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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드라마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이주현 사진 오계옥 2015-07-30

<암살> 최동훈 감독 인터뷰

-<암살>은 어떤 면에서 도전이었나.

=우선 일제강점기가 유쾌한 시대가 아니잖나. 일제강점기를 다룬다면 무장독립투쟁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스토리가 너무 숭고해지면 부담스러우니, 입장이 각기 다른 캐릭터들의 갈등이 영화의 주가 되었으면 했다. 그런데 <도둑들>과 같은 스타일로, 범죄영화를 찍던 스타일로 만드는 게 가능한 이야기일지 잘 모르겠더라. 처음에 쓴 시나리오가 재미는 있었다. 그런데 ‘무언가’가 없었다. 그 무언가를 찾는 데 시간이 좀 오래 걸렸다. 결국은 가장 전통적이고 클래식한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기로 했는데, 이런 것들이 내겐 도전이었다.

-1930년대는 어떤 점에서 매혹적이었나.

=당시 항일투쟁은 식민지 조선에선 더이상 일어나지 않았고, 해외에서의 무장투쟁활동이 점차 무르익어갔다. 해외와 경성의 밸런스가 전혀 맞지 않는 거다. 경성에선 개인주의와 모더니티가 싹트기 시작했고, 또 한쪽에선 독립운동에 대한 질서가 막 잡혀가고 있었다. 그리고 주인공 안옥윤이 이청천 부대에서 온 사람이었으면 했다. 이청천 부대가 당시 독립군 항전사상 최대 전과를 냈다고 평가받는 대전자전투를 치른 게 1933년이다. 그즈음이 무장투쟁에 있어 중요한 시기였다. 1920년대여도 되고 1940년대여도 됐지만, 일제강점기의 분위기가 그쯤에서 한 템포 변하는 느낌이었다.

-영화는 1911년에 시작해 1949년에 이야기를 끝맺는다. 이처럼 긴 시대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전부터 있었나.

=물론이다. 대하드라마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거의 모든 영화에 관심이 많지만 범죄영화는 영화사에서 한줌의 재도 안 되는 하위 장르다. 거기서 더 확장하고 싶었다.

-염석진, 안옥윤, 하와이 피스톨 중 어느 캐릭터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갔나.

=이야기를 쓰다보면 뭔가 매혹적인 영감이 뒷덜미를 잡아채주길 바라게 된다. <암살>의 경우, 한 여자로부터 시작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독립군부대에서 살다가 어느 날 암살작전에 차출되고, 부대원들을 남겨두고 총을 들고 가는 한 여자. 여자는 말도 많이 하지 않는다. 기다리고 수행한다. 그러다 자신의 운명을 마주하고 속임수와 배신을 목격한다. 힘들지만 꿋꿋이 살아간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내가 이걸 쓸 수 있을까 싶었다. (웃음) 고치고 고쳐서 전지현씨에게 시나리오를 줬다. 예쁘게 보이려고 할 필요 없다. 이 여자는 예쁠 수가 없으니까. 무엇을 표현하려고도 하지 말자. 한 장면 한 장면 찍다보면 영화가 끝날 때쯤 꽤 괜찮은 캐릭터가 완성돼 있을 테니까. 서두르지 말고 욕심도 부리지 말자고 했다. 지현씨가 생각 이상으로 너무나 잘해줬다.

-하와이 피스톨은 안옥윤에게 연정을 갖게 되는데 ‘여기까지’, 하고 선을 지키는 느낌의 멜로드라마다.

=그게 애매하다. 멜로라기보다는 심퍼시(sympathy), 연민이다. 동질성을 발견하고, 그 여자를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눈에다 키스할 뿐. 딱 거기까지다. 좋았던 감정, 그게 사랑일 수도 있고 동지애일 수도 있는데, 그 감정이 완벽히 해소되지 않고 기억에 남을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멜로를 강하게 만들려 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멜로영화를 정말 좋아하지만.

-전지현과 하정우는 <베를린>(2013)에서 부부로 출연했다. 그 점이 신경 쓰이진 않던가.

