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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이성강 감독과 연상호 감독, 애니메이션의 제작과 흥행, 서로의 작화 스타일에 대해 긴 대화를 나누다
송경원 정리 김수빈 사진 백종헌 2016-08-15

연상호, 이성강 감독(왼쪽부터).

한국에서 장편애니메이션을 제작한다는 건 사막에 꽃을 피우는 일이나 다름없다. 여기 두편 이상의 작품을 제작한 감독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장에서 세 번째 장편애니메이션을 선보이는 감독들이 있다. 2001년 <마리이야기>로 한국 애니메이션의 성취를 알린 이성강 감독은 2006년 <천년여우 여우비> 이후 10년 만에 신작 <카이: 거울 호수의 전설>을 들고 극장을 찾는다. 한편 <카이: 거울 호수의 전설>의 제작자이기도 한 연상호 감독은 2011년 <돼지의 왕>, 2013년 <사이비>에 이어 신작 <서울역>의 공개를 앞두고 있다. 공교롭게도 하루 차이로 개봉을 앞두고 있는 두 작품 덕분에 간만에 극장가가 창작 장편애니메이션으로 붐비는,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2000년 이후 장편애니메이션의 전반과 후반을 대표하는 두 감독의 작품이 교차하는 중요한 순간이라 생각한다. 이에 그간 한국 장편애니메이션 산업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행보를 모색하고자 이성강, 연상호 감독을 한자리에 초대해 긴 이야기를 들어봤다. 산업적인 분석부터 애니메이션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까지 다양한 결의 이야기가 오갔다. 지금 여기서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의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한다.

-<서울역>과 <카이: 거울 호수의 전설>(이하 <카이>)이 하루 차이를 두고 개봉한다.

=연상호_ 의도된 건 아니다. <서울역>이 <부산행> 뒤로 가는 건 정해져 있었고 <카이>는 원래 여름 개봉예정이 아니었다. 2월로 한번, 5월로 한번 정했다가 결국엔 8월 정도에 개봉하는 걸로 결정됐다. 2월에는 <쿵푸팬더3>가 있었고 5월엔 비슷한 사이즈의 수입 애니메이션이 6편 정도 개봉했었다. 여름방학 시장으로 가자는 결론이 났는데 여름에도 큰 영화가 많다보니 결국엔 여름방학 끝자락까지 오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서울역>이랑 부딪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어때 보이나.

=이성강_ 아이들을 데리고 가족끼리 애니메이션을 보러가는 시기가 1년에 몇번 안 된다. 5월, 여름, 추석, 크리스마스 정도다. 아직 결과가 안 나왔으니까 뭐라 말하기 그렇지만 5월에 개봉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다. 스필버그의 가족영화 <마이 리틀 자이언트>처럼 지금 개봉하는 영화들의 면면도 워낙 강력하니까. 그런 영화들이 스크린을 적게는 200~300개, 많게는 500개를 잡아버리면 도대체 극장이 어떻게 남나 싶다. <부산행>도 아직 극장에 걸려 있고.(웃음)

=연상호 게다가 개봉할 영화들이 아직 많지 않나. 나도 스크린 수를 매일 확인했는데 올해는 전체적으로 극장에 사람이 많기도 하지만 블록버스터영화끼리 고르게 분할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원래 예상이란 게 쉽지 않지만 어떻게 될지 전혀 감이 안 온다.

=이성강 여하튼 잘됐으면 좋겠다. 큰 틈에서 살아남아서 주말에만 상영하더라도 추석까지 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카이>가 대중애니메이션의 성공사례가 되기를

-어쨌든 <서울역>과 <카이>는 관객층이 다른데, 서로의 작품이 같은 주에 개봉하니 국내 장편애니메이션이 갑자기 풍성해진 느낌이다.

=연상호 개인적으로는 <카이>가 잘되길 간절히 바란다. 두 작품을 비교하자면 <카이>가 유의미한 성과를 보여주는 게 급선무라 생각한다. 사실 <서울역>은 독특한 사례이지 않나. 영화 <부산행>이 이미 있었기도 하고, 내 작품 자체가 독특한 위치에 있는 편이다. 물론 독특한 영화들이 많아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애니메이션 산업적으로 보면, 보편적인 산업이 어느 정도 안정을 잡아야 그 안에 독특한 영화도 나올 수 있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카이>가 잘되는 게 우선이다. <서울역>의 경우는 잘된다 하더라도 애니메이션 산업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미미하다. 하지만 <카이>는 파급력이 꽤 클 거다.

