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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100년②] 한국영화 100년 국제학술대회 현장에 가다
임수연 2019-11-06

시네마의 미래를 확인하는 자리

씨네21 최성열.

10월 23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충정로 LW 컨벤션센터에서 한국영화 100년을 기념하는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글로벌 한국영화 100년–사유하는 필름을 찾아서’는 한국영화를 연구하는 국내외 영화학자들이 모여서 각자 연구 내용을 발표하고 토론을 하는 자리였다. 셋쨋 날 라운드 테이블 토론에서 모더레이터를 맡은 박현선 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가 말했듯이 “국내에서 보는 한국영화와 해외에서 보는 한국영화는 온도차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연구 분야도, 국적도 다른 학자들이 모여 각자가 주목하는 한국영화의 단면을 한데 모아 입체적으로 조형했다. 3일 동안 진행된 학술 행사인 만큼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아우르는 논의가 오갔지만 이번 기사는 크게 세 가지에 집중하려 한다. 주목할 만한 세션과 시네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출판 워크숍, 라운드 테이블 토론을 중심으로 현장을 재구성했다.

‘트랜스’ 개념으로 한국영화 사유하기

<아가씨>

3일간 32개의 주제로 발표가 진행됐다. 가장 주목받은 세션은 10월 24일 오전 진행된 키노트 ‘트랜스 방법론과 미디어 스펙트럼’이었다. 뉴욕대학교에서 영화·문화이론, 내셔널 시네마 등을 연구하는 로버트 스탬 교수가 한국을 찾아, 인터넷과 유튜브가 자신의 교수법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를 중점적으로 논했다. 영화를 가르치던 그가 인터넷 매시업, 케이블 뉴스, 뮤직비디오, 온라인 게임, 리믹스된 광고 등 미디어 스펙트럼에 대해 다루게 된 것, 소설의 영화화를 다루던 학자가 고전적 소설이 영화화된 후 다시 각색돼 TV시리즈로 만들어지고 광고·비디오 게임 등으로 재작업되는 과정을 가르치는 쪽으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김지훈 중앙대학교 교수는 “그의 주요 연구가 한국영화 100년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한국영화의 현재를 성찰할 수 있도록 이론적 지평을 넓힐 수 있기 때문”에 초청했다고 밝혔다. 여러 트랜스 개념을 탐구해온 로버트 스탬의 성찰이 “한국영화사의 단면을 유럽 중심주의와 제국주의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사유할 수 있는 풍부한 이론적·역사적 전통을 제공할 수 있”고, 문학과 영화의 관계를 다룬 오랜 연구가 “박찬욱 감독의 <박쥐>(2009), <아가씨>(2016) 등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한 초국적 각색 및 리메이크 사례를 분석하기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김지훈 교수)는 것이다. 그의 논의는 최근 한류 열풍과 함께 유튜브에서 인기를 얻는 리액션 비디오 등 새로운 영상과도 연결된다. 미디어 산업 플레이어와 참여적 팬 제작 프로덕션과의 상호작용으로 진화된 트랜스 미디어 스토리텔링에 대한 질문 등이 본발표 이후에 이어졌다. 같은 날 오후 세션 ‘내셔널, 트랜스내셔널, 그리고 인터-아시아적 지평들의 교차’에서는 요시모토 미쓰히로 와세다대학교 미디어시각문화 교수의 파격적인 제안이 참석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는 영화학이 내셔널 시네마를 언제나 유의미한 비평 범주로 여기고 품어온 것은 아니며, 매체로서 영화가 보편성을 지닌다고 주장하는 관점에서는 내셔널 시네마가 잘못 인식된 대상이라고 보았다. 또한 트랜스내셔널에 관한 담론이나 ‘월드 시네마’라는 프레임 워크 역시 제한적이라고 말하며 ‘인류세’, 즉 지질학적으로 새로운 시대를 가리키는 개념을 대안적으로 소개했다. 이어서 진행된 세션 ‘새로운 영화문화와 영화제작을 향하여’에서 이선주 한양대학교 현대영화연구소 연구교수는 ‘뉴미디어시대 한국 시네필의 분화와 영화문화의 지도’란 주제하에 ‘멀티플렉스 시네필의 탄생’에 주목했다. 영화 상영뿐만 아니라 각종 시네마클래스를 포함한 영화교육, 영화도서관의 기능까지 포괄하는 CGV아트하우스를 위시한 멀티플렉스 사업이 “희한한 한국의 시네필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고 평가한 그는 “예전에는 ‘쓰고 읽는’ 형태로 비평이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말하고 듣는’ 양상을 띠게 됐다”고 정리했다. 긍정적인 점도 있고 한계도 있는 새로운 시네필 문화는 “자율적 공공영역 속에 이루어진 지식 생산이 이벤트의 형태로 멀티플렉스 속에 회수”되며 신자유주의적 경험 경제가 됐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시네페미니즘 30년, 지금 여성영화 약진의 의미는