=신경이 왜 안 쓰였겠나. (웃음) 그럼에도 이 배우들과 작업하고 싶었다. 어차피 영화와 캐릭터의 온도가 다르니까. 그런 걸 신경 쓰다 보면 어떤 배우와도 같이 작업하지 못한다. 관객이 그런 연상을 하게 되더라도 나는 그것에서 자유로워지자고 생각했다.

-조승우가 김원봉 역으로 특별출연한다. 그에게 출연을 부탁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원봉이니까.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의열단 단장 김원봉은 일제가 최고의 현상금을 내건 굉장한 사람이었다. 김구에게 걸린 현상금이 60만원, 김원봉에겐 100만원의 현상금이 걸렸었다. 아마 비공식적으로 오사마 빈 라덴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현상금이 걸린 사람일 거다. 일본이 가장 잡고 싶어 했고 가장 무서워한 사람. 영화에선 김원봉의 비중이 크지 않지만, 이 인물의 존재감과 깊이감을 관객에게 단번에 전하고 싶었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배우 조승우에게(웃음) “승우야, 사람들에게 김원봉의 얼굴이 너의 얼굴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했고, 흔쾌히 출연해주었다. 승우씨가 현장에 오니 옛날 생각도 나고 정말 좋았다.

-염석진과 하와이 피스톨의 마지막 대결은 서부극의 한 장면처럼 연출하려 한 것 같았다.

=단둘의 대결이니까. 최후의 일대일 대결이니까. 졌지만 졌다고 얘기할 수 없고, 이겼지만 이겼다고 얘기할 수 없는 그런 대결을 만들고 싶었다.

-영화 초반 상하이 장면에서, 염석진이 극장을 돌아다니며 사람을 찾는 장면이나 아편굴 장면에선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도 생각나더라.

=공간, 특히 실내 장면을 고를 때는 어려움이 많다. 우리가 1930년대를 깊이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실내 공간의 느낌은 다른 영화들을 보고 공부하기도 했다. 당시 상하이의 아편방은 지금의 커피숍처럼 흔한 공간이기도 했고, 염석진의 혼란을 보여주기 위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극장 장면은 시대 전환을 표현하기 위해 넣은 거고.

-1930년대 상하이와 경성도 인상적으로 재현해냈다.

=그 시대를 구현하되 너무 화려하거나 과하지 않게 표현하려 했다. 어디까지나 배경은 배경이어야 하니까. 우리의 포커스는 언제나 사람이었다. 미쓰코시 백화점 세트,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거기서도 우리는 사람에 집중했다. 사실 그 시대를 재현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든 일이어서, 류성희 미술감독은 극도의 피곤함에 촬영장에서 거의 벽을 짚고 방에 들어가 쉬곤 했다. (웃음) 조상경 의상실장은 멋을 알고 낭만을 안다. 오버하지 않으면서 그 인물에게 가장 적절한 옷을 찾아준다. 내가 주문한 건 웨딩드레스나 하나 만들자, 그 정도였다.

-<도둑들>이 공개된 이후 가진 <씨네21>과 인터뷰(864호)에서 “장르와 정서가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얘길 했다. <암살>은 확실히 장르보다 정서에 방점을 찍고 만든 영화 같은데.

=내가 그런 훌륭한 얘기를 했었나? (웃음) 그렇게 얘기했다면 아마 <씨네21>과 인터뷰했던 내용 그대로 영화를 만든 것 같다. 장르와 정서가 같은 영화, 즉 장르영화인데 정서감이 짙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장르가 없고 정서만 있는 영화는 나한테 어울리지 않는다. 아무튼 액션도 많고 극적 긴장감이 가득한 스릴러 장르의 하드보일드한 영화, 그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감성이 좀 진하게 묻어났으면 좋겠다는 고민을 계속 해왔었다. <암살> 역시 최대한 그 느낌에 가깝게 찍고 싶었다.

-차기작으로 생각해둔 작품이 있나.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지 아직 모르겠다. <도둑들>에서 빠져나오기도 쉽지 않았는데, <암살>에서 빠져나오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암살>은 쉽게 잊고 싶지 않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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