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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냥이
한유주(소설가) 일러스트레이션 마이자 2016-02-23

언젠가 새벽에 집으로 돌아가다가 골목길에 서 있는 트럭 밑에서 조그만 고양이를 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한 마리로 보였다. 내가 조금 가까이 다가가자 고양이는 경계하는 기색을 보이면서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직전에 편의점에서 우유를 산 기억이 났다. 주변에서 플라스틱 병뚜껑을 찾아 우유를 조금 부은 뒤 나와 고양이의 중간지점에 놓자 고양이가 트럭 밑에서 슬그머니 나왔다. 그런데 한 마리가 아니었다. 크기와 털 색깔이 조금씩 다른 고양이 다섯 마리가 첫 번째 고양이를 따라나오는 거였다. 크기로 볼 때 맏이부터 막내까지 차례대로 나오는 것 같았다. 고양이를 키우는 친구에게 우유를 주고 있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러자 친구는 고양이에게 우유를 주면 안 된다고 빠르게 대답했다. 나는 서둘러 병뚜껑을 치웠다. 그러자 어린 고양이들이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착각일 수도 있다.

그날은 편의점에서 게맛살을 사서 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 얘기를 들은 한 친구가 고양이 사료를 반 포대 정도 가져다주었다. 나는 그날부터 사나흘에 한번씩 사료를 물에 말아 고양이들을 본 곳으로 갔다. 고양이들을 만날 확률은 70% 정도였다. 그러니까 꽤 큰 확률이었다. 어미는 보이지 않았다. 한번은 사료를 깜빡 잊었는데, 맏이와 셋째로 보이는 고양이 두 마리와 마주쳤다. 순간적으로 당황한 나는 주머니를 뒤져 귤을 꺼내 내밀었다. 친구네 고양이가 귤이라면 질색하던 것이 생각난 건 그다음이었다. 고양이와 같이 생활한 적이 없어 저지른 실수였다.

어쨌거나 고양이들은 나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어느 날인가는 아예 그 길목에서 내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자 차츰 두려워졌다. 고양이에게 우유를 주지 말라고 한 친구는 츤데레처럼 굴어야 한다고 말했다. 밥을 주는 동시에 화를 내라는 거였다. 그래야 고양이들이 내게 정을 붙이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밥 먹는 고양이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나는 먹는 데 정신이 팔린 고양이들을 돌아보며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뜨고는 했다.

고양이들과 헤어진 건 내가 꽤 오랫동안 멀리 떠나게 되면서였다. 나는 적정 거리를 유지할 수 없었고, (애초에 있었는지도 의문인) 거리 자체가 사라져버린 셈이 되었다. 한동안 한파가 몰아칠 때마다 그 고양이들이 먼저 떠올랐다. 비가 오면 고양이들이 물을 마실 수 있으니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작한 이상 어떻게든 끝까지 책임을 다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금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이 일은 내가 저지른 수많은 잘못 중 하나다. 그리고 나는 아직까지도 이 잘못을 개선할 방법을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