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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② “보호한다는 감정이, 내게는 특별해서” - <시인의 사랑> 김양희 감독
장영엽 사진 박종덕 2017-05-15

‘시인의 사랑.’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제작지원작이자 김양희 감독이 연출한 첫 장편영화의 제목은 이 작품의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 제주도에서 안온한 삶을 살아가고 있던 시인 택기(양익준)에게 찾아온 감정의 격랑을 조명하는 이 영화는 예술과 현실, 관념과 실체, 개인과 세계가 맺고 있는 관계망에 대한 아름답고도 먹먹한 이야기다. 한편 <시인의 사랑>은 6년 전부터 제주로 거처를 옮겨 살아가고 있는 김양희 감독이 그곳에서 만나고 체험한 사람과 사연에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평소에 시를 자주 읽나.

=시를 어려워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런데 6년 전 제주도로 이주하며 자연친화적인 풍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시를 받아들이게 되더라. 3~4년 전부터 시를 낭독하면서 울고 웃고, 혼자만의 방식으로 잘 즐기고 있다.

-좋아하는 시인이 궁금하다.

=영화에 중요한 테마로 나오는 김소연 시인의 <그래서>를 좋아한다. 시나리오를 쓰기 전부터 이 시가 너무 좋아서, 이야기를 구상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배우 양익준이 연기하는 시인 현택기의 롤모델이 있다고 들었다. 현택훈 시인이라고.

=제주영상위원회에서 영화 제작 워크숍을 열었는데 현택훈 시인의 부인이 수강생 중 한명이었다. 그분의 소개로 현택훈 시인을 처음 만나던 날의 인상이 강렬했다. 눈빛이 샛별같이 맑고, 곰같이 포근한 몸매의 사내가 가로수길 밑에 서 있는데 굉장히 동화적인 느낌이 들더라. 큰 몸속에 여린 소년이 들어가 있는 듯한, 언밸런스한 느낌이랄까. 그날 함께 술을 마시며 부부 시인의 삶을 엿봤다. 현택훈 시인은 이제까지 제주도에서 나고 자라며 인생의 큰 고통이나 슬픔을 겪은 적이 없는, 안정적인 삶을 살아오셨다더라. 만약 이런 사람이 격정적인 감정의 풍랑을 맞게 된다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만약 그 감정의 대상이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면 보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다.

-동화적인 실존 인물과 배우 양익준이 근래 지닌 이미지의 간극은 크지 않나.

=10년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다니던 시절, 단편영화에 양익준 배우를 캐스팅한 적이 있어 <똥파리>(2008) 이전의 그가 어땠는지 알고 있다. 당시에는 평범하면서도 숫기 없고 어리숙한, 순박한 청년 캐릭터를 종종 연기했던 걸로 기억한다. 예전의 그 순박했던 이미지를 떠올리며 양익준 배우에게 출연을 제안했다. <똥파리> 이후 다소 센 캐릭터로 굳어져버린 그의 이미지를 뒤집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택기가 시를 낭독하는 장면이 많다. 자작시와 기존에 이미 존재하는 시의 비중은 어떻게 되나.

=영화의 문을 여는 현택훈 시인의 <내 마음의 순력도>와 김소연 시인의 <그래서>, 기형도 시인의 <희망>을 제외하면 대부분 자작시다.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이 장면엔 이런 느낌의 시가 들어갔으면 한다는 식으로 어울리는 정서나 표현을 메모해두었다가 시의 언어로 다듬는 작업을 거쳤다.

-대사의 성적 표현 수위는 높은데 등장인물간의 육체적 교감은 배제되어 있다. 의도적인 선택이었나.

=이건 꽃노래만 부르던 순수청년이 세상의 이면에 직면하게 되는 이야기다. 비현실적인 인물이 현실에 발을 붙이게 될 때 느끼게 되는 감정의 변화에 주목하고 싶었다. 시인이 말을 다루는 직업이다보니 시인의 언어와 현실 언어가 충돌하는 지점에 좀더 주목했던 것 같다. 육체적인 표현이 이 영화에 꼭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은 없었다.

-관광지로서의 제주도가 아닌, 일상적인 풍경의 제주도를 보여준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영화제에서 <시인의 사랑>을 본 관객이 그러더라. “여기 제주도 같지가 않아요”라고. 아마도 돌담과 오름 같은, 관광지의 풍경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일거다. 제주도민이 된 이후로 오히려 제주도의 풍광을 특별하게 느끼는 감각이 사라진 것 같다. 영화에 나오는 장소들은 서귀포 시내와 앞바다, 남원 포구와 초등학교 등 실제로 내가 자주 방문하고 머물렀던 곳이다. 택기의 집으로 등장하는 공간은 우리 집이고. (웃음)

-이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사랑의 형태는.

=유독 보호한다는 감정이 내게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누군가를 보호하고 책임지고 끝까지 바라봐주고 믿어주는 게 관계에 있어서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런 사랑의 방식이 내게는 매혹적으로 느껴진다.

-<시인의 사랑>이 장편 데뷔작이다. 이전에는 <세 번째 시선>(2006), <도쿄택시>(2009) 등의 조감독을 거쳤다.

=그동안 맘고생이 많았다. 영상원을 졸업한 게 2007년이었으니 10년 만의 데뷔다. 마음속으로는 영화를 100번은 그만뒀던 것 같다. 그런데 그만둘 수가 없었다. 아무도 나에게 영화를 하라고 하지 않았고, 시나리오를 쓰라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참 묘하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그동안 단편영화도 찍어보고(김양희 감독의 단편 <지나갈 어느 날>(2007)은 부산국제단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고, 두 번째 단편 <보청기>(2013)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됐다.-편집자), 혼자 시나리오 작법 공부를 하며 고군분투하던 시절이 괴로웠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니, 할 수 있을 때까지 한번 영화를 제대로 해보고 싶다.

<시인의 사랑>은 어떤 영화?

이건 일생에 두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를, 열정에 대한 이야기다. 제주도 바닷가 마을에 사는 시인 택기(양익준)의 삶은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가는 중이다. 창작열에 불타오르던 시절은 지나버렸고, 무언가를 새롭게 시도하기엔 많은 것이 두려운 나이가 되어버렸다. 지나치게 세속적인 아내의 언어는 시인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도넛 가게 청년 세윤(정가람)이 시인의 마음속에 들어온다. 의지할 곳 없는 세윤과 교감을 나누며, 시인에게는 이제껏 경험해본 적 없는 새로운 감정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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