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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인터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환기 - <시선 사이> 신연식, 최익환, 이광국 감독
정지혜 사진 백종헌 2016-06-09

신연식, 최익환, 이광국 감독(왼쪽부터).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제작한 열세 번째 인권영화 <시선 사이>(개봉 6월9일)의 최익환, 신연식, 이광국 감독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인권’이라는 묵직한 테마를 각자의 시선으로 풀어 세편의 단편으로 완성시켰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원장을 지낸 이후 현재는 숭실대 예술창작학부에서 영화예술 전공자들을 가르치는 최익환 감독은 <우리에겐 떡볶이를 먹을 권리가 있다>라는 엉뚱 발랄한 학원물을 만들었다. 떡볶이를 목숨처럼 여기는 여고생 지수(박지수)가 등교 후 교문을 폐쇄해 떡볶이를 먹지 못하게 하는 학교에 맞서는 이야기다. <프랑스 영화처럼>(2015)의 연출자로, <동주>(2015)의 제작자로 상반기를 바삐 보낸 신연식 감독은 <과대망상자(들)>를 내놨다. 사회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을 통제해가는 과정을 블랙코미디로 풀었다. 고독사에 대한 관심을 발전시킨 이광국 감독은 <소주와 아이스크림>을 만들었다. 보험판매원 세아(박주희)가 유령과도 같은 여자(서영화)를 우연히 만나며 가족을 돌아보게 된다. 세 감독은 영화가 관객에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얼마간의 환기가 되길 바라본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제안으로 시작된 단편 프로젝트로 개봉까지 하게 됐다.

=신연식_감독에게 영화 개봉은 하나의 이벤트이자 일상이다. <시선 사이>(2015)가 상업영화는 아니니까 만든 사람 입장에서도 좀더 즐겁게 작업하고 지켜보게 되는 것 같다. 나의 권리는 매일같이 생각해도 인권에 대해서는 그만큼 관심두지 않게 되잖나. 그런 의미에서 이 기획에 참여한 감독들도 인권이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관객도 그러길 바란다.

최익환_인권은 국가와 마찬가지로 다소 추상적이고 실체를 명확히 알 수 없는 개념 같다. 그게 뭘까라며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됐다.

이광국_지난해 이맘때 시나리오를 쓰고 프리 프로덕션을 준비했는데 벌써 1년이 지났다. 비록 단편 작업이었지만 회차만 짧았지 내게는 장편 만들기와 똑같은 에너지를 들인 작품이다. 그만큼 만드는 재미도 있었고. 영화에 있어 개봉은 일종의 출생신고 같다. 저예산영화는 점점 더 개봉하기 어려운데 그런 상황에서의 개봉이라 의미가 또 다른 것 같다. 인권에 대해 고민하며 꾸준히 이 프로젝트를 꾸려온 국가인권위원회의 지향도 응원한다. 제작비 마련을 통해 인권영화의 기획과 제작을 계속해갈 계획인 걸로 안다.

-인권이라는 큰 주제를 받아들고 각자 어떻게 지금의 이야기로 구체화했는지 궁금하다.

=이광국_인권영화라는 타이틀을 염두에 두지 않고 평소 관심을 가져온 소재 중에서 선택했다. 몇년 전 아버지가 편찮으시게 되면서부터 혼자 남은 자의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나도 이렇게 계속 살다보면 결국 혼자 죽음을 맞게 되지 않을까, 그때 아무도 날 찾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하다보면 가족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그러다 가족이 있음에도 혼자 죽어갈 수밖에 없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영화에서 세아가 만나게 되는 유령 같은 여자가 이야기의 출발이었다. 세아 역시 가족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데 이 낯선 여자를 만나면서 자신의 가족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최익환_‘독고다이’로 살다가 한국영화아카데미 원장으로 일하게 되면서 조직 사회를 경험하게 됐다. 그 안에서 한 개인으로서 나의 위치를 어떻게 잡아갈 것인가가 굉장히 어려운 문제더라. 조직과 개인 사이에 발생하는 여러 문제에 관심이 생겼다. 그러다 떡볶이를 떠올렸다. 만약 누군가에게 떡볶이가 가장 사랑하는 음식이자 삶을 버티게 하는 그 무엇이라면 어떨까. 그런 떡볶이를 가질 수 없게 됐다면, 그래서 살아가기가 어려워진다면 그 속에서 개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렇게 발전시켜나갔다.

