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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sh on] 야구 다큐멘터리로만 한정하고 싶지 않다
이예지 사진 최성열 2015-04-09

<파울볼> 조정래, 김보경 감독

김보경, 조정래 감독(왼쪽부터).

한국 최초의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와 야신이라 불리는 김성근 감독을 다룬 다큐멘터리 <파울볼>의 연출은 조정래, 김보경 감독 2인 체제로 이루어졌다. 3년 동안 원더스를 따라다니며 모든 경기를 기록한 이들은, 자신들을 ‘영화판의 원더스’로 표현했다. 구단의 해체라는 예상치 못한 사건마저 다큐멘터리의 한 굴곡으로 연출해내며 원더스의 선수들처럼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은 이들을 제작사인 TPS컴퍼니 사무실에서 만났다.

-<파울볼>을 3년 동안 찍은 것으로 알고 있다. 개봉하는 소감이 어떤가.

=조정래_감개무량하다. 개봉 자체가 기적이다. 수많은 선수들과 김성근 감독에게 감사하다.

김보경_VIP 시사 때 선수들이 있는 상영관에 무대 인사하러 들어갔는데 눈물이 났다. 선수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완성해서 돌려주는 영화다. 그 진심이 관객에게도 느껴졌으면 좋겠다.

-야구에 원래 관심이 있었나. 고양 원더스의 다큐멘터리를 하게 된 까닭이 궁금하다.

=조정래_사회인 야구단을 할 정도로 광팬이다. 원래 두산 팬이어서 경기 운영을 너무 잘하는 전 SK 김성근 감독이 얄미웠지만(웃음), 그런 애정으로 선뜻 맡게 되었다. 그러나 <파울볼>을 찍어보니 내가 알던 김성근 감독이 아니었고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양 원더스는 패자부활전이자 외인구단이고, 기적을 일구어내는 팀이다. 인생공부가 됐다.

김보경_원래 야구를 안 본다. <파울볼>을 기획한 정원찬 PD에게 처음 제안받았을 땐 안 하려 했었다. 그런데 준비하던 영화가 5편 정도 엎어지고, 아르바이트 겸 김성근 감독 인터뷰 담당으로 합류했다. 첫해에는 김성근 감독에게 접근 자체가 힘들어 인터뷰를 못했기 때문에 보충 촬영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 역시 패자이기 때문에 패자부활전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손편지 3장을 써서 전달했다. 그게 효과가 있어서인지 김성근 감독이 관심을 가져줬다. 인터뷰를 하다보니 그들 자체에 호기심이 생겨 연출을 맡았다. 시작 후 2년은 조정래 감독이, 이후 1년은 내가 연출했다.

조정래_예상보다 촬영이 길어지면서 차기작 <귀향>의 일정 때문에 김보경 감독과 바통터치를 했다.

-어떤 것에 주안점을 두고 연출했나.

=김보경_다큐멘터리는 처음이었는데, 야구를 모르는 내가 궁금한 것이 관객이 궁금한 게 아닐까 싶었다. 야구 다큐멘터리로만 한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궁금한 건 거기 있는 사람들이었다. 여자에게 금기의 구역인 로커룸까지 출입해서 따라다니며 끊임없이 질문했다. 연출로서는 거의 개입한 바가 없다. 다만 오랫동안 찍은 시간 덕분에 이야기를 엮을 소스를 확보할 수 있었다. 3년 동안 찍은 소스이니 얼마나 방대하겠나.

조정래_모든 경기를 기록했다. 그라운드에서 원더스 선수처럼 뛰면서 김성근 감독과 선수들과의 거리감이 없어지자, 연출자로서의 자의식은 오히려 해체됐다. 거리감을 좀 가져야 감독으로서의 연출 의도가 생기는데, 나는 아예 동화되어버렸다. 구단 해체 후에는 정말 힘들었다.

-<파울볼>이라는 제목을 짓게 된 사연이 궁금하다.

=김보경_파울볼은 한번 더 공을 칠 수 있는 기회를 뜻한다. 영화의 기획자인 정원찬 PD가 제안한 제목이다. 후에 ‘원더스’ 혹은 ‘굿바이 원더스’ 등으로 제목이 바뀔 뻔했는데, 김성근 감독이 ‘파울볼’이란 제목을 되찾아줬다. 김성근 감독이 원래의 제목을 좋아하기도 했고, ‘굿바이 원더스’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하더라.

