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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쇼핑의 윤리학
한유주(소설가) 2017-01-05

작업실에서 나와 친구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일은, 물론 진짜 일을 하기도 하지만, 물건 사기다. 우리에게는 실로 많은 물건들이 필요하다. 공기청정기 필터(얼마 전 전면 케이스를 열어젖혔더니 필터에 먼지 더께가 융단처럼 덮여 있었다)나 프린터 토너, 재활용품 수거용 봉투처럼 공용 물품에서부터 적당히 필요한 물건, 그리고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사소하고 예쁜 물건들까지. 우리는 거의 날마다 결제 버튼을 누르면서 어째서 이토록 많은 물건들이 필요한지 궁금해한다. 우리의 주머니 사정은 편차는 있지만 대개 비슷하다. 늘 아등바등하며 돈이 부족한 것은 정부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난 몇달간, 우리는 뉴스를 통해 얼마간은 정말로 그들 탓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의 주머니를 채워주지 않으리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어쨌거나 없으면 없는 대로, 물건 사기는 계속되고 있다. 며칠 전 한 친구가 배낭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는 친구가 고른 배낭을 살펴보았다. 노트북이 들어가는 넉넉한 크기에 방수가 되는 나일론 재질이 꽤 쓸 만해 보였다. 그러다 한 친구가 제조사를 확인하더니 그 배낭을 사면 안 되겠다고 말했다. 최근 아르바이트 직원들의 임금을 체불한 회사의 제품이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배낭이 필요했던 친구와 대리 쇼핑의 즐거움을 만끽하려던 나머지 우리는 입을 비죽 내밀었다. 그래, 사지 말아야겠다. 결정은 신속했다. 번복되지도 않을 것이었다. 우리가 당장 배낭 하나를 사지 않는다고 해서 회사가 금방 망하지는 않겠지만, 이건 일종의 자존심 문제였다. 내가 나로 살기 위한, 대단할 것도 없는, 그러나 유지되어야만 하는 자존심 말이다. 그러나 다른 회사의 배낭을 선택할 때, 아니 배낭이든 뭐든 어떤 물건을 선택할 때, 그 회사가 아르바이트 직원들의 임금을 결코 체불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우리는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도 우리에게는 많은 물건들이 필요할 것이다. 지난주에도 썼지만 무언가를 살 때마다 항상 결국 차악을 선택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가장 나쁜 회사보다 덜 나쁜 회사의 물건을 사면서 찰나의 위안을 억지로 누릴 수밖에 없을까.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덜 나쁜 회사가 정말로 나쁜 회사가 아니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것일까. 지금 알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적어도 내게는 단연 올해의 화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