신연식_보다 포괄적으로 인권이라는 개념에 접근해보고 싶었다.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어떻게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을 제어하고 있나’와 같은 질문 말이다. 영화를 하는 이유나 목적도 마찬가지 아닌가. 특정 사회에서 특정 인간의 욕망이 희극으로 흐르냐 비극이 되느냐를 탐구하는 것이 영화니까.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기존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사회의 중요시스템을 만들어갔다. 평범한 사람들은 이미 기득권이 만들어놓은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다. 내가 뭘 바라고 있는지, 삶의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사유하지 않는다. 사회를 움직이는 근본적인 패러다임에는 의문을 던지지 않는 거다. 문제를 바꾸려는 참여로 이어지지 않을 때도 많지 않나. 세상을 의심해보는 사람들이 되레 과대망상자 취급을 당하는 걸 비튼 게 <과대망상자(들)>이다. 저항보다는 순응하며 산다는 걸 블랙코미디로 보여줬다. 사실 굉장히 쓸쓸한 이야기다.

-<우리에겐 떡볶이를 먹을 권리가 있다>에서 지수는 면학 분위기 조성을 이유로 등교 후 교문 출입을 봉쇄한 학교에 저항한다. 훌쩍 날아올라 교문을 넘어서는 기발한 상상으로 말이다.

=최익환_어째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떡볶이 같은 건 모두 학교 밖에 있는 걸까. 삶에서 우리가 희망하고 바라고 찾고 싶은 건 대체로 중심에서 벗어난 주변부에 있다. 교문 바로 밖에 떡볶이집이 보이는 곳으로 로케이션을 잡은 것도 그런 면을 잘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지난해부터 내게는 ‘비겁함’이라는 말이 중요한 테마가 됐다. 나는 왜 이렇게 비겁한가. 단 한 순간이라도 비겁해지지 않기 위해 애쓰는 데도 그게 쉽지가 않다. 적어도 내 영화의 주인공만큼은 비겁하지 않길, 누군가가 이미 정해놓은 룰을 뛰어넘어보길 바랐다. 어쩌면 주인공 지수를 통해 내가 대리만족하는 건지도 모른다. 영화 자체가 지수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랄까. 그 편지가 관객에게도 닿았으면 좋겠다.

-<소주와 아이스크림>은 가까이 있지만 남보다 멀게 느껴지는 순간의 가족 관계를 들여다보게 한다. 동시에 <꿈보다 해몽>(2014), <로맨스 조>(2011) 등에서 보여준 꿈과 환영을 통한 이야기 전개라는 실험을 계속했는데.

=이광국_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이 돈에 맞춰져 있고 정작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는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지금의 세태 같다. SNS상의 불특정 다수와는 소통하지만 바로 옆 사람들과는 얘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바로 가까이 있는 사람들, 가족을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구조적으로 접근해 푸는 방식에 흥미를 느끼다보니 시나리오를 쓸 때면 환영이나 꿈으로 이어지는 서사의 전개를 나도 모르게 취하게 되더라. 전작들과 다른 시도도 있다. 이번에는 인물의 감정에 보다 초점을 맞췄다. 세아의 감정을 끝까지 따라가보자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롱테이크가 줄어들고 컷도 좀더 나뉘고. 이런 접근도 나름 재미있었다. 또 소주병을 통해 유령 같은 여자와 세아가 이어진다는 설정도 생각해봤다. 공광규 시인의 <소주병>이라는 시를 읽고 빈 소주병에 누군가의 한숨, 흐느낌이 들어 있는 게 아닐까 싶더라.

-<과대망상자(들)>에서 김동완이 연기한 주인공 우민은 자신이 말하지 않았는데도 타인이 자신의 생각과 속마음을 알아차리고 있어 당황한다.

=신연식_최근 몇년 사이 정부에 의한 민간인 사찰이 굉장히 많아졌다. 이런 상황에 의문을 품으면 마치 과대망상증인 것처럼 보이게 된다. 그걸 좀 과장되고 장난스레 담아봤다. 기성세대가 짠 프레임을 한번 깨뜨려보고 싶기도 했고. 세 작품 중 가장 사회 비판적이지 않나. (웃음) 동완이와는 원래 다른 작품을 하려다 이걸로 먼저 만났다. 현장에서 동완이가 문화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 드라마 현장보다도 촬영 속도가 더 빠르다며. (웃음) 같이 하려던 프로젝트? 동완이뿐만 아니라 여러 명의 신인배우들과 감독들을 매칭해서 여러 편의 단편을 만드는 거다. 발전 가능성이 있는데 연기할 기회가 없었던 배우들이 많다. 돈이 되는 건 아닌데 신인감독과 배우들에게 가능성의 판을 짜주자 싶어서 시작했다. 모델 전문 에이전시인 에스팀과 함께한다. PPL 협찬만으로 영화 제작비를 충당하는 방식이다. 올해 말쯤이면 단편들을 다 묶어서 선보일 수 있을 것 같다.

