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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작은형> 심광진 감독
김수빈 사진 오계옥 2016-12-08

심광진 감독은 2000년, 한 충무로 젊은 감독의 꿈과 사랑을 소박하게 그려낸 <불후의 명작>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7년 뒤, 외롭게 나이 든 가장과 그의 가족사를 입체적으로 묘사한 <이대근, 이댁은>(2007)을 내놓았다. 그리고 또다시 7년이 걸려 직접 각색하고 연출한 세 번째 작품 <작은형>을 완성했다. <작은형>은 사기꾼 동생이 지적장애를 가진 형과 형의 동거인들의 돈을 노리며 벌어지는 소동을 그렸다. 바깥에서 바라본 영화의 컨셉은 새롭지 않지만 현실감 있는 대사, 전형성을 탈피한 캐릭터, 촘촘한 갈등 구조 등 매력적인 요소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그중에서도 사연 많은 인물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착한 시선이 특히나 반갑다. 작품과 작품 사이 짧지 않은 세월이 지났지만 결국 연출로 돌아온 감독은 앞으로 “더 자주, 많이, 애를 써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대근, 이댁은> 이후 7년 만에 연출한 영화다.

=하고 싶은 영화가 있었는데 잘 안 돼서 시간을 잡아먹었다. 먹고살려고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아이가 있는데, 아빠가 그냥 대학 강사인 줄 알더라. 본인이 아는 영화가 없으니 감독인 줄 모른다. (웃음) 아이에게 아빠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뭘 하고 있는지 알려주고 싶더라. 더 늦기 전에 작품을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작에 이어서 평탄치 않은 사연을 가진 가족의 이야기다.

=내 가족 자체가 굴곡이 심해서 평소에도 가족에 대한 고민이 크다. 가족은 행복의 근원이라기보다 갈등의 진원지라고 생각한다. 죽기 전까진 끊임없이 긴장하고 갈등할 거다. 그런 걸 잠깐이라도 이완시키는 영화가 되길 바랐다. 나도 이 영화를 통해 잠깐의 위로나 도피를 하고 싶었다.

-동근(진용욱)과 그의 동거인들은 비장애인인 동현(전석호)보다 더 능동적으로 삶을 꾸려간다. 한명 한명 개성도 살아 있다. 귀공자 태가 묻어나는 선우, 사춘기 남자애 같은 재진, 가장 노릇을 해내는 동근. 그룹홈(장애인들이 공동으로 생활하는 가정)에 모여 사는 세 캐릭터는 어떻게 구축했나.

=청파동에 가면 장애인들이 모여 사는 서울시 그룹홈이 있다. 40대 한분과 30대 두분이 모여 사는 가정을 취재했다. 각자의 욕망과 삶이 따로 있고 그 안에 나름의 규율이 있더라. 서로 그리 친하진 않지만 형제나 가족 같은 면이 있다. 그 생활을 관찰하면서 캐릭터를 만들었다. 시각장애인인 선우의 경우 이 역할을 연기한 배우 개인의 과거사를 많이 대입했다. 실제로 어린 시절 무척 부유했고, 바이올린 연주 실력도 뛰어나다. 재진 캐릭터의 경우는 취재의 영향이 컸다. 우리나라에선 선천적인 장애아가 있는 집안은 가난하게 사는 경우가 많더라. 재진에게 더 처연한 느낌이 들도록 어릴 때 부모에게 버려졌다는 설정을 하게 됐다. 그래서 그가 삶에 대한 의지가 더 강하고 모성에 대한 갈망이 크다. 동근은 성은 다르지만 지적장애가 있는 내 사촌여동생에게서 모티브를 얻었다. 그 아이를 만날 때마다 내가 불편해하고 동정하는 것에 대해 반성이 들어서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됐다.

-재진 캐릭터를 통해 터부시되던 장애인의 성문제를 다룬다.

=원래 시나리오는 전체 관람가나 12세 관람가였다. 각색을 하면서 너무 만들어진 얘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룹홈에 사는 분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돈이 아니다. 사회복지사들의 얘길 들어보니 골치 아픈 게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성적인 문제였다. 거주하는 분들이 젊은 나이에다 한번도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 분들이다. 성욕을 해소할 길이 따로 없다. 어떤 분은 폰팅으로 70만원을 썼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아름다운 가족 얘기가 아니라 실제 이분들의 해결돼야 할 어려움을 얘기해야겠다 싶었다. 걱정이 된 건, 어느 수위까지 가야 하느냐는 거였다. 수위를 맞추려다 지금처럼 나왔다.

