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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타셈 싱 감독이 연출한 미국 드라마 <에메랄드 시티> 3월10일부터 방영
장영엽 2017-03-08

톡. 톡. 톡. 뒷굽을 세번 맞부딪히면, 빨간 구두가 너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줄 거야. 캔자스에 살던 소녀 도로시는 그렇게 마법의 왕국에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라이먼 프랭크바움의 동화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다. 3월10일부터 매주 금요일 밤 11시 캐치온1에서 두편 연속 방영을 시작하는 미국 드라마 <에메랄드 시티>(<NBC>)는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동화 <오즈의 마법사>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도로시가 걷던 노란 벽돌길과 신비로운 힘을 가진 마녀들, 도로시와 여정을 함께하는 독특한 개성의 등장인물들- 허수아비, 양철인간, 강아지 토토- 은 그대로인데 이 작품, 첫화부터 원작과는 많이 다르다. 우리가 <오즈의 마법사>라는 작품을 생각할 때 흔히 떠올리곤 하는, 주디 갈런드 주연의 1939년작 동명 영화와 다르기도 마찬가지다. 특히 <에메랄드 시티>의 도로시를 상상하며 영화 속 주디 갈런드가 <Over the Rainbow>를 부르던 모습을 떠올린 이라면, 이 아름다운 상상은 곱게 접어 빨간 구두가 놓인 신발장 한켠에 담아두는 것이 좋겠다. 애초부터 도로시를 집으로 데려다줄 빨간 구두는 이 드라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오즈의 마법사>를 대표하는 소품인 빨간 구두를 배제한 이유에 대해 시리즈의 제작진은 영미권 매체로부터 수없이 같은 질문을 받아야 했다). 가죽 부츠에 폴리스 점퍼를 입은 <에메랄드 시티>의 도로시는, 빨간 구두의 도움 없이 스스로를 구원해야 하는 강인한 여전사의 모습이다. 우리가 최근 영미권 액션 블록버스터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이 21세기적 여전사의 이미지는 원작 동화의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어떻게 어우러질 것인가.

<오즈의 마법사>의 재탄생

<에메랄드 시티>의 이야기는 캔자스시티에서 시작한다. 폭풍우가 휘몰아치던 밤, 갓난아기였던 도로시는 정체불명의 여인에 의해 한 부부의 집에 맡겨지고 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흐른다. 어느덧 20살이 된 도로시는 의사가 되길 꿈꾸며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양부모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자라난 그녀지만, 도로시의 마음 한켠에는 그 옛날 양부모에게 자신을 맡기고 떠난 생모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캔자스에 거대한 토네이도가 덮치고, 몰래 생모 카렌의 집을 찾아갔던 도로시는 그곳에서 피투성이가 된 경찰관을 발견한다. 엉겁결에 경찰차를 타고 토네이도에 휩쓸리게 된 그녀는 낯선 장소에서 눈을 뜬다. 중세시대의 풍경을 연상케 하는 그곳은 마녀와 마법사들이 존재하는 별천지다. 집에 돌아가는 방법을 알기 위해서라면 에메랄드 시티에 있는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가라는 프리랜드족의 말에, 도로시는 경찰차에 함께 타고 있던 수색견 토토, 노란 벽돌길에서 우연히 만난 루카스와 에메랄드 시티로의 긴 여정을 시작한다.

유명 동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인 만큼 <에메랄드 시티>의 첫 번째 관전 포인트는 도로시를 포함해 원작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라이먼 프랭크 바움은 <오즈의 마법사>를 테마로 한 책을 모두 14권 집필했다)의 인기 캐릭터와 주요 배경이 어떤 모습으로 구현됐는지를 지켜보는 데 있다. 특히 <오즈의 마법사>를 원작으로 한 다른 영상물에서 다소 만화적이거나 비현실적인 필치로 묘사되었던 허수아비와 양철 인간이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묘사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도로시가 노란 벽돌길(이 길이 노란 이유는 양귀비 가루가 뿌려져 있기 때문이다. 도로시와 루카스는 종종 약에 취한 듯한 몽롱한 상태에서 이 길을 걷게 된다) 위에서 처음으로 만난 이방인인 루카스는 진흙과 피범벅이 되어 십자가에 매달린 채로 버려진 ‘살아 있는’ 허수아비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허수아비에게 뇌가 없다는 원작의 설정은 이 캐릭터가 종종 희화화의 대상으로 묘사되는 이유이기도 했는데, <에메랄드 시티>는 이러한 설정 대신 알 수 없는 이유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전직 기사의 모습으로 루카스라는 캐릭터를 구현한다. 과거가 공백으로 남아 있기에 선인일지 악인일지 가늠할 수 없는 루카스의 미스터리한 정체는 이 작품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요소 중 하나다. 양철인간이 탄생하는 계기도 루카스 못지않게 극적이다. 도로시가 벽돌길 위에서 만난 또 다른 인물, 잭은 팁이라는 인물(강력한 스포일러이기에 그의 정체는 미리 밝히지 않는 게 좋겠다)과 동행하다가 비극적인 사고를 당하게 된다. 생사를 오가는 수술 끝에 그는 양철 심장과 양철 팔다리를 가진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이처럼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고전적인 캐릭터의 현대적인 재해석과 이러한 해석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서사는 <에메랄드 시티>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리즈의 크리에이터인 데이비드 슐너는 “프랭크 바움의 책 14권에 개별적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같은 세계 속에 재배치하는 과정이 특히 흥미로웠다”고 말하며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를 영화화한 작품들보다 원작 동화로부터 더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시사했다. 특히 이 시리즈에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원작 동화의 매력적인 캐릭터들도 종종 등장하는데, 매일 새로운 얼굴을 탈착하는, 이브의 공주 랭귀데어 같은 인물이 그들이다(드라마 속에서는 편의를 위해 얼굴이 아니라 마스크를 바꾸는 설정으로 등장한다). 팀 버튼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듯 그로테스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특유의 개성과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에메랄드 시티> 속 등장인물들은, 그러나 팀 버튼의 캐릭터들보다 한층 진중하고 성숙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는 <에메랄드 시티>를 ‘어른들의 판타지 동화’로 완성하고 싶었던 제작진의 의도와도 맞닿아 있다. 데이비드 슐너는 “이 작품이 때때로 어두운 정서를 지니는 건 <에메랄드 시티>가 어른들을 위한 드라마이기 때문”이라는 말로 시리즈의 지향점을 설명한다.

