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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한국영화 속 인상적인 여성 캐릭터 3위 ~ 5위
이화정 2017-04-10

03 <밀양> 감독 이창동, 2007 신애 전도연

<밀양>의 비극 그 한가운데 신애가 있다. 살고자 내려간 밀양에서, 살아가려는 이유인 아이를 잃은 신애는 존재의 이유를 묻고 구원을 갈구하고 절망하고 악다구니를 쓴다. 이창동 감독은 인터뷰(<씨네21> 594호, ‘끈질긴 이야기꾼의 도돌이표, 영화감독 이창동’)에서 “이야기는 그대로 두고 신애와 종찬(송강호)이 자리를 바꾸면 안 되는 이유가 뭘까요”라는 질문에 “당연히 여자가 그 자리에 있어야죠. 남자가 삶에 절망했다고 하면 믿겨져요? 남자가 삶의 구원을 얻는다고 하면 가슴에 와닿나?”라고 되레 반문한다. 그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사회적 제약이 많다는 점에서 “실존적 고통의 총량이 여자쪽이 크다”고 판단했고, “정서적으로 바닥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은 쪽”이 여성이라고 말한다. 신애는 그 고통의 총량이 극에 달한 인물이다. 절망과 분노, 용서와 희망이라는 복합적인 감정이 응집된 신애는 관객에게 가장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 인물로 남게 됐다. “신애가 웃고 있으면 저절로 미소가 피어오르고, 신애가 울고 있다면 함께 눈물을 흘리게 된다.”(박준경 NEW 영화사업본부 총괄상무이사)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여자가 자신의 내면의 분노를 솔직하게 분출하고, 그걸 지켜보는 이를 공감하게 만든다.”(서영주 화인컷 대표) 하지만 신애는 연민의 대상으로만 남기를 당차게 거부한다. 모두가 그녀가 주저앉을 거라 예상하는 그 암울한 순간, “난 너한테 안 져! 절대 안 져!”라며 하늘을 향해 차라리 조소를 날린다. 신애의 도전이, 비밀스런 밀양의 햇살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찰나의 순간, 한국영화의 여성 캐릭터도 일보전진했다. “신애는 계속해서 자신의 버팀목을 찾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남성이 아닌 독립적 객체로서 서기 위한 버팀목이다.”(창감독) 여성을 통해 발현하지만, 신애의 번뇌는 여성이라는 틀을 벗어난다. “신애는 여자이기 때문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에 인내해야 하는 죄의식과 딜레마의 집약체를 보여주는 캐릭터다.”(정현주 쇼박스 한국영화1팀 부장) 저 깊은 바닥까지, 신애의 고통스런 내면을 남김없이 꺼내어놓은 전도연의 연기에 그해 칸국제영화제는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고, 배우 전도연에게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이 더해졌다. “영화가 끝났을 때 전도연은 사라지고 아이를 잃은 여자 신애의 텅 빈 어깨만 남았다. 신애는 전도연이어서 가능한 캐릭터다.”(길영민 JK필름 대표)

