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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서울아트시네마 고바야시 마사키 탄생 100주년 특별전
김보연 2016-09-07

특별전 포스터.

2016년은 고바야시 마사키 감독(1916~96)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이자 사망한 지 20년이 되는 해이다. 주로 사무라이 시대극과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현실을 집요하게 묘사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그의 영화 세계를 돌아보기 위한 ‘고바야시 마사키 탄생 100주년 특별전’이 서울아트시네마(공동주최 일본국제교류기금)에서 열린다. 상영시간 9시간30분의 대작 <인간의 조건>을 포함해 전부 9편의 영화를 9월1일부터 11일까지 상영하며, 특별히 고바야시 마사키의 페르소나였던 나카다이 다쓰야가 내한해 관객과 대화의 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1950~70년대 일본에서 활동했던 감독들의 일화 중에는 언뜻 쉽게 믿기 힘든, 지독하다 싶은 이야기들이 많다. 주로 감독들이 배우를 어떻게 다양한 방법으로 괴롭혔는지에 대한 고생담인데 고바야시 마사키 감독도 그 주인공 중 한명이었던 것 같다. 이번 특별전을 맞아 83살의 나카다이 다쓰야가 고바야시 마사키를 떠올리며 쓴 짧은 편지 중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 뭐니뭐니해도 (감독에게) 감사했던 것은 작품 만들기의 엄격함을 철저하게 주입받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조건>에서는 움직이고 있는 전차 밑에 뛰어들어야 해서 촬영 전 일주일 정도는 밥이 목구멍을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 긴장했다. 또한 라스트신의 촬영은 동사 직전의 의식이 몽롱한 상태로까지 되었지만 감독으로부터 따뜻한 말 한마디 없었다. 일이니까 그게 당연하다는 식의 취급이었다. 신인 시절에 그렇게 일의 엄격함이 철저하게 몸에 배었기 때문에 이럭저럭 이렇게 60여년의 배우 인생을 걸어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든다.”

간단한 내용이지만 같이 일하기 편한 감독은 절대 아니었을 거라는 느낌이 잘 전해진다. 나카다이 다쓰야의 기억이 사실이라면 고바야시 마사키와 함께 일했던 배우들은 문자 그대로 ‘죽을 고생’을 겪었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조건>을 보고 나면 저 말이 사실이란 걸 쉽게 알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나카다이 다쓰야를 포함한 배우들은 그야말로 전력으로 질주하며, 아슬아슬하게 폭탄을 피하고, 거적때기 같은 옷만 걸친 채 추위를 견딘다. 다시 말해 <인간의 조건>을 포함한 고바야시 마사키 감독의 영화에는 다큐멘터리적인 사실감이 녹아 있다. 배우가 아닌 관객의 입장에서 편하게 말하자면, 이처럼 감독의 집요함으로 만들어진 장면들이 선사하는 사실감과 에너지는 절로 감탄을 뱉게 만든다.

<인간의 조건> ⓒ1959-1961 Shochiku Co., Ltd.

그런데 고바야시 마사키 감독의 이런 집착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짚어보고 싶다. 단지 그가 남을 괴롭히기 좋아하는 사디스트였다면 애초에 이런 글을 쓸 일도 없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바야시 마사키는 자신의 영화를 통해 현실의 어두움을 가차 없이 드러내려 했다. <인간의 조건> 속 등장인물들은 온몸으로 전장의 가혹한 현실을 고발한다. 여기에서는 전쟁을 소재로 한 활극의 장르적 즐거움을 추구하려는 태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전쟁터라는 유사 지옥적인 상황과 그 안에서 인간이 겪어야 했던 각종 추함을 증언하려 한다(고바야시 마사키 감독은 2차대전 당시 징집당해 만주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다).

또한 감독의 이런 태도가 단지 ‘전쟁은 나쁜 것’이라고 외치기만 하는 관념적인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감독의 초기작인 <두꺼운 벽의 방>을 보자. B, C급 전범을 수감한 감옥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일본군과 미군의 잘못을 모두 따져 묻고, 전쟁 당시의 문제와 전쟁이 끝난 이후의 문제를 함께 다룬다. 영화가 1953년에 만들어졌지만 3년 뒤에야 개봉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감독은 이 영화에서 전쟁이 끔찍한 이유들을 하나씩 따지며 보는 이들을 불편하게 한다. 일본군은 자신들이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전범이며, 재판을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결국 방관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불편해했을 것이다. 미군은 일본군을 고문하는 불한당으로 그려졌고, A급 전범, 즉 정치인들은 영화에서 노골적인 조롱을 받았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영화는 언뜻 전쟁과 관련 없어 보이는 평범한 이웃들도 거짓말을 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비겁한 자들로 그렸다. 이처럼 고바야시 마사키는 봉합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상처를 다시 헤집어 그 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이런 시도는 전후 가난한 마을을 무대로 한 <검은 강>(1957), 중년이 되어서도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일본의 청춘>(1968)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할복>(1962) 이나 <사무라이 반란>(1967) 같은 사무라이 시대극에서도 고바야시 마사키는 나쁜 권력과 인간의 욕심이 세상을 어떻게 끔찍한 곳으로 만드는지 꼼꼼하게 그린다. 그는 세상의 추한 모습까지 영화 속에 있는 그대로 담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의 그림자에만 집중했을 경우 이야기의 결말이 자칫 우울과 절망으로 빠지고 마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문제는 <검은 강>의 비극적 결말이나 <인간의 조건> 속 몇몇 장면에서 희미하게 감지할 수 있다. 등장인물들의 현실이 회복 불가능 할 정도로 망가졌을 때 여기에서 벗어나는 게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소위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들이 종종 마주치는 문제이기도 하다.

<할복> ⓒ1962 Shochiku Co., Ltd.

이때 고바야시 마사키는 인간의 꺾이지 않는 의지에 방점을 찍음으로써 이 문제와 맞선다. 즉 현실에서 도망가지 않고 계속해서 저항하는 굳센 마음가짐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바야시 마사키의 주인공들은 승패에 상관없이 세상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쪽을 택한다. 이를테면 <일본의 청춘>의 주인공은 명령 불복종으로 상관에게 구타당해 청력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고 한다. 심지어 20년이 지난 후에도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가해자 앞에서 다시 힘주어 이야기한다. 그런가 하면 <두꺼운 벽의 방>의 주인공은 앞으로도 감옥에서 비참하게 살아가야 할 처지이지만 삶이 더 나빠질 수도 있는 선택 앞에서는 단호하게 돌아선다. 그는 절대 같은 잘못을 반복할 생각이 없다. 또한 <할복>의 주인공은 죽음이 예정된 상황에서도 뒤로 물러서지 않으며, <인간의 조건>의 주인공은 그 모든 극단적인 환경에서도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 인물들의 행동에서는 때로 낭만적인 나르시시즘의 기운이 느껴지기도 하고, 앞일을 생각하지 않는 무모함이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들이 불의한 현실과 타협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바야시 마사키 감독의 작품을 떠올리면 거친 세상 앞에 당당히, 혹은 간신히 버티고 선 인물의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는 눈앞의 승패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은 채 일단 지금 세상과 제대로 한번 싸워볼 생각이다. 이 태도가 지금의 나에게도 작은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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