여성 캐릭터의 본능과 힘을 보여준다

성인들을 위한 판타지 장르의 드라마. 이쯤에서 하나의 작품이 떠오를 법하다. <HBO>의 <왕좌의 게임> 시리즈다. 실제로 <에메랄드 시티>가 방영 계획을 발표하자, 수많은 영미권 매체는 일제히 <왕좌의 게임>을 떠올리게 하는 또 다른 작품이 등장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신의 역량에 대해 아직 완전히 각성하지 못한 주인공, 어둠의 마법과 주술이 존재하는 세계, 언제 왕국을 습격할지 모르는 난폭하고 사나운 미지의 존재들, 왕국을 통치하기 위한 이들의 정치적 이해관계 등 여러모로 이 작품은 <왕좌의 게임>의 성공 요인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TV드라마 중 가장 웰메이드에 속하는 시리즈물을 우리 프로그램과 비교한다면, 굳이 그걸 거부 할 이유가 있을까”라면서도 데이비드 슐너는 <에메랄드 시티>의 차별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우리 쇼가 아마 그 작품보다 덜 음울하고 여성 캐릭터를 훨씬 덜 폭력적으로 묘사할 거다.” 여성들이 성적으로 착취당하고, 성적인 폭력을 경험하는 장면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데에는 원작자 프랭크 바움에 대한 영향이 컸다고 슐너는 말한다. “바움의 어머니는 초창기 서프러제트(여성 참정권을 위해 투쟁한 여성 운동가들을 일컫는 말) 중 한명이었다. 그리고 바움의 책은 페미니즘과 가부장적인 가치의 문제점에 대해 설파하고 있었다. 그의 두 번째 책 <환상의 나라 오즈>를 보면 젊은 여성들의 군대가 에메랄드 시티까지 진군한다. 그녀들은 남성들에 의해 지배받는 데 지쳤던 것이다. 이처럼 바움의 책들은 여성의 권리 신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성적 평등의 가치를 보전하지 못한다면, 그건 우리 드라마의 DNA가 되지 못할 거라고 봤다.”

데이비드 슐너의 말처럼, <에메랄드 시티>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남성 중심적인 세계 속에서 억압된 여성 캐릭터들이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과 능력을 발견하고 탈환하게 되는지를 지켜보는 데 있다. 가부장적인 마법사의 통치에 억눌려 있던 마녀들의 힘이, 그리고 도로시의 감춰졌던 능력이 깨어나는 데에 이 시리즈의 클라이맥스가 있음은 이미 처음부터 짐작할 수 있다. 슐너의 말대로 이 작품이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비롯한 판타지 사극들이 종종 간과해왔던 여성 캐릭터들의 본능과 힘을 보여주는 데 주목하는 드라마라면, 아마 <에메랄드 시티>는 최근 전세계적으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불고 있는 페미니즘 이슈에 소홀하지 않은 작품으로 기억될 만하다.

웅장하지만 초현실적인 풍경

10편의 에피소드를 연출한 감독의 이름에도 주목해야 한다. <에메랄드 시티>의 감독은 할리우드의 비주얼리스트로 유명한 타셈 싱이다. 그의 이름을 인지하지 못하고 드라마를 본 이들이라도 이 작품의 시각적인 퀄리티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양귀비 가루가 흩날리는 노란 벽돌길이나 마법이 봉인되어 있는 늪인 ‘비참한 감옥’,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에 CG를 덧입혀 창조한 마녀들의 공간과 기괴하고도 환상적인 마녀들의 모습에는 영락없이 비주얼리스트 타셈 싱의 흔적이 묻어 있다. 특히 드라마 제작진이 6개월 동안 동유럽과 서유럽을 돌아다니며 포섭한 실제 로케이션 속에서 펼쳐지는 웅장하지만 초현실적인 풍경은 여러모로 그의 수작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2006)을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타셈 싱은 이 작품에 합류하기 전 파일럿을 비롯한 10편의 에피소드를 직접 연출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고 한다. 이건 미국 드라마 업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가 아니다. 보통 이름 있는 영화감독의 경우 상대적으로 시청자들의 주목도가 몰리는 파일럿과 마지막 에피소드를 연출하는 경우가 많은데, 프리 프로덕션에 굉장한 수고와 노력을 쏟아붓는 감독의 경우 “치열하게 준비한 작품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건, 마치 부인을 다른 남자와 동침하게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이처럼 비주얼리스트 영화감독의 헌신과 원작 동화의 페미니즘적인 메시지, 어덜트 판타지라는 새로운 장르의 옷을 입은 <에메랄드 시티>는 이제까지 한번도 보지 못한 마법 왕국의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펼쳐보일 예정이다. 빨간 구두 없이 노란 벽돌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여성의 이야기는 어디로 나아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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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캐치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