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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듯 연기하기, 흐르듯 살기

<해무> <극적인 하룻밤> <최악의 여자>의 배우 한예리

갓 태어난 것 같은 얼굴. 스크린에서 한예리를 처음 보았을 때 속으로 메모했다. 도무지 나이를 짐작하기 힘든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그림엽서 세트를 모았던 일본 작가 이와사키 지히로의 일러스트에 등장하는 발그레한 뺨의 소녀가 애틋하게 떠올랐다. <푸른 강은 흘러라>(2008)에서 연변 학생을 연기한 한예리는, 놀라운 배우인 게 분명한 동시에 계속 배우로 살지 않을 것 같았다. 이 영화에는 그녀가 음악을 들으며 교실 창가에 가만히 서 있는 짧은 숏이 있다. 아무것도 호소하지 않으면서도 영화의 뉘앙스를 풍성하게 만드는 이런 정경을 대뜸 만들어내는 배우는 개기일식만큼 귀하다. 독립영화의 그녀가 담백하고 맑았다면 몇해 후 대중에게도 한예리의 이름을 알린 <파주>(2009)와 <코리아>(2012)에서 그녀는 강렬하고 분방했다. 친구를 태운 바이크를 몰고, 온몸을 던져 탁구를 쳤다. 2014년 동양화풍의 애니메이션 <가구야 공주 이야기>에서 붉은 치마를 휘날리며 질주하는 주인공의 마력에 찬탄하다가 나는 다시 한예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사지를 휘둘러 세상을 헤쳐가고 아름다움의 기준이 오직 자기 안에 존재하는 젊은 여자의 이미지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었다. 투명한 동시에 지형에 따라 고요히 괴어 있을 수도, 급류로 소용돌이칠 수도 있는 한예리의 물 같은 매력은 대중보다 감독들에게 먼저 소구했다. 한예리를 무술 고수 척사광으로 캐스팅한 <육룡이 나르샤>의 신경수 감독은 TV 단막극 <연우의 여름>(2013)에서 한예리를 우연히 보고 매료된 기억을 이렇게 들려주었다. “너무나 신선한데 배우가 뛰어난 건지, 연출자가 사람 자체를 잘 포착한 건지 혼동되는 연기였어요. 생생한 나머지 생경하기까지 한 자연스러움이었습니다.”

외모와 연기에 대해 사람들이 입 모아 감탄하는 한예리의 자연스러움은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도화지의 순백과는 다르다. 그녀의 담백함은 자기주장이 강하다. 메이크업이나 헤어스타일로 쉽게 트렌드를 덧씌울 수 있는 아시아계 슈퍼모델들과는 차별되는 한예리의 색깔은, 배우로서 그녀의 저력이자 허들이다. 반면 그녀의 자그마한 몸은 무한히 유연하고 유능하다. 독립영화를 오랫동안 소개해온 상상마당 전 프로그래머 진명현 대표(무브먼트)는 한예리를 이렇게 표현한다. “대다수 독립영화 배우들이 화보를 찍으러 가면 경험 부족으로 손을 어디다 둘지 어색해하는데 한예리 배우는 무용을 해서 그런지 몸 쓰는 데에 거침이 없었어요. <환상 속의 그대>(2013)를 봐도 이희준 배우한테 업히는 모습이 뭔가 모르게 자연스럽죠.” 한예리는 세살 때부터 춤을 춰온 단련된 무용수로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재학 시절 영상원 동기들의 졸업작품을 품앗이로 도와주다 연기에 입문했다. 시작은 오직 즐거움에 이끌린 아마추어의 열정이었지만, 신체 연기의 강점은 물론 안무부터 공연 제반작업까지 혼자 힘으로 기획하고 준비하는 데에 평생 단련된 한예리의 다재다능함과 직업적 규율은 프로 배우로서 큰 강점이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에서 여배우란, 온전히 재능으로 자아를 지키며 삶을 돌파하려는 젊은이에게 얼마나 위태로운 직업인가. 서른까지만 연기를 하고 무용에 정진하리라 작정했던 한예리의 인생 계획은, 무용과 연기가 서로를 배척하지 않는 활동일 수 있다는 희망으로 4년 전 급커브를 틀었다. 지난 2년간 한예리는 로맨틱 코미디 <극적인 하룻밤>에서 주연을 맡는 한편 무용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지금까지 그녀가 연기한 여자들은 영화가 여성 캐릭터에게 즐겨 취하는 섹시한 매력이나 모성적인 미덕 바깥에서 개성으로 호소했다. 한예리에겐 좋은 여배우에 민감한 한국 관객을 지난 10년간 행복하게 했던 배두나의 담담함과 김민희의 대담성, 임수정의 사색적인 면모와 더불어, 아직 출구를 만나지 못한 잠재력이 있다. 남은 것은 한국영화가 이 배우에게 어떤 길을 열어줄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그녀의 경력은 어쩌면 한국영화가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과 다양성의 현재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종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해에는 상업영화 투톱 주연을 처음 맡은 <극적인 하룻밤>이 중요한 행보였는데 올 들어서는 다방면의 활동이 눈에 띕니다. TV 대하서사극 <육룡이 나르샤>에 출연했고 김종관 감독의 <최악의 여자>가 공개를 앞두고 있고, 전주국제영화제 심사위원도 맡았어요. 드라마 <상상 고양이>에서 목소리 연기도 했고 오락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도 있었죠.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네요, 제가. (웃음) 올해는 들어오는 걸 마다하지 말고 아무 생각 없이 해보자고 결심했어요. 그러고 나니 공교롭게 예능 프로 제의도 들어오고 <필름 시대 사랑>에서 만난 장률 감독님도 <춘몽>을 다시 제안하셔서 일이 많아졌어요.