-최익환 감독은 <마마>(2011) 이후 오랜만의 연출작이다. 연출 전공자들을 가르치거나 영화 제작을 총괄하는 역할과는 또 달랐을 텐데.

=최익환_나도 연출하고 싶어서 한국영화아카데미를 나온 사람이니. (웃음) 영화 연출자들의 영화를 봐주고 영화를 만드는 게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다보니 현장 자체가 낯설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좋은 영화감독은 못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자기 앞의 벽을 넘어보려고 싸우고 투쟁하는 것이 때론 아티스트에게 필요한 자질로 보인다. 해결하기 난감하고 불편한 점을 풀어가고 참아내고, 또 그 과정이 자기 영화에 자연스레 배어나오게 되는 것이다. 근데 나는 상대방에게 주는 걸 좋아하다보니 그런 불편함을 내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게 내 안의 숙제다.

-<과대망상자(들)>에서 기득권에 대항을 도모하려고 모여든 공간에서 인물들이 4개 국어를 혼용해가며 불필요한 싸움을 하는 장면이 있다.

=신연식_(제국주의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기득권은 교육 제도를 적극 활용해왔다. 일본의 전체주의식 교육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끊임없이 조직에 순응하는 걸 가르친다. <동주>를 준비하면서 한국 근현대사에 관한 자료를 보며 알게 됐다. 20세기 초 근대화에 앞장섰던 리더들이 얼마나 지리멸렬했는지를. 창조적인 아이들도 현 교육 제도 속으로 들어가면 생각하지 않는 바보가 돼버린다. 언어에는 능통한데 하는 말은 시답잖은 상황을 비틀어 보여주려 했다. 일면 감독으로서 배우들을 생각하는 마음도 들어가 있다. 중앙대에서 연기 수업을 하는데 수강생 중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학생들이 있다. 이번에도 출연하고 <동주>에도 나온 배우 최희서도 실제로 4개 국어가 가능하다. 이런 친구들의 능력이 이번 영화에서 조금이라도 드러난다면 혹시 아나. 다른 감독님들이 이 배우들을 궁금해할지. (웃음)

-<시선 사이> 이후, 각자 또 어떤 영화 작업을 준비 중인가.

=이광국_장편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가족 이야기가 될 것 같다. 현재로서는 내가 매일같이 겪고 있는 문제나 상황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방식이 편하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글을 써가다보면 자연스레 나의 진정성도 담길 거라 생각한다.

최익환_어떻게 하면 패턴에서 벗어난 삶을 살까가 화두다.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하며 살아야지. 그래서 앞으로의 계획이랄 게 뭐가 될지 잘 모르겠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는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질문이 아닌가. 끊임없이 답을 찾아나가야 하겠지. 요즘 조금 다른 걸 해보고는 있다. 헬리콥터를 타고 전국을 돌면서 지형지물을 여러 각도와 높낮이로 찍으며 비행 시뮬레이션 영상을 연출한다. 올해 말 제2롯데월드 월드타워 개장에 맞춰 기존 롯데월드에 들어서는 대형 상영관에서 상영할 영상물이다.

신연식_뭔가 생각이 떠오르면 안 해보고는 못 견디는 성격이다보니 벌여놓은 일이 엄청 많다. 근데 이제는 체력도 안 따라주고 이렇게는 안 되겠더라. 저예산영화를 만드는 건 이제 그만하려 한다. 제작을 안 하겠다는 얘기는 아니고. <동주>를 시작으로 한 ‘예술인 시리즈’는 계속 간다. 이미연 감독이 가수 이난영을, 박정범 감독이 월북한 코미디언 신불출에 관한 영화를 각각 준비 중이다. 연출은 상업영화거나 기독교영화쪽으로 할 생각이다. 내 작품에 올인해야지. 그래서 올해는 정리의 해로 삼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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