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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얼어붙은 시간

<너의 이름은.>이라는 제목의 일본 애니메이션이 개봉한다고 할 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진부한 제목은 곧 잊었다. 그런데 볼만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안 보면 저만 손해인 형편이 되었다. 내러티브의 비약과 판타지는 심리적 경계를 넘을 듯 말 듯 아슬아슬했으나, 아름다운 그림과 이야기의 힘찬 전개는 내 마음속의 낭만을 충분히 뒤흔들었다. 영화관에서 집으로 돌아와서는 이름도 생소했던 감독의 전작인 <언어의 정원>을 다운로드해서 보았고, 한국 관객의 호응에 고무된 감독의 트윗을 우연히 발견하기도 했다. 시효를 다한 줄 알았던 타임슬립이라는 소재로 이렇게 호소력 있는 작품을 만든 것을 보니 꺼진 불도 정말 다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자유로이 가로지르는 영화와 달리 시간에 관한 우리의 일상적 경험은 틀에 박혀 있다. 강물이 유유히 바다로 흘러가듯 시간은 무심히 그리고 도도하게 흘러갈 따름이다. 이런 시간에 대해 두려움에 휩싸인 시절이 있었다. 시간이 모든 것을 무상하게 만든다는 사실, 그로 인해 어떤 사건도, 어떤 의미도, 어떤 사람도 끝내 해체되고 용해될 뿐이라는 압도적인 사실이 주는 공포가 있었다. 그때 가까스로 나를 버티게 해준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비록 다시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지만 생각과 몸짓과 사건을 비롯해 우리가 살아냈던 모든 것은 그 시간들 속에 영원히 얼음처럼 빙결되어 있으리라.”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자이자 오랜 친구였던 미켈레 베소가 죽은 후 그의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이제 그는 저보다 조금 앞서 이 기이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도 없습니다. 물리학을 믿는 우리 같은 사람에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구별은 끈질기게 지속되는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로부터 한달 후 아인슈타인도 세상을 떠났다. 나는 아인슈타인이 뜻하고자 한 바를 이해하기 위해서 여러 번 이 문장을 읽었으나 물리학 지식이 부족해서인지 허사였다. 막연한 느낌이 아니라 말 그대로의 의미에서 그 뜻을 이해하게 된다면 내 삶의 시작과 지속과 소멸을 훨씬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으련만 이 문장은 내게 여전히 모호하다.

그러던 나는 지난해 말 교양물리학 책을 읽다가 전에 못해본 생각에 이르렀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낸 모든 것이 시간 속에 영원히 얼어붙어 있으리라”는 생각의 새로운 버전이다. 물리학자들은 이 우주를 ‘가로, 세로, 높이’라는 공간의 차원 셋과 시간의 차원 하나를 더한 4차원의 ‘시공간 연속체’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혹시 이 세계의 모든 역사는 그 시초부터 종말까지 하나의 연속체로서 이미 모두 존재하며, 단지 우리는 각자의 시간을 통하여 그것을 차례대로 경험하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아인슈타인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구별을 부정했던 편지에서 그 비슷한 생각을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물리학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타임슬립에 관한 영화들은 실제 가능성과 무관하게 삶의 내밀한 감정을 자극하고 상상력을 충족시킨다. 그리고 옳든 그르든 나름의 방식으로 시간을 이해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삶의 유한성에 따르는 비극적 예감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해방시켜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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