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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통해 만들어낸 두개의 삶 <거짓말>

피부과에서 시술보조업무를 하는 아영(김꽃비)은 두개의 삶을 산다. 하나는 집 나간 어머니, 알코올중독에 빠진 언니, 집에 들어오지 않는 형부라는 현실의 삶이고 다른 하나는 허언증이 있는 그녀가 거짓말을 통해 만들어내는 화목한 상류층 가정의 삶이다. 아영은 점심시간을 쪼개 가전제품을 사러 다니고 퇴근 후에는 고급 아파트의 매물을 보러 다닌다. 그녀는 매번 허황된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계약을 한 뒤 다음날 해지하기를 반복한다. 그녀는 애인 태호(전신환)와 동료들에게도 비슷한 거짓말을 반복한다. 하지만 실수로 계약을 해지하지 않은 냉장고가 집으로 배달되고 태호와 동료들과의 관계도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김동명 감독의 <거짓말>은 <이상한 나라의 바툼바>(2008), <피로>(2011)에 이은 그녀의 세 번째 장편영화다. 장편을 연출하기 이전에 <위상동형에 관한 연구>(2003), <전병 파는 여인>(2007)과 같은 실험적인 단편이 인디포럼 등의 영화제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다. <거짓말>은 가장 대중적인 화법으로 감독의 목소리를 전하는 작품일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 중 하나는 중고차 딜러인 태호가 회사에 거짓말을 하고 빌려온 외제차로 아영이 운전연습을 하는 장면이다. 자동차 앞 유리 너머로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고 유리창에 비친 고층 아파트의 실루엣이 차의 움직임에 따라 천천히 회전한다. 태호와 아영은 이미 서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 거짓말들은 아영을 아주 잠깐 동안 그녀가 그토록 원하던 현실의 근사치에 데려간 뒤 신기루처럼 사라진다(영화에서 유일하게 사운드가 아웃되는 장면이기 때문에 더욱 현실에서 벗어난 순간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후 영화는 아영이 쌓아온 거짓말에 하나씩 금이 가고 그녀의 맨 얼굴이 드러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후반부로 갈수록 인물들의 (행동보다도) 심적 변화가 과격하게 묘사된 부분이 있지만 영화는 비슷한 소재를 다룬 영화들이 종종 선택하는 극단적이지만 메마른 결말, 가령 자살과 같은 엔딩과 타협하지 않으며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대명컬처웨이브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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