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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어떻게 변화하고 진화하는가
장영엽 2016-04-29

“팀 캡틴 혹은 팀 아이언맨? 이 영화의 진정한 승자는 팀 마블이다.”(<토털 필름>) 4월27일 개봉예정인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 대한 국내외 반응이 벌써부터 뜨겁다. 해외 언론 시사 후 인터넷 영화평점 사이트 메타크리틱에서 88점이라는 높은 평점을 기록한 이 작품은 다시 한번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의 명가, 마블의 저력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물론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 쏟아지는 찬사는 DC의 신작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이 남긴 아쉬움에 대한 반대급부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페이즈3를 열어젖힌 이 영화는 이 거대한 세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관통하고 있는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 대한 리뷰부터 마블 코믹스의 세계로부터 출발한 슈퍼히어로 갈등의 역사, 향후 몇년간 극장가에서 만날 마블의 다른 영화들에 대한 소개를 담았다. 마블의 새로운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마도 2016년은 훗날 슈퍼히어로 영화사가들에게 중요한 분기점의 해로 기억될 듯하다. DC가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을 통해 저스티스 리그의 본격적인 출범을 알리고, 마블이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를 통해 페이즈3를 열어젖히며, 또 다른 마블 코믹스 원작의 <엑스맨: 아포칼립스>가 프리퀄 3부작의 문을 닫기 때문만은 아니다. 슈퍼히어로영화의 거대한 두축인 마블과 DC가 공교롭게도 그들의 텐트폴영화(가장 흥행 가능성이 높은 영화)를 통해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들은 이렇게 묻는다. 슈퍼파워의 대가는 무엇이며, 슈퍼히어로는 그들이 속한 사회와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가? 한동안 강력하고 사악한 내외부의 위협을 저지하는 데 주력해온 슈퍼히어로들은, 이제 그들이 격렬한 전투 가운데에서 의도치 않게 훼손해버린 존재들을 바라보고 있다. 이 파괴된 세계의 한복판에서 슈퍼히어로들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더 나은 세계를 만들고 싶다는 목적은 같지만, 그들이 지닌 능력과 그에 따르는 책임의 범주에 대해 각기 다른 해답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힘과 정의에 대한 해석이 다양해질수록, 갈등은 복합적이고 깊어진다. 2016년의 슈퍼히어로영화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이처럼 흥미진진하고도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분열의 테마다.

신념에 따라 양분되는 어벤져스

4월27일 국내 개봉을 앞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또한 ‘어벤져스’라는 이름 아래 뜻을 함께했던 마블의 주요 슈퍼히어로들이 팀 캡틴과 팀 아이언맨으로 갈라서게 되는 과정을 조명하고 있다. 이러한 분열의 계기를 제공하는 건 ‘소코비아 협정’이다. 뉴욕을 쑥대밭으로 만든 어벤져스와 로키의 대결(<어벤져스>), 워싱턴 DC의 쉴드 본부에서 벌어진 하이드라 조직과 캡틴 아메리카의 싸움(<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울트론과 어벤져스의 소코비아 전투(<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는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사상자와 재앙에 가까운 피해를 남겼다. 이를 더이상 두고만 볼 수 없게 된 각국 정부와 유엔은 그들의 승인을 받아야만 슈퍼히어로들이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긴 ‘소코비아 협정’에 서명할 것을 어벤져스의 멤버들에게 권한다.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는 협정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협정에 서명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의 슈퍼파워가 통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대립은 어벤져스의 분열을 야기한다. 이제 어벤져스 멤버들은 하나의 거대한 목표가 아니라 자신의 신념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의 페이즈3를 시작하는 이 작품이 그동안 마블이 공들여 구축해온 슈퍼히어로들의 팀워크를 스스로 무너뜨린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앤서니 루소와 함께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공동 연출을 맡은 조 루소 감독은 이러한 결정이 필요에 따른 ‘해체’였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당신이 만든 이야기를 즐긴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정점에 이르게 되면 당신은 다음과 같은 고민에 빠지게 될 거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다시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면 같은 구조가 반복될 텐데. 그럼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리고 당신은 그 이야기를 해체하게 될 거다. 우리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를 통해 해체의 국면에 접어들었고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향해 나아갈 거다. 모든 마블 영화의 정점에 위치할 작품을 향해 말이다.” 조 루소의 이 말은 MCU 페이즈3의 면모를 가늠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단서다. 페이즈1이 마블 슈퍼히어로 각자의 개성을 전세계 관객에게 각인시켰고, 페이즈2가 어벤져스라는 슈퍼히어로 집단을 통해 마블의 주요 캐릭터들을 하나의 풍경 속에 녹여냈다면, 페이즈3에서는 이전 국면들과는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마블 스튜디오의 제작진은 생각했던 것 같다(보다 자세한 내용은 61p 참조). 닥터 스트레인지와 캡틴 마블, 블랙 팬서, 스파이더맨 등 페이즈3를 이끌어갈 새로운 캐릭터들을 본격적으로 선보이기에 앞서, 그들이 기존의 서사와 인물들 사이로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틈을 마련할 계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가 선보이는 슈퍼히어로들의 갈등과 균열은, 마침내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완성할 새로운 서사의 퍼즐을 위해 기존의 관계망을 해체하고 재정비하는 과정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겠다.