04 <하녀> 감독 김기영, 1960 하녀 이은심

하녀의 등장은 센세이셔널했다. 등장부터 불길함을 안고 극의 서스펜스를 구축하는 데 일조하며 마침내 파국의 정서를 안고 가는 하녀는 한국영화사에서 잊을 수 없는 여성의 얼굴로 남았다. “1960년대, 아니 한국영화사상 가장 특별한 캐릭터”(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이자 “한국영화사상 가장 인상적인 여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독보적인 캐릭터”(오성지 한국영상자료원 영화사연구소)가 하녀다. <하녀>를 시작으로 <화녀>(1971), <충녀>(1972)로 이어지는 일련의 시리즈를 통해 김기영 감독은 당대 여성의 얼굴을 상세히 클로즈업한다. 남의 남편을 탐하는 하녀의 부도덕한 행위는, 당시 여성에게 씌워진 이미지의 총합과도 같았다. 담배를 피우는 하녀의 행동 하나까지 파격이자 지탄의 대상이었다. 하녀는 중산층 가정을 파멸로 이끄는 위험요소이자 악녀였으며, 따라서 그 여성의 욕망은 모두 제거되어 마땅했다. 하녀는 스크린에서는 자살로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고, 스크린 바깥에서는 “저년 죽여라!”라는 관객의 외침을 들어야 했다. “클라이맥스의 계단 장면, 끝내 거꾸로 누워버린 그녀. 안쓰럽고 동시에 공포스럽다.”(김우형 촬영감독) 하지만 그 욕망의 정체가 결국 하녀를 우리 시대의 가장 전복적인 캐릭터로 조명하게 해주는 핵심이자 김기영 감독의 메시지였다. 하녀의 욕망은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욕망의 주체가 된 여성 캐릭터”(박관수 기린제작사대표)이자 “하녀의 강력함은 지금도 유효하”(유성관 한국영상자료원 경영기획부)며, “한국영화사상 가장 강렬한 욕망의 화신. 야성의 에너지로 모든 질서를 파괴하는 하녀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강렬한 여성 캐릭터”(모은영 부천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라 평가되고, 이 단단한 욕망은 결국 여성을 떠나 “하층민의 신분으로 계층 전복적인 시각을 체현한 인물”(심재명 명필름 대표)로 각인되며 시대를 대변하는 외침으로 자리한다. <하녀>의 캐릭터는 신인배우였던 이은심의 당찬 연기로 생명을 얻는다. “그녀의 압도적 이미지와 캐릭터가 아니였다면 <하녀>는 그로테스크한 코미디로 끝났을지 모른다”(이용관 동서대학교 임권택영화예술대학학장), “대체할 수 없는 유니크함. 다시는 이런 배우를 볼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강형철 감독)라는 언급이 배우의 파워를 한층 실감케 한다.

05 <미쓰 홍당무> 감독 이경미, 2008 미숙 공효진

툭하면 얼굴이 빨개지는 안면홍조증, 속사포 같은 하소연이 주는 성가심. 양미숙은 보기에도 듣기에도 그저 ‘불편한’ 존재다. 오죽하면 양미숙에 대한 공효진의 첫인상이 이랬다. “그냥 남 일 구경하듯 보고 들으면 재미있어도 내 주변의 사람이라고 하면 같이 다니고 싶지 않은 여자일 것 같다.”(<씨네21> 675호 ‘커버스타 공효진’) ‘왕따 중의 왕따’의 성장기를 보낸 그녀는 어릴 때도, 커서도 ‘미운 오리 새끼’다. <미쓰 홍당무>는 굳이 그녀를 예쁘게 포장해 환골탈태할 구실을 끝까지 찾아주지 않는, 한국 상업영화에서 가장 이상하고도 용감한 선택을 한 영화이자, 그리하여 양미숙이라는 전무후무한 여성 캐릭터를 남긴 작품이다. 양미숙은 ‘예쁨’으로 귀결되는 대신 그녀 자체로 평가받기를 택한다. “양미숙은 끝까지 비호감으로 남는다. 관객에게 자신의 처지에 대한 적극적인 공감을 요구하지도 않고 민망함을 숨기지도 않고 그렇다고 자신을 비극적인 주인공으로 만들지 않는다.”(김태성 음악감독) 그 특이한 접근이 양미숙을 실제 우리 주변의 인물처럼 살아 있게 만들어준다. “한국영화에서 사실적인 여성 캐릭터는 그닥 많지 않다. 콤플렉스로인한 갑질과 지질한 모습을 보여주는 미숙은 한국영화에서 사실적인 여성 캐릭터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주는 캐릭터다.”(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양미숙은 예쁘게 사랑받기보다 ‘이해되는’ 기념비적인 여성 캐릭터다. “진상의 끝이지만 사랑스러운”(주성림 촬영감독), 우스꽝스러울지언정 밉상으로 남지는 않는다. “여자도 지질하고 멍청하고 이기적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선과 악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이분법적 묘사를 깨트리고, 여성 캐릭터의 영역을 확장한 캐릭터”(이무영 감독), “21세기에 리부트된 배우 윤여정의 느낌. 안타까움, 절실함, 인간존재의 지리멸렬함을 이렇게 포복절도할 블랙유머로 승화시킨 여성 캐릭터도 없다”(임필성 감독), “콤플렉스를 이야기하는 희화화된 여성 캐릭터 중 단연 최고의 인물”(송종희 분장감독)로 평가된다. 전무후무한 캐릭터를 연기한 공효진을 향한 찬사도 적지 않다. “공효진의 재발견”(송종희 분장감독), “캐릭터와 배우의 매력이 만나 창조된 2000년대 가장 독보적인 캐릭터”(강혜정 외유내강 대표). 대한민국영화대상 여우주연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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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세준 스틸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