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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판 애국영화 <특수부대 전랑2>의 엄청난 흥행이 말하는 것
김성훈 2017-12-11

시진핑 시대의 홍색( 紅色)영화 혹은 중국 블록버스터 시장 분석

“미국 해병대가 최고입니까. 그런데 왜 구경만 한답니까.” 중국 특수부대 ‘전랑’ 출신인 렁펑(우징)은 “미국 해병대가 있어 안전한 미국 대사관으로 가자”는 미국인 의사 레이첼의 말을 반박한다. 빈정 상한 레이첼이 미국 대사관에 전화를 걸자 “지금은 연결할 수 없다”는 안내 멘트가 흘러나온다. 렁펑은 “외국 군함들은 전부 철수했다. 그중에 미군 함대도 있었다”고 레이첼에게 알려주고, 레이첼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조국에 실망한다. 렁펑의 말에는 자국민을 내버려두고 철수한 미국과 달리 자국민을 대피시키기 위해 한달음에 달려온 중국 함대에 대한 자부심이 담겼다.

중국 박스오피스 역대 흥행 1위를 갈아치우다

올해 중국 극장가에 애국심을 뜨겁게 지핀 주인공은 <특수부대 전랑2>(감독 우징, 이하 <전랑2>)다. 이 영화는 건군 90주년 기념일(8월 1일)을 앞둔 지난 7월 27일 개봉해 13일 만에 35억위안을 벌어들이며 <미인어>(감독 주성치, 2016)의 33억9213만위안을 제치고 중국 박스오피스 역대 흥행 1위에 올랐다. 흥행은 파죽지세였다. 애초에 8월 27일까지 상영허가를 받았던 이 영화는 9월 28일까지 상영이 한달 연장되더니 다시 10월 28일로 늘어나면서 무려 세달 동안 극장에서 상영됐다. 그 덕분에 56억7871만위안(약 9638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 기록은 전세계 흥행 순위 55위(12월 5일 기준 박스오피스 모조(boxofficemojo.com) 집계)에 올랐고, 아시아영화로는 100위권 내에 유일하다.

일일천리(一日千里)하는 중국 영화산업에서 기록이란 기록을 모조리 갈아 치운 이 영화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배우 우징(한국 영화팬들에게는 우징보다 오경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중국 무술대회 우승자 출신인 그는 <살파랑>(감독 엽위신, 2005) <흑권>(감독 나수요, 2006), <탈수>(감독 나수요, 2008) 등 액션영화에 출연했고, <스페셜포스: 특수부대 전랑>(2015)과 <전랑2>를 연출했다)이 제작, 연출, 연기를 맡은 <전랑2>는 전랑 그러니까 늑대부대 출신인 렁팡이 죽은 전우의 유골함을 들고 그의 고향을 갔다가 전우의 집이 강제로 철거당할 위기에 처하자 용역 깡패를 죽이면서 시작된다. 살인죄로 불명예 퇴직을 당한 그가 감옥에서 복역하는 동안 그의 여자친구이자 상관인 룽샤오윈(위난)이 아프리카로 파견을 나갔다가 실종된다. 형을 살고 나온 렁팡은 여자친구를 찾기 위해 아프리카로 가지만 여자친구를 찾기는커녕 죄책감에 시달리며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 그곳에서 내전이 발생하고, 렁팡은 중국인 의사 진 선생과 화교 공장에 갇힌 중국인 47명을 구하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내전 한복판으로 뛰어든다. 이 영화는 실화를 모티브로 재구성한 이야기다. 2015년 예멘의 시아파 반군 후티가 정부를 전복하자 아랍권 10개국이 군사 작전을 개시했다. 아덴만 근처에서 선박 호위 임무를 수행하던 중국 군함이 임무를 일시 중단하고 예멘에 있던 중국 외교관과 노동자 등 자국민을 안전하게 철수시키면서 화제가 된 사건이었다.

<전랑2>의 흥행에서 두드러진 점 중 하나는 이 영화가 “몇몇 코믹한 장면이 있음에도 코미디 장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중국영화 전문지 <간전영>의 후이두오 부편집장은 “최근 4년 동안 <로스트 인 타일랜드>(감독 서쟁, 2012)부터 <미인어>까지 매년 흥행 1위를 차지한 작품은 주로 코미디영화였다(박스1 참조)”라며 “중국 관객은 주성치 같은 유명한 감독, 판타지 장르 혹은 할리우드영화에 더 많은 관심을 보여왔다”고 설명했다. 한·중 합작영화인 <나는 증인이다>의 제작을 진행한 신아름 프로듀서 또한 “기존의 중국 블록버스터가 고대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장르가 많았다면 <전랑2>는 오락성과 프로파간다가 적절히 어우러진 현대극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 점에서 40대 액션배우가 출연하고, 코미디 요소가 거의 없는 순수 액션영화 <전랑2>가 중국 최고의 흥행작이 된 건 하나의 사건이라 할 만하다.