-산업적인 영향력이 큰 게 예산 때문인가. 이성강 감독의 전작들에 비하면 상당히 적은 예산으로 제작한 걸로 알고 있는데.

=연상호 그보단 프로젝트의 방향성 때문이다. 사실 <카이> 제작과정에서 꽤 여러 고민을 했다. 나는 <덤불 속의 재>(1999)라는 단편을 하던 감독님도 알고 있었고 <마리이야기>를 만들던 감독님도 알고 있었다. <마리이야기>를 할 때는 영화계에서 애니메이션에 대한 기대가 있었고 이성강 감독 같은 작가감독이 필요했다. 이성강 감독 단편의 색깔과 기존 영화업계에서 바라는 상이 결합해서 나온 게 <마리이야기>다. 흥행에 대한 건 둘째치더라도 영화적 성과도 당시에 존재했다. 하지만 그 영화적 성과가 다음 것을 보장해주는 무언가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사실 실사영화 같은 경우는 흥행이 안 됐어도 영화적 평가가 이뤄지면 그다음 영화로 갈 수 있는 건데 그게 애매해진 상태에서 <천년여우 여우비>라는 작품이 들어왔다. <천년여우 여우비>는 어떻게 보면 기존에 단편작업을 하던 이성강 감독의 색깔이 줄어든 경우다. <카이>를 제작하면서 고민됐던 건 흥행에 대한 기대를 많이 줄이고 이성강 감독의 원류를 장편으로 만드는 게 맞는가, 아니면 보편적이고 안정적인 산업구조를 만드는 게 맞는가 하는 점이었다. 후자가 필요한 시기라고 판단해 감독님에게 말씀드렸고 감독님이 산업적인 필요에 대해 동의해주셨다. 단순한 예로, 나는 감독님의 중편애니메이션 <악심>(2014)을 상당히 좋아한다. 모로호시 다이지로라는 일본 만화작가를 좋아하는데 그런 느낌도 있다. 하지만 모로호시 다이지로 감독의 독특한 영화들도 일본 만화 산업의 전반적인 다양성 안에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그런 다양성을 말한 기회나 시장조차 없다. 이런 측면에서 <카이>를 보편적인 대중애니메이션의 성공사례로 만드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 관객이 들어야 성과를 증명했다고 할 수 있을까.

=연상호 45만명 정도만 되어도 성공이라고 본다.

-생각보다 적은 스코어다. 제작비 대비 성공 수치인가 아니면 시장이 있음을 증명한 것이라고 생각하나.

=연상호 45만명이면 일단 손익분기점은 넘는다. 기존 한국 애니메이션의 제작방식은 존재하는 것보다 훨씬 큰, 어쩌면 존재가 증명되지 않은 시장을 바라보고 있었고 결과적으로 그게 다 실패했다. 결국 내수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만 증명하고 해외시장을 노리는 방향으로 제작되어왔다. 하지만 나는 일단은 내수시장부터 안정적으로 다지는 방법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주의다. <카이>를 기획했을 때만 해도 해외 수입애니메이션들을 통해 30만~50만명 정도의 관객층의 존재가 증명된 상태였는데 한국 영화시장이 워낙 급변하니 지금은 또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영화에서는 흥행도 하나의 큰 축이다”

-이성강 감독님은 전체 애니메이션 시장에 영향을 미칠 만한 큰 규모의 작품들을 꽤 긴 간극을 두고 해왔다. 시장의 변화를 몸으로 체험했을 것 같은데.

=이성강 연상호 감독의 해석이 상당히 맞는 부분도 있다. <천년여우 여우비> 이후에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두세번 프로젝트가 엎어진 후 <악심>을 만들었는데 갈등구조와 캐릭터만 생각하고 상당히 자유롭게 작업했다. <악심>과 <저수지의 괴물>(2012) 같은 작품이 개인적인 성취감은 분명히 있지만 단편이란 한계가 분명하다. 일례로 IPTV로 올려놓아도 연수입이 10만원이 안 된다. 반면 장편은 순수하게 작가주의로만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마리이야기> 때도 갈등이 많았다. 사실 그전에 장편애니메이션들이 없었지 않나. <마리이야기>는 대중적인 감성, 작가적인 감성을 모두 가진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쓸 때 갈등이 있었다. 어떻게 쓰면 너무 작가적이고, 시나리오작가가 고쳐오면 유치하기 짝이 없고. 그러다가 최종 시나리오를 완성했는데 대중적으로 성공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웃음) <마리이야기>는 내가 꿈꿔왔던 애니메이션이긴 하지만 대중적으로 성공하긴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스탭들 앞에서 말했다. “내가 두 가지를 다 성공시키긴 힘들 것 같다. 흥행을 하건 작품성으로 가건 둘 중 하난데 아무래도 작품성인 것 같다. 어떻게 하든 상은 받겠다”고. (웃음) 그때는 그런 도전이 가능한 시기였다. 큰 규모의 애니메이션들이 10년 이상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에 대한 새로운 기대감들이 일고 있었고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도 있었다.