-그런 결심은 한 선택이 어긋나도 큰 낭패는 아니라는 여유가 생겼을 때 가능하지 않아요?

=한 가지 일의 결과가 내 인생을 바꿔놓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게 돼서 그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경험이 늘고 주변의 사례를 보면서, 설령 좋은 일이 있어도 다음에 이어지지 않을 수 있고, 어떤 시도가 실패했다고 갑자기 일을 못하게 되는 것도 아님을 알았거든요.

-얘기 듣기 전에는 30대 초반 배우로서 매니지먼트쪽에서 모든 가능성을 시험해보려고 하는 시기일까 짐작했는데요. 매니지먼트로부터 좀더 신경 쓰라고 조언받는 부분이 있어요?

=음, TV드라마에서는 그래도 예뻐야 된다는 것? (웃음) 헤어나 메이크업, 의상에 더 신경 쓰자고 했어요. 그날의 의상을 피팅하면 사진으로 회사 스탭들이 공유하고 의견을 제게 전했어요. <육룡이 나르샤>에 첫 등장한 회에 윤랑이 입은 흰옷도 처음 선택했던 붉은옷에서 바뀐 거예요.

-본인의 외모를 두고 여러 사람이 이렇다 저렇다 토론하는 모습을 보는 기분은 어때요?

=“이것도 되게 중요한 거야”라고 자꾸 생각하죠. (웃음) 확실히 영화보다 TV 화면이 작다보니 눈에 담은 감정이 전달되기 더 어렵다는 걸 깨달았어요. 제가 눈두덩이가 두터운 편이라 덜 표현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간혹 표정이 없어 보일 때도 있다는 걸 알았고요. 영화보다 좀더 많이 표현해야 된다는 걸 배웠어요.

-얼마 전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전통 무용 미니 쇼케이스를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댓글이 실시간으로 달리는 프로그램이라 조금이라도 낯설거나 지루한 내용은 면박당하기 쉬운 포맷이잖아요. 예를 들어 한예리씨가 승무를 시연하는데 “비트 좀 빨리요” 하고 리플로 채근하는 걸 보며 괜히 속상하기도 했는데, 어떤 의도로 출연에 응했나요?

=목적은 딱 하나였어요. 전통 무용이 단지 접할 기회가 적어 지루하다고 인식되는 현실이 아쉬워서, 공연에서 관객 반응이 좋았던 작품들을 골라 소개하고 싶었어요.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는 지난 해 <극적인 하룻밤> 홍보를 위해 처음 출연했는데 전공인 한국무용을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면 어떻겠냐는 얘기를 들었어요. 당시엔 아무래도 오락 프로그램에서는 웃음을 요구할 텐데 자칫 전통 무용이 웃겨 보일까봐 싫었어요. 첫 예능 출연인데 3시간쯤 혼자 쇼를 이끌어야 한다는 점도 겁이 났고요. 그런데 올해 다시 섭외가 들어왔을 때는 겁내지 말고 해보자 싶었어요. 새벽 1시에 <육룡이 나르샤> 촬영 끝나고 무용하는 친구들과 회의하고 연습해서 준비했죠. 긴 전통 무용 작품을 1분30초 분량으로 장단에 맞춰 자르고 영상을 찍어 작가님들한테 보내서 컨펌을 받았고 의상 대여까지 직접 진행했어요.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제게 남긴 뜻밖의 효과는 한예리의 성숙한 면모를 여태 몰랐다는 각성이었어요. 전통 무용을 설명하고 가르치는 모습을 보며 저런 야무진 선생님이 어린 이미지 뒤에 숨어 있었네, 하고 놀랐죠. 혹시 가르쳐본 적이 있나요?