-<파울볼>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인가.

=김보경_다시 한번 기회가 있다는 파울볼의 뜻 그 자체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해체 후에도 남아서 열심히 연습하는 선수들을 보며 많은 걸 느꼈다. 여기가 끝인 것처럼 보이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다음 세상이 보인다. 사실 나를 비롯한 연출, 제작팀도 원더스 같은 처지다. 상업영화에 상처받고 좌절한 사람들이 거의 페이를 받지 않고 <파울볼>을 했다. 후반작업 업체들도 자청해서 개런티를 거의 받지 않았다.

조정래_영화가 끝난 후에도 인생은 계속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분명한 건 이 영화의 한명 한명이 다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구단의 해체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을 것 같다. 처음 기획했던 방향성에서 어떤 식으로 선회하게 되었는가.

=조정래_수많은 버전의 편집본이 있다. 해체 전 촬영을 마무리한 편집본의 경우, 초창기에 고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다 승률이 높아지고 프로로 데뷔한 선수들을 보여주면서 밝게 끝난다. 이후 더 많은 소스를 얻기 위해 보충 촬영을 하게 되었는데, 그 와중에 구단 해체라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김보경_해체라는 절망의 순간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남아서 훈련하는 선수들을 보여주며 마지막까지 희망을 보여주고자 했다. 어찌보면 야구를 더 하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다. 계속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 모두가 원더스인 거다. 미래의 성공을 담보할 순 없어도 지금을 열심히 사는 것이 행복 아닐까. 그래서 버티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호들갑스럽게 과장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설재훈 선수가 SK에 육성선수로 입단하게 된 것도 자막으로 처리했다. 다른 버전의 편집본들도 웹상에서 공개하려는 생각이 있다.

-김성근 감독과 선수들을 3년간 옆에서 지켜보며 정이 많이 들었겠다. 남은 선수들의 거취는 알고 있나.

=김보경_프로에 가지 못한 선수들은 군대에 가거나 식당을 차리는 등 다른 길을 찾은 경우가 많다. 최향남 선수는 오스트리아의 또 다른 구단으로 갔다. 여기가 야구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화 보고나서 한번 더 해보고 싶어졌다며 연락한 선수들도 있었다. 계속 야구를 할 방법을 찾는 사람들은 많은데 여건이 안 되는 게 안타깝다. 원더스처럼 갖춰진 팀이 아니더라도 재기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

-조정래 감독은 전통예술고등학교 학생들 이야기인 <두레소리>를 연출했고, 현재 위안부 소재의 극영화 <귀향>을 작업 중이다. 극영화이지만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 연출은 당신 영화의 특징인 것 같다.

=조정래_가족에게 소외받는 할머니를 다룬 첫 단편 <종기>에서도 연기자가 아닌 실제 가족을 캐스팅했다. 이때부터 극영화스럽지 않게 찍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두레소리>는 판소리하는 여학생을 보고 국악에 관심이 생겨 찍게 된 영화다. 차기작 <귀향> 또한 그렇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인 나눔의 집에 봉사활동을 갔다가 영화화를 결심했다. 그저 좋아하는 걸 계속할 뿐인데, 관심 있는 것마다 사람들이 걱정하더라. (웃음) <귀향>은 4월15일에 크랭크인한다. 예산은 25억원인데 크라우드 펀딩으로 3년 동안 5억원 정도 모았다. 최근엔 VOD 서비스 전문기업 홈초이스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관심들에 감사할 따름이다. 배우들은 대개 오디션으로 뽑았고, 손숙 배우도 출연한다.

-김보경 감독은 <시라노; 연애조작단> 조감독을 비롯해 다수의 작품에 연출팀으로 참여하다 이번에 입봉했다. 차기작 계획은 어떤가.

=김보경_현재 TPS에서 멜로 시나리오를 작업 중이다. 여행과 음악이 들어간 저예산 로드무비다. <파울볼>도 그렇고 <멋진 하루>도 그렇고 길 위에서 찍는 영화를 많이 하게 된다. 남들이 많이 하는 영화를 굳이 나까지 할 건 없지 않나. 영화판 또한 원더스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 대기업 몇개가 제작•투자•배급을 독과점한다. 그 시스템이 고쳐지지 않는 이상 구조적인 문제는 계속 생겨날 것이다. 감독은 단순히 영화만 만드는 게 이 나라의 전체적인 시스템도 같이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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