-<천년여우 여우비>는 확실히 방향의 변화가 엿보인다.

=이성강 <마리이야기>는 나는 만족하지만 보는 사람들은 지루할 수 있다. 근데 아까 말했듯이 영화에서는 흥행도 하나의 큰 축이다. 그게 없으면 결국 무너진다. 실사영화처럼 여러 가지 가능성을 살피기보다는 애니메이션 자체를 하나의 장으로 묶어 판단해버린다. <천년여우 여우비>는 그래서 좀더 대중적인 요소를 많이 고민했고 내가 가진 요소와 충돌이 좀 있었다. 모두가 행복한 것, 죽는 것 등 여러 가지 엔딩을 놓고 생각을 해봤는데 새드 엔딩이 나을 것 같더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너무 유치하다고 할 것 같았다. 이상한 건 투자자가 새드 엔딩으로 가야 한다고 한 것이었다. 슬프려면 확 슬퍼야 한다며. 물론 뉘앙스의 차이는 좀 있었을 거다. 어쨌든 <천년여우 여우비>는 작품성에 대해선 이런저런 얘기가 있을 수 있겠지만 대중성은 있다고 생각한다.

=연상호 <천년여우 여우비>는 48만 관객이었으니 만족스럽진 않아도 그렇게 나쁜 스코어는 아니다.

=이성강 당시 마케팅을 할 때 굉장히 머뭇거리는 게 눈에 보여 아쉬웠다. 마케팅비가 지금 <카이>와 비슷한데, 극장 수를 얼마나 잡느냐에 대해 굉장히 소심하게 접근했다. 당시 스크린 수를 늘리려면 디지털화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이 있었다. 40개 정도는 늘릴 수 있었지만 PD가 거절했다. 당시엔 DCP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디지털 하면 무조건 복사될 거라는 생각이 있을 때였다.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버전은 3개월이 걸렸다. 이런저런 사정을 다 생각하면 나름 선전한 거다.

-<카이>는 좀더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코드를 강화했다고 봐도 좋을까.

=이성강 <카이>는 원래 가지고 있던 초고 자체가 게임처럼 모험을 단계별로 헤쳐나가는 이야기 구조였고 충분히 상업적인 소재라고 생각한다. 개성을 조금 낮추고 대중적인 코드에 집중하는 데 대한 부담은 없었다. 오히려 <천년여우 여우비> 때 아쉬웠던 걸 좀더 챙겨넣고 싶었다.

=연상호 양가적인 감정이 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게, 나도 마찬가지일 수 있는데 이성강 감독의 단편영화들이 해외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받았다. 단편으로 이성강 감독을 평가하는 건 해외에서 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전부다. <마리이야기>도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게 다였다. 그때 당시 비평이 죽었던 시절도 아닌데 작가 이성강의 작품세계에 대한 비평이 나오지 않았다. 그게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장편은 <사이비>와 <돼지의 왕> 두편을 했지만 당시 비평들이 많이 나왔다. 솔직히 수혜를 받은 편이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의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디테일한 분석이나 소개는 없었다. 농담 삼아 이야기하는 게 <돼지의 왕> 개봉 후 내가 어느 순간 학원폭력 근절 대사가 되어 있더라. (웃음) 애니메이션 분야는 확실히 비평적인 목소리가 적고 얕다. 작가 색을 드러낸다고 한들 단편애니를 영화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판이 아닌 상황에서 결국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이 증명해야 하는 건 스코어, 상업성밖에 없다. 그런 것들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상당히 힘들게 한다. 또 하나는, 한국에서 장편 작업을 계속 해본 사람이 별로 없다는 거다. 그런 경험과 필모그래피가 쌓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카이>가 끝나면 감독님의 다음 작품이 빨리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되면 좋고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완해서 바로 들어갈 수 있어야 무언가가 쌓일 수 있다.

