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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의 경사기도권] 경쟁 없이 이기는 법
허지웅(작가) 일러스트레이션 민소원(일러스트레이션) 2016-04-18

세상의 태도와 타협하지 않는 <4등>의 미덕

<위플래쉬>는 죽여주는 영화였다. 관객 가운데 이 영화가 재즈 플레이어를 다루고 있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려나 모르겠다. 플래쳐가 호통치는 장면은 <풀 메탈 자켓> 같았고 연습 장면은 <취권> 같았으며 연주 장면은 <블랙 호크 다운> 같았다. 그 모든 호흡이 잘빠진 난도질 영화 같아서 마지막 시퀀스에 이르고 나면 주인공 아버지처럼 동공이 확장되고 호흡이 가빠지다 마침표를 딱, 하고 찍는 순간 아드레날린이 폭발해 상영관의 의자를 잡아 빼 던져버리고 주차장까지 걸어가는 내내 극장 벽을 더블 타임 스윙의 빠르기로 두드려 치고 싶을 지경이었다. 촬영한 컷들을 가지고 ‘편집’을 했다기보다 ‘조율’을 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그야말로 호흡의 호흡에 의한 호흡을 위한 영화였다. 엄청나게 매혹적인 영화다.

그리고 그렇게 매혹적인 영화들은 때때로 정작 말하고자 했던 비전과는 전혀 달리 엉뚱한 감상을 관객에게 전달하곤 한다. 이를테면 <대부>를 보고 마피아가 되고 싶다든지, <위플래쉬>를 보고 역시 천재는 다그쳐서 계발되고 만들어지는 거라고 생각한다든지 말이다. 플래쳐 같은 능력은 없으면서 플래쳐처럼 행동하는 것만 좋아하는 통제 환자들이 넘치고 차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사실 <위플래쉬>는 전혀 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영화다. 천재 소년이 기존의 규칙을 대변하는 악당 스승을 만나 그의 규칙을 따르고 닮아가다가 파멸할 뻔한다. 권위 있는 시니어가 ‘이기기 위해선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하고 그걸 가르치려고 노력하면서 손가락질을 당하는 나는 영웅이고 남들은 다 위선자다’라는 식의 말을 내뱉으면 누구나 혹하기 쉽다.

그러나 이 천재 소년은 정면 대결 안에서 스승의 룰을 부정하고 그것과 결별하는 방식으로 끝내 각성해 판을 뒤집어엎는다. 이게 <위플래쉬>의 이야기다. <위플래쉬>는 <죽은 시인의 사회>가 아니라 <매트릭스>에 가까운 영화다. 천재를 각성시킨 건 그 자신이지 매타작이나 자기계발서나 강박적인 동기부여가 아니다(물론 플래쳐는 자기 패배를 인정하고 천재가 탄생하는 순간을 목격하는 자체를 즐길 만큼 성숙한 악당이다. 잘 만들어진 악당 캐릭터들이 그렇듯. 플래쳐는 그래서 매혹적이다).

물론 <위플래쉬>는 천재 이야기다.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적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조금 더 친숙하고, 그래서 우리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줄 만한 영화를 찾아보자. 정지우 감독의 신작 <4등>이다. 나는 이 영화가 너무 좋다.

주인공은 수영에 재능이 있는 소년이다. 자기가 그걸 알고 있다. 엄마에게는 꿈이 있다. 아들이 1등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극성이다. 자식이 재능을 발견하게끔 길을 모색해주기보다 없는 재능을 발명하게 하려고 자식에게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는 대다수 한국의 부모들이 그렇듯. 그런데 문제가 있다. 정작 소년은 1등에 별 관심이 없다. 만날 4등을 한다. 엄마는 복장이 터진다. 아들이 패배자로 성장할 것 같아 조마조마하다.

어느 날 교회에서 정보를 입수한 엄마는 과거 학생 때 천재적인 수영 선수였다는 코치를 소개받는다. 엄마는 코치에게 아들을 맡긴다. 코치는 처음에는 심드렁하다. 그러나 곧 소년에게 재능이 있다는 걸 눈치챈다. 코치는 진심으로 소년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드디어 대회. 언제나 4등만 하던 소년이 간발의 차이로 2등을 한다. 엄마는 뛸 듯이 기뻐한다. 그날 밤 집에서 파티가 벌어진다. 너무 옭아매지 말고 그냥 취미로 즐기게 놔두라던 아버지도 정작 2등을 했다니까 기분이 좋은 눈치다.

그때 고기를 먹다 말고 동생이 말한다. 정말 맞고 하니까 잘한 거야? 예전에는 안 맞아서 늘 4등 한 거야?

영화 <4등>은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을 펼쳐놓는다. 극성맞은 부모와 고통받는 아이. 그러나 이 영화의 진심은 그런 부모 몇 사람 타박하는 것에 가닿아 있지 않다.

관객은 코치가 학생 시절 ‘감독이 너무 때린다’는 이유로 전도유망한 수영 선수의 길을 때려치운 걸 영화 초반부 시퀀스를 통해 알고 있다. 그런 코치가 지금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때 감독님이 나를 더 때리고 강하게 키웠으면 내가 더 많이 성공했을 텐데.” 혹은 이렇게도 이야기한다. “니가 열심히 안 하니까 때리는 거지, 열심히 하면 때리겠냐.” 관객은 또한 아들이 맞으면서 수영을 배우고 있다는 걸 엄마가 눈치채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엄마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우리 애가 맞는 것보다 1등 못할까봐 더 무서워.”

수영이 아니라 다른 무엇으로 바꾸어도 마찬가지다. 매를 든 선생님이든 군대 선임이든 회사 선배든. ‘폭력이 동원되더라도 강하게 통제하고 억압할수록 개인에게 동기가 생기고 세상은 더 잘 굴러간다’는 걸 겉으로 주장하는 사람은 요즘 드물다. 그러나 그게 내심 불편한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태도는 우리 사회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4등>의 호쾌한 점은 소년이 이 모든 걸 이겨내는 과정에 있다. <위플래쉬>의 주인공처럼 스승에게 압도되고 그를 닮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소년은 결국 경쟁 자체를 부정하지도 않으면서 경쟁에서 이기고 성장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낸다. 보통 부조리한 세상과 이상을 좇는 개인을 연결할 통로가 되어준답시고 대단한 현자처럼 구는 사람들은 무슨 굉장한 진리를 설명하듯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한다. “너 힘들고 좆같은 거 알아, 그런데 이게 세상이야, 나라고 나쁜 사람 되고 싶어서 이러겠니? 니 눈에는 한심한 어른으로 비쳐지겠지, 하하하(고개를 약간 기울인 쓴웃음)…. 너는 잘될 거야, 일단 영리하게 굴자.” 소년은 그런 플래쳐의 논리, 앞선 세대의 노하우, ‘세상의 태도’와 타협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 힘으로, 자기만의 동기를 가지고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런 점에서 영화 <4등>의 가장 빛나는 순간은 마지막 장면이 아니다. 이 영화의 가장 빛나는 순간은 코치가 남긴 선물을 소년이 집어들지 않는 장면이다. 소년은 부조리한 질서로부터의 어떠한 유산도 이어받기를 거절한 것이다. 올 상반기 가장 감동적인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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