<벌새>

둘쨋날 오후, 행사 메인 장소가 아닌 크리스탈홀에서 별도로 열린 출판 워크숍 세션은 보다 진솔하고 편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80년대 후반부터 학생운동 진영에서 출발한 시네페미니즘의 역사에 대해 선후배 학자들의 목소리가 공유됐다. 스스로를 1세대 페미니스트라고 규정한 주유신 영산대학교 문화콘텐츠학부 교수는 90년대 당시 “여성감독의 영화가 워낙 적다보니 임권택, 박철수, 장선우, 임상수의 작품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을 주로 했다”고 회고했다. 또한 장선우와 임상수, 임순례정재은 감독이 ‘청춘’을 다루는 태도에서 남녀 연출자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며 “여성주의적 영화미학이 존재할 수 있다”는 질문으로 끝낸 것이 그다음 단계였다고 밝혔다. 조혜영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전 프로그래머는 “90년대 중반부터 영화이론을 공부했는데 함께 여성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대부분 남자였다. 그때는 영화를 공부하려면 반드시 마르크스주의나 기호학을 공부해야 했고, 시네페미니즘도 반드시 포함됐다”고 말했다. 더불어 “왜 여기에 남아 있는 시네필들이 이렇게 갈라지게 됐을까, 페미니즘을 교양처럼 배웠지만 자기의 삶에서 실천하려고 했던 사람은 결국 여자밖에 남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김청강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교 교수는 “한국영화사를 연구하다 역으로 시네페미니즘에 더 깊게 다가가게 된 경우”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여성 시나리오작가들이 말하기를 결국 자신들이 하는 일은 대리모에 가깝다더라. 자신이 쓴 시나리오가 남성감독에 의해 완성되는 것을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이 계속 드라마계로 넘어가는 것”이라는 사례가 눈길을 끌었다.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시네페미니즘을 3개의 시기로 나눠서 설명했다. 80년대 바리터의 등장과 90년대 해외의 페미니즘 이론과 개념을 번역해 소개한 시기, 포스트 IMF 시대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다양한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담론들이 영화와 만난 시기, 마지막으로 거대한 백래시가 이어지다 2015년 대중 여성들을 중심으로 다시 페미니즘이 확산된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비평가 입장에서는 여성감독의 작품을 ‘여성영화’로 묶는 것이 굴레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운데, 흥미로운 것은 이 감독들이 스스로 이런 지형 안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페미니즘이라고 얘기한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맹수진 필리핀 한국영화제 프로그래머는 “계보학적인 여성영화사를 쓴다는 것에 대해 조심스럽다.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배제하거나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은 페미니즘 전략에서 지양해야 할 방식이 아닐까. 결국 영화사는 나를 둘러싼 환경이 아닌 동시대 관객의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 대표적인 예로 김보라 감독의 <벌새>를 꼽으며 개인의 기억을 역사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과거에는 이랬다’와 같은 기승전결식 리얼리즘 서사는 심하게 얘기하면 기만적일 수 있다. 그럼 과거를 어떻게 재현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최근 여성감독의 영화들이 과거 사건을 다루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이를 꼼꼼하게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평론·기술·연출… 각계가 한국영화계를 진단하다

씨네21 백종헌.