박스1

만듦새에 대한 만족

이 영화가 흥행한 비결은 여러 가지이지만 일단 중국 영화인들과 평단에서는 “기존의 중국 블록버스터에 비해 매우 뛰어난 만듦새” 덕분이라는 반응이 많다. 한 중국 메이저 투자·제작사의 프로듀서는 "이제껏 나온 중국영화 중에서 잘 만든 축에 속한다. 중국영화계도 만듦새에 관해선 자부하고 있다"고 전했다"고 전했다. 전편 <스페셜포스: 특수부대 전랑>이 2015년 개봉 당시 5억4100만위안(약 888억원)을 벌어들이는 데 그치며 크게 성공하지 못했음에도 우징과 제작사 베이징문화는 포기하지 않고 ‘전랑’ 시리즈라는 한우물을 팠다. 중국을 무대로 했던 전편과 달리 이번 영화는 중국과 아프리카 케냐를 5개월 동안 오가며 촬영한 덕에 이야기 무대가 넓어졌다. 실제 전투에서 사용됐던 T-59 탱크가 등장하는 엔딩 신을 포함해 수중 액션 신, 화교 공장 신 등 규모가 큰 액션 신 대부분을 중국에서 촬영했고, 아프리카 풍경이 등장하는 장면들은 케냐에서 찍었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와 <헝거게임> 시리즈의 액션 감독 샘 하그레이브와 <캐리비안의 해적>의 수중액션 촬영팀 그리고 성가반(성룡 무술팀)이라는 날개를 단 우징은 다양한 액션을 선보이며 촬영장을 종횡무진 누빈다.

무엇보다 많은 중국 관객이 이 영화에 열광한 것은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군사(프로파간다)영화”였기 때문이다. 주인공 렁팡은 <건국대업>(감독 황건신·한삼평, 2009)의 주인공 마오쩌둥 같은 위대한 인물은 아니지만 현대영웅으로서 손색이 없다. 중국인이든 아프리카인이든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전부 구할 수 있다면 어떤 위험한 상황도 두려워하지 않고 뛰어든다. 중국인 47명과 아프리카 노동자들이 갇힌 화교 공장에 유엔이 헬리콥터 한대를 보내겠다고 알려오자 중국인 경영자가 중국인과 아프리카인 사이에 선을 긋고 구분한 뒤 중국인 먼저 타고 떠나겠다고 말한다. 이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렁팡은 “여성과 아이들을 먼저 헬리콥터에 태우고, 남자들은 나와 함께 밖으로 나가자”라고 말하자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보낸다. 중국인들이 영화를 보고 깊이 공감한 것도 이 지점이다. 후이두오 부편집장은 “중국 관객이 오랫동안 ‘캡틴 차이니즈’를 갈망한 것 같다. 마침 나온 <전랑2>가 ‘캡틴 차이니즈’ 역할을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영화를 두고 ‘캡틴 차이니즈’나 ‘중국판 <람보>’같은 표현이 나온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전편은 텐트폴(tentpole, 여름과 겨울 성수기를 겨냥한 블록버스터)영화가 아니었다.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 두편이 지난해 중국 극장가에서 개봉했는데 하나가 할리우드영화 <핵소 고지>(감독 멜 깁슨)고, 또 하나가 중국영화 <오퍼레이션 메콩>(감독 임초현, 2016년 전체 흥행 순위 6위를 차지했다.-편집자)이었다. 이 두편과 올해 개봉한 <건군대업>(감독 유위강, 1927년 난창 봉기를 시작으로 홍군이 창설돼 인민해방군으로 탄생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로, <전랑2>와 같은 날 개봉했다.-편집자)과 비교해봐도 <전랑2>는 해외 교민 철수 작전 같은 중국의 현재 상황을 현실적으로 잘 담아내고 있다.

