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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역사와 더불어 산다는 것은

독일 철학자 헤겔은 “우리는 ‘인간은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것’을 역사로부터 배웠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못 배울 리는 없겠지만 기대에 못 미친다는 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역사 속의 인간은 앞의 실패를 교훈 삼아 현명하게 행동하기보다는 놀라울 정도로 잘못을 반복한다. 그런 경향은 우연과 외부의 충격에 의해 멈추어질 뿐 여간해서는 깨달음에 의해 중단되지 않는다. 개개의 인간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었더라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한 채 수명이 다하기 일쑤다. 인간의 집단 또는 세대는 다른 집단이나 앞선 세대의 뼈아픈 경험을 제대로 내면화하지 못한다. 큰 배움은 지식이 아니라 체험의 문제이고, 실제로 체험하지 못한 역사는 몸에 새겨지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최근 <사피엔스>라는 책으로 각광받고 있는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인간의 이런 한계를 절감한 까닭인지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서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역사에 등장하여 우리의 현재를 규정하고 있는 온갖 시스템, 도덕, 종교, 이념들은 마치 필연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긴 역사적 안목으로 살펴보면 전혀 필연적이지 않다. 어떤 계기를 통해 시작된 이것들이 과거에 폭넓게 받아들여졌고 현재까지 우세하다고 하여 진리로 영접할 수는 없다. 우리는 역사의 연구를 통하여 그것들의 우연성, 상대성, 허구성을 꿰뚫고 자유로워져야 한다.

우리는 ‘왕의 권능이 신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는 ‘왕권신수설’의 논리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절대왕정시대에 살았던 사람이 그것을 깨닫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왕에 대한 충성’은 지금 시점에서는 우스꽝스럽지만 그들에게는 매우 진지한 것이다.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어떠한가. 어쩐지 반대하면 안 될 것 같은 도덕적 압력을 느낀다. 하지만 그 진보성, 유용성과는 별개로 그것 또한 발명된 개념일 뿐이다. 그것이 자연이나 역사나 신에 근거하는 불가침의 가치라는 주장은 비장한 레토릭에 지나지 않는다. ‘민족’이 ‘상상의 공동체’일 뿐이라는 유명한 주장은 월드컵 경기장에서 발설됐다면 구타를 유발할 것이고, 정치인이 부르짖는다면 낙선을 각오해야 하겠지만 지식사회에서는 이미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어쩐지 열심히 신봉해야 할 것 같은 국가, 신, 도덕, 일부일처제, 정의, 자유, 평등이라고 선뜻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 우리가 가장 애지중지하고, 반대하기 어려운 가치야말로 가장 의심스러운 가치들이다.

살다 보면 판단력의 레벨이 다른 사람들과 뚜렷이 구별되는 사람들을 아주 가끔 만나게 된다. 좋은 판단력의 핵심은 지능이나 지식이 아니라 성품과 성찰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에 더하여 ‘세상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핵심적인 가치들이 알고 보면 최고의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가치들을 유연하게 다룸으로써 비범한 판단력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