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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덕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객석과의 밀당
노덕(영화감독) 일러스트레이션 마이자 2016-09-28

연극을 처음 하는 거라고, 영화를 하던 사람이라고 하니 건네는 말들이 있었다. “쉽지 않을 겁니다.”

영화연출 경험이 무대연출에 도움이 되리란 보장이 없기에, 나도 걱정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럼에도 겁 없이 용기냈던 이유가 있었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연극 또한 관객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 영화를 보는 관객과 연극을 보는 관객이 다른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내가 그들을 상상하며 영화를 만들었던 것처럼 연극을 대하지 못할 이유가 뭔가. 그런 믿음이 연극연출에 대한 도전을 부추겼다.

주변인들의 예언은 적중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연극이라서가 아니라, 영화계에서도 심심찮게 일어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점과 시야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들이었다. 그런 일들은 늘 있기에 이 지면에서 사사로운 언급은 피하겠다. 어쨌든 생각보다 우여곡절 끝에 얼마 전 첫 공연을 올렸다.

재밌는 건 그때부터였다. 배우들과 관객이 한 공간에 있기 시작하면서 그제야 작품이 만들어지는구나, 하는 기분을 느꼈던 것이다. 내 모든 것을 쏟아붓고 관객이 어떻게 평가해줄까에 온 신경을 집중했던 영화 개봉과는 확실히 다른 공기였다. 배우들이 관객 반응을 피부로 느끼며 호흡을 주물러대자 극도 꿈틀댔다. 내가 배우들과 함께 보낸 시간은 공연을 올리고 그때부터 완성될 작품의 준비기간일 뿐이었구나 하는 기분 좋은 낭패감이 드는 동시에 얼마 전 한 베테랑 배우에게서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연극무대에서 내공을 쌓은 그 배우는 같은 작품을 수없이 올릴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보는 사람이 달라서’라고 대답했다. 보는 사람이 달라도 같은 반응을 보일 수 있고, 또 같은 사람이 다시 봐도 다른 반응을 보이면 얼마든지 배우의 같은 연기도 달라질 수 있는 거라고. 다르기에 재밌고 재미가 있어서 같은 연기도 반복할 수 있는 거라고 했다. 연극의 3대 요소 중 하나가 관객이라더니. 그 이유가 여기 있었구나 하는 단순한 깨달음이었다. 무대 위의 배우는 관객과 같이 호흡한다는 전형적인 문구가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리고 동시에 든 의문은 과연 관객은 그들이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인식할까, 에 대한 물음이었다. 그들 스스로 배우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작품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마치 퍼즐의 마지막 조각처럼 그들이 작품을 완성시키고 있다는 의식. 관객 중 한명으로서 그 대답을 내가 한다면, 난 아니었다. 난 그저 배우를 동경했고 수동적으로 이야기에 딸려갔다. 그리고 그것이 관객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자세였다. 결국 그런 관계인 것이다. 마음을 사려고 끊임없이 갈구하지만 구애의 형식으로 가면 갈수록 멀어지는 존재. 이 거대한 밀당은 연극의 관객에게만 국한되는 얘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밀당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분명 공연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무대는 올라갔고 연출의 역할은 끝이 났다. 주변에선 ‘이제 시작이다’라고 말한다. 과연 무엇을 시작한 건지. 순수한 관객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그들을 냉정하게 그리고 너그럽게 지켜보며 걸어오는 밀당을 충분히 즐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