=대학 시절부터 무용학원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입시 레슨도 했고요. 실제로는 방송보다 훨씬 호되게 가르쳐요. 스무살 때 가르쳤던 초등학생들이 <마이 리틀 텔레비전> 보고 잘 봤다는 문자도 보냈어요.

-가르치는 일이 잘 맞아요?

=맞지 않기 때문에 배우를 하고 있어요. (웃음) 잘 맞았다면 엄청난 입시 교사가 되어서 학교에서 일하고 있었을걸요. 제가 봐도 잘 가르치는 교사였어요. 그런데 제가 영화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더 힘들어진 일 중 하나가 정형화된 패턴대로 뭔가를 하는 것이었어요. 입시 무용 교육은 목표로 하는 학교마다 틀이 있어 학생마다 분명히 장기가 있고 자기만의 선이 있는데 그걸 입시에 맞춰 바꿔줘야 해요. 영화는 A가 연기하면 이런 좋은 점이, B가 하면 저런 좋은 점이 있다고 말해주는데 무용 교육은 그럴 수 없으니 괴로웠어요.

-고향 제천에서 놀이방 대신 무용학원에 맡겨지면서 만 세살 때부터 무용을 자연스레 습득했다고 들었어요. 중•고등학교, 대학까지 무용을 전공했는데 도중에 한번도 다른 길을 생각한 적이 없었나요?

=한번도요. 전 공부에 취미도 별로 없는데 춤을 추면 행복하고 남들도 잘한다고 말해주니까 딴생각 말고 평생 이걸로 먹고살아야지 했어요. 국악예술학교 시절에는 학교 군기도 굉장히 세고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그저 무용실에서 춤추는 걸로 족했어요. 연습실에 있는 한 성적, 선후배 관계, 선생님 등등 모든 문제를 잊고 오로지 내 몸에 집중할 수 있어 행복했어요. 바깥이 아니라 내부로 도피한 거죠. 기숙사 생활을 해서 아예 밖에 나가기 힘든 시스템이기도 했어요. 그렇게 중•고교 6년 동안 4인실에서 합숙생활을 했기 때문에 남자들이 2년 군대 이야기 꺼내면 “그게, 뭐?” 하고 받아요. (좌중 폭소) 1학년 때 들어가면 언니들이 엎드려뻗쳐 시키고, 밤 11시 딱 치면 점호를 했거든요. 내내 빡빡하게 살아서 그런지 오히려 지금은 농땡이치며 사는 기분이에요. (웃음)

-내키면 학교수업도 빠지고 자기만의 시간을 누리며 성장한 인상인데 정반대네요. 딱딱하거나 초조한 분위기가 없어서 짐작도 못했어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일 거예요. 중•고교 시절에는 고정관념도 강했고 친구들과 저지른 최대의 나쁜 짓이 한예종 합격 후 몇몇이 학교 담을 넘은 사건이에요. 막상 담 앞에 섰는데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요. 담도 넘어봤어야 넘죠. 모두 얼어 있는 와중에 용감한 한 친구가 담에 접근하긴 했는데 또 가방을 어쩔 줄 몰라 먼저 던지자, 누가 집어가면 어쩌냐며 난리도 아니었어요. (웃음)

-중학생 이후로는 내내 예술가 지망생 내지 예술가인 어른들에게 둘러싸여 성장기를 보낸 셈입니다. 눈에 가까이 보이는 친구들과 직접적인 경쟁을 하며 살아왔다고도 할 수 있고요. 이 경험이 성인이 된 모습이나 세상 보는 관점에 영향을 준 면이 있을까요?

