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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엽 편집장] 재난보다 무서운 것
장영엽 2020-06-19

“요즘 잡지 만들기 힘들죠?”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코로나19 이후 극장에서 개봉하는 신작 영화가 많지 않은데 80, 90페이지 정도의 영화 기사를 주간 단위로 생산하는 것이 녹록지 않겠다는 취지의 물음이다. 답변하자면 절반은 그렇고, 절반은 그렇지 않다. 힘든 부분은, 시시각각으로 영화 개봉 일정이 변경된다는 점이다. 인터뷰와 사진 촬영을 진행하고 기사 작성까지 끝낸 영화의 개봉이 마감일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연기돼 잡지에 수록될 콘텐츠를 시급하게 변경해야 하는 상황은 주간지의 호흡으로 만들어오던 <씨네21>에 때때로 속보성 매체의 순발력을 요구한다. 반면 영화산업을 둘러싼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영화의 의미 또한 확장되고 있는 시기에 영화 주간지를 만든다는 건 시류에 민감한 기자들에게 꽤 흥미진진한 도전과제로 다가오기도 한다. 눈 밝은 독자라면 최근 <씨네21>에 분석 기사의 비중이 높아졌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이는 혼란의 시기에 영화산업의 방향성을 모색하고자 하는 독자 여러분을 위함이기도 하지만, 영화 주간지의 존재 의미와 역할에 대한 내부 구성원들의 치열한 고민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면, 현재의 우리가 발딛고 서 있는 곳은 어디인지, 앞으로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 어느 때보다 전투력 충만한 마음으로 잡지를 만들고 있는 <씨네21> 기자들에게 응원과 격려를 부탁드린다.

공교롭게도 6월 중순 개봉하는 두편의 한국영화, <사라진 시간>과 <#살아있다> 또한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한 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이들의 사연을 담고 있다. 하루아침에 형사, 남편, 아버지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한 <사라진 시간>의 형구(조진웅)는 자신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변해버린 세계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가 직면한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 혹은 또 다른 평행 세계인지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 정진영 감독의 시선은 이미 벌어진 현상에 대한 합리적인 원인 규명이 아닌, 낯설어진 세계 안에 놓인 개인과 그 개인의 반응에 응답하는 세계와의 연속적인 충돌에 머무른다. <사라진 시간>이 개인의 혼란스러운 내면의 여정을 좇는다면, <#살아있다>는 따로 또 같이 존재하던 개인들이 생존을 위해 연대하는 과정을 그렸다. 좀비 장르는 외피에 불과할 뿐, 영화는 디지털 기기를 사이에 두고 타인과 소통하는 데 익숙한 청년 세대가 재난으로 인한 고립을 경험하며 누군가와 직접 연결된다는 것의 의미를 알아가는 과정을 더욱 공들여 묘사한다. 흥미로운 공통점은 이들 영화의 초점이 철저히 재난 이후의 삶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불현듯 당도한 변화는 과거를 반추할 기회를 주지 않고 무서운 속도로 극중 인물들의 선택을 밀어붙인다. “우리 살 수 있죠?” “그건 모르겠고… 살아남으면 그때 희망이 보인대요. 그러니까 먼저 살고 봐요.” 좀비 무리에게 쫓기며 생존자 준우(유아인)와 유빈(박신혜)이 나누는 대화가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의 사회상을 은유하는 말처럼 느껴진 건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재난보다 무서운 삶의 무게에는 영화와 현실의 경계가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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