-박중훈, 이대근처럼 충무로에서 이름난 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전작과 달리 다섯명의 신예 배우가 극을 끌어나간다.

=유명한 배우가 나와서 그 힘에 빨려들어가는 것보다는 신선한 배우들의 힘을 동력 삼아 끌고 나가는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낯섦이 주는 장점이 있다고 봤다. 배우들 한명 한명과 얘기해보니 개방적이었고 영화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이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의지할 수 있겠다 싶었다. 디렉팅을 많이 하지 않았고 콘티 없이 촬영했다. 다큐멘터리를 찍듯이 기본적인 상황만 주고 핸드헬드로 배우들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배우들과 대화도 많이 했다. 이렇게 우연성에 기대는 건 독립영화라 가능했던 것 같다. 상업영화라면 이 생생함이 나오지 않았을 거다.

-장애인 복지에 대해 빈정대는 동현을 향해 “장애인을 하세요 그냥”이라는 선우의 촌철살인 대사나 동현이 해맑게 중얼거리는 혼잣말이 재밌다. 대사를 이용한 코미디에 능한 것 같다.

=학교에서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서브 텍스트를 강조한다. 하지만 중이 제 머리 깎지 못하듯 막상 작업을 시작하니 어렵더라. 장애인들과 어떤 일이 벌어질 거며, 사기꾼인 얘는 무슨 얘길 할 것인가. 결국 캐릭터에 천착하면서 대사가 완성된 것 같다. ‘내가 저 인간이라면 어떻게 반응할 건가’를 생각했다.

-동현의 대사가 무척 독하다. 은아라는 여성이나 그룹홈에서 지내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그대로 드러난다.

=보는 분들이 불편할 수도 있을 거다. 미장센이나 상황을 통해 이미지화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데 예산을 비롯해 그럴 여건이 안 돼서 대사로 소화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동현은 기본적으로 불친절하고 제멋대로 사는 사람이다. 관객이 이 사기꾼에게 결코 감정 이입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현의 대사는 비장애인들이 갖고 있는 편견들을 끄집어낸 거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페르소나를 보여주고 안의 그림자를 표현하지 않는데 그 그림자들을 끄집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동현은 어릴 때부터 형 노릇을 해왔고 돌봄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다. 그래서 동근에게 형 대우를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동현이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최대한 불친절하고 악한 같은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동현을 연기한 전석호 배우는 실제로 건강하고 에너지도 많고 착한 젊은이다. 그래서 동현이 오히려 계속 사람답게 보인다. (웃음) 이 배우가 아니었다면 훨씬 더 못된 인간으로 만들 수 있었을 거다. 더 무자비하고 소시오패스 같은 인간이길 바랐던 면이 있다.

-동근이 선우, 재진과 묘지에서 비장하게 춤추는 신은 영화의 흐름에서 튀는 장면이면서, 한편으로는 감독의 의도가 집약된 장면으로 느껴졌다.

=오버센스일 수도 있지만 그 장면 때문에 이 영화를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큰 세레머니가 없으면 아무 의미 없는 영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실제로 부모의 묘지에 가서 춤을 추진 않을 거다. 관습화된 인간들이 하지 않는 무언가를 했으면 좋겠는데 노래는 단순한 것 같았다. 더 의식과 같은 무언가를 했으면 좋겠다 싶었다. 개인적으로 씻김굿을 좋아하는데 굿을 할 순 없잖나. 결국 선우가 바이올린으로 동근의 어머니가 좋아했던, 어렸을 때 들려주던 노래를 연주하면 나머지는 거기에 맞춰서 춤을 추기로 했다. 어린 시절 재롱을 부릴 때 한명이 노래를 부르면 꼭 누군가는 춤추지 않나. 그 장면이 기억났다. 그렇게 춤을 추면 정서적으로 환기가 되고 시각적인 힘도 생길 것 같았다. 영화의 중간 지점인데 가장 애를 썼던 장면이다.

-차기작 계획은.

=한 인간의 선과 악에 대한 스릴러물이다. 악이 되어버린, 나이 든 인간이 과거엔 전혀 다른 인물이었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분열된 자아 양쪽에 대한 얘기를 하고 스러져가는 이야기다. 클리셰에 가까운 요소를 많이 집어넣으려는데 주변인들이 반신반의한다. 그래도 그런 얘길 내가 보고 싶었다. 참신함은 제쳐두고 보편성만 유지해도 대단한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부여잡고 거기서 약간의 변주를 해내고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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