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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시네마의 ‘현재’, 구로사와 미쓰루 · 무로가 아쓰시를 만나다
2002-05-10

“300엔을 주고 영화를 빌리는 관객들을 위해”

“다작이 낳은 인재 발굴이 V시네마의 역할”

V시네마 제작사 도에이비디오 전무 구로사와 미쓰루(黑澤滿) 인터뷰

도에이비디오가 V시네마를 출범시켰을 때, 진두에서 모든 것을 지휘한 사람은 구로사와 미쓰루였다. 10년 동안 V시네마를 지켜온 구로사와는, 백발에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일본영화는 죽지 않았다”고 말한다. V시네마는 일본의 장르영화를 지켜왔고, 인재를 키워내는 산실이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구로사와의 얼굴에는 단호한 자신감이 비친다. 지금도 도에이비디오에서 만들어지는 V시네마의 제작자 이름에는 구로사와 미쓰루가 올라 있다.

V시네마의 주요 타깃은 누구였나.

비디오를 빌리는 연령층을 조사해보니, 1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남성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먼저 야쿠자영화를 만든 것도 이들 연령층이 좋아하는 취향을 맞춘 것이다. 그것이 딱 맞아떨어졌다.

당시 감독들은 비디오용 영화를 만드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나.

전혀 없었다. 극장용을 만들던 감독들도 기꺼이 환영했고, V시네마 자체가 조감독들이 감독으로 데뷔하는 등용문이기도 했다. 계속 새로운 사람을 찾게 되고, 또 훈련도 되어서 인재 육성의 장도 되었다. 장르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는 원천이기도 하다. 액션영화는 지금 거의 V시네마로만 만들어진다. 타깃을 좁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V시네마는 젊은 층에 대단히 인기가 있었다.

당시의 제작비는 얼마였는가. 그리고 얼마 정도를 팔면 수익이 남았는가.

4천만엔에서 1억엔까지 천차만별이다. 극장용보다는 적었다. 당시에는 꽤 돈을 많이 벌었다. 7천만엔의 제작비로 만들 경우, 1만5천개를 팔면 제작비를 회수했다. 당시는 한 작품에 3만개 정도씩 팔렸다.

극장용과 비디오용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단순히 제작비인가.

프로듀서의 관점에서, 차이는 없다. 당시 V시네마는 16mm로 찍었고, 단지 극장이냐, TV냐의 차이뿐이다. TV드라마는 제작에 한계가 있지만, V시네마는 그런 게 없다. 지금은 슈퍼 16mm로 찍고, 극장 개봉도 한다.

도에이 V시네마의 대표적인 히트작은.

<네오 친피라> <헤이세이 잔혹전> <XX(더블 엑스)> <수라가 간다> 등이다.

도에이의 성공 이후 다른 메이저영화사와 군소 제작사들도 V시네마 제작에 뛰어들었다. 여기에 맞선 도에이의 차별전략은 무엇이었나.

기획과 작품의 질을 올리는 것뿐이었다. 처음에는 남성 중심의 야쿠자영화를 주로 만들었는데 점차 기획을 다변화했다. ‘XX’는 섹스와 액션을 한데 섞은 것이다. 타회사와 차별화는 작품으로 승부하는 것뿐이었다. 제작비가 싸니까 비슷한 영화들이 범람했고, 점차 처음처럼 잘 팔리지 않게 됐다.

일본에는 <남자는 괴로워>나 <낚시광 일기>와 같은 시리즈물이 시리즈물이 유난히 많다. 특히 V시네마는 시리즈물이 많은데, 이유는 무엇인가.

서민적인 캐릭터가 인기있는 건 그 주인공이 일본인에게 공감을 주기 때문이다. 시리즈를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주인공에게 빠져든다. 첫 작품의 성공을 이어받으려는 속셈도 있고.

도에이의 경우, 극장용과 비디오용 영화의 제작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가.

도에이비디오는 V시네마를 만들었지만, 지금은 극장 개봉도 하고 극장용인 <고> 같은 영화도 만든다.

일본영화계에서 V시네마가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은.

중요한 것은 인재의 육성이다. 많이 만드니까, 자연히 그 과정에서 공부가 된다. 그리고 장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중요한 장이다. 이제 액션이나 야쿠자영화는 극장용으로는 거의 만들지 않는다. 대신 V시네마에서 액션영화와 야쿠자영화를 만든다.

DVD가 비디오 대여시장을 대체하고 있는 중이다. 도에이의 향후 전략은.

