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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소설로 공감하고 상상하는 페미니즘 명작 8권
이다혜 2016-06-27

<비행공포>에 대한 <뉴스위크>의 서평에는 “‘여자라면 이런 상상은 못할 것’이라고 넘겨짚어온 남자들이여, 충격에 빠질 준비를 하라”고 되어 있다. 이런 오만한 시선이 수많은 재능 있는 여성 작가들과 그들의 저작을 시야 밖으로 밀어내온 것은 아닐까. 여기, 여성 작가들이 여성문제를 다룬 소설들을 소개한다. 가능한 한 최근 출간된 책 중에 골랐다.

<체체파리의 비법>

<체체파리의 비법>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지음 / 아작 펴냄

저자에 대해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는 필명인 동시에 이름의 주인이 여성임을 가리는 도구였다. 1942년 군에 입대, 공군 조종사와 군 정보원으로 일했던 앨리스 브래들리 셀던은 40대 남성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를 만들었다. 1977년 그는 여성임을 밝혔고, 사후 젠더문학에 대한 문학적 시야를 넓힌 SF와 판타지 소설에 수여하는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기념상’이 제정되었다.

한 문장

“성적 욕망에 대한 응답으로, 또한 성적 욕망의 완성으로 살인이 일어난다는 점을 언급해 두는 것이 좋겠다.” #체체파리의_비법 #여성살해 #페미사이드 #강남역_10번출구 #단편

이 이야기는,

전세계에서 여자들이 살해당하고 있다. 인간이 신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 여자를 제거해야 한다는 종교 정파와 관련된 사건은 악화일로다. 여성은 멸종위기종이라고 불러야 할 상황에 처한다. 콜롬비아에서 생물학적인 해충 구제 계획을 준비하던 앨런은 집으로 향하던 중, 수컷의 공격성에 대한 문서를 읽게 된다. “짝짓기 행동의 실패가 공격적/약탈적인 반응으로 바뀌거나 이어지는 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인간은 왜 여성들을 죽이게 된 것일까에 대해 생물학과 SF의 상상력이 답한다. ‘잠재적 가해자’로서의 남성과 페미사이드(여성살해)의 공포 앞에 놓인 여성에 대한 이야기.

참조: 어슐러 K. 르귄 <빼앗긴 자들>.

<비행공포>

<비행공포>

에리카 종 지음 / 비채 펴냄

저자에 대해

시인이자 소설가. <비행공포>는 에리카 종의 자전적 소설이다. 1973년 <비행공포>가 출간된 뒤 욕설을 담은 협박편지와 찬사를 담은 편지들이 동시에 쏟아지는 나날을 보냈고, 신페미니즘 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 이 책은 지금까지 2700만부가 팔렸다.

한 문장

“당신이 여자이고 재능이 있다면 어느 길을 가건 당신의 인생은 하나의 덫이다. 집안일에 익사하거나 아니면 예술로 집안일을 승화시키거나. 당신은 결코 여성성을 탈출할 수 없다.” #타임_선정_1970년대를_지배한_도서_톱10 #밥_딜런_Highlands

이 이야기는,

‘여자가 쓴 것 같지 않은’이라는 말은 칭찬같이 들리지만 여성 창작자의 능력을 애초에 불신하는 표현이다. 그런 기이한 칭송의 언어에 휩싸였던 <비행공포>는 가족과 성역할, 결혼제도, 그리고 섹스에 대한 소설이다. 여성의 황홀한 섹스 이야기가 ‘한심한 도덕적 변명’을 동반하지 않아도 된다는 당연하고 당연한 이야기. 여성은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이미 비난할 준비부터 하고 있지는 않은가. 섹스에 탐닉하고 그 사실을 밝힐 때, 그 주체가 여성일 때와 남성일 때 당신의 반응은 어떻게 다른가.

참조: 무라야마 유카 <더블 판타지>.

<피로 물든 방>

<피로 물든 방>

앤절라 카터 지음 / 문학동네 펴냄

저자에 대해

1968년, 서양 기독교 문명에서 가장 먼 곳이라 생각한 일본에 가 3년간 거주하며 창작한다. 이후 여성의 성을 출산과 연결짓지 않아 논란을 일으킨 <사드적 여성>을 비롯한 저작을 남겼다. 샤를 페로의 동화집을 영어로 번역한 뒤 동화를 재해석한 <피로 물든 방>을 발표했다.

