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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한국영화가 머물 새로운 공간, 한국영상자료원 파주보존센터 문 열다
이화정 사진 최성열 2016-05-25

5월19일 한국영상자료원 파주보존센터가 개관식을 가졌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지난 2009년부터 건립 계획을 세운 이래 7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만들어진 공간이다. 부족한 보존 공간을 확보하는 동시에 영상자료원의 보존, 복원 업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청사로서의 기능을 한다. 오픈 직전 파주보존센터를 찾았다. 지하 1층, 지상 4층의 건물 곳곳을 빠짐없이 돌고, 보존센터의 전문 인력들과 만났다. 지난 영화를 되살리고 보존하기 위해 모인 인력, 그리고 필름의 생명 연장과 응급처치를 위해 마련된 아날로그 장비부터, 서기 2016년의 최첨단 장비가 함께 모여 있는 이곳에서 ‘시대’라는 말이 무의미해졌다. 한국영화의 역사와 미래에 생명을 부여하는 신성한 공간에, 외부인으로는 처음으로 발을 디뎠다. 0~5도를 유지한다는 필름보존고에 들어섰는데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이었다.

“땅 보러 여기저기 참 많이 다녔다. (웃음)” 파주보존센터 오픈을 사흘 앞둔 날, 파주보존센터 앞에서 만난 조소연 센터장이 센터를 바라보며 말한다. 오픈 직전 풍경을 담고자 허락을 구하고 온 자리였다. 센터 곳곳의 문을 열 수 있는 마스터키를 받은 셈이다. 총 2800여평, 지하 1층, 지상 4층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한국영화를 보존하고 또 되살리는 역사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기념비적 공간이다. 지난 2009년 전임 조선희 원장의 의지로 건립 계획을 수립한 이후 7년 만의 성과. “보존고 부족 문제가 시급했다. 당시 예술의전당에서 상암동으로 이전하면서 절대적 공간이 필요했고, 그 필요성에서 전용센터의 필요성도 대두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이래 조선희 전 원장에 이어 이병훈 원장을 거쳐, 지금의 류재림 원장에 와서야 이루어진 장기계획이기도 했다. “300억원 규모의 큰 예산 확보가 쉽지 않았다. 2012년에야 예산을 확보하게 됐고, 토지를 매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에 착수했다.” 그는 지반부터 하나하나 쌓아올린 센터를 보며, 고군분투하던 초반의 과정을 떠올렸다. “왜 파주냐고 많이들 묻는다. 파주출판단지가 2단계에 돌입해 영화사들이 많이 들어와서 주변 인접성을 노리기도 했고, 상암동 본원(한국영상자료원)과도 가깝고 토지비도 저렴했다”는 것이 센터가 파주에 들어선 이유다.

조소연 파주보존센터 센터장.

보존고 확보라는 ‘급한 불’로 시작했지만 보존센터가 해야 할 역할은 그보다 더 크고 더 깊은 곳까지 펼쳐져 있었다. “한국영화사도 이제 100년을 바라본다. 제대로 된 필름 아카이빙은 언젠가는 영화 역사에서 풀고 가야 할 숙제였다.” 막상 보존센터의 삽을 뜨고 나서, 더 부각된 사업은 그래서 필름 복원 문제였다. 지난 2007년부터 영상자료원은 매해 꾸준히 한국 고전영화 복원사업을 진행해왔다. 그간 총 15편의 결과물이 세상에 나왔고, 관객에게 보다 나은 품질의 고전영화를 볼 수 있는 기쁨을 주었다. “센터를 건립하면서 필름 현상실을 내부에 설치하느냐 마느냐가 내부적으로 큰 고민이었다. 필름은 사양 산업인데,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의구심과 논란이 많았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영화진흥위원회의 현상소를 인수받아 설치하기로 결정이 났다. 민간에 의존하던 기존 시스템에서 벗어나 필름 복원을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틀이 마련된 것이다. 기존 복원 작업이, 1년에 한두편, 심화 복원작업으로 선정된 작품 외에는 수혜를 받지 못했고, 필름 복원을 해도 디지털 색보정에 그쳤다면, 이제 복원의 대상도 더 넓어지고 복원의 난이도도 더 업그레이드됐다. “복원에 있어서는 이탈리아의 볼로냐를 전세계에서 찾는다. 필름 인화 현상소가 속속 문을 닫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센터가 그곳처럼 아시아의 거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장기 계획을 마련하려 한다.”

