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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정확하고 명징하다 <트라이브>
윤혜지 2015-01-28

양손을 흔드는 것으로 박수를 대신하고, 노크 대신 깜박이는 전등 빛으로 출입을 알리는 농아특수학교. 신입생 세르게이(그리고리 페센코)는 손짓 발짓으로 길을 물어 간신히 학교에 도착한다. 농아특수학교도 청소년들이 모인 여느 집단과 다르지 않다. 힘겨루기로 이뤄진 나름의 질서와 규칙이 존재하는 곳이다. 세르게이는 학교에 적응하려 애쓰며 교내 불량학생들의 조직에 가담한다. 담배와 강도짓부터 시작해 세르게이는 차근차근 조직원으로서의 비행을 배우며 트럭 운전사를 상대로 몸을 파는 여학생들을 관리하는 일을 맡는다. 그리고 입학식날 처음 옆자리에 앉은 여학생이자 매춘부인 안야(야나 노비코바)를 좋아하게 된다. 그전까지만해도 소극적이던 세르게이는 계속 안야를 사기 위해 열심히 돈을 모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조직의 목적과 사랑이 충돌하는 순간이 온다. 세르게이는 한쪽을 선택해야만 한다.

불안은 입학식 장면에서부터 슬그머니 관객을 따라붙는다. 입학식날, 세르게이는 학교에 늦게 도착한 탓에 교실로 향하는 무리를 허겁지겁 뒤따른다. 여기서 이미 세르게이의 학교 생활이 순탄치 못하리라 예상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첫 장면에서부터 카메라는 길 건너 멀찍이 자리한 채로 쭉 관찰자의 입장을 고수하며 상황을 담기만 한다. 실제로 감독은 연기 경험이 전무한 청각장애인 학생들을 배우로 활용했고,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가 혼합된 수화로만 영화의 서사를 진행시킨다. 영화는 아주 사소한 생활소음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운드를 소거한 채 침묵한다. 영화를 지배하는 침묵과 거리감은 영화를 더욱 무섭고 건조하게 만든다. 영화 속 청소년들은 말을 하는 것은 물론 듣는 것조차 할 수 없기에 종종 위험한 상황에 처한다. 트럭이 후진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조용히 깔려죽거나, 비명을 지를 리 없어 마취도 안 한 몸으로 낙태수술을 받아야 한다.

‘말’ 없는 영화이지만 배우들의 수화와 몸짓은 그 어떤 대사보다 정확하고 명징하게 감독의 의도를 전달한다. 감독이 어린 시절 농아특수학교 맞은편에 있는 학교에 다니며 농아들과 가까이 지낸 경험과 저널리스트로 일했을 때의 취재가 각본의 바탕이 됐다고 한다. 또한 감독은 사운드와 자막을 활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무성영화에 대한 오마주”라고 답했다. 경의에서 출발한 과감한 시도가 패기 있는 신인감독을 탄생시켰다. 제67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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