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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얼굴, 감독의 페르소나 신성일
씨네21 취재팀 2018-11-15

‘스크린 스타’라는 이름이 그만큼 잘 어울리는 배우가 또 있을까. 1960년대 한국영화는 신성일의 이름을 거치지 않고는 도무지 설명할 수가 없다. 신성일은 스타의 아우라로 이들 영화화의 어떤 기운을 만들어낸다. 신성일의 길고 긴 필모그래피 중 감독의 페르소나로서 시대성을 보여줬던 영화를 꼽아봤다. 김기덕, 신상옥, 이만희, 이성구, 이장호, 임권택, 정진우 감독은 신성일의 얼굴을 빌려 시대의 비정함과 낭만, 세련됨과 아픔을 표현했다. <씨네21> 기자들이 좋아하는 영화 속 신성일의 얼굴들을 통해 그 모습을 찾아보았다.

정진우 감독의 <초우>(1966)

감독 정진우 / 출연 신성일, 문희, 트위스트 김, 전계현

“차이코프스키를 좋아하는 분이 사람을 그렇게 패세요?” 음악감상실에서 영희(문희)에게 집적대는 남자들을 제압하는 철(신성일). 이어서 그는 외제차 안에서 고상한 음악가를 들먹이며 영희를 유혹한다. 배우 신성일의 도시적인 매력으로 문을 연 <초우>는 이들이 사실 자동차 세차공과 하녀라는 진실이 밝혀지며 비감을 더해간다. 그는 여기서 백마 탄 왕자님과 옴므파탈의 전형을 거쳐 가난한 청년의 순애보를 모두 보여준다. 이기적인 거짓말이 처참한 비극으로 끝나기까지, <초우>가 품는 깊은 애수는 스크린을 사로잡는 배우의 마력을 담보한 결과다. 1960년대 멜로드라마의 아이콘이자 스타의 빛을 내는 배우 신성일이 <초우> 속에 있다. _김소미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1964)

감독 김기덕 / 출연 신성일, 엄앵란, 트위스트 김, 윤일봉, 이예춘

<맨발의 청춘>의 건달 두수 역의 신성일은 요안나 역의 엄앵란, 아가리 역의 트위스트 김과 함께 당대 청춘의 아이콘이 되었다. 특히 두수의 핵심은 그가 맨발 인생이었다는 데 있다. 가진 것 없이 태어나 ‘스덱끼’ 한번 먹어본 적 없는 그였지만 검은 눈동자 요안나에 매혹되어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도 들어보고, 양장도 차려입어보게 된다. 그 거추장스러웠던 사랑의 행로의 끝은 비록 맨발로 돌아가는 비극으로 향하지만, 자본과 권력 앞에 절대 굴하지 않는 청춘의 태도를 보여주는 듯했다. 신성일의 두수는 맨발이라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맨발이라서 가장 선명한 발자국을 남길 수 있었다. _김현수

신상옥 감독의 <내시>(1968)

감독 신상옥 / 출연 윤정희, 신성일, 남궁원, 박노식, 도금봉, 허장강

<내시>는 정호(신성일)와 자옥(윤정희), 비운의 커플을 통해 동성애, 폭력, 권력 비판, 사디즘, 마조히즘 등 파격적인 주제를 그려낸 문제작이었다. 신필름 최고 스타였던 신성일에게 <내시>는 1962년 신필름을 나와 독립한 뒤 오랜만에 ‘스승’ 신상옥 감독을 만난 작품이다. <내시>는 크게 흥행했지만, 극중에서 윤정희가 임금과 동침하는 장면에서 옷을 벗는 장면이 문제돼 고발당했다. 재판에 출석한 신성일은 “배우는 감독이 시키는 대로 옷을 벗느냐”라는 판사의 질문에 “그렇지 않다. 배우의 해석에 따라 다르다. 작품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해 판단하는 거지 감독이 하란다고 하는 건 아니”라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_김성훈

이만희 감독의 <휴일>(1968)