=아주 많죠. 전 무용을 할 때만 해도 무대에 적합한 신체조건과 얼굴이 아니면 예쁜 것이 아니고, 옳은 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조건이 미흡하면 노력해도 안 되는 영역이 있으니 힘들었죠. 만약 딸이 태어났는데 날 닮아 키가 작다면 무용을 좋아해도 전공하겠다면 말려야지 했어요. 그런데 영화를 하면서 누구나 장점이 있고 다름에 매력이 있다는 걸 배웠어요. 뭐랄까, 예전에는 무용을 하니까 제게 뭘 좋아하냐고 묻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뭘 좋아하는지 몰랐죠. 그러다보니 영화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제게 질문을 해준다는 사실이 너무 고마웠어요. 자꾸 나를 찾는 연습을 하게 되는 것 같아 감사했고 세상이 넓어진 기분이었어요. 무용할 때는 누구도 “너 연습복 뭐 맞출 거야?”, “버선 어디서 할 거야?”만 물었지 넌 누구를 좋아하냐고 소설은 뭘 즐겨 읽느냐고 묻지 않았거든요.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특별전을 할 만큼 독립영화에서 중요한 배우로 꼽혔습니다. 독립영화는 자유롭지만 반드시 완성도가 높지는 않잖아요. 출연작을 다시 보니 각본이 인물을 충분히 구체화하지 않고 미더운 배우에게 설득을 맡겨버린 경우도 없지 않았던 것 같은데요.

=글쎄요. 그런 예가 있었다 해도 어렵게 느끼지 않았던 건, 무용으로 추상을 표현하는 습관이 배어서인가봐요. 말로 설명되지 않는 것을 그리는 일에 익숙한 편이에요.

-실제로도 촬영에 돌입하면 캐릭터의 동기나 감정에 대해 질문이 많지 않다고 들었어요.

=단편영화로 시작해서인지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는 생각이 커서 그런지 촬영하는 순간에는 내 생각이 어떻건 감독님의 오케이가 맞다고 생각해요. 연기하기 불편한 점이야 말씀드리지만 오케이에 대한 의심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봐요.

-그래도 의아한 오케이를 받으면 이후 연기의 일관성을 위해 이유를 알 필요가 있지 않나요?

=“방금 테이크의 어떤 점이 좋으셨어요?”라고 간단히 여쭙고 답을 들으면 더 묻지 않고 바로 넘어가요. 연기하는 제가 불안을 품고 있으면 영화의 다음으로 진전되기가 감정적으로 힘들어지거든요. 불안함이 남는다 해도 그건 제가 아니라 감독님 몫이라고 봐요. 무용에서는 안무가의 과제고요.

-정신 건강에 좋은 태도네요.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기린과 아프리카>(2007)로 받았던 연기상이 배우 일을 계속하는 데에 얼마나 영향이 있었나요?

=사실은 좀 무서웠어요. 바로 영화제 뒤풀이 자리에서 이제 연기 그만하고 무용할 거라고 말했죠. 일단 몸이 고됐거든요. 4학년인데 수업 끝나면 졸업작품 제작비를 마련하려고 아르바이트 두개를 했어요. 공연을 위한 음악, 무대 디자인, 조명, 의상, 분장, 팸플릿, 포스터까지 혼자 준비해야 하거든요. 거기다 단편영화 출연 제의까지 응하니 하루 두세 시간밖에 못 잤어요. 그 극한 상황에서도 무리할 만큼 영화가 좋았나봐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즐거워서 하는 일이니 서른까지만 하고, 나도 미래와 생계가 중요하니까 무용에 집중해야지 싶었죠. 내내 그런 입장이다가 스물여덟살에 현재 소속사 이소영 대표를 만나서 생각을 바꿨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대화가 입장 전환을 불렀나요?

=당시 <귀>라는 단편에 함께 출연했던 이제훈씨가 계속 영화할 거냐고 물었어요. 아니라고 했죠. 이소영 대표님이 물어봐달라고 부탁하셨나본데 전 몰랐어요. 그 후 미팅을 가졌는데 제가 배우로서 아주 좋은 얼굴을 갖고 있고 연기를 그만두기 아깝고 앞으로 예리씨 인생에서 좋은 경험일 거라는 말을 해주셨어요. 그때까지 전 제가 배우로서 좋은 자질을 갖고 있다고 믿지 않았어요. 일은 계속 있었지만 상업영화는 다른 영역으로 본 거죠. 어쨌든 돈 버는 배우가 되진 못할 거라고 생각했고, 텔레비전에도 어울리지 않고 외모를 잘 꾸미는 편도 못 되니까요. 그런데 이 대표님이 그런 걱정들은 배우 몫이 아니라고, 회사가 고민할 문제라고 말했어요. 둘째로는 소속사가 생기면 무용을 버릴 각오 없이는 연기를 못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배우에게 다른 표현 창구가 있는 건 훌륭한 일이고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대표님의 말이 제 생각을 바꿨어요.

