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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덕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그들이 사는 세상
노덕(영화감독) 일러스트레이션 마이자 2016-07-27

지난해 가을밤. 심야영화를 보러 극장에 간 적이 있다. 주차장을 가긴 번거로워 대충 건물 뒤편 으슥한 곳에 차를 댔는데 근처에 패스트푸드점 유니폼을 입은 청년이 있었다. 잠깐 쉬러 나온 모양이었다.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며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모습이 흔한 광경일 수도 있었지만 갑자기 마음 한켠이 덜컹 내려앉았다. 분명 안에서 바쁘게 일하다가 잠깐 쉬러 나온 것이다. 한기가 느껴지는 가을바람이 부는 밤이었다. 둥실 떠 있는 달빛 아래에서 반팔을 입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그를 보고 죄책감이 느껴졌다면 너무 감상적인 걸까. 당시 나는 영화를 막 개봉시키고 실망스러운 흥행 결과에 심란해져 있었다. 도통 잠을 이룰 수 없어 영화를 보러 나왔는데 한쪽 세계에서는 그 시간까지 몸을 움직이며 돈을 벌고 잠깐의 휴식조차 남의 눈을 피해 하고 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대중예술을 한답시고 영화를 만들었지만 과연 그들의 일상에 대한 존중이 내게 있었던가, 하는 죄책감과 반성이었다. 순간이었지만 그 이미지는 내게 꽤나 크게 각인되었다.

얼마 전 한 단편영화에서 같은 장면을 봤다.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본 <여름밤>이라는 영화는 고등학생 민정과 그의 과외 선생님 소영의 이야기를 다룬다. 민정은 부모의 무관심으로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과외비를 마련하고 그 과외비를 받는 소영 또한 편의점에서 일을 하는 취업준비생이다. 각자의 시간을 쪼개 힘들게 과외 시간을 맞추는 두 사람은 막상 참고서를 펴놓곤 지칠 대로 지친 탓에 선풍기 바람 앞에서 함께 꾸벅꾸벅 졸기도 한다. 삶이 버티는 것이 전부인 때가 있다. 최선을 다해도 현상을 유지하는 것 이상을 바랄 수 없을 때. 그때 사실 바라는 것은 많지 않다. 그저 작은 위로라도 고맙다. 아니, 그저 바라보기만 해줘도 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느니 너 말고도 다들 힘들다느니 그런 말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버텨나갈 순 있다. 그런 말들은 어쩌면 상대방에게 해주는 위로가 아닌, 본인이 느끼는 죄책감을 합리화하고자 스스로에게 거는 최면일지도 모른다.

그날 밤 반팔 차림의 패스트푸트점 아르바이트생과 영화 속 학생, 그리고 과외 선생님이 모여 모처럼 영화를 보러 간다면 그들은 어떤 영화가 보고 싶을까. 영화의 완성도와 의미는 제쳐두고라도 최소한 영화 보는 시간만큼은 현실을 잊게 만들 수 있는 영화여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그것이 대중예술이 갖는 기본적인 의무일지도 모른다. 그날 보러 간 심야영화가 무슨 영화였는지 기억이 안 나는 것은 당연하다. 난 부끄럽고 미안하고, 또한 내가 그들을 타자화하는 게 맞는지, 나도 그들 중 하나가 아닌지 생각하며 스크롤이 올라갈 때까지 극장 의자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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