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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한국은 내전 중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아연실색할 행적이 드러나며 시작된 사건은 이제 클라이맥스로 달려가고 있다. 예상대로 탄핵이 되면 벚꽃대선이 전개된다. 몇달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현실이 되고 있다. 오늘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구속실질심사가 진행된다. 사람들의 공분에는 십분 공감하지만 대학 동창생이 이런 지경에 몰린 것은 처음이라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칼럼이 게재될 무렵이면 영장이 발부되거나 기각되어 있을 것이다. 연수원을 함께 다닌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미 구치소에 있다. 우 전 수석과는 동창생이라는 것 외에 인연이 없지만 조 전 장관은 연수원 시절 한반에서 가깝게 생활했다. 화려한 길을 걷다 경계를 넘어선 그는 젊어서는 냉혹한 정치와 거리가 멀었고 선량했다. 특검에 전폭적 지지를 보내면서도 마음이 무겁다.

문득 이 세계의 위험을 실감한다. 지난해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뒤늦게 빠져들어 예측 불허의 이야기에 농락당했다. 인간의 본질과 세계의 민낯에 대한 작가의 식견과 종잡기 어려운 상상력에 감탄하며, 위험한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이야기에 흠뻑 취했다. 이 시대는 더이상 그런 살육과 고문과 정복의 시대는 아니다. 그러나 이 시대가 그렇게 다른가. 정당간 경쟁은 내전의 축소판이 아닌가. 미디어를 통한 공세는 궁정의 음모들이 아니던가. 선거전은 피비린내 나는 공성전과 과연 얼마나 다를까. 여기 한국은 총성 없는 전쟁터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대로 인간으로서 생존하기 위해 사투를 한다. 여기서 패배한 사람들이 버리는 목숨의 숫자는 내전상태에 있는 나라들의 사망자 수보다 적지 않다. 중산층은 계층 유지와 상승을 위해, 기업은 이윤을 위해 불철주야 각자의 전쟁을 치른다. 아이들의 전투는 어떠한가.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 찬란하게 낭비해야 할 청춘을 볼모로 잡힌 채, 노예들이나 할 법한 강도 높은 노역을 한다. 그리고 아쉬울 것 없어 보이는 정치와 경제의 엘리트들 또한 더 많은 정의와 재물과 권력과 이름을 위해 유혈이 낭자한 전투에 참가하고 있다.

예전에는 총검과 대포를 무기로 싸웠다면, 지금은 미디어를 무기로 상대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추문에 휩싸이게 한다. 법률을 무기로 상대의 잘못을 찾아내 감옥으로 보낸다. 정치와 경제와 법률과 문화의 상층부에서는 전략적 구도를 짜고 메시지로 평판을 관리하며 법률로 상대를 저격하는 것이 매일의 일상이다. 여기서 승리하면 대통령이 되고 재벌이 되고 톱스타가 되며, 패배하면 감옥이나 불명예에 갇힌다.

행성에서 가장 성공한 외교관 반기문씨조차 비열한 거리의 생리를 모른 채 안전하게 살아온 사람이었기에 3주 만에 백기를 들었다. 물론 인간의 모순으로 인해 어느 사회건 어느 정도는 다 이렇다. 미국 드라마 <굿 와이프>를 보라.

현대 시카고의 매혹적인 내전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땅은 육식동물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동물의 왕국. 초식동물들은 아주 가끔 승리한다. 지금은 다행히 초식동물의 시간이다.

나는 비열한 거리에서 지쳤을 때 스칸디나비아 뉴스를 읽는다. 그 비현실적으로 한가로운 뉴스가 위로가 된다. 오늘의 톱뉴스는 “이케아가 이스라엘판 카탈로그에 여성들을 등장시키지 않아 비난받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우리의 거리에는 포연이 자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