-그런데 매니지먼트가 생기기 훨씬 전인 2009년 <귀향>을 같이 찍은 안선경 감독은 당시에도 한예리씨가 완전한 프로페셔널이었다고 기억하던데요? 혼자 가방 메고 와서, 혼자 아이 낳는 미혼모의 힘든 연기를 하고 끝나면 혼자 돌아갔다고요.

=거꾸로 긴 계산이 있었다면 못했을 역인지도 몰라요. 좋아서 한 일이라 열심히 했고, 원래 무용하는 사람들은 의상을 직접 다리고 직접 가방을 꾸려 다니니까 별스럽지 않았어요. 오히려 현장에 가면 의상 챙겨주는 사람, 분장해주는 사람, 밥 제때 주는 사람이 따로 있어 제가 다 하지 않아도 되니 편했어요.

-두 번째 장편 <푸른 강은 흘러라>로 거슬러 올라가보죠. 극중 연변 소녀 연기를 보고 현지인이라고 착각한 관객도 많았을 거예요. 한예리씨의 조선족 연기가 진짜처럼 느껴지는 건, 억양을 잘 모방해서가 아니라 같은 한국어 뒤에 깔린 다른 정서와 사회 관습을 이해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어요.

=제가 말을 배운 동갑내기 미령이를 비롯해 급우로 나온 연변 친구들과 넉달 정도 함께 생활했거든요. 남한 사람과의 차이라면, 중국인이라는 정체성도 강하고 공동체 의식이 훨씬 끈끈해요. 남녀를 불문하고 의리가 엄청나서 친구끼리 어딜 가려다가도 누구 하나 빠지면 취소해요. 못 간 친구 한명이 속상할까봐서요. 빵이라도 사 먹으면 그 자리에 없는 친구 몫을 꼭 남기는 걸 봤어요.

-장•단편영화에서 북한과 연변에서 온 인물을 네 차례 연기했습니다. 한국영화가 그들을 그리는 상투형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있어요?

=북쪽 사람들은 아주 순박하고 젊은이들조차 요즘 세대 같지 않을 거라고 짐작해서 때묻지 않은 모습으로 그리는 것 같아요. 좀더 순박한 건 사실이지만 영화가 그리는 만큼 다르진 않아요. 특히 연변은 실시간으로 한국 드라마도 보고 문화적으로 친밀한데 우리쪽에서는 그걸 몰라요. 사실 <푸른 강은 흘러라>를 찍는 동안 연변 친구들이 나이 들면서 한국과 중국 사이에서 정체성에 혼란을 겪지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기우 같기도 해요. 중국은 워낙 소수민족이 많은 나라라 조선족도 그중 하나임을 확실히 알고 있으니까.

-북한, 연변 캐릭터로 거듭 캐스팅된 사실은 어떻게 보면 영화계가 한예리 배우를 인식하는 스테레오 타입과도 연결될 것 같아요. 담백한 이미지를 순박하고 착해서 손해 보는 인물로 해석하는 경향이랄지.

=제겐 네 인물이 모두 북쪽 말투를 쓰지만 전부 판이했어요. 예를 들어 <해무>의 홍매와 <코리아>의 순복의 공통점은 언어뿐이에요. 가령 부산 출신 배우가 작품마다 사투리 억양은 유지하며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잖아요. 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어요. 정작 제 고향은 충청도인데 충청도 인물은 없었네요. 감독님들이 의외로 충청도 사투리를 잘 못 쓰시나 봐요. (웃음)

-하긴 타이프캐스팅은 배우 본인이 아니라 감독이 고민할 과제죠.

=예, 만약 저와 한번 더 작업하신다면! (웃음)

-필모그래피를 보면 공교롭게도 독립영화는 대부분 여성 감독과 작업했어요. 반면 상업영화는 <파주> <남쪽으로 튀어>를 제외하면 모두 남성 감독 연출작이었네요.

