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내 인생의 영화
류선광 미술감독의 <러브 어페어> 무뎌질 때 꺼내보는 영화
류선광(미술감독) 2017-11-15

감독 글렌 고든 카슨 / 출연 워런 비티, 아네트 베닝 / 제작연도 1994년

무언가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재조명하거나 설계한다는 것은 놀라운 자극이고 변화이지만 우린 그냥 시간이 흘러가듯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잊어버린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서서히 변화하는 자신을 느끼는 행위에 무뎌져가는 것이다. ‘힐링’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우린 삶의 변화를 위해 많은 노력과 투자를 하며 살고 있다. 그런 일상 사이 우리는 누군가에겐 간절할 수 있는 하루를 아무렇지 않게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척박한 세상, 반복되는 일상에서 우리는 꿈을 키우고 희망을 얘기하는 낙으로 지친 하루를 위로하는 데 익숙하다. 그 익숙한 위로 중에 영화가 있다. 나와는 다른 사람의 일상과 내가 꿈꾸던 세계, 혹은 나와 같은 이야기 등 다양한 나와 내 환경을 반추해볼 수 있는 영화라는 매체 속에 ‘사랑’이라는, 우리에게 친숙한 키워드가 있다.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완성되어진 운명적 사랑. 나 또한 그런 기다림으로 간절한 시간을 보냈고 그래보고 싶게 만든 동기가 있었다. 어린 시절 짝사랑하던 친구에게 고백받고 인생의 첫 연애가 시작되었다. 그 순간을 기념하듯 만난 영화가 <러브 어페어>다. 먼저 말하지만 그 동기로 인한 변화가 현재 내 자신의 사랑의 행보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객기 충만하던 시절의 첫사랑 아니면 부부간의 설렘이 시들까 두려워하던 모든 커플들에 정신봉을 휘두른 이 영화를 접하고 순화된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을 그 무렵에 나는 영화 현장에 있었다.

현장에서 평균 나이를 낮추는 역할로 어림을 담당했으니 영혼 빠진 스탭으로 영화가 무엇이고 앞으로 이 일로 어떤 삶을 꾸려나갈지조차 계산 없이 수동적으로 일할 때였다. 이성적인 판단이나 어른스러운 행동 따위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내 감정이 우선이던 시절이기도 했다. 객기라는 표현이 스스로에게 용감으로 해석되던 철없던 그때에 눈물 한 바가지 흘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내 옆에는 소중한 사람이 너무 많더라. 그들을 울리고 싶어서 마구 추천한 영화가 <러브 어페어>였다.

그냥, 그냥 좋았다. 익숙하고 친한 친구처럼 맹목적이었던 첫사랑처럼 그냥 좋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스토리는 가물가물해지고 대사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그때 느낀 감정은 그대로다. 다시 보면 기억나고 반가운 것도 격함이 순화되던 그때의 감정이고 <러브 어페어>라는 키워드가 떠오를 때마다 동반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난 뒤로 현재 하고 있는 일로 누군가를 정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발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그때부터 많은 변화를 겪었다.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게 되고 격하게 감사할 줄도 알게 되었다.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용기도 생겼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만족감이었다. 삶의 하루하루에 변화를 느끼는 데 집중하면서 만족이 커졌다. 반성하며 바로잡는 것에 재미도 느끼게 되었다.

이렇게 ‘내 인생의 영화’라는 짧은 글로 내가 참여한 영화가 아닌 나를 소개하는 글을 쓰면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소통을 하게 된 것도 나에겐 큰 변화다. <러브 어페어>를 접했을 때의 감동이 지금은 변화와 만족으로 진화된 것이라 믿는다. 현재 우리가 만드는 영화와 드라마가 그럴 것이라 믿고, 그로인해 변화를 이룰 때 만족으로 이어진다면 반드시 행복이 따라올 것이라 믿는다. 그냥 집중하고 만족을 품자. 이렇게 내가 하는 작업이 아닌 글로 내 믿음을 전하게 된 것을 감사하면서 나와 같이 지금 자신의 재능과 작업의 결과로 선행을 하며 살아가는 영화와 드라마를 만드는 모든 스탭과 배우,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들에게 파이팅을 외치면서 글을 마무리한다. 피스!!!

류선광 미술감독. <시인의 사랑> <신촌좀비만화> <싸움> <황진이> 등 영화는 물론 tvN 드라마 <명불허전> <비밀의 숲> <오 나의 귀신님> 등 장르를 넘나들며 작업 중이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