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정반대의 두 육신에 직면한 중년의 남자 <화장>
이화정 2015-04-08

‘화장’은 같은 발화의 형태를 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반대의 뜻을 헤아려야 하는 단어다. 몸을 치장하는 화장(化粧)이 생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면, 시신을 불에 태우는 화장(火葬)은 죽음을 향한 가장 직접적 통과 절차다. 임권택 감독은 김훈 작가의 단편 <화장>을 토대로 이 정반대의 두 육신에 직면한 중년의 남자, 그 심리를 여행한다.

암투병 중이던 아내(김호정)의 임종을 맞은 화장품회사 마케팅팀 중역인 오 상무(안성기). 그는 죽어가는 아내를 간호하는 동안, 회사에 새로 들어온 홍보팀 대리 추은주(김규리)에게 마음을 뺏기는 자신을 발견하고 고뇌한다. 한 남자의 내면을 화면에 옮긴다는 점에서, <화장>은 사건과 역사가 내재된 캐릭터들이 주를 이루었던 앞선 101편의 임권택 감독의 작품과 차별화된다. 오 상무의 내면 탐구는 회사와 병원이라는 한정적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모던한 장소와 현대인의 심리로의 진입이라는 변화는 기존 임권택 영화와는 사뭇 다른 지점이다.

대변조차 제 의지로 가리지 못하고 죽어가는 아내를 곁에 두고 곱게 치장한 다른 여자의 육체를 탐하는 남자의 이야기지만, <화장>은 도덕이나 윤리적 비난의 지점에서 벗어나 별개의 문제로 치환된다. 그건 이 고통스런 속앓이에 전립선염을 앓으며 늙어가는 오 상무의 육체가 겹쳐지기 때문이다. 오 상무가 탐한 건 결국 사랑보다 더 근원적인 죽음이라는, 인간사의 피할 수 없는 지점에 대한 성찰이다. 안성기의 새로운 연기, 배우의 필모그래피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혼신의 연기를 해낸 김호정의 투혼이 인상적이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