=정말 그 많은 독립영화의 여성 감독들은 다 어디 가신 건지 많이 아쉬워요. 제 독립영화 출연작이 여성 감독 작품들 위주로 기록된 것은 일부러 제가 여성과 작업해서가 아니라 남성 감독과도 작품을 했지만 여성 감독들의 영화가 완성도가 높아 많이 회자됐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현장 분위기를 말하자면 감독의 젠더나 상업영화와 독립영화의 차이보다 개인차가 결정적인 것 같아요. <극적인 하룻밤>의 경우는 여주인공 시후에 대해 제가 남성 감독님께 이해시키려고 한 부분이 있긴 했어요. 베드신 말고 일상적인 세부들이요.

-<파주>의 조연 이후 첫 상업 장편인 <코리아>에서 북한 대표 류순복 선수 역 연기는 카메라에 얼굴이 찍힌다는 생각을 전혀 안 하는 듯 보였어요. 팔다리를 최대한 늘여서 공을 치고 말겠다는 의지만 남아 있는 모습이랄까. 오직 탁구를 치는 것만 중요해 보였어요.

=정말 여기서 연기를 잘하는 길은 탁구를 잘 치는 것 하나뿐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라켓을 휘두를 때 어설프면 연기도 무너지고 관객이 인물을 못 믿을 테니까요. 마치 무용처럼 원래 불편한 동작을 백번, 천번 연습해서 관객의 눈에는 쉬워 보이도록 자연스럽게 다듬는 과정이었어요. 그래서 매일 웨이트트레이닝을 한 시간 반 하고 현정화 감독님이 짠 네 시간 탁구 훈련을 받고 몸풀기까지 하루 여섯 시간 연습했어요. 체대 다닌다 치고 이래야만 태릉선수촌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죠. (웃음) 제가 30, 40분 러닝을 하고 있으면 현정화 감독님이 와서 옆에서 같이 뛰어주셨던 기억이 나요. 대단한 분이세요.

-<해무> 개봉 무렵 인상적인 인터뷰가 있었어요. <해무> 전까지는 그냥 배우였는데 최초로 내가 여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얘기했어요. 좀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나요?

=주로 영화를 홍보하는 동안 느꼈어요. ‘우리 여배우’라고 불린다거나, 그때까진 한명의 배우로서 영화를 소개하러 갔다면 <해무>에서는 여배우로서 예쁘게 잘 차려입고 가는 자리도 많았다거나. 연기에서도 “전 이렇게 아름답게도 표현할 수 있어요” 하는 점을 플러스해야 한다고 느꼈어요. 전작에서 예쁘게 보이기보다 해당 캐릭터로 보이는 데 집중했다면 <해무>에서는 “홍매는 이런 식으로 여성스럽고 예뻤으면 좋겠다. 이런 모습에 상대역 동식(박유천)이 끌렸으면 좋겠다”라는 식의 설명을 많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별로 듣지 못했던 형용사를 많이 접했죠.

-홍매가 굳이 치마를 입고 밀항해서 무척 고역스러워 보이기도 했어요.

=치마를 입고 밀항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지 여쭤보았는데 여성적으로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치마가 맞다고 판단하셨던 것 같아요. 찍으면서도 맨다리에 물이 닿을 때 무척 차가웠고 멍이 끊이질 않았죠. (웃음)

-KBS 단막극 <연우의 여름>에는 직접적으로 “목소리가 좋아요”라고 칭찬하는 상대방 대사가 있어요. 한예리 배우의 음성은 동글동글한 볼륨감이 느껴져요. 특별히 또박또박 말하지 않는데도 대사가 확실히 전달되는 신통함이 있고 음역도 넓어요.

=저는 딕션이 부정확한 배우에 속해요. 아버지 목소리가 무척 좋아서 통화한 친구들이 다들 놀라는데 제가 닮았나봐요. <해무>의 홍매를 할 때는 사투리 코치를 맡은 분의 나긋나긋한 말투를 아예 배웠어요. 연변 말은 억세다는 선입견과 달리 아주 나긋나긋하게 풀어 말하는 투였어요. (홍매 목소리로) “아이 어떡하니, 이거 다 젖었구나.” “이게 지금 날 어떻게 해보자는 겝니까?” 이렇게 소리가 코 위쪽에서 동그랗게 울리는 느낌으로 했어요. 여성스러운 뉘앙스를 홍매 본인은 모르지만 상대는 느낄 수 있는 톤으로 갔어요. 너무 노골적이면 순수한 측면이 사라질 것 같아서요.