한 문장

“죽은 그녀는 훨씬 더 나이 들어 보이고, 덜 예뻐 보여서 처음으로 완전히 인간다워 보였다.” #사랑의_집에_사는_귀부인 #페미니즘_동화 #성인용_동화 #요정_대모

이 이야기는,

<푸른 수염>을 변주한 <피로 물든 방>은 오싹한 방식으로 요염하다. 주인공은 첫날밤을 보낼 때, 그가 미식가인지라 옷을 아티초크 잎처럼 벗겨냈다고 묘사한 뒤 덧붙인다. “그는 낯익은 요리에 식욕도 없이 다가왔다.” 몇번이나 신부를 맞이하고 그들을 죽음으로 떠나보낸 나이 든 남편을 따라 귀양살이를 시작한 여자는 자신의 엔딩을 만들어간다. ‘구원자는 누구?’에 대한 앤절라 카터의 대답이 재미있다. 동화의 세계조차도 여성들을 객체로 소비하고, 그것이 교육을 통해 전달되어 왔음을 알게 해준다.

참조: 조이스 캐롤 오츠 외 <엄마가 날 죽였고, 아빠가 날 먹었네>, 최기숙 <처녀귀신>.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진 리스 지음 / 펭귄클래식코리아 펴냄

저자에 대해

1890년 도미니카 윈드워드 군도의 로소에서 태어나 16살에 영국으로 건너갔다. 아버지는 웨일스 태생의 의사, 어머니는 영국계 크리올. 그녀는 페미니즘뿐 아니라 제국주의.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소설에 담았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는 1966년작.

한 문장

“나는 이 여자를 증오한다. 왜냐하면 이 여자는 그 마력과 아름다움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내 온 인생은, 발견하기도 전에 이미 상실한 것을 그리워하고 목말라하는 그런 인생이 될 것이다.” #로체스터_시점 #제국의_완성을_위한_대가는_여성들이_치렀다#다락방의 _미친_여자

이 이야기는,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에서, 우리는 다락방에서 유령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지내는 미친 여자를 만난다. 알고 보니 그는 로체스터의 아내였다. 그녀의 사연을 우리는, 그의 입으로만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진 리스는 바로 그녀, 버사 메이슨이 앙투아네트로 불리던 시절의 이야기를 상상했다. 남편의 존재가 가장 큰 억압이 되어버렸던 한 여자의 일생. 이 소설은 두 차례 영화화되었는데 1993년작의 한국 개봉명은 <카리브해의 정사>로, 소설과 달리 이국의 에로티시즘을 과시하는 데 그친다.

참조: 샬롯 브론테 <제인 에어>, 크리스타 볼프 <카산드라>.

<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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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 비채 펴냄

저자에 대해

옥타비아 버틀러는 흑인 여성 소설가이자 페미니스트다. 단편집 <블러드차일드>도 이번에 함께 출간되었는데, 표제작은 남성의 임신(외계 생명체의 알을 품는 숙주로서의 남성)을 그리고 있다.

한 문장

“와일린이 뭐라고 했던가? 교육받았다고 똑똑하지는 않다고 했지. 정확한 지적이었다. 내가 받은 교육이나 미래의 지식들은 탈출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노예_12년 #고등학교_교과서_수록

이 이야기는,

다나는 1976년에서 1815년으로 타임슬립한다. 이 시간이동은 몇번이고 일어나는데, 흑인 여성인 다나는 그 과거의 세계에서 ‘검둥이’로 불리며, 노예로 물건만도 못한 취급을 받아야 한다. 도망치려다 채찍으로 맞고, 자신의 조상이 되는 남자의 기이하고도 파괴적인 애정의 대상(나와 자고 싶어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를 가까이 두고 싶어 했다)이 되기도 한다. 페미니즘은 거의 모든 사회문제의 교집합이다. 인종문제를 다룰 때도 마찬가지가 된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이 이슈들을 더 확연히 드러내기 위해 다나를 타임슬립시켰지만, 역사에 묻힌 과거로만 치부할 수 없다.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

지넷 윈터슨 지음 / 민음사 펴냄

저자에 대해

출생 직후 버림받은 지넷 윈터슨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 입양됐다. 책읽기를 좋아한 그녀였으나 집에는 책이 여섯권 있었고, 그중 세권은 성경이었다. 그리고 열여섯이 되던 해 한 소녀와 사랑에 빠지고 그 사실을 들켜 가출한다.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는 23살 때 발표한 데뷔작.

