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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제대로 읽고 제대로 말하기 위한 어떤 기준
송경원 2016-04-07

<에센셜 시네마> 조너선 로젠봄 지음 / 이모션 북스 펴냄

취향의 시대다. 평론가의 분석이나 전문가의 조언은 이제 필요할 때 입맛에 맞는 의견을 구하는 참고사항에 불과하다. 각자의 기준과 취향이 중요해진 요즘, 절대적인 기준에 입각해 엄선한 이른바 정전(正典)은 화석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그 결과 진정 다채로운 영화를 주체적으로 즐기고 있는가 묻는다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정전이 대중으로부터 멀어진 건 하나로 재단된 이데올로기를 강요한다는 의심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진정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워졌을까. 취향을 빙자한 산업의 논리라는 또 다른 이데올로기가 끼어든 건 아닌지 의문이다. 더 끔찍한 건 비판적 사고와 독해의 가능성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제대로 읽고 말하는 법을 익힐 기회는 점점 줄어들어 간다.

기실 정전의 가치는 올바름(正)이 아니다. 그보다는 절대적인 무언가가 있다고 믿고 그것을 추구하려는 태도, 말하자면 방향성이 소중하다.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오독의 가능성을 경계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오독이란 있을 수 없다. 오독이 존재하려면 정독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전의 무용이 제기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받은 감흥의 실체를 제대로 살피고 전달하기 위해 각자 마음 속에 자기만의 정전을 세우는 건 꽤 유용한 방법이다. 영화에 이르는 과정과 논거가 바탕이 되어야 진정 취향을 말할 수 있다. 이에 조너선 로젠봄은 <에센셜 시네마>에서 다시금 정전의 가치를 부활시키고자 한다. 그가 꼽은 1천편(한국판을 위해 저자가 추가한 작품을 포함하면 1120편)의 정전들은 누구나 이견 없이 동의해야 할 목록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로젠봄이 이 작품들을 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설득의 과정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나 자신의 취향과 우선순위를 반영한 것으로 이는 하나의 가능한 영화관람 리스트이자 혹은 논쟁을 불러일으킬 비평적 선언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라는 그의 말은 영화비평의 쓸모와 책임을 동시에 짚고 있다.

조너선 로젠봄은 텍스트 안쪽보다 텍스트를 둘러싼 말의 위선을 해부할 때 좀더 빛을 발하는 비평가다. 그가 뉴욕대 영화입문 수업을 들을 당시, <시민 케인>이 커리큘럼에서 빠진 이유를 묻자 담당교수는 “오슨 웰스의 영화는 기본적으로 비영화적이기 때문에 아마추어들에게나 인상적”이라고 답했다. 이후 정전이 밀려난 자리에 자본의 욕망이 들어차는 걸 본 로젠봄은 교수가 미국 영화산업의 옹호자라는 걸 깨닫고 정전의 필요성을 실감했다고 한다. 그는 미국영화협회에서 꼽는 ‘위대한 미국영화 100편’을 “야만적이고 상업적인 계략”이라고 맹렬히 비난하며 정전의 복권을 주장한다. 이 책이 제시한 대안적 리스트를 전적으로 따르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믿는 바를 증명하려는 치열한 고민과 헌신, 통찰력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취향이란 단어로 뭉개 설명해선 안 될, 제대로 읽고 제대로 말하기 위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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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읽고 제대로 말하기 위한 어떤 기준 <에센셜 시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