시진핑 시대는 홍색(紅色)영화를 원한다

홍색(紅色)영화 혹은 주선율(主旋律)영화(중국 공산당의 정책과 이데올로기를 홍보하는 영화.-편집자)로 <전랑2>는 시진핑 사상에 부합하는 작품이다. 시진핑 사상 다섯 가지 중에서 중국의 꿈은 시진핑 주석이 ‘중화부흥’이라고 정리한 것으로, 19세기 말 ‘아시아 병자’로 불리던 치욕을 떨치고 ‘강한 성당’(强漢盛唐, 강력한 군사력의 한나라와 문화가 융성한 당나라)으로 부활하겠다는 결의다(박스2 참조). ‘캡틴 차이니즈’ 렁팡의 활약 덕분에 중국 교민들이 무사 귀환하는 <전랑2>의 엔딩 신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여권 옆에 이런 내용의 자막이 뜬다. ‘재외 동포가 위험에 처하면 외면하지 마라! 기억하라, 당신 등 뒤에는 강한 조국이 있다는 사실을!’ 이 메시지야말로 ‘강한성당’이라는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또 <전랑2>의 배경인 아프리카는 중국 정부의 ‘일대일로’(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육상 실크로드와 동남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를 일컫는 말로, 시진핑의 핵심 국가 프로젝트다) 전략의 요충지다. 한중콘텐츠연구소 부소장인 김택규 숭실대학교 겸임교수는 “<전랑2>는 공산당 이념을 전파하는 홍색영화로 분류될 수 있다. 과거 홍색영화와의 차이라면 당을 대표하는 영웅(렁팡)이 갈등을 해결하는 할리우드식 서사를 통해 당의 메시지를 세련되게 전달한다는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전랑2>가 아프리카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한 것을 두고 <로스트 인 타일랜드>가 이야기의 무대를 타이로 넓힌 것과 다른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도 그래서다. 한 중국 영화인은 “<전랑2>의 아프리카 로케이션 촬영은 중국영화로서 거의 처음 시도됐다.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이하 광전총국)이 심의하는 과정에서 해외에서 발생하는 사건은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반면 중국에서 발생하는 사건은 까다롭게 보는 편”이라며 “액션이나 스릴러영화가 까다로운 심의를 피하기 위해 영화의 배경을 해외로 바꾸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설명했다.

주선율영화로 인식됐던 까닭인지 모르겠지만 <전랑2>에 유리한 상영 환경이 조성돼 흥행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됐던 건 사실이다. 지난해 중국 박스오피스가 예년에 비해 느린 성장률을 보였던 까닭에 현재 중국 정부가 자국영화 시장의 성장을 북돋우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분위기에 힘입어 <전랑2>는 보호월에 개봉할 수 있었다. 보호월은 자국 영화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중국영화만 상영하는 기간으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이 기간에 개봉할 수 없다. 또 <전랑2>는 중국 정부와 군이 운영하는 매체에서 우호적인 평가를 많이 받았다. 영화의 소재와 메시지를 고려했을 때 놀랄 일도 아니다.

어쨌거나 <전랑2>가 중국 영화산업에 끼친 영향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하나는 “영화 시장의 무한한 가능성을 재확인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전랑2>의 성공을 답습하는 건 쉽지 않다. <전랑2>와 매우 흡사한 영화 <공천엽>(감독 리천, 출연 리천·판빙빙)이 지난 9월 30일에 개봉했으나 실망스러운 만듦새 탓에 혹평을 받고, 3억위안을 벌어들이는 데 그쳤다. 또 하나는 <전랑2>가 “중급 규모의 블록버스터”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레이트 월>(감독 장이머우, 2016)이나 <서유복요편>(감독 서극, 2017)이 기대보다 낮은 성적을 거둔 점을 감안하면 <전랑2>의 성공은 중국 프로듀서들과 감독들에게 “예산이나 스타 캐스팅이 영화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후이 두오 부편집장은 “중국 관객은 식상하고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콘텐츠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극장을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 중국영화계에 끼칠 영향은?

시진핑 사상은 그가 당서기로 선출된 이후 내놓은 통치 철학과 사상, 이념, 각종 정책을 정리한 이론적 체계를 말한다. 그것은 ‘하나의 중국 꿈’(中國夢), ‘두개의 100년: 중화부흥 시간표’(兩個一百年), ‘삼엄삼실(三嚴三實)’, ‘네개 전면’(四個全面)’, ‘오위일체’(五位一體) 등 다섯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사실 시진핑 사상은 <전랑2>뿐만 아니라 지난 7월부터 중국 극장가에서 대대적으로 홍보되고 있다. 극장에서 영화 상영 전, 3분40여초 길이의 공익 단편 <영광과 꿈: 우리들 중국의 꿈> 시리즈가 상영되고 있다. 성룡, 리빙빙, 우징, 안젤라 베이비, 황효명, 조려영, 저우동위 등 중국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출연해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 국가와 사회, 국민, 가정을 존중하는 한 중국의 꿈 실현을 돕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며 시진핑 사상의 ‘중국의 꿈’과 사회주의 핵심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 광전총국은 건군 90주년을 맞아 CCTV와 위성방송에 “공산당 홍보 드라마를 우선적으로 방영하고 우상극(트렌디한 드라마)과 오락성 프로그램을 자제할 것”을 주문했다.

지난 10월 24일 폐막된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통치 이념이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라는 명칭으로 당장(黨章·당헌)에 삽입됐다. 마르크스 레닌주의, 마오쩌둥(毛澤東) 사상, 덩샤오핑(鄧小平) 이론, 3개 대표론, 과학발전관에 이어 시진핑 사상이 당장에 지도사상으로 오른 것이고, 이를 두고 시진핑 국가주석의 위상이 마오쩌둥 수준까지 오른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당대회 이후 아이돌 그룹, 배우, 감독들이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잘 학습하고 홍보해야 한다”는 얘기 정도가 나왔지만 중국 영화산업과 관련된 구체적인 지침과 내용은 내년 3월 열릴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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