한 문장

“나는 악마가 약점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들어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에게 악마가 들렸다면 나의 약점은 멜라니다. 그러나 멜라니는 아름답고 착하고 나를 사랑했다. 진정 사랑이 악마의 것이란 말인가?” #휘트브레드_작품상 #BBC_미니시리즈

이 이야기는,

1부 <창세기>, 2부 <출애굽기>로 시작해 8부 <룻기>로 끝나는 구조. 엄격한 기독교 집안에서 기도에 집착하는 어머니와 사는 소녀 지넷은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어머니의 비난을 받는다. 이성애가 왜 당연한지 질문하는 소녀의 성장소설. 선과 악의 구분이 뚜렷한, 부모가 가르치는 도덕적 세계에서 벗어나는 일에 대하여.

참조: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에이미와 이저벨>, 엘프리데 옐리네크 <피아노 치는 여자>, 오노 마사쓰구 <9년 전의 기도>, 수전 셀러스 <그녀들의 방>.

<시녀 이야기>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 황금가지 펴냄

저자에 대해

시인, 소설가, 문학비평가.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작품들을 발표했으며, 환경 문제와 인권 문제, 캐나다인의 정체성 등을 소설에 담았다. 2000년작 <눈먼 암살자>로 부커상을 받았다.

한 문장

“나는 정숙과 기품의 화신이 아니라 치욕과 굴욕의 상징이다. 이보다 더 참혹한 기분이 되어야 하는데. 하지만 나는 고요하고, 차분하고, 이렇게 무심할 수가 없다.” #폴커_슐뢴도르프_영화_원작 #매드맥스_분노의_도로

이 이야기는,

길리어드라는 나라의 여성 다수가 불임 상태에 빠진다. 국가에서는 임신 가능한 여성들을 통제한다. 낮은 계급의 남성은 여자를 배급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여자들은 하녀, 아주머니, 시녀, 아내 등 직군이 나뉘어 국가에 의해 관리된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시녀’는 가정에 배치되어 그 집 남자들과 성관계를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궁이라는 쓸모에서 비롯되는 일이다. ‘시녀 이야기의 역사적 주해’라는 마지막 챕터가 오싹한 여운을 남긴다.

참조: 마지 피어시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 조디 피콜트 <마이 시스터즈 키퍼>.

<끌림>

<끌림>

세라 워터스 지음 / 열린책들 펴냄

저자에 대해

<아가씨>의 원작 <핑거스미스>의 저자. 레즈비언과 게이 역사 소설에 대한 연구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세기 외설 문학도 연구했다. 전공을 살린 첫 소설 <벨벳 애무하기>와 <핑거스미스> 사이에 놓인 두 번째 작품이 <끌림>이다.

한 문장

“그녀의 쇄골은 기묘한 악기의 정교한 상아빛 건반처럼 튀어나와 있었다. 그녀의 두팔은 그녀의 노란색 속옷보다도 더 창백했으며, 손목부터 팔꿈치까지 푸른 정맥이 부드러운 그물 무늬를 그렸다.” #오렌지_이즈_뉴_블랙 #친절한_금자씨

이 이야기는,

빅토리아 시대 감옥에서 복역 중인 영매 셀리나에게 매혹된 상류층 아가씨 마거릿은, 아버지와의 사별이라는 상처를 씻기 위해 죄수들과 대화를 나눈다는 애초의 목적을 잊는다. <핑거스미스>가 그랬듯, ‘사랑! 배신! 반전! 충격! 공포!’가 모두 들어 있으며, 여성들 사이의 성적 긴장과 은근한 에로티시즘을 만날 수 있다(빅토리아 시대 3부작 중에서는 가장 음습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런던을 배경으로 한 세라 워터스의 신작 <게스트>의 참고도서 중에는 <20년대의 여자들과 대중적 상상> <재판에 선 근대 여성들> 등이 있다. 책 선택에 참고하시길.

참조: 세라 워터스 <핑거스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