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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베이커 감독의 <플로리다 프로젝트>, 현실과 동화 사이에 숨은 것들
송경원 2018-02-28

이렇게 사랑스러운 영화

무지개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무지개가 빛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어른이 된 지금은 안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환상이 아름답지 않은 건 아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 환상은 허무맹랑한 상상이 아니라 현실의 빛살을 받아 구성된 또 하나의 진실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아이의 시선을 통해 미국 하층민들의 삶을 끌어안는다. 함부로 연민하거나 재단하는 일 없이 그저 일상의 자잘한 조작들을 끌어모으는 이 영화는 종국에는 가슴 한구석에 쉽게 지울 수 없는 인장을 새긴다. 누군가에겐 달콤하고 누군가에겐 씁쓸한 얼룩들. <탠저린>(2015)에 이어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선보인 숀 베이커 감독은 이제 명실상부 미국의 차세대 작가로 주목할 만하다. 동시대 사회를 날카롭게 포착하여 아이들의 시선으로 다시금 접근한 이 영화는 실로 매혹적이고 생기가 넘친다. 물론 그 놀라운 성취와 숀 베이커 감독의 면면을 짧은 지면 안에 다 담을 순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쉽사리 접할 수 없는 마술적인 순간에 대한 감사를 전하는 심정으로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경유하여 숀 베이커에게 다가가보려 한다. 영화라는 이름의 마법이 여기에 깃들어 있다.

뭐가 그렇게도 즐거울까. 어디선가 들려오는 까르르 소리를 따라가다보면 구석에 숨어 웃고 있는 아이들의 눈망울이 있다.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 있건 항상 웃는다. 데굴데굴 굴러가는 쓰레기를 보면서도 함박 미소를 짓는 아이들을 볼 때면 동심의 다른 말은 웃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아이들의 시점에서 출발하는 영화다. 스크린을 시종일관 채우는 건 어딘지 들뜨고 신난 것 같은 아이들의 웃음과 왁자지껄한 소리, 방방 뜨는 몸동작들이다. 마치 놀이공원에 온 것 같은, 24시간 내내 즐거운 아이들의 신나는 모험.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렇다.

화면 가운데 덩그러니 앉아 있는 두 아이. 바람 소리와 벌레 소리만이 가득한 그곳에 달깍거리는 신발 소리가 들려오고 한 소년이 이름을 외치며 달려온다. “무니! 스쿠티!” “왜~?” 그냥 이름을 부를 뿐인데도 자지러지게 즐거워하던 아이들은 한마디 외침을 듣자마자 신나게 달린다. “새 차가 들어왔어!” 마치 <트레인스포팅>(1996)의 질주 장면처럼 아이들은 두근대는 심장박동 마냥 쉴 새 없이 뛰고 또 뛴다. 그렇게 도착한 곳에서 무니(브루클린 프린스)와 스쿠티(크리스토퍼 리베라)가 벌이는 장난은 주차된 자동차에 침을 뱉는 일이다. 그 순간 우리는 이 신나는 모험이 평범하지 않음을 직감할 수 있다.

플로리다의 ‘로제타’들

플로리다의 브론슨 메모리얼 하이웨이 인근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무려 디즈니월드로 가는 길목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하지만 이 유명한 간선도로의 외곽이 현재 어떤 상태인지 조금만 살펴보면 이상한 기분에 휩싸일 것이다. 모텔 건물은 보라색, 주황색 등 화려한 페인트로 색칠되었지만 엘리베이터에 냄새가 난다고 피할 만큼 어딘지 낡고 허름하다. 게다가 투숙객들도 어딘지 삶에 찌든 냄새가 난다. 여기엔 참전용사도 있고 정신질환자도 있으며 직장을 구하지 못해 보조금에 기대 연명하는 실업자들도 즐비하다. 이 모텔들은 이미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마지막에 버티고 선 낭떠러지나 진배없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6살 소녀 무니도 올랜도 인근의 오래된 모텔 ‘매직캐슬’에서 엄마 핼리(브리아 비나이트)와 함께 살고 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플로리다주에 테마파크를 세웠던 디즈니의 프로젝트명, 다른 하나는 미국 플로리다의 홈리스 지원정책이다. 1965년 디즈니는 디즈니월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플로리다주 올랜도 지역의 부동산을 매입했고 자연스레 주변에는 모텔들이 들어섰다. 이른바 플로리다 프로젝트다. 디즈니랜드 인근 숙박업소가 밀집한 이 동네는 디즈니랜드에 맞춰 화사한 색깔의 성이나 궁전 모양으로 관광객을 맞이해왔다. 한때는 분명 그랬을 터였다. 그러나 경기 침체와 함께 상황이 변했다. 관광객이 줄어든 지역의 모텔들은 하나둘 문을 닫았고 그나마 남은 관광객들도 주변의 고급 콘도로 발길을 옮겼다. 그렇게 남겨진 모텔은 의외의 방문객들로 메워졌다. 바로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이후 직장과 집을 잃은 사람들이다. 플로리다 올랜도 인근 모텔에는 정부에 체크되지 않은 숨은 홈리스들이 넘쳐난다. 갈 곳을 잃은 사람들은 한주 단위로 방세를 지불하며 모텔 방을 전전한다. 이곳은 어느새 사람 사는 동네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주거지라고 부를 수는 없다.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는 걸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든 떠날 자들, 혹은 떠밀려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쉼터. 정부에도 체크되지 않는 홈리스들은 그렇게 시스템의 틈바구니에서 생존해나간다.