-<환상 속의 그대>의 기자회견 중 슬픈 분위기도 아니었는데 불쑥 울음을 터뜨려서 좌중이 놀란 일이 있었죠? 한예리 배우의 연기를 보면 안에서 솟구치는 감정 덩어리는 큰데 표현은 작게 가는 쪽이 많아요. 연기를 위해 감정을 끌어올린다기보다 시나리오의 설정보다 배우가 느끼는 감흥이 더 강해서 도리어 절제하는 인상을 거듭 받아요. 한편 현장에서는 그날그날의 컨디션을 티내지 않고 기복이 없다고 들었어요.

=무용은 매번 연습을 공연처럼 통째로 하거든요. 컨디션이 매일 오르락내리락해도 여럿이 하는 퍼포먼스에서 내 상태를 상대에게 전달하는 건 좋지 않다고 배웠어요. 아파도, 힘들어도 내 책임인 거죠. 연기는 무용과 달리 연습을 많이 못해요. 무용이 폭발 지점까지 에너지를 착착 쌓아가는, 말하자면 집 짓는 과정이라면, 연기는 ‘나’라는 집을 부수고 치워서 타인이 들어오게 만들고 보다 자유로운 상태가 되는 과정 같아요.

-하긴, 부수는 일을 연습하긴 어렵겠네요. (웃음)

=사실 어떻게 연기를 연습해야 좋은지도 아직 모르겠어요. 연극을 경험하면 알 수도 있겠죠?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에너지를 주면서 하면 관객이 벅찰 것 같지만, 대극장 무대는 워낙 크니까 뒤쪽 객석까지 전달되려면 계속 100%를 발휘해야 하죠. 영화와 무용에서 제 표현에 차이가 있다면 감정의 크기라기보다 표현 매체의 조건에서 오는 걸 거예요.

-<극적인 하룻밤>은 청소년 관람불가 로맨틱 코미디인데 섹스 신의 노출이나 야한 정도를 떠나서, 섹스에서 여성이 갖는 느낌을 흔한 신음이나 표정 말고 배우의 몸짓으로 표현했다는 점이 신선했어요.

=제목대로 주인공 시후에게 정훈과의 첫 섹스가 정말로 ‘극적인 하룻밤’이었음을 감독님도 저도 표현하고 싶었어요. 전에 몰랐던 특별한 감각을 몸으로 느꼈기 때문에 정훈과의 관계에 더 많이 호기심이 생긴 경우니까 쾌감의 묘사를 구체화하고 싶었어요.

-갑자기 <춘향뎐>의 사랑가 장면이 떠오르네요. 한예리씨가 조금 더 일찍 태어났더라면 어울렸겠어요. 전공과 연관돼 언급되는 장르로 무협이 있을 텐데 <육룡이 나르샤>에서 척사광 역할로 처음 액션을 했어요. 신경수 감독은 한예리 배우가 연기하는 무술의 척사광다운 느낌을 스턴트 더블 대역에서는 받을 수 없었다고 말씀하시던데요. 본인이 와이어 타는 모습도 그려본 적 있겠죠?

=춤추듯 물 흐르듯 움직이면 어떨까 생각해봤어요. <와호장룡>의 빠르고 부드러운 선 같은 무협을 해보고 싶어요. 방어적이면서도 물 같은 흐름이 멈추지 않는 느낌을 만들어봤으면 해요.

-인터뷰를 위해 미개봉 신작 <최악의 여자>를 미리 봤습니다. <비포 선라이즈>나 <한여름의 판타지아>가 엮여 언급될 법한 워킹 앤드 토킹 계열 영화던데요. 로맨스의 전말보다 주인공 은희가 세 남자를 만나는 동안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태도가 흥미로웠어요. 포털의 영화 소개에는 가면을 바꿔 쓰는 못된 여자처럼 표현돼 있지만, 누구나 앞에 있는 사람에 따라 성격의 다른 측면을 드러내는 경향을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특히 통념의 제약을 많이 받는 여성들이 연애에서 살아남기 위해 취하는 보편적인 태도가 들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얼마나 어떻게 태도를 조율할까 고민했을 텐데요.

