, 브랜드는 그렇게 냉혹한 우주 한가운데 홀로 서 있다.

‘시간’과 ‘기억’을 다루는 <인터스텔라>의 우주 속 앤 해서웨이를 보는 일은 묘하게 그녀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1982년생 앤 해서웨이는 제시카 알바(1981년생), 스칼렛 요한슨(1984년생) 등과 함께 엇비슷한 주목을 받으며 시작했지만, 이제는 딱히 그러한 비교가 별 의미 없을 만큼 자기만의 신선한 필모그래피를 써나가고 있다.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서 활동하던 어머니를 동경하며 배우의 꿈을 키웠던(공교롭게도 어머니 또한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판틴을 연기한 적 있으며, 그것이 본격적인 배우의 꿈을 키우는 중요한 기폭제가 됐다), TV드라마 <겟 리얼>과 <프린세스 다이어리>(2001)로 혜성처럼 등장하면서 보여줬던 ‘큰 눈의 공주’ 같은 이미지는 이제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리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2005)에서 잭(제이크 질렌홀)의 자신만만한 사업가 아내 ‘루린’으로 출연하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에서 저널리스트의 꿈을 안고 뉴욕으로 온 ‘앤디 삭스’를 거치면서, 거의 창백하기까지 한 맑고 밝은 얼굴의 공주 이미지와 결별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자신의 상대역이 어떤지 파악하고자 했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메릴 스트립은 <브로크백 마운틴>을 보면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그렇게 앤 해서웨이는 무려 제인 오스틴을 연기한 <비커밍 제인>(2007)에까지 이르게 됐다.

이후 지속적인 성공 스토리를 써나가던 앤 해서웨이에게는 뉴욕대 영문학과 출신에다 담배도, 술도, 심지어 육식조차 하지 않는 ‘엄친아’ 이미지와 더불어 언제나 착한 척만 한다며 해서헤이트(Hathahate: ‘Hathaway’와 ‘Hate’의 합성어로 보이는)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은근히 ‘안티’도 많다. 오랫동안 기른 나이든 반려견을 자신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며 버리려 한다는 ‘추측성’ 기사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런 그에게 자신의 외양을 적극적으로 변모시킨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캣우먼과 <레미제라블>의 판틴은 멋진 ‘전환’의 순간이었다. 게다가 안젤리나 졸리가 구성한 <지구의 지금 이 순간> 다큐멘터리를 위해 캄보디아를 방문하기도 하면서 꾸준히 봉사활동에 참가하고, 수입의 일부를 어린이 암 연구센터와 동성결혼 합법화 지지 단체인 ‘프리덤 투 매리’(Freedom to Marry)에 전달한(자신의 친오빠가 동성애자임을 당당히 밝히며 동성결혼 지지자로 나선 것은 유명한 일이다) 일들은 그를 둘러싼 여러 ‘루머’를 잠재울 만한 중요한 ‘팩트’가 된다.

게다가 자신의 일과 별개로, 비밀스런 결혼은 톱스타임에도 그저 세상과 언론에 ‘쿨’한 면모를 잘 보여준다. 어쩌면 그것이 앤 해서웨이의 진정한 힘인지도 모른다. 앤 해서웨이는 지난 2012년 비밀리에 주얼리 디자이너 겸 배우 애덤 셜먼과 결혼했다. 2008년 교제를 시작한 그들은 100여명의 하객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 결혼식을 진행했다.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것은, 지난 2008년 4년간 사귄 이탈리아 사업가 라파엘로 폴리에리가 사기혐의로 체포되면서 이별의 아픔을 겪은 앤 해서웨이가 같은 해 애덤 셜먼을 만나면서부터다. 남편이 ‘무명’이어서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온갖 이슈가 끼어드는 톱스타의 결혼치고는 그저 ‘하고 싶은 대로 산다’는 솔직하고 편안한 태도 때문에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래서 앤 해서웨이는 세상이 이러든 저러든 그저 자신의 배우의 길을 묵묵하고 진득하게 걷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더 믿음이 간다고나 할까.

‘지금 이곳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가기’라는 측면에서, <인터스텔라>에서 우주복을 입은 모습도 그런 ‘쿨’한 면모나 적절한 타이밍에서의 ‘변신’의 순간만큼이나 의미심장하다. 지구와 우주, 태양계와 은하계를 떠나 도착한 새로운 행성이 보여주는 광활함, 시공을 초월하여 우주로 향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상상력 안에서 ‘인류는 언제나 한계를 극복하며 그 운명을 변화시켜왔다’는 주제는 영화 속 브랜드의 숨겨진 마음과도 같다. 우주 안에서 인간의 존재란 무엇인가. 물론 존재에 대한 이성적 고민만큼이나 현장을 지키는 배우로서의 당장의 실존도 중요했다. 놀란의 집요함으로 인해 무려 실제와도 같은 15kg의 우주복을 입고, 수중촬영에서는 잠수복까지 겹쳐 입어야 했기 때문이다. 결코 캣우먼 복장보다 편하지 않았다. 게다가 수중촬영 중에는 저체온증까지 겪었기에 물에서 전력질주하는 장면을 찍을 때는 더이상 뛸 수가 없었다. 그러한 무게와 피로를 견디며 두 번째 테이크를 속행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언제나 약간의 휴식을 취한 뒤 촬영은 재개됐다.

<인터스텔라>의 앤 해서웨이는 답답한 우주복을 입은 채 불과 코앞에도 소리가 전달되지 않는 환경 안에 놓여 있다. 우주는 언뜻 보면 환상적이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차갑고 공기도 없으며 인간이 살 수 있는 자연환경이 아니다. <인터스텔라>가 무심히 던져놓고 가는, 그 막막한 우주 안에서 브랜드가 느끼는 절대적인 고독의 순간은 쉽게 잊히지 않는 이미지로 각인된다. 영화에서 언제나 ‘주변’에 있다고 느껴지던 브랜드가 어느 순간 화면을 꽉 채운다. 바로 그때, 너무나 평범한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대체할 만한 다른 배우의 얼굴이 좀체 떠오르지 않는다. 앤 해서웨이는 어느덧 우리에게 그런 존재가 됐다.

magic hour

캣우먼의 롤모델

처음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왕년의 캣우먼 미셸 파이퍼를 대체할 만한 카리스마는 등장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앤 해서웨이가 연기하는 캣우먼 또한 독특한 매력을 풍겼다. 본격적인 ‘변신’을 시작하기 전, 하비 덴트 특별법과 관련해 열린 자선파티에서 브루스 웨인(크리스천 베일)이 셀리나(앤 해서웨이)와 함께 춤출 때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흘러나온다. 그런 근사한 전주곡 이후 캣우먼이 된 그는 킬힐을 무기 삼아 액션까지 펼친다. 키라 나이틀리, 제시카 비엘, 제마 아터턴 등 총 6명의 쟁쟁한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캣우먼 역에 낙점된 이유는 충분했다. 이후 연기의 롤모델은 영화 사상 최초로 섹스 신을 연기했던 1930~40년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섹스 심벌 헤디 라마가 됐고, 그에 더해 일주일에 5일씩 스턴트 트레이닝을 받으며 몸을 만들어 그만의 캣우먼을 만들어냈다. 예상치도 않게 캣우먼이 된 것이 어색하지 않았냐고? “뭐든 숨기기 좋아하는 성격이 나랑 닮았다”는 것이 앤 해서웨이의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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