아웃사이더들을 탐색하는 데 민감한 레이더를 지닌 숀 베이커 감독이 올랜도 인근 모텔의 기이한 환경에 관심을 기울인 건 필연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얼핏 보기엔 경제공황의 그늘과 바닥까지 추락한 삶에 대해 다뤄야 할 것 같지만 영화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초기엔 숀 베이커 역시 이 지역의 어둠에 초점을 맞춰서 출발했다. 하지만 무려 3년간의 지역 조사 끝에 그가 도달한 결론은 그곳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거였다. 그리고 이 단순명료한 사실이야말로 소외되고 낙후한 이 지역의 아이러니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디즈니랜드 인근에 드리운 짙은 그늘은 마치 동화와 현실의 간극처럼 느껴진다. 무지개만 바라보고 뛰어갔을 때는 보이지 않던 발밑의 진창이라고 해도 좋겠다. 여기서 숀 베이커의 탁월한 통찰 또는 기발한 착상이 빛을 발한다. 대개는 진창을 발견하면 그것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려 애쓰겠지만 숀 베이커는 이를 다시금 아이들의 시점으로 되돌려 아이러니를 증폭시키는 것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경제공황의 암울함을 배경으로 깔되 이를 롤리팝 캔디처럼 밝고 화사하게 포착한다. 위선적으로 꾸민 것이 아니다. 실제로 거기서 그들의 삶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플로리다의 햇살처럼 구김살 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 핵심에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은 어떤 곳에서든 기어코 즐거움을 발견해내는 신기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보호자와 함께 모텔 방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어떻게든 재미난 것들을 찾아낸다. 열악하고 어두운 환경과 해맑은 아이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그 격차를 통해 아이러니를 극대화한다. 실수로 매직캐슬에 묵게 된 신혼부부의 아내는 “여긴 디즈니랜드도 아니잖아!”라고 울먹거리지만 이미 매직캐슬의 어엿한 주민인 무니는 그 와중에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난 어른들이 울려고 하면 바로 알아. 저 여자는 곧 울 거야.” 매직캐슬이 얼마나 낙후한 곳인지 신경 쓰는 건 어른들의 사정이다. 아이들에겐 그저 지금 있는 곳, 친구와 함께 노는 곳이 집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래된 모텔 매직캐슬을 진짜 이름 그대로 마법의 성처럼 받아들이는 이들은 오직 아이들뿐이다. 아니 어쩌면 어린 시절에는 모든 장소를 디즈니랜드로 바꿀 수 있는 마법 같은 힘이 깃들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숀 베이커 감독은 이 힘을 십분 활용한다.

무니와 스쿠티가 신나게 놀고 있는 와중에 이웃 모텔에 젠시(발레리아 코토)가 새롭게 머물며 세 친구는 단짝이 된다. 세 친구가 오렌지월드와 기프트숍을 지나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하는 길은 마치 테마파크를 순회하는 것처럼 그려진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아이들의 시점에서 아이들의 걸음만을 따르는 건 아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탁월한 성취는 소소한 쉼표들을 모아 거대한 행간을 만들어내는 독자적인 호흡에 있다. 매일이 모험인 무니와 스쿠티, 젠시의 일상이 펼쳐지는 와중에 카메라는 무니의 엄마 핼리를 비롯해 아이들의 보호자들의 삶을 조명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다만 겉과 속이 다른 매직캐슬처럼 영화 속 인물들의 직관적인 인상을 그릴 뿐 사건이라는 도구를 활용해 그들의 내면까지 억지로 파고들진 않는다. 핼리는 백번 양보해도 좋은 엄마라고 말하기 힘들다.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해 항상 늘어져 있는 그녀는 얼핏 아이들을 방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그런 핼리를 위한 변명을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저 그 방만해 보이는 일상을 하나씩 삽입해서 보여줄 뿐이다. 그렇게 어떻게든 먹고살아야 하기에 인근 호텔에서 불법적인 장사를 하고 급기야 몸을 팔기까지 하는 핼리의 발버둥은 쌓이고 쌓여 어느새 일상처럼 관객에게 녹아든다. 그즈음이면 처음엔 플로리다의 밝은 햇살과 달리 어둡고 음습해 보였던 매직캐슬의 방 안조차 내 집처럼 아늑해져 있다. 그리고 그 장소가 다시금 공포스럽게 돌변할 때 영화가 전하는 상실의 아픔마저 공유된다.