<서울역>이 <부산행>과 패키지로 제작된 이유

-한편으론 국내 장편애니 시장만 놓고 보면 시장 상황에 비해 지나치게 큰 영화에 집중투자했다가 한동안 제작이 단절되는 패턴이 반복되어왔다. 그런 점에서 45만 관객이란 수치가 꾸준히 뭔가 나올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수치라고 생각하는 건가.

=이성강 일리가 있다. 지금까지 장편애니메이션이 자생하지 못했으니 최소의 성취라도 해야 한다는 지점에선, 맞다. 일단은 최저치라도 성취를 하면 뭔가 조금 더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람으로는 100만명까지 가주면 조금씩 확장해나갈 수 있다고 본다. 한국에서 일반적인 사람들은 장편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전혀 모른다. 디즈니나 지브리는 애니메이션으로 받아들이기보다 하나의 브랜드로 받아들인다. 지금 한국에서 애니 감독 중 브랜드화된 감독들은 없다.

-브랜드화하려면 편수가 쌓이고, 편수에 해당하는 비평이 갖춰지는 과정이 필요한데 단발로 사라진 경우가 대부분이라 기회가 없는 상황이다. 그런 측면에서 연상호 감독의 제작방식은 혁신적인 부분이 있었다.

=이성강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돼지의 왕>은 제작비가 1억2천만원이었다고 들었는데 그 제작비로 어떻게 만들었나 싶다.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이 만드는 영화도 제작비가 1억5천만원이다. 연상호 감독의 추진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바닥까지 떨어졌던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의 힘을 끌어올려주었다고 본다. 이왕 끌어올리는 김에 쫙 올라왔으면 좋겠는데, 앞으로 실사영화만 할 것 같아서 걱정스럽다. (웃음)

=연상호 내 애정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애니메이션이다. 나는 내가 하는 애니메이션에 집착하던 상태라 솔직히 실사영화를 기획해야 한다는 생각도 별로 해보지 않았다. 다만 변화가 필요하긴 했다. 내 기준에선 <사이비>도 이야기가 비상업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사영화로 따지면 얼마든 상업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단지 애니메이션이라는 이유로 저예산영화로 배급되는 현실에 분노 같은 게 있었다. <사이비> 당시 마케팅 비용이 말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근데 <서울역> 기획을 할 때 작업 초반에 마케팅비가 <사이비>와 똑같다는 걸 알게 된 후 너무 충격을 받았다. 그 마케팅비로 나올 수 있는 스코어는 뻔했다. 갑자기 일할 의욕이 없어졌다. 이런 접근이면 <사이비>와 비슷한 스코어가 나올 수밖에 없고 6억원을 들여서 만들면 4억원 정도 손해를 보는 거라고 주장했는데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더라. 난 <서울역>이 상업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몇몇 사람들에겐 여전히 어려운 예술, 작가애니메이션으로 받아들여졌다. 어떻게 하면 이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질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실사영화와 묶는 패키지 얘기가 나왔다. 실사영화가 잘되면 자연스럽게 마케팅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부산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말씀하신 부분이 의미심장한 게, 연상호 감독 애니메이션은 소재로 따지면 평범한 상업영화 정도 톤인데 애니메이션으로 봤을 땐 굉장히 특이하게 다가온다. 그게 연상호 감독 작품이 작가애니메이션으로 분류된 큰 이유 같다. 한국에 ‘극장용 애니메이션 시장’이라는 게 존재한다고 보는지.