VHS의 렌털은 조금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DVD의 보급률이 높은 것은 아니다. 향후 10년간은 더 유지된다고 본다. 물론 DVD 시장에도 대응하고 있다. 이번달에는 도에이의 대표작 30편을 DVD로 제작하여 렌털점에 돌린다. 그 밖에도 매달 3편씩을 DVD 렌털용으로 낼 계획이다.

“똑같은 것만 하기는 싫다. 호러에도 도전할 것”

<스코어> <정크> 감독 무로가 아쓰시(室賀厚) 인터뷰

한 6, 7년 전에 우연히 <스코어>란 V시네마를 본 적이 있다. 파랗게 빛나는 밤거리를 달려가는 사내, 거칠게 터져나오는 입김, 그의 머리를 스치고 벽에 박히는 석궁의 날카로운 촉. 홍콩누아르처럼 시작한 <스코어>는 <저수지의 개들>의 내용을 적당히 인용하면서, 남자들의 거친 이전투구를 혈기롭게 그려냈다. 홍콩도, 할리우드도 아닌, 그렇다고 틀에 박힌 야쿠자영화도 아닌 무국적의 액션영화. <스코어>는 인상적이었고, 또 신선했다. 그게 V시네마라는 것, 저렴한 제작비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는 더욱 호감이 갔다. 할리우드가 아니라면, 당연히 이렇게 영화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약간은 조잡하고 서툴지만, 에너지가 넘치는 영화.

그렇게 <스코어>란 영화만 기억하고 있다가 무로가 아쓰시를 만나러 갔다. 무로가 아쓰시가 <스코어>의 감독이란 것을 안 것은, 만나기 전날 밤이었다. 우연히 책에서 <스코어>의 감독 이름을 발견한 것이다. 처음에는 단지 10년이 지난 V시네마의 현재를 물어보려는 계획이었지만, 확장했다. 무로가 아쓰시라는 감독 자체가 궁금해졌다. 안타깝게도 <스코어> 이후의 작품을 본 적은 없지만, 라는 책은 미이케 다카시의 뒤를 이을 개성적인 감독의 하나로 무로가 아쓰시를 꼽고 있었다. 무로가 아쓰시는 10년의 세월 동안 V시네마를 찍어왔고, V시네마 팬들에게 주목받는 차세대 감독이다. 아직 국제영화제에 작품을 내보는 적이 없어 해외에서의 평가는 미미하지만, 목표는 미이케 다카시 혹은 할리우드다.

언제부터 영화를 찍게 되었나.

메이지 대학에서 산업경제학과를 다니면서, 영화 서클에서 친구들과 자주(自主)영화를 찍었다. 졸업 뒤 JHV라는 비디오 회사에 취직해서, 발송 업무를 맡았다. 날마다 짐 싸고, 묶고 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친구들과 모여 자주영화를 찍어, 만화잡지인 <비즈니스 점프>에서 하는 단편영화 콘테스트에 출품했다. 그게 대상에 뽑혔다. 그걸 회사 사장이 알고 제의를 했다. 비디오영화를 찍으라는 것이다. 마침 도에이에서 V시네마를 만들면서 성공을 거두었고, 회사에서도 그런 사업을 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외부에서 감독을 고용하려면 돈이 드니까, 기왕이면 공짜로 사원에게 찍게 하려 한 것이다.

당신이 찍은, 첫 번째 V시네마는.

데뷔작은 <블로 백>이다. 1990년의 액션영화였는데, 회사에서는 액션은 돈이 안 되니까 자꾸 핑크영화를 찍으라고 했다. 알겠다고 하고는, 그냥 2편까지 찍었다. 그랬더니 회사에서 화를 내고, 결국 다음에는 핑크영화를 찍었다. 하지만 계속 핑크영화를 찍고 싶은 생각은 없었고, 회사에서도 언제 사업을 접을지 몰랐다. 적어도 내 마지막 영화를 핑크영화로 남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JHV에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다시 액션영화 <와일드 비트>를 찍었는데, 마침 쇼치쿠의 프로듀서가 보고 나를 발탁했다. 쇼치쿠에서 만든 첫 작품이 액션영화 <스코어>다. 나는 이렇게 큰 회사에서 영화를 찍는 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동안 하고 싶던 것들을 다 해봤다. 프로듀서는 다른 사람들이 창피해서 못하는 것들을 다 시켰고. 그래서 아주 새로운 길로 가게 되었고, 생각 이상의 것이 나왔다.