파주보존센터의 전문 인력은 현재 20여명에 달한다. 그중 보존관리 인력, 복원, 필름현상, 컬러리스트, 영상편집실 등 각 분야 전문가 10명이 이번 센터의 오픈과 함께 증원되었다. 각 분야에 맞는 인력을 더 배치하는 것도 앞으로의 과제다. 4K 스캐너, 음향편집 기기 등 고가의 장비를 통한 시설도 확충되었다. 각 방을 돌며 만난 스탭 중 비디오, 오디오 연구실 담당 정연주씨의 말이 떠오른다. “공간과 장비 모두 오랫동안 담당자들이 숙원하던 것들이 이루어졌다. 자료를 보존할 수 있는 공간의 확보가 심적 여유로 이어져, 직원 모두가 기분이 남다르다”고 말한다. 공간과 시설의 확보로 일에 대한 의욕도 그만큼 커진 때다. 조소연 센터장은 “서두르지 않고 매진하려고 한다. 올해는 센터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한해가 될 것이다. 안정화와 함께 국제협력 사업까지 성과를 낼 날을 기대해본다”며 포부를 밝혔다.

현상실.

현상실.

현상실

국내 유일의 필름현상소. 훼손 우려가 있는 영화필름의 복원과 복사가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디지털 복원 작업은 2013년부터 본격화해왔지만 그동안 민간 현상소 외주 용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디지털 복원 사업을 자체 디지털 복원 시스템과 전문 인력을 갖추고 직접 추진한다. 조약, 현상, 인화, 색보정 단계에 있어서 “배관은 적게, 동선은 짧게, 안전성은 높여 설계했다”는 것이 보존기술센터 김상휘 차장의 말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19년 경력을 쌓은 보존 담당으로, 이번 파주센터 오픈과 함께 팀을 꾸렸다. 지금의 현상소는 지난 1년간 설계부터 설치까지 고민해 나온 결과물. 유일한 현상소이다보니 지금은 외부에서도 현상실 사용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많은 경험과 데이터를 통해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현상소가 되게 하는 것이 목표다.”

인화실.

인화실

손상된 필름도 이곳에서라면 희망을 걸어볼 수 있다. 밀착 인화기뿐만 아니라 웨트 인화기도 가동한다. 필름을 물속에서 작업해, 잔 스크래치나 먼지를 감출 수 있는 효과. 극손상된 필름도 복원할 수 있는 특수효과 인화기는 해외에서 구해온 ‘기념비적인 기기’. 국내에 운전할 수 있는 기술자가 두명밖에 없다.

중앙장비실.

중앙장비실

“파주 시대를 열면서 가장 비싼 장비가 이곳에 있다.” 보존기술센터의 조소연 센터장이 4K 해상도 필름 스캐너가 있는 보존센터의 심장, 중앙장비실의 문을 열어주었다. 파주 보존고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4K 해상도 필름 스캐너를 비롯해 색보정기, 마스터링 장비, 사운드 필름 전문 스캐너를 신규 도입했다는 점(상암에서는 2K 스캐너를 사용했다). 스캔은 원본 소스인 필름이 가진 정보를 최대한 수집할 수 있는, 디지털 복원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에 해당한다. 최대한 필름에 가깝게, 개봉 당시의 색을 최대한 살릴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 자체 솔루션이 없어서 외부와 협력해왔던 것과 달리, 이제 외부에서 국내 최고의 복원 전문가를 영입해 UHD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고품질 디지털화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보존기술센터 손기수 차장은 시설 면에서 “기존과는 비교할 수 없이 발전했다”고 단언한다. “상암에서는 지금 파주의 한층에 해당하는 모든 부서가 한방에 모여 있었다. 이제는 전문적인 각 영역의 방이 따로 생기고, 이를 시행할 전문인력이 배치되었다.”

