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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 정재일 음악감독 - 강원도는 기타, 뉴욕은 오케스트라, 도살장은 일렉트로닉...
이주현 사진 최성열 2017-07-17

<플란다스의 개>의 조성우, <살인의 추억>의 이와시로 다로, <괴물>과 <마더>의 이병우, <설국열차>의 마르코 벨트라미까지 봉준호 감독은 늘 최고의 음악감독들과 작업해왔다. 그 자신이 음악을 잘 알기에 영화음악에 상당히 공을 쏟는다(정재일 음악감독의 목격담에 따르면 봉준호 감독의 기타와 피아노 실력이 상당하다고). <옥자>의 영화음악을 책임진 정재일은 이들 중 가장 젊고 가장 다양한 이력을 보유하고 있다. 10대에 밴드 긱스의 베이시스트로 데뷔한 뒤 수많은 뮤지션의 앨범에 프로듀서 및 연주자로 참여했고, <마린 보이> <바람> <해무>의 영화음악을 만들었고,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연극 <그을린 사랑> 등의 무대음악을 맡았으며, 전시 및 설치음악 작업도 했고, 국악그룹 푸리로도 활동했다. 그의 예술적 스펙트럼은 이처럼 방대하다.

오히려 본인은 그러한 다채로운 경력을 “영화쪽으로는 전문가가 아니어서”라는 말로 대체했다. <옥자>의 음악 작업 제의를 받은 것도 “비전문가의 전형적이지 않은 접근”을 원했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했다. “일단 영화음악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한스 짐머 같은 분들이 만드는 음악을 나는 만들 수 없다.” 모든 영화가 할리우드 스타일의 공식화된 음악작법을 따를 필요는 없다. 봉준호 감독이 원한 것도 매끈한 음악이 아니었다. “‘<옥자>는 절뚝거리는 느낌의 영화여야 한다. 멋있게 걷거나 달리는 영화가 아니라 멋있게 걷는 것 같은데 휘청거리고 절뚝거리는 느낌이 필요하다.’ 봉준호 감독님의 그 얘기에 바로 감을 잡았다.”

<옥자>는 공간에 따라 챕터가 명확히 나뉘는 작품인 만큼 “각 챕터에 어울리게 음악을 변화무쌍하게 가져갈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 공간마다 느낌을 다르게 가져가고 싶어서 악기 편성을 “강원도는 기타, 서울은 브라스, 뉴욕은 오케스트라, 도살장은 일렉트로닉, 마지막의 강원도는 피아노”로 달리 갔다. 반복해서 사용되는 메인 테마곡이 없는 것도 특징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음악들을 하나의 정서로 꿰는 것은 필요했다. 정재일 음악감독은 그 정서를 “투박함”으로 정의했다. 서울의 체이싱 장면에서 쓰이는 발칸반도의 집시음악과 브라스 연주가 특히 그 투박함의 정서를 잘 전달한다. “질주 신에서 쿵짝쿵짝하는 발칸반도 집시음악을 썼다. 에미르 쿠스투리차의 영화나 세르비아 혹은 유고슬라비아의 영화에 많이 나오는 음악인데, 그냥 들으면 어딘지 촌스럽지만 웃기면서도 슬프고 슬프면서도 신나는 그 결이 <옥자>에도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 정서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 헝가리와 마케도니아까지 날아갔다. 봉준호 감독과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의 녹음 과정을 함께했다. “봉준호 감독님처럼 대부분의 녹음을 직접 참관하는 연출자는 처음 봤다. (웃음) 일정 문제로 마케도니아에는 함께 가지 못했는데, 봉 감독님은 녹음 구경하는 게 영화작업의 큰 즐거움 중 하나라고 하더라.”

봉준호 감독은 삽입곡을 흥미롭게 쓰는데, <옥자>에서도 그 선곡 센스는 빛났다. 회현지하상가 추격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존 덴버의 <Annie’s Song>은 추격전에서 선뜻 예상할 수 있는 음악이 아니다. “봉 감독님도 가벼운 마음으로 존 덴버의 곡을 얘기한 거였는데 편집을 해보니 심지어 음악과 장면의 길이도 딱 맞더라. 그 장면을 본 모든 관계자들이 환호했고, 나도 이건 영화사에 남을 선곡이고 시퀀스라 생각했다. (웃음)” 오리지널 스코어를 작곡해야 하는 음악감독으로선 삽입곡이 돋보이는 게 반가운 일만은 아닐 텐데 정재일 음악감독은 그런 것엔 개의치 않는 듯했다. “의미 없는 선곡, 이해할 수 없는 삽입곡이라면 그럴 테지만 <옥자>의 <Annie’s Song>이나 크레딧 시퀀스에 쓰인 <Harvest for the World>의 쓰임에는 이견이 없었다.” 관객으로서 영화를 볼 때도 “스코어가 좋은 영화보다 선곡이 흥미로운 영화”를 좋아한다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에서 바흐의 <마테 수난곡>이 흐를 때 그 감동은 어떤 스코어로도 대체하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정재일은 “예술 소비자로서의 삶이 창작자로서의 삶보다 중요하다”고 과감하게 말한다. “영화, 미술, 무용 등 모든 예술과 친구가 될 수 있는 ‘음악’을 한다는 건 특권”이다. 그 특권을 만끽하며 정재일은 “여러 장르를 기웃”거렸다. 하지만 이제는 “음악 그 자체에 더 집중”하려 한다. “나는 예술에서 감동받길 원하는 사람이다. 또한 창작자이기에 내가 만드는 것들이 감동적이길 바란다. 그것이 어떤 형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음악에 더 집중해야 할 시기라고 느낀다.” 오해는 말자. 영화음악에서 손을 뗀다는 얘기는 아니니까. “영화음악은 얼마든지 하고싶다. 다만 나의 비전문성을 인내할 수 있는 감독님과의 작업이라면. (웃음)” 어느 천재 뮤지션의 겸손이라고 해두자.

내가 꼽은 장면_상처 후 평화의 엔딩

음악감독으로서 작곡을 해야 할 때는 언제나 “시작과 끝” 음악에 신경을 많이 쓴다. “시작과 끝이 잘 풀려야 중간에 음악을 이어가기가 좋다. 개인적으로 <옥자>의 엔딩을 참 좋아한다. 강원도로 돌아온 옥자와 미자는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은 것 같지만 그 평화는 더이상 영화 초반의 평화가 아니다. 상처를 받을 대로 받고 얻은 평화다. 이제부터의 삶은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그런 복잡한 감정과 생각을 음악에 최대한 담으려고 했다. 여기에 피아노를 쓴 것도 피아노라는 악기가 감정을 많이 담고 있는 악기이기 때문이었다.” <옥자>의 다른 음악이 “오로지 영화를 위해 만든 영화음악”이었다면 엔딩의 음악은 “영화음악이 아닌 ‘음악’을 만든 것”이라고.

영화음악 2017 <옥자> 2014 <해무> 2009 <마린보이> 2009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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