<스코어>를 봤다. 미국적인 스타일이었다. 어떤 영화를 좋아했나.

어릴 적부터 미국영화를 동경했다. 마카로니 웨스턴의 열광적인 팬이다. 그런 것들을 오마쥬해서 마구 부딪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그 영화들을 보면서 내가 얻었던 감동들을, 지금 젊은 관객이 똑같은 영화를 보고 얻기는 힘들다. 그래서 그런 예전의 미국 액션영화나 마카로니 웨스턴 같은 것들을 보기 쉽게, 그들 정서에 맞게 내가 만든다는 생각도 한다.

액션 이외에 다른 장르를 만든 적도 있나.

액션을 주로 만들기는 하는데, 다른 장르에도 도전하고 싶다. 호러 같은 것도. 액션영화도 똑같은 것만 하기는 싫다. 도에이와는 야쿠자물을 주로 하는데, 총을 빼고 주먹만으로 싸우는 고등학생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도 했다.

당신의 대표작을 꼽는다면.

추억과 정열 때문에, 도저히 하나를 꼽을 수는 없다. 대표작은 앞으로 만들 것이다. 사실 과거라는 것은, 미래가 아니라 등을 보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생각을 한다면 모르겠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V시네마의 제작비가 부족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나.

V시네마를 찍을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관객에게는 영화관이든, 비디오든 돈을 내고 본다는 점은 똑같다. 물론 제작비의 부족은 늘 느낀다. 처음에는 이 제작비 가지고는 도저히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번에 만들어내면 다음에는 올려주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고 그냥 한다. 그런데 다음에는 또 떨어진다. (웃음)

(갑자기)나는 한국영화도 아주 좋아한다. <쉬리>는 감동적이었고, 정말 큰 쇼크를 받았다. <더 록> 같은 느낌이었다. 미국 액션영화를 베이스에 깔고, 거기에 메시지를 실었다. 나도 작업할 때 미국영화처럼 엔터테인먼트를 기본적으로 깔고, 거기에서 내 작품을 만들어내고 싶다.

해외 영화제에 당신 작품이 출품된 적이 있는가.

해외에 나간 적은 없고, 일본의 유바리 판타스틱영화제에서 <언더그라운드>라는 영화가 컨벤션에 나간 적은 있다. 캄보디아에서 지뢰를 제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당신의 영화도, 해외 영화제에 소개된다면 꽤 반응이 있을 텐데.

감독으로서의 꿈이라면, 미이케 다카시처럼 되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고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것이고. 전에 <정크>라는 좀비영화를 만든 적이 있는데, 독일에서 DVD 판권을 사갔다. 어느 날 친구에게 연락이 왔는데, 어디어디 홈페이지에 가보라고 했다. 인터넷에 들어가보니, 그 홈페이지에 <정크>에 대한 리뷰가 실려 있었다. 아시아의 좀비영화가 이 정도로 발전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는 글이었다. 나도 언젠가는 해외 영화제에 나가보고 싶다.

도에이의 전무인 구로사와 미쓰루는 V시네마가 일본의 액션이나 공포 같은 장르영화를 지켰다고 하던데. 인재를 키운 것과 함께.

동감한다. 분명 할리우드의 액션영화는 훌륭하다. 하지만 일본만의 액션영화가 있다. V시네마가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나도 그 V시네마의 현장에서 성장했다. 일본에서 비디오를 빌리는 데는 300엔, 영화관에 가면 1800엔이다. 영화관에서 <다이 하드>를 봐도, 일본 액션영화를 봐도 똑같은 가격이다. 그럴 때 일본영화가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신 V시네마도 적당히 찍지는 않는다. 300엔을 주고 빌리는 관객을 위해서,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만든다. V시네마는 영화가 아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일본영화를 망치고 있는 것이다.

존경하는 감독이 있다면.

오우삼, 세르지오 레오네. 지금 V시네마 현장에서는 누구나 미이케 다카시가 꿈이고 존경하는 감독이다. 이전의 일본영화현장에서는, 목표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나 미이케를 목표로 하고 있다. 도쿄=글 김봉석/ 영화평론가·사진, 진행, 통역 김준모▶ B급영화광 김봉석, 일본 V시네마 현장을 가다

▶ V시네마 대표 장르들

▶ V시네마가 낳은 거장, <비지터Q><고로시야 이치> 감독 미이케 다카시

▶ V시네마의 ‘현재’, 배우 아이카와 쇼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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