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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타] 디테일의 왕 – 곽도원
정지혜 사진 백종헌 2016-09-20

검사, 경찰, 정부쪽 조사관. 한국영화에서 이 직업인은 정의의 편이기보다는 권력의 단맛에 길들여진 비열한인 경우가 많다. 곽도원은 유독 그런 무람없는 전문인을 척척 소화해왔다. 조직 폭력배와 비리 공무원을 소탕하는 검사인데 왠지 더 나쁜 놈처럼 보이던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감독 윤종빈, 2011)의 조범석 검사, 뒤틀린 애국 신념으로 무장한 <변호인>(감독 양우석, 2013)의 고문 경찰 차동영, 용의자를 잡기 위해 그 애인을 불러와 돼지 발정제를 발라서라도 제가 알고 싶은 걸 취하겠다고 달려드는 <무뢰한>(감독 오승욱, 2014)의 형사 문기범. 이 나쁜놈들에 이어 <아수라>의 검사 김차인의 이름도 새겨넣어야겠다.

“아, 또 검사란 말인가.” 곽도원도 이 걱정부터 들었던 게 사실이다. “배우가 비슷한 역할로 계속 나오면 관객은 피로해진다.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때 곽도원은 “꼭 함께하자!”며 김성수 감독이 보내온 시나리오를 꼼꼼히 다시 읽으며 확신을 갖게 된 것 같다. 김차인은 형사 도경(정우성)의 약점을 이용해 비리 시장 박성배(황정민)의 뒤를 캐려고 판을 짜는 인물이다. “권력을 등에 업고 행동하던 김차인이 그 권력이 사라졌을 때 어떤 모습을 보일까. 어째서 김차인은 악해져야만 했을까. 그 과정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검사’ 김차인이 아니라 검사 ‘김차인’에 방점을 찍으면 배우로서 해볼 게 많아질 거라 생각한 것이다.

곽도원 연기의 진가는 디테일에서 오는 것 같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조범석은 상대방을 흠씬 팬 뒤 흐트러진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슥 한번 넘긴다. 그 순간, 조범석의 야비함이 엿보인다. “디테일을 얘기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 일부러 조범석의 그 행동을 똑같이 김차인에게도 적용해봤다. 김차인은 남들 앞에서는 폭력을 절대 쓰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정 때려야 한다면 주먹이 아니라 얍삽하게 종이로 상대 얼굴을 틱틱 치는 거다. 슬슬 성질을 건드리는 거지.” 제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알면서도 모르는 척 상대를 보내버리는 것이야말로 나쁜 것 중에서도 더 나쁘다. 곽도원표 악랄함은 그가 구사하는 말의 맛에서도 온다.

“내가 말끝을 흘리더라. 어순도 살짝 바꾸고 존대와 반말을 섞어 쓰고. 대체로 그러지 않나. 편안한 말투로 다가와 제대로 뒤통수 쳐버리는 거지.”

그의 연기의 세밀함은 “직업병에 가까운 사람 관찰”과 김성수 감독의 말대로 “지독한 연습 벌레”의 미덕이 빚은 결과일 것이다. “내 영화의 관객에게만큼은 욕먹기 싫다. 또 오늘 이 신을 제대로 찍지 않으면 내일은 찍고 싶어도 찍을 수 없다는 현실이 공포스럽다. 그러니 될 때까지 해야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대사가 외워질 때까지 연습해야 한다.” 최근 곽도원을 더욱 단련케 한 현장은 나홍진 감독의 <곡성>(2016)이다. “150회차 중 130회차를 촬영했다. 나를 초인으로 거듭나게 정신과 육체를 탄탄하게 만들어준 영화다. 이젠 웬만한 현장이 힘들지 않다. (웃음)” 고됐으나 더없이 달콤했다. “정말 원 없이 연기했다. 카메라 앞에서 하고 싶은걸 다 해볼 수 있었고 힘을 빼고 연기한다는 게 뭔지 알게 됐다. 그 덕에 <아수라> 촬영 때 상대의 리액션을 좀더 여유 있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연극 무대부터 시작해 연기를 24년 정도 했는데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문득, 치열하게 달리고 있는 곽도원은 어떤 과제들을 들고 궁리 중일까 궁금해졌다. “악랄한 마음을 먹은 인물은 연기 후에 그로부터 빠져나오는 게 참 어렵더라. 내가 이토록 세상에 불평불만이 많았나 싶어 깜짝 놀란다. 스스로가 깨우치고 나와야 하는데 그게 힘들고 어렵고 그렇다. 나빠지는 건 얼마나 쉬운가.” 좋음을 탐하려고 의식적으로 자각하고 각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로 들렸다. “한명이라도 더 내가 준비한 얘기에 끌어들이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러려면 비주얼도 중요하겠더라. (웃음) 다부지게 한번 체형 변화도 시도해봐야 하는데. 술을 끊어야 한다. 아, 근데 오늘도 술 약속이 있어서 이거 참. 모르겠다. 하하하.”

정우성이 곽도원에게

“도원이는 얼굴 표정이 딱 하면 척 바뀌는 게 아니라 흘러가듯 유연하게 바뀐다. 그런 표정 연기를 보고 있으니 도경으로서 김차인 검사를 대할 때에도 자연스럽게 능글맞은 리액션이 나오게 되더라. 능글맞게 아닌 척하는 연기 말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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