학술대회의 피날레는 미래를 위한 어젠다를 채집하는 자리였다. 10월 25일 오후 라운드 테이블 토론 현장에는 다양한 분야의 영화 관계자들이 모여 한국영화계 주요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공유했다. 미셀 조 토론토대학교 동아시아대중문화 교수는 “지난주 토론토에서 <기생충> 상영을 기다리는 관객을 봤다. 거의 <어벤져스> 시리즈 속편이 나온 것 같은 분위기였다. 영화제가 브랜딩을 통한 마케팅 측면에서 새로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다. 하지만 아직 한국영화의 범주가 소수로 제한되고 충분히 주목받지 못하는 작품이 많다”며 해외에서 바라본 한국영화에 대해 들려줬다. 조혜정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은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이 반가우면서도 어떤 기준으로 영화를 봐야 하나라는 생각도 불러일으켰다. 해외 매체에서는 한국영화가 역동적이고 다양하다고 평가하는데, 동료 평론가들은 한국영화가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는 문제의식을 제안했다. 민규동 감독은 “세상에 어떤 영화가 나오느냐는 감독이 아니라 자본이 선택하는 거다. 관객이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식의 투자가 지금 한국영화의 경향을 만들었다. 다양한 플랫폼의 등장은 넓은 선택지를 보여주는 탈출구가 아니라 절벽 속에 내몰리는 느낌으로 다가온다”는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한우정 영상제작기술협회 회장은 “새로운 감독을 발굴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이 업계에 특별히 없다. 산업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밑에서부터 키워야 성장할 수 있다, 더불어 천만 영화와 같은 흥행작이 자주 출몰해야 한다. 그래야 넷플릭스나 디즈니가 물량공세를 했을 때 한국에서 버틸 수 있다”는 소신을 밝혔다. 앞으로의 한국영화 100년의 어젠다를 묻는 질문에도 다양한 아이디어가 오갔다. 남인영 동서대학교 영화학과 교수는 “한국의 연구자 집단이 학문적 공동체로서 지속 가능하려면 제대로 된 지원 제도가 필요하다”면서 이를 가능케 할 정책에 대해 라운드 테이블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셀 조 토론토대학교 동아시아대중문화 교수는 “한류 콘텐츠는 웹툰, 소설, 게임 등 트랜스 미디어적 전략을 갖고 제작되고 있다. 이것이 영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살펴볼 수 있다. 미학적 측면에 초점을 맞춰보면 교차 텍스트성과 자기 성찰, 정동적인 리얼리즘, 트랜스내셔널을 공통점으로 꼽을 수 있다”는 논의를 확장시켜보자고 제안했다. 민규동 감독은 “현재 감독들은 크게 세 가지, 페미니즘과 근로기준법, 그리고 저작권 문제에 대해 세포를 바짝 세우고 고민하고 있다”며 현장의 이야기를 들려줬고, 조혜정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은 “지난 100년은 생존을 두고 고민했으니 앞으로의 100년은 각자도생의 시기를 벗어나 공존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한우정 영상제작기술협회 회장은 “VR영화, 안경 없이 볼 수 있는 3D영화, 촉각까지 구현하는 4D영화 등 미래 영화라 할 수 있는 작품들이 개발되고 있다. 허상과 진짜를 구분하지 못하는 일종의 꿈과 유사한 형태의 영화가 결국 종착점이 되어 많은 사람이 감동하리라 본다”며 시네마의 미래를 점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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