=연상호 단일 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개별 감독들 몇몇이 고군분투하고 있을 따름이다. 가령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도 좋은 작품으로 예를 드는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작품성 있는 애니메이션 중 그다지 히트 친 게 없다. 곤 사토시의 작품들이나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1995) 같은 애니메이션도 고예산이지만 그렇게 흥행된 작품이 아니다. 그래도 투자가 되고, 제작이 이뤄진다. 거대한 산업구조 안에서 <도라에몽>이라든가 <명탐정 코난>처럼 돈을 벌 수 있는 애니메이션과 작품성을 추구하는 영화가 공존한다.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엔 그런 세분화된 개념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모든 작품들이 단순한 스코어로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면서도 작품성이 없으면 수준이 떨어진다는 비난을 받는다. 단발성으로 흥행을 해도 다음 스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가까운 예로 <마당을 나온 암탉>(2011)의 오성윤 감독조차 두 번째 작품에 들어가기까지 굉장히 힘들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나오기 전에 한국 애니메이션은 흥행이 안 된다는 말들이 있었는데 <마당을 나온 암탉>은 흥행했지 않나. 하지만 그 한번의 사례로 어떻게 확신하냐는 반응이다. 그러니까, 할 수 있는 게 없다. 말 그대로 안 된다는 걸 기본으로 생각하고 모든 게 진행된다. 산업적으로 접근하고 싶어도 일단 데이터 자체가 압도적으로 적다. <카이>도 시사를 통해 관객을 꽤 만났는데 뭐라 단정하기엔 표본이 너무 적다. 실사영화는 표본으로 삼을 수 있는 지표들이 꽤 있지만 <카이>는 비교할 수 있는 표본 자체가 적어 점수를 매겨도 이게 잘 나온 건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예상 스코어를 물어봐도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게 국내 장편애니메이션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이성강 다행히 <카이>는 일단 보신 분들은 다 재밌다고 말씀해주셨다. 특히 아이들은 대체로 재미있어 하는 것 같다. 지난 7월 제11회 부산어린이영화제에서의 반응이 기억에 남는다. 오전 10시에 부산 지역 6살 이하 아이들이 모여서 봤는데 아주 열광적이었다. (웃음) 사실 <카이>를 만들 때 마케팅쪽에서 영화가 어렵다며 아이들이 이야기를 이해할 것인지에 대해서 의문을 표시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GV 할 때 유치원생 한명이 일어서서 말하더라. 영화를 좀더 슬프게, 어렵게 가도 괜찮았을 거라고. (웃음)

=연상호 비슷한 경우가 종종 있다. <서울역> 프로듀서를 맡은 레드피터 이동하 대표는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20대 관객이랑 초등학생이랑 논쟁하는 걸 본 적도 있다고 했다. (웃음)

-그런 걸 보면 어른들이 상상하는 어린이랑 실제 아이들의 눈높이는 꽤 다른 것 같다.

=이성강 나도 어릴 때를 생각해보면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무서운 걸 굉장히 좋아해서 초등학교 2학년 때 한남극장에서 <여곡성>(1986)을 하면 보러가기도 했다. (웃음) 어린이들이 단순하다고 예단하는 건 고정관념이다. 70년대 인기를 끌었던 <요괴인간> 같은 작품은 그 진지함과 표현수위가 장르영화 못지않다. 데즈카 오사무의 <불새>(1978)에도 별의별 게 다 나오지 않나. 물론 너무 가혹한 걸 아이들에게 계속 보게 하는 건 문제가 있지만 애니메이션에도 다양한 관객층이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연상호 맞다. <은하철도 999>의 스토리 라인은 웬만한 성인용 영화에서도 따라잡기 힘들다. 애니메이션을 하나의 장르로 인식하는 데서 오는 장벽이랄까, 여전히 아이들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시장 자체를 ‘애니메이션’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퉁치고 들어간다는 느낌이다.

이성강 감독 <악심>.

서로의 작화를 말하다

-비평이 부족하다고 했는데 서로의 작품에 대한 비평을 하자면.

=연상호 나는 이성강 감독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이방인으로서의 포지션을 좋아한다. <마리이야기>도 그렇고 <천년여우 여우비>도 그렇고 <카이>도 마찬가지다. <덤불 속의 재> <저수지의 괴물> <악심> 같은 단편도 포함해서 개인으로서 이방인의 감정이 이성강 감독 작품을 관통하고 있다.

=이성강 부산국제영화제 때 김동원 감독(<송환>(2003), <끝나지 않은 전쟁>(2008))이 지나가며 “성강아, 연상호라고 있는데 굉장해”라고 한 말을 듣고 그때부터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단편에서는 ‘연상호다움’이 그렇게 많이 드러나지는 않고 여러 시도들을 했던 것 같다. 이후 <돼지의 왕>을 봤을 때 깜짝 놀랐다. 예산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인물들을 다루는 방식이 과감했다. 사람들 중에도 겉으로는 선한 척하는 악한 사람, 그냥 악한 사람, 선한데 악한 척하는 사람 등 다양한데 그렇게 비틀린 인간상을 노골적으로 다 보여주더라. 그런 지점이 새롭게 다가왔다. <돼지의 왕>을 실사로 만들면 어떻겠냐고들 하는데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돼지의 왕> <사이비>에 담긴 인물들의 과장되면서도 극한까지 가는 표정들이 애니메이션이었기 때문에 잘 살아 있다고 본다.

