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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장기전을 요하는 학습서 - <영화작품 분석>
김형석(영화평론가) 사진 백종헌 2016-10-10

<영화작품 분석> 자크 오몽, 미셸 마리 지음 / 이윤영 옮김 / 아카넷 펴냄

자크 오몽은 아마도 프랑스의 영화학자들 중 한국 관객과 가장 친숙한 인물일 것이다. 아마도 <영화 속의 얼굴>(2006. 마음산책 펴냄)을 많이 읽었겠지만, 그의 대표 저서 중 하나인 <영화미학>(2003, 동문선 펴냄)을 비롯해 <이마주>(2006, 동문선 펴냄), <영화와 모더니티>(2010, 열화당 펴냄), <영화감독들의 영화이론>(2005, 동문선 펴냄) 등 적잖은 책들이 번역되었다. 그중 가장 처음 선보인 저작은 <영화 분석의 패러다임>(1999. 현대미학사 펴냄)이었고, 17년 만에 <영화작품 분석>(2016. 아카넷 펴냄)이라는 제목으로 새 번역과 함께 재출간되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영화 분석의 방법론과 1934~88년 서구 학계에서 이뤄졌던 분석의 흐름을 살핀다. 혹시 자크 오몽이라는 대가의 이름과 책 제목에 현혹되어, “이 책 한권만 제대로 읽으면 영화 분석의 마스터가 될 수 있다”라는 식의 헛된 기대감이 있다면 버리시길. 오몽은 아예 서문에 “누구나 어떤 영화라도 기적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은 이 책에 없다” 라고 밝히며, “대신 영화에 들어 있는 일반적인 성찰의 요소를 제시한다”고 소박하게 시작한다.