디즈니랜드와 모텔 사이, 영화와 현실 사이

이건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다. 다만 그 방식이 관찰과 체험, 상징 등으로 뒤섞여 있어 혼란스러울 수 있다. 이 조합과 박자 감각은 여느 내러티브 영화의 공식과도 겹치지 않는다. 촬영감독 알렉시스 자베의 카메라는 때론 다르덴 형제의 핸드헬드처럼 인물을 따라가다가 갑자기 극단적인 클로즈업을 보이기도 하고 멀리서 플로리다의 화려한 햇살과 건물들을 멋지게 찍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기법을 동원할 때도 인물의 내면을 설명하거나 이야기를 들려주진 않는다. 그저 이들의 시간을 관찰할 뿐이다. 이 모든 관찰의 중심에는 낡은 호텔을 부지런히 관리하는 바비(윌럼 더포)가 있다. 바비는 늘 피곤해 보이는 고지식한 관리인이지만 맡은 바를 묵묵히 수행하며 매직캐슬을 사람 사는 공간으로 만든다. 비전문 배우들은 물론 신인배우들을 대거 기용한 이 영화에서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윌럼 더포의 존재감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여기에 숀 베이커의 인상적인 상징물들이 끼어들기 시작하면 영화의 색은 묘한 감흥으로 번져간다. 가령 영화 전반에 삽입되는 헬기 소리는 매직캐슬 인근의 자연스러운 환경 중 일부다. 하지만 그 앞에 인물들의 특정 상황이 배치되면 효과적인 사운드 몽타주의 요소가 되기도 한다. 헬기 소리는 단지 거기 있을 뿐이지만 주변 상황으로 인해 불편, 불안, 불쾌의 전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무니와 젠시가 무지개를 보며 그 밑에 묻힌 황금과 레프리콘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는 다분히 상징적이지만 그것을 도식화하거나 강요하진 않는다. 이런 방식은 이야기에 의한 설득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공간을 체험하고 장소로 익숙해져 가는 감각에 가깝다. 아이들이 트림 대회를 하고, 무지개를 구경하고, 석양을 등지고 뛰어가는 아무런 의미없어 보이는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관객에게까지 매직캐슬 한구석에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상영시간이 절반쯤 지났을 때까지 별반 사건이 발생하지 않지만 대신 매직캐슬의 주민이 된 것마냥 이 기묘하고 아이러니한 공간에 친숙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그런 다음에야 슬며시 사건을 진행시키고 이야기로 나아간다.

핼리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힘든 상황이지만 딸 무니와 떨어져 지내는 건 생각도 하지 않는다. 무니 역시 하루하루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만의 천국, 혹은 일상은 언제까지나 이어질 수는 없다. 무니가 자라고 상황은 점점 어려워지면서 서로가 힘겨운 상황에 이를 것이고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녀의 헤어짐은 이야기의 끝을 향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상징적이고 동화적인 엔딩 장면은 전형적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걸음으로 나아간다. 이야기가 끝나고도 한동안 이어지는 시끄러운 소리들은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소리로 시작해 소리로 문을 닫은 이 영화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신 매우 영악한 방식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많은 것을 발견해 나가도록 유도한다.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작은 것에서도 경이로운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는 감각을 학습시킨다고 해도 좋겠다. 그렇게 영화는 관객의 놀이터가 된다.

누군가는 여기서 2008년 이후 미국인들의 피폐하고 불안한 삶을 볼 것이고, 누군가는 집에 얽힌 기억들을 마주할 것이다. 어떤 이는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을 발견할 것이고 때로 영화는 고도의 은유로 감싸인 동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고 어느 쪽으로든 즐길 수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영화의 요소요소가 플로리다의 햇살처럼 사랑스럽기 그지없다는 사실이다. 쓰러진 거대한 고목을 아지트 삼은 무니는 젠시와 함께 빵에 잼을 발라먹으며 말한다. “내가 이 나무를 좋아하는 이유가 뭔지 알아? 쓰러졌는데도 계속 자라고 있기 때문이야.” 차갑고 씁쓸한 현실의 틈새에서 피어난 마법 같은 순간. 동시에 생기 넘치는 발걸음 속에 슬며시 깔아놓은 현실의 그림자. 디즈니랜드와 모텔 사이의 거리처럼 영화와 현실의 관계는 한없이 가깝고도 영원히 멀다. 그 설명 불가능한 거리 안에서 우리가 발견해야 할 무수한 보물들이 잠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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