-두분 다 주제적인 측면을 말했는데, 감독의 연출 스타일을 애니메이션으로 따지면 작화일 거다. 표현의 차원에서 얘기해준다면.

=연상호 내가 하는 애니메이션의 그림은 계보가 있다. 표정에 대한 표현이랄까, 가까운 예로 따지면 후루야 미노루라는 작가를 꼽을 수 있겠다. 만화 <두더지>를 보면 감정의 표현이 급격하게 과잉으로 가는 독창적인 그림이 있다. 후루야 미노루도 그 삽화체 내에서 나름의 계보가 있고 거기에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그림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인 견해를 말하자면, 표정의 급격한 변화라고 하는 게 와닿는다. 많은 프레임으로 미묘하게 표현한다기보다 갑자기 툭툭 점을 찍고 가버리는, 얼굴이 가면 같아지는 느낌이 있다. 그걸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했을 때 감독님의 해석을 넓혀준다고 생각했다.

=이성강 연상호 감독은 인간성을 드러내는 부분이 과감한 것 같다. 대개 양면성을 가진 인간으로 표현할 때 이유를 얘기하거나 인물의 변화 과정을 묘사하고 싶어 한다. 그러면 좀 지루해지기 마련인데 그 중간 과정을 확 없애버리니 임팩트가 있다.

미카엘 두독 드 비트 감독 <레드 터틀>.

=연상호 감독님의 그림은 풀숏일 때 특징이 더 잘 살아나는 것 같다. <마리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쉬운 예로 포스터 같은 것만 봐도 풀숏으로 잡혔을 때 감독님의 개성이 더 잘 드러난다. 이번에 스튜디오 지브리와 <레드 터틀>(2016)이란 작업을 함께한 미카엘 두독 드 비트 감독 작품의 경우도 풀숏으로 봤을 때 특징이 더 잘 드러난다. 그런 유의 그림들엔 장단이 있다. 타이트로 잡았을 때의 제한된 감정표현이 단점이다. 반면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이라고 해서 감정 중심으로 가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내 작품이 그런 스타일이다. 감독님의 작품은 반대로 풀애니메이션 개념으로 공간을 훑을 때 힘을 발휘하는 애니메이션 같다.

=이성강 일종의 취향이다. <카이>를 구상할 때도 지평선이 보이는 들판에서 소년이 말을 타고 달리다가 서 있는 모습, 평평하고 하얀 너른 벌판에 서 있는 소녀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이미지들을 잡아갔다. 캐릭터를 그릴 때는 디자인 작업을 같이 하는 애니메이터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나는 대체로 동글동글한 걸 좋아한다. 어릴 때 <우주소년 아톰>의 그 아톰 다리에 한눈에 매료됐다. 똥똥한 다리에 핫도그처럼 생긴 발바닥이 걸어갈 때 정말 사랑스럽다.

-<카이>의 경우엔 두분이 말한 지점들이 섞인 느낌을 받았다.

=연상호 그럴 수도 있다. 왜냐하면 제작자로서 내가 <카이>에게 바랐던 건 스토리를 강하고 선명하게 전달하는 방식이었고 감독님이 그 지점을 충분히 수용해줬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의 고민이기도 하다. 이성강 감독의 다음 작품을 준비해야 하는 입장에서 어떤 형태의 영화를 만들 것인가 하는 고민 말이다.

미셸 오슬로 감독 <아주르와 아스마르>.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의 차이는

-두분 모두 계속 2D애니메이션 작업을 해왔는데 3D에는 관심 없나.

=이성강 관심은 있지만 3D 테크닉이 좀더 좋아져 2D의 질감을 충분히 재현할 수 있게 되면 시도해볼 수 있겠다 하는 정도다.

=연상호 3D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있냐는 질문은 ‘3D’라는 표현기법에 관심이 있냐는 질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은 픽사나 드림웍스식의 스튜디오영화에 관심이 있냐는 질문처럼 들린다. <프린스 앤 프린세스>(1999)를 연출한 미셸 오슬로의 경우 그림자애니메이션 <프린스 앤 프린세스>를 만들고, 차기작 <키리쿠, 키리쿠>(2005)는 2D애니메이션, <아주르와 아스마르>(2006)는 3D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다. 2D냐 3D냐에 관계없이 이 세편의 아트워크가 일관성이 있다. 미셸 오슬로의 3D인 거다. 그런 측면이라고 하면 당연히 관심이 있다. 만약 북미 스튜디오식의 작업방식에 관심이 있냐는 질문이라면 나는 관심이 없다. 한국 자본으로 그걸 구현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 차원에서 얘기하면 국내 극장판 창작애니메이션의 힘이라는 게 전무한 상황 아닌가.