그 시작은 소박할지언정 내용은 진정 만만치 않다. 다행인 건 만만찮은 내용에 담긴 충실함이다. 오몽의 <영화작품 분석>은 일종의 ‘이론사’인데, 그 토대는 철저히 실제적 분석의 사례다. 그래서 이 책은 책 자체로 끝내선 안 된다. 앙드레 바쟁이 사용했던 ‘영화 기록 카드’라는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그가 텍스트로 삼았던 마르셀 카르네의 <여명>(1939)을 봐야 한다. 영화 분석의 고전적 방법론인 ‘데쿠파주’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려 알랭 레네의 <뮤리엘>(1963)이나 에릭 로메르의 <내 여자친구의 남자친구>(1987) 같은 영화를 접해야 한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10월>(1927), 장 뤽 고다르의 <중국 여인>(1967), 장 르누아르의 <게임의 법칙>(1939) 등을 비롯해 자크 오몽이 독자들에게 다시 한번 체크하길 권하는 영화 목록은 1장부터 8장까지 계속 이어지는데, 오몽의 주문을 받아들이겠다는 다짐이 없다면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아마도 이 부분이 <영화작품 분석>의 가장 큰 난점이면서 동시에 미덕일 것이다. 오몽은 작가주의부터 구조주의와 기호학과 정신분석학에 이르는 ‘분석의 역사’ 속에서, 명민한 분석가들이 실제로 어떤 작업을 했는지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여긴다. 물론 롤랑 바르트나 제라르 주네트 같은 기호학자들에게 할애한 챕터처럼 이론적 성격이 강한 대목은 버거울 수 있다. 예로 드는 영화들이 대부분 1960년대 이전에 나온 유럽의 고전들이라는 점이 가독성을 떨어트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영화작품 분석>은, 현재 한국에 나온 영화 서적들 중에서 ‘작품 분석’이라는 테마를 가장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는 책이다. 이것은 저자에게 “분석은 끝낼 수 없”으며, “분석은 결코 자기 대상을 소진시키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작업이기도 하다. <영화작품 분석>은 장기전을 요하는 학습서다. 다행히 이윤영의 새 번역이 꼼꼼하고 성실하기에 예전보다 다가가기엔 좀더 쉬워졌지만, 다루고 있는 내용의 깊이와 범위는 ‘도전’의 대상이다. 게다가 도입부 격인 첫 번째 챕터, ‘영화작품 분석의 정의를 위하여’를 보면 영화를 분석하려는 ‘시네필’에게 자크 오몽이 전하는 메시지는 엄격하기까지 하다. 그는 훈련을 통해 “비평적 예리함이 탁월하게 완성될 수 있고 눈과 귀가 훈련될 수 있으며 또 정교해질 수 있다”라며, “영화 작품을 적어도 세번 이상 보지 않고 이루어지는 분석 작업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너무 겁먹진 마시길. <영화작품 분석>의 대전제는 “영화 작품을 분석하는 보편적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선현들의 ‘위대한 분석의 역사’를 소개한 목적이 결코 “이 정도는 되어야 분석이라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독자를 주눅들게 만들기 위한 건 아니다. 오몽은 분석의 다양한 방법과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독자가 창조적인 분석가가 되길 바란다. 비록 과잉 해석이 되더라도 그것이 “창조적이고 상상력이 넘치는 분석의 동력일 수 있”으며, 영화 분석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시작은 거창하지 않다. “어떤 순간, 어떤 영상, 어떤 영상의 일부, 어떤 상황 등에 보다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 , 즉 자신만의 직관과 느낌에서 분석은 시작된다. 여기서 시작한 상상력이 “가능한 한 엄밀하게, 검증할 수 있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나름의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즉 영화 분석에 “일반적 방법”은 존재하지 않으며, 유연한 사고를 통해 “보편적 분석”을 버리자는 것이 오몽의 속 마음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별 생각 없는 ‘악플’부터 꽤 꼼꼼한 리뷰까지 글을 쓴다. 하지만 오몽이 말하는 ‘영화작품 분석’은 극장가의 개봉 스케줄과는 무관한, 자신이 사랑하는 ‘영화-텍스트’에 순수한 애정을 바치는 작업이고, 좋은 분석가는 “분별력이 있으며 종합적인 안목 덕분에 후손이 간직해야 할 작품을 평가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꿈이 있다면, 그들에게 <영화작품 분석>을 권한다. 비록 읽는 과정이 꽤 험난하겠지만, 한번 읽고서 완벽하게 이해되진 않겠지만, 성실한 독서를 마친 후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엔 성서를 통독한 듯한 만족감이 밀려올 것이다.

<네 멋대로 해라>. 진정성과 참조 사이에서 고다르가 선택한 길. 상호 텍스트성과 분석의 검증.

이상하게 다가온 것

<필사의 탐독> 정성일 지음 / 바다출판사 펴냄

비평과 분석의 차이는, 어쩌면 그 분량일 것이다. 원고지 10매 안팎의 짧은 글이 영화의 인상과 가치를 평가한다면, ‘분석’의 단계에선 좀더 두툼한 볼륨을 필요로 한다. 그런 점에서 정성일의 <필사의 탐독>은 자크 오몽의 <영화작품 분석>에 대한 한 영화평론가의 실천적 사례다. 이 책은 오몽이 말한 분석의 시작, 즉 “어떤 순간, 어떤 영상, 어떤 영상의 일부, 어떤 상황 등에 보다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서 정확히 시작한다. 그는 자신에게 ‘이상하게 다가온 것’에서 시작해 한편의 영화를 복기하고, 러닝타임을 재가면서 내러티브를 재구성하고, 그 구조에서 빈틈을 발견하고, 질문을 던진다. 그의 궁금증은 언제나 사소한 것 혹은 당연한 것에서 시작하며,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가끔은 무협지를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특히 영화 분석의 가장 기본적인 방법론인 ‘데쿠파주’를, 한국영화를 텍스트로 접하고 싶다면 이 책은 정말 ‘필사의 탐독’을 해야 한다. 그의 해석에 동의하든 반대하든, <필사의 탐독>은 한편의 영화를 분석하기 위해선 ‘필사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걸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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