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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FF 37.5] 연필 한 자루 사는 데도 30분

<허삼관> 박준용 소품실장

필모그래피 영화 2014 <허삼관> <나의 사랑 나의 신부> 2013 <몬스터> <신촌좀비만화> 중 <너를 봤어> 2012 <은밀하게 위대하게> <감기> 2011 <나의 PS 파트너> <타워> 2010 <마이웨이> 2009 <심야의 FM> <해운대> 2008 <우리집에 왜왔니> 2007 <추격자> <기다리다 미쳐> 2005 <날아라 허동구> <연리지> 2004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예전에는 마트에 가면 필요한 물건만 딱 샀는데 이젠 라면 한 봉지를 사러 가도 한두 시간은 금방이다. (하하)” <허삼관>의 박준용 소품실장 얘기다. 영화 소품 일을 시작하면서 그는 어디를 가도 그냥 쉽게 돌아서는 법이 없다. “재밌는 아이템, 신기한 물건이 어디 없나 보고 또 본다. 그러다 발견하면? 일단 사진을 찍어둔다. 나중에 다 아이디어가 되니까.” 물건을 구매할 때는 또 어찌나 깐깐하게 구는지 모른다. 특히 그 물건이 영화의 소품이라면 말 다했다. “연필 한 자루를 사는 데도 30분이 걸린다. ‘이 연필이 이 영화에 어울릴까’를 고민하니까. 웬만해서는 소품 구매는 직접 한다. 경력이 많지 않은 스탭이 가면 너무 고민하다 못 고르거나 엉뚱한 걸 골라오기 때문이다.”

혹자는 소품팀이 물건을 세트장에 가져오고 물건을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옮기는 일만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박 실장의 생각은 다르다. “미술팀이 영화 전체의 디자인 방향을 기획하는 쪽이라면 소품팀은 그 아이디어를 실제 눈앞에 구현해 보이는 실무진이다. 게다가 한정된 촬영시간, 주어진 예산 안에, 부족한 인력으로 미술팀이 원하는 물건에 최대한 근사한 걸 찾아와야 한다.”

그래서 소품실장은 감독과 미술팀이 생각하는 미술의 방향을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허삼관>의 하정우 감독님은 워낙 미술에 관심이 많다. 직접 그린 그림을 보면 캔버스에 꽉 들어찬 얼굴 그림이 많잖나. 마찬가지로 영화 화면도 차 보이는 걸 좋아한다. 뭐든 ‘가득가득’. 예컨대 보조 출연자가 끄는 자전거에도 물건이 사람 키보다 높게 쌓여야 했다.” 박일현 미술감독은 고증에 기반한 현실적인 그림을 원했다. 특히 한국전쟁 직후가 배경이다 보니 박 실장은 미술팀에서 준 자료를 토대로 한국과 미국 문화가 믹스매치된 소품들을 수소문했다. “허일란 아버지 집에 있던 코카콜라 그림의 덮개도 당시에 존재했던 물건이다. 서울의 풍물시장, 광주, 순천쪽 유명 앤티크숍을 돌며 물건을 찾아다녔다.”

일의 특성상 집요해질 때도 많다. “<추격자> 때는 망치 하나를 구하려고 전국의 철물점과 공구상을 죄다 뒤졌다. 감독님이 원하는 망치를 어떻게든 구해드리고 싶었는데 결국 제작을 했다.” 얕고 넓은 지식도 필요하다. “<감기> 때는 의료 기기를 빌려왔는데 모두들 나에게 ‘이거 어떻게 작동해?’라고 묻더라. 내가 그걸 알면 병원에 취직했지. (웃음) 기계는 작동법까지 알고 있어야 한다. 닭집에서 닭을 튀기는 장면이라면 튀김 기계 공수에 닭까지 튀길 줄 알아야 했다.” 때때로 박 실장은 지인들로부터 ‘영화에 쓰인 소품 하나 줄 수 없냐’는 연락을 받는다. “영화 소품은 영화의 전체 분위기와 장면 컨셉에 맞게 가져온 거라 일반 가정집에 두면 어울리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가져간 뒤 후회하더라.” 이것이야말로 영화 속에서 빛나는, 영화를 빛내는 소품의 힘이 아닐까.

꼼꼼한 기록 담은 다이어리

속지만 바꿔가며 1999년부터 써온 다이어리다. 매일 할 일과 일의 우선순위를 적어둔다. 소품 구매부터 공수, 반납까지 하다보면 하루 400~500km 이상 운전은 다반사다. 정신없는 일정을 소화하려면 꼼꼼한 기록이 필요하다. 소품의 이미지나 콘티를 볼 때는 역시 아이패드가 유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