DI 색재현실.

음향복원실.

음향복원실

“자랑할 게 많은 방이다”라는 말과 함께 손기수 차장의 안내로 둘러본 음향복원실에는 사운드 복원을 위해 국내에서 처음 도입한 스위스산 장비가 구비되어 있다. 화면 복원과 달리, 필름에서 디지털로 변환하는 사운드 장치가 없어서 음향에 있어서 아쉬움이 컸던 부분이다. 음향복원 장비는 몸값이 2억5천만원이며 지난 4~5년간 준비해서 들여왔다. 파주 시대, 사운드 디지털화 개선에 결정적 역할을 해줄 장비.

필름보존고.

필름보존고

“이곳은 파주보존센터 건립을 시작하게 한 곳이다.” 조소연 센터장은 애초 보존고가 부족해 궁리를 하다보니, 복원과 보존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국내 최초의 파주보존센터가 설립됐다고 말한다. 잠깐만 들어가도 한기가 드는 곳. 보존용 필름을 보관하기 위한 항온항습 시스템을 갖춘 필름보존고다. 파주보존센터의 보존고는 필름의 상태를 최적화하기 위해 0도에서 5도 사이를 항상 유지한다. 상암에 2개에 불과했던 저온 보존고가 파주에 오면서 12개로 늘어났다. 파주보존센터의 3층 전체가 거의 필름보존고로 채워졌다. 아카이브는 재해나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파주와 상암 2원 체제로 분리해 보존한다. 파주는 주로 네거티브 필름을, 상암은 활용용 필름을 보존한다.

포스터보존실.

포스터보존실

항습종이에 잘 포장되어 보관되어 있는 <임자없는 나룻배>(1962) 포스터. 국내 최초의 영화 포스터로, 훼손된 포스터를 동일한 지질의 종이를 이용해 복원해냈다. 필름이나 비디오, CD, LP 등의 보존뿐만 아니라 영화 관련 포스터를 비롯한 다양한 영화 전단지, 스틸, 시나리오, 영화소품 등도 보존 대상에 해당한다. 서류는 문헌소독기를 거치고, 포스터는 디지털 스캔을 해서 외부 이용객도 데이터를 받아 볼 수 있다. 이곳 역시 항온항습존에 해당한다. 방 한가득 숨쉬는 포스터와 전단을 가리키며 조소연 센터장이 말한다. “이렇게 공개할 자료들이 많으니, 파주보존센터에 이어 영화박물관 건립이 역점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웃음)”

라이브러리.

라이브러리

일반 시민들도 마음껏 이용 가능하다. 파주보존센터에는 전문 업무 영역 외에 대민존이 마련된다. 북카페 형식으로 친근감을 더한 라이브러리에서는 정기간행물, 단행본 열람, DVD 등을 볼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물론 <씨네21>도 비치되어 있다! 창밖으로 파주의 녹음이 함께하는 쾌적한 공간이다.

보존, 복원 시설 구경하세요

개관 기념 다채로운 행사 열려

파주보존센터 개관을 기념해 다양한 행사가 마련된다. 먼저 개관 기념으로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1961)이 2년간의 디지털 복원작업을 거쳐 일반에 공개된다. 5월20일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국내외 영상 전문가에게 듣는 영상 아카이브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영상문화유산 보전, 복원 국제심포지엄’이 열린다. 5월28일에는 파주보존센터 야외정원에서 <비틀즈: 하드 데이즈 나이트>(1964)를 상영하며, 각종 초청 강연과 함께하는 영화 상영회가, 5월29일부터 매주 일요일에는 <씨네21> 주성철 편집장의 ‘영화란 무엇인가’ 강연이 4주간 열린다. 5월28일과 29일 야외 광장에서는 한국영화 포스터 나눔 행사를 비롯해 집에서 보관 중인 테이프 기록물을 디지털로 변환해주는 이벤트도 열린다. 또 5월26일~6월17일 매주 목•금요일에는 파주보존센터 보존, 복원 시설 및 보존고를 견학할 수 있는 기회도 열려 있다(자세한 사항은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 페이스북 등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