슈퍼히어로들이 각자의 신념에 따라 움직이게 된 만큼,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그 어느 때보다 주요 캐릭터들의 관계망과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작품이다. 예컨대 토니 스타크가 소코비아 협정에 동의하는 이유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그가 선한 의도로 만들어낸 울트론을 통제하는 데 실패했고, 거의 지구를 멸망시킬 뻔한 사건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캡틴 아메리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에서 그는 하이드라 조직이 쉴드 깊숙이 침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잘못된 방식으로 설계된 시스템이 세계에 어떤 위협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뼈저리게 체감했기에 슈퍼히어로 제재안에 반대한다. 이처럼 과거의 MCU 영화들을 통해 점진적으로 소개되어온 주요 캐릭터들의 사연과 그들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구축해온 신념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서사를 이끄는 핵심적인 동력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MCU 영화는 역시 루소 형제가 연출을 맡았던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다. 이 영화에서 하이드라 조직의 실험 대상이 되어 윈터 솔져로 거듭난 캡틴 아메리카의 가장 절친한 동료, 버키 반즈(세바스천 스탠)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하이드라에 세뇌당해 윈터 솔져로 활동했던 버키의 과거는 영화 내내 그의 현재를 위협한다. 설상가상으로 유엔 회의 도중 발생한 폭탄 테러의 용의자로 버키가 지목되면서, 그는 전세계 정보기관과 유엔의 표적이 되고 그를 돕는 캡틴 아메리카마저 쫓기는 신세로 만든다. 앤서니 루소는 버키의 존재가 정치적인 이슈로 가득한 이 영화를 보다 사적인 영역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 영화의 갈등이 오직 정치적인 사안에만 머물지 않았으면 했다. 슈퍼히어로들이 맺고 있는 다양한 사적 관계가 그들이 소코비아 협정을 바라보는 시각을 어떻게 복합적으로 만드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의 말처럼 버키에 대한 캡틴 아메리카의 동료애와 책임감은 그 누구보다 원리원칙에 충실한 캡틴 아메리카가 규범을 거스르고 집단을 이탈할 수밖에 없는 계기를 제공한다. ‘워머신’ 로드(돈 치들)와 아이언맨 사이의 유대감도 캡틴과 버키의 관계만큼 특별하게 묘사된다. 하지만 정치 스릴러 장르에 보다 사적인 감정들을 개입시키려 했던 루소 형제의 선택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가 담고 있는 고민의 무게감을 다소 가벼워 보이게 한다는 아쉬움도 남긴다. 슈퍼파워의 대가와 정의를 구현하는 방식에 대한 거대한 질문으로 출발했지만, 결국 슈퍼히어로들을 움직이게 하는 건 그들의 신념이라기보다 그들이 누군가와 사적으로 맺고 있는 관계라고 여길 만한 장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도전한다, 고로 마블이다

독일 라이프치히 할레 공항을 배경으로 팀 캡틴과 팀 아이언맨이 맞붙는 영화 중반부의 전투 신은 단연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백미다. 전체를 아우르는 스펙터클보다 슈퍼히어로 개개인의 특성에 초점을 맞춘 이 액션 장면은 영화의 제작진이 MCU의 핵심을 얼마나 예리하게 간파하고 있는지에 대한 좋은 증거가 될 거다. 모든 충돌은 등장인물들의 관계망에 따라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블랙위도우가 호크아이를 상대하고, 앤트맨이 아이언맨의 슈트 속으로 침투하는 데에서 MCU의 팬들은 과거에 그들이 맺고 있던 인연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될 것이다. 특히 이 장면은 MCU의 세계로 새롭게 초대받은 스파이더맨과 블랙 팬서의 존재감을 효과적으로 선보이는 장면이기도 하다. 스타크 아저씨의 후원금을 받기 위해 학교 수업을 빠지고 팀 아이언맨에 합류한 피터 파커(톰 홀랜드)는 그 나이 또래 소년들처럼 경쾌하고 귀엽다. 반면 비극적인 사연으로 블랙 팬서 슈트를 입게 된 와칸다의 새로운 국왕, 티찰라(채드윅 보스먼)는 단호하고도 기품 있다.

공동의 적에 맞서는 대신, 내부의 혼란에 직면하는 슈퍼히어로들의 모습을 조명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MCU 영화를 통틀어 가장 감정의 여진이 깊게 남는 작품이다. 그건 이번 영화가 사건보다 등장인물이 맺고 있는 관계와 그들의 내면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루소 형제가 이 영화의 장르를 심리 스릴러라 명명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사건사고가 유발한 갈등은 일단락될 수 있어도 마음의 생채기는 빠르게 치유할 수 없는 법이다. 절반의 봉합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짓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어벤져스의 행보를 가늠할 수 없기에 더더욱 그 이후가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지난 열두편의 영화를 거치며 피로도가 쌓일 법도 한데, 페이즈3에 이른 지금까지 작품마다 늘 흥미로운 물음표를 장전하고 돌아오는 마블 스튜디오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싶기도 하다. 어쨌거나 정교하게 구축한 세계에 스스로 균열을 가한 뒤 또 다른 시작을 도모하는 이 영화는 MCU의 페이즈3를 열어젖히는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마블의 DNA야말로 그러한 도전정신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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