=김종관 감독님과 이야기해서 만들어갔어요. 여자들이 별로 안 좋아할 듯한 여자를 연기해보자는 거였죠. 본인도 어디선가 그렇게 행동하면서도 다른 여자들이 그러는 걸 보면 싫어하는, 여러 얼굴의 여자죠. 워낙 남성 인물 셋이 극명히 달라서 그것에 맞춰 상대적으로 연기하면 태도의 편차를 쉽게 만들 수 있었어요. 예컨대 이와세 료는 처음 만났는데도 사람을 무척 편하게 해줬어요. 이 장점을 잘 받아서 연기해야지 싶었어요. 한편 이희준 오빠가 연기한 인물은 캐릭터적으로 제가 들었다 놨다 해야 하는 상대였어요. 본인이 비련의 남자주인공인 것처럼 행세하니까 은희도 거기 맞춰 비련의 여자주인공 연기를 하는 거예요. (웃음) 어쩌면 그래서 은희가 이 남자를 사귀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은희는 직업배우지만 현실에서는 칭찬받는 연기를 못하잖아요? 그런데 실제 삶에서는 능동적으로 연기를 잘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 가정해봤어요.

-정신혜 무용단과 공연한 <찰나-소나기를 품다>와 <굿+Good>을 동영상으로 뒤늦게 봤습니다. 내러티브가 강하고 대사도 있더군요.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도 떠올랐어요 무용가로서 이런 유의 작품에 관심이 있나요?

=서사에 집착하진 않지만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한 쪽에 흥미가 있어요. 부분적으로 안무도 하는데 언젠가 제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상상도 해요. 소극장에서 20, 30분 길이의 짧은 독무부터 시작해서 듀엣이건 군무건 늘려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롤모델이란 말은 과하고, 행보를 눈여겨보는 다른 여배우가 있어요?

=문소리, 전도연 선배님 작품은 빼놓지 않고 보려고 해요. 얼마 전 문 선배님 연극도 봤어요.

-문소리 배우와는 한 회사에서 일한 시기도 있었죠? 선례들을 보면서 앞으로 극복할 어려움도 예상하나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여배우의 고민일 거예요. 꼭 여배우가 중심이 아니더라도 여성 캐릭터가 제대로 등장하는 시나리오가 적다보니 선택의 여지 자체가 없어요. 작품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해야 하는 상태가 안타까워요. 저를 비롯해 이제 시작하는 친구들에게도 기회가 많이 돌아가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기회의 총량 자체가 부족해요.

-연기도 많이 할수록 잘할 수밖에 없는데 여배우들은 시행착오를 통해 향상될 기회가 남배우들에 비해 현저히 적어서 커리어가 도중에 끊어지기 쉽죠.

=남자배우들이 연기 발전 가능성에 있어서 유리한 것 같아요. <동창생>의 최승현씨, <해무>의 박유천씨와 일하면서 제일 부러웠던 점이 그거예요. 선배들과 붙어서 계속 ‘힘겨루기’하는 장면을 찍고 그것으로부터 배우고 함께 호흡하는 것. 제가 너무 바라고 목말라하는 경험이거든요. 여배우는 작품에서 홍일점이기 쉽고 팽팽하게 에너지를 주고받는 신이 드물어요. 여배우들이 연기를 못하는 게 아니라 치열하게 보여줄 작품이 적은 거죠. 그래서 이정현 언니도, 제가 좋아하는 천우희 배우도, 비교적 작은 규모의 영화를 통해 상을 받았지 않았나 싶어요. 저예산 작품이 그래도 여배우에게 연기를 펼칠 기회를 주니까요.

-장률 감독의 <춘몽> 촬영에 곧 들어갑니다. 연기 경험이 있는 박정범, 양익준, 윤종빈 감독 세분이 배우로 캐스팅됐는데, 무엇을 기대하면 될까요?

=극중 세 남자는 모두 거리의 인생이고 빈틈이 많은 사람들이에요. 하지만 이야기는 봄날의 꿈 같기도 하고 처절한 면도 있어요. 지금 세 감독님이 옷이며 머리며 너무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시대요. (웃음) 배우가 감독보다 연기 못한다는 말을 들으면 어쩌죠? 큰일 났어요.

-음, 아무튼 화면에서 한예리 배우가 굉장히 돋보이지 않을까요? (웃음)

=하하! 저도 더불어 칙칙하게 나오면 어쩌죠?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좌중 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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