=연상호 한편으론 맞고 한편으론 틀리다. 어쨌든 애니 업계에 있는 사람들이 해나가는 과정이다. 한없이 제로에 가까운 상황이다 보니까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어떤 사람이 뭔가를 하면 하는 만큼 쌓여가는 상황이다. 이건 각국의 산업적인 특성과도 관련이 있는데, 일본의 경우 <도라에몽>을 3D화해도 단발성 이벤트에 가깝지 않나. 일본은 워낙 만화가 바탕이 되는 산업이니 그 만화를 움직이는 걸로 보고 싶은 거고 3D로 보고 싶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한다. 나도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 같은 경우는 굳이 3D로 보고 싶지 않다. 심지어 실사로도 보고 싶지 않다. 내가 아는 닥터 덴마의 얼굴이 있는데 어떤 배우가 “내가 닥터 덴마요” 하고 나오면 싫을 것 같다. 이건 기술의 유행이라기보다 산업이 가진 고유한 정체성, 혹은 취향의 문제 같다. 그런 면에서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에서의 3D란 기술은 아직 물음표라고 생각한다.

-두분 다 실사영화 연출도 했는데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 작업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나.

=이성강 실사 연출을 해본 <살결>(2007)은 1억원 정도 들인 저예산영화다. 실사영화는 속도감이 있는 것 같다. 짧은 기간에 작업을 마치다 보니 열정이 드러난다. 스탭들끼리 기운을 주고받는 것도 흥미로웠고. 그래도 실사영화보다는 애니메이션이 흥미롭다. 사진이 갖는 회색빛의 톤을 좋아하지 않는다. 파랑, 빨강처럼 컬러로 드러나는 게 좋다. 그림으로 영상을 만들어내는 작업에 더 성취감을 느낀다. 영화들이 잘 표현할 수 없는 애니메이션의 연기, 액션 같은 게 있다. 가령 <가구야 공주 이야기>(2013)에서 꼬마 가구야가 엉금엉금 기어가다가 비틀비틀 걸어가다가 뒤뚱뒤뚱거리다가 금방 10대 소녀로 크지 않나. 그런 액션을 보는 걸 좋아한다. 그러려면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단지 특정 그림을 좋아해서 그런 게 아니다. 그림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그림과 액션이 결합됐을 때 나오는 뉘앙스가 있다. <가구야 공주 이야기>에서 공주의 발걸음의 무게중심이 이쪽저쪽 왔다갔다 할 때의 사랑스러움은 그 액션과 그림이 결합되어서 나오는 고유한 순간이라 생각한다.

=연상호 피부로 느낀 건 영화산업의 전문화된 부분들이다. 각 스탭들의 전문성이 정말 높다. 반면 애니메이션은 아직 그런 전문성이나 분업화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여전히 주먹구구식인데, 산업의 크기에서 오는 차이라고 생각한다. 본질적인 차이라면 애니메이션은 결국 작화가 중요하다. 만화와 비슷하다. 마쓰모토 다이요의 <핑퐁>이나 후루야 미노루의 <두더지>를 떠올려보라. 작화가 곧 작품이다. 사람을 흉내내서 그린 게 아니라 그 그림체가 이미 별개의 스토리텔링인 셈이다. 이런 선명한 차이에 대해 사람들이 왜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까에 대한 궁금증이 있다. 실사영화의 작은 차이에 대해선 미학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분들이 그림이라는 다른 차원의 영상 스토리텔링 방식에 대해선 뭉뚱그려서 “실사 같은데?”라고 받아들이는 이유가 의아하다.

이성강 감독 <저수지의 괴물>.

애니메이션 비평에 대한 아쉬움

-그건 앞서 언급한 비평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말하는 사람도 받아들이는 사람도 아직은 애니메이션을 설명하는 언어가 부족한 것 같다.