감독 이만희 / 출연 신성일, 전지영, 김성옥, 김순철

신성일의 모습 중 단 하나만을 기억해야 한다면, 나는 <휴일>에서의 허욱을 꼽을 것이다. 여자친구의 낙태 비용을 구하기 위해 돈을 빌리러 하루 꼬박 서울의 거리를 헤매는 남자 허욱은, 궁핍한 그 당시 서울의 풍경을 대변한다. 담뱃값도 없어 급기야 친구 지갑에까지 손대는 막막한 남자. 가진 것 없는 그에게, 핏이 좋은 코트를 걸친 그럴듯한 허우대가 차라리 거추장스러워 보일 지경이다. 이만희 감독은 흙먼지 섞인 바람, 도심을 가로지르는 밤거리 전차 속으로 허욱을 불러온다. 이만희의 영화 속 가을을 걷는 남자(<만추>)는 프린트 유실과 함께 잃어버렸지만, 아마 언젠가 그 남자를 운좋게 만나게 된다면 <휴일>이 그린 겨울 속 신성일과 꼭 닮아 있지 않을까. _이화정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1974)

감독 이장호 / 출연 안인숙, 신성일, 윤일봉, 하용수, 백일섭

<별들의 고향>의 문오(신성일)는 술집에서 옆자리에 앉은 경아(안인숙)에게 추근대기보다 그녀의 모습을 담은 그림 쪽지를 웨이터에게 우회적으로 전하는 로맨티스트다. 화려한 외모의 신성일의 매력이 문오라는 인물의 낭만성을 더했다. 이 작품을 통해 신성일은 불안한 청춘의 표상에서 낭만을 간직한 기성 세대의 얼굴로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받았다. 다른 걸 차치하고라도, 페도라를 쓰고 면도를 하거나 사랑하는 여인이 자는 새 얼굴에 그린 피에로 분장을 보며 호탕하게 웃는 남자를, 신성일보다 더 매력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있었을까? 시대의 낭만이 그의 얼굴에 담겨 있다. 그러한 낭만을 영원히 간직할 수 없는 시대의 비정함까지도. _장영엽

이성구 감독의 <장군의 수염>(1968)

감독 이성구 / 출연 신성일, 윤정희, 김승호, 김성옥, 김동원

이어령의 소설을 김승옥이 시나리오로 각색한 <장군의 수염>은 1960년대 한국 모더니즘 영화의 정점을 보여준다. 영화는 철훈(신성일)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하며, 사건 담당 형사(김승호)가 철훈의 죽음을 추적하는 구조를 취한다.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사진기자 철훈은 지주집 막내아들로 태어나 시대의 격변을 겪는다. 신성일은 상처 입은 사내의 순수성을 자신의 얼굴 위에 덧씌운다. 사회성이 부족한 예술가인 철훈이 연을 날리며 아이처럼 좋아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인상파풍의 그림이 벽면 가득 걸려 있는 아방가르드한 방 안에서 애인과 고해놀이를 하는 사내에게 마음을 내줄 수 있는 건 신성일이라는 피사체 덕분이다. 1960년대 모더니즘의 얼굴. 그게 바로 신성일이었다. _이주현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1985)

감독 임권택 / 출연 김지미, 신성일, 한지일, 김지영, 이상아, 김정팔

시대의 우수를 담아내던 신성일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영화 중 한편이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이다. KBS 이산가족찾기 방송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가족상봉이라는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한 걸음 떨어진 채 현실을 관조한다. 해방 후 헤어졌던 가족이 30년 뒤 이산가족찾기를 통해 만나지만 남편, 아내, 아들은 서먹한 거리를 좁히지 못한다. 감정을 절제한 이 영화에서 복잡한 감정들은 배우의 몫으로 남겨진다. 촬영 당시 운동만으로 체중을 82kg에서 68kg으로 감량하여 캐릭터의 고뇌를 육체로 표현하는 등 철저한 자기 관리 능력을 증명하기도 했다. _송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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