=연상호 예를 들어 우라사와 나오키의 그림체와 후루야 미노루의 그림체는 다르지 않나. 언어 자체가 다르다. 그 차이를 대부분 구분해낼 수 있을 테지만 구분해서 말하진 않는다. 일반 사람도 구분할 수 있는데 평단이나 저널에서 그걸 하나로 퉁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게 놀랍다. 사실 그런 이슈들이 옛날부터 꽤 있었다.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다. 디즈니 애니메이션만 해도 어느 시점 이후부터는 기존의 디즈니 그림체를 버리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반응이 안 좋았다. 존 래시터가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하면서 원래 디즈니의 그림체를 회복했다. <공주와 개구리>(2009), <라푼젤>(2010)처럼 완전히 디즈니 스타일인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한 거다. 작화의 변화에 따른 흥망성쇠가 있는데 하나로 퉁쳐 ‘디즈니 스타일’로 정의해버리니까 그런 무심함에 대한 서운함이 있다. 실사영화에서는 숨소리와 떨림만으로도 평가받는 가치들이 애니메이션에 부재하는 건 미학적인 측면뿐 아니라 산업적으로도 비극이다.

-<가구야 공주 이야기>의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이 그림체를 표현하고 싶어서 여태까지 애니메이션을 해온 것 같 다 ”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애니메이터로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나.

=연상호 애니메이션을 볼 때 충격적인 몇번의 순간이 있었다. <아키라>(1988)와 <인랑>(1999),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의 그 생경한 경험들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업계에 발을 들이고 어느 시점부턴가 영화를 분석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엄청 좋아하지만 최근작이 너무 재미없었다. 그럼에도 갑자기 은퇴를 한다고 하니까 싫었다. 작품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이 사람의 작품을 못 본다는 게 슬프다. 마찬가지로 후루야 미노루의 작품들을 좋아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실망감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루야 미노루의 신작 소식에 가슴이 설렌다. 후진 작품을 계속 내놓는다고 해도 그 사람의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 좋은 거다. 그림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기분. 바람이 있다면 나의 차기작이 누군가에게 그런 기대, 혹은 생경한 순간들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성강 연상호 감독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장점에 영향을 많이 받았던 반면, 내가 처음 애니메이션을 하려고 했을 때 양분이 되었던 건 유럽의 작가주의 애니메이션이다. 장편 상업애니메이션에서 하긴 쉽지 않지만 항상 아트애니메이션이 갖는 독특한 표현, 판타지를 영화 속에 어떻게 들여올 수 있나 하는 고민들이 있다. 가령 프레데릭 백의 작품들은 지금은 흔해졌지만 처음 봤을 때 굉장히 놀라웠다. 꽃이 피어나고 계절이 바뀌는 걸 컷하지 않고 하나의 움직임 안에서 표현하는 방식이라니. 그건 일종의 기법이기도 하고 정신일 수도 있다. 그런 아트애니메이션에서 받았던 감명들을 치열하게 시도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연상호 그런 의미에서 이성강 감독님의 <악심> 같은 단편을 장편화하고 싶다. 나는 가능하다고 본다. 이미 그런 시도들을 몇개 더 하고 있다. 예를 들면 홍덕표 감독의 <발광하는 현대사>란 작품도 도전이었고 지금은 <졸업반>이란 작품의 후반작업 중이다. 당장은 낯설지라도 그런 체험들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자면 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 <우루츠키 동자> 같은 건 엄청 특이한데 우리도 얼마든지 그런 시장을 만들 수 있다. 극장용 시장, TV 유아용 시장만 있는 게 아니라 중간 시장도 얼마든 가능할 수 있는 거다. 그 모든 접근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애니메이션 콘텐츠로서의 IPTV 시장, 모바일애니메이션 시장이 만들어지면 이성강의 <악심> 같은 영화도 장편화할 수 있는 시장이 생긴다. <카이>를 통해 증명하고 싶은 것도 비슷하다. 픽사 같은 영화를 한편 만들어서 천만을 가는 것보다 그런 다양한 시장들을 만들어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성강 <악심>은 안 된다니까. (웃음) 감독 연상호도 놀랍지만 제작자로서의 마인드가 탁월하다. 가끔 너무 도전적이라 놀랄 때도 있지만. (웃음) 한편으론 지금 장편애니메이션이 살아남으려면 작품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 외에도 이런 거시적인 시선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연상호 독립애니메이션을 오래 하다보면 큰돈을 원하는 것도 아닌데 그 돈을 받기 위해 머리를 엄청 굴려야 한다. 그게 인이 박인 것 같다. 어찌 됐건 그런 차원에서 <서울역>과 <카이>의 스코어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어떤 방향이건 또 하나의 데이터를 쌓고 다음 스텝을 밟아나갈 수 있을 거다. 물론 둘 다 잘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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