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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길의 영화-다른 이야기] 전설 속의 전설
강화길(소설가) 2020-11-23

<백발마녀전>. 사진제공 SHUTTERSTOCK.

지난해 홍콩에 다녀왔다. 여행 첫날, 나는 맹렬한 검색 끝에 장국영이 자주 들렀다는 어떤 카페 하나를 찾아냈다. 솔직히 확신은 없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다녀온 곳에 정말로 장국영이 있었을까? 다녀갔을까? 자주 왔을까? 그건 단지 일종의 풍문, 소문, 그러니까 일종의 전설에 불과한 건 아닐까. 누군가는 장국영이 아니라 주윤발이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배우들의 단골 카페가 아니라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한 장소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그 카페에 정말 가고 싶었다. 왜냐하면 사진 속 카페의 풍경은 어린 시절, 명절 때마다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던 홍콩영화들을 떠올리게 했으니까. 도시와 어두운 밤, 고독한 식사와 나른한 목소리, 좁은 테이블과 두툼한 머그잔. 선정적인 부분을 잘라내고 한국어 더빙을 입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가 막히게 재밌었던 그 영화들.

좋았다. 그 카페에서 경험한 모든 순간이 정말로 좋았다. 옛 시절을 그대로 보존해놓은 듯한, 그러나 분명 ‘현재’의 일부인 곳. 앉아 있는 내내 낡은 문고판 책의 누렇게 변색된 책장을 넘기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진한 밀크티와 프렌치토스트를 먹었고, 일행은 밥과 라면을 주문했다. 그 여행에서 나는 밥과 차, 커피와 라면 같은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한 식당에서 함께 먹을 수 있는 것이 홍콩의 독특한 문화라는 것을 배웠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공존하는, 그 자체로 정체성을 이룬 사람들의 일상. 여행을 하는 내내 나는 그 일상과 마주쳤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 마르고 닳도록 보던 홍콩영화들을 떠올렸다. 코미디와 비극, 액션과 드라마, 로맨스와 공포, 사극의 장르가 기이하게 결합해 있던 이야기들. 어느 장면은 고딕소설의 일부를 떼어다 옮겨놓은 것 같았고, 또 어느 장면은 중국 동화를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그것이 바로 홍콩영화의 특징이었고, 바로 그 부분에서 나는 늘 속수무책으로 매료되었던 것 같다. 특히 무협극에서 그랬다.

<백발마녀전>은 기본적으로 무협영화지만 코미디이기도 하고 로맨스이기도 하다. 그리고 판타지이기도 하다. 인물들은 모두 감정적이며, 사건들 역시 선정적이고 잔혹하다(나는 어른이 되어 이 영화를 다시 본 후 조금 충격을 받았다. 영화가 너무 야하고 잔인했다!). 이 온갖 것들이 콜라주처럼 붙어 있으면서도, 별로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 이 이야기가 ‘전설’(傳說)이라는 형식 안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주아주 오랜 옛날, 명이 쇠락하고 청이 흥하던 시절. 강호의 무당파는 명을 도와 외족들을 처단하고, 특히 이단 세력인 마교를 탄압한다. 마교의 지도자이자 샴쌍둥이 남매인 희무쌍은 자신들을 배척한 무당파에 깊은 분노와 원한을 갖고 있다. 그들은 늑대 무리에서 찾아낸 소녀 안예상에게 마법과 무공을 가르쳐 살인마로 길러낸다. 그들은 안예상을 통해 무당파를 몰아내고 중원을 차지하려 한다. 그러나 안예상은 무당파의 일원 탁일항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무당파의 의무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탁일항과 자신의 운명을 지겨워하던 안예상은 함께 속세를 떠나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세상은 결코 그들을 가만두지 않는데….

그들이 남고자 하는 세상은 신흥 세력인 청도 아니고 적통을 잇는 명도 아니다. 그들은 어디에도 속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가장 행복해하는 곳은 옛 벽화가 희미하게 남아 있는 좁은 계곡이다. 요녀, 늑대, 주술, 협객, 무공과 마법이 공존하는 전설의 세상. 물론 탁일항과 안예상에게는 필연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그는 무인이고, 그녀는 “요녀”이니까.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탁일항과 안예상은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방어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격변의 시기에 필수적인 능력이다. 그들은 새로운 세력의 일부가 될 수도 있고, 쇠락하는 세력을 지키는 역사가 될 수도 있다. 대체 왜 그들은 무엇도 선택하지 않는가. 왜 그저 거부하기만 하는가. 탁일항의 친구 계숙은 그에게 “네가 할 줄 아는 건 무공”뿐이니 그것을 제대로 쓰라고 은근히 권유하기도 한다. 탁일항은 대답하지 않는다.

얼마 등장하지 않는 계숙이 인상적인 이유는 그가 나타날 때마다 이 전설의 세계가 속해 있는 “현실”이 환기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명분과 이해관계에 따라 적과 아군이 구별된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영리한 것이다. 실제로 계숙은 명을 배신하고 청의 장군이 된다. 그는 전설 속으로 사라지려는 탁일항, 안예상과 달리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이 되려 한다. 그 덕분에 두 사람이 남아 있으려 하는 세계가 얼마나 연약한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쇠락한 주술의 세상. 영리하지 못한 감정으로 넘쳐나는 공간.

계곡에는 누구든 들어올 수 있다. 반대로 그들이 속한 세계에서 나가는 건 매우 어렵다. 하지만 탁일항과 안예상은 자신들의 것, 스스로 선택한 정체성을 양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탁일항을 만나기 전까지 안예상은 그저 “요녀” 혹은 “랑녀”로 불렸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그녀에게 이름을 지어줬고, 그녀는 그가 권력을 원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게 해줬다. 그들은 속세의 그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는다. 대신에 서로를 온전하게 만든 정체성을 선택한다. 그러니까 사랑. 끝없이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는, 그러나 무엇보다 대담하고 용기 있는 신념. 아, 정말이지 무협과 로맨스의 만남이란….

영화의 파괴적인 결말 역시, 온전히 그들의 세계에서만 일어날 법하다는 점에서 매우 현실적이며 동시에 전설적이다. 아주아주 오랜 옛날, 한 여인은 정인을 굳게 믿었고, 마음을 저버리지 않았지만 결국 돌아서게 된다. 그가 결코 해서는 안되는 ‘말’을 했던 것이다. 때문에 여인의 머리는 하얗게, 아주 하얗게 세어버리고 만다. 뒤늦게 진실을 깨달은 정인은 그녀에게 용서받기 위해 길고 긴 기다림을 시작한다.

나는 <백발마녀전>의 이 마무리를 꽤 좋아한다. 속편이 등장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미완결의 느낌이 가득한 장면을 말이다. 실제로 <백발마녀전>은 2편이 있고, 그 이야기에 이르러서야 두 사람은 완전한 결말을 맞이한다. 하지만 나는 1편의 허무한 매듭을 훨씬 아낀다. 자신다운 선택을 해보려 노력했으나 끝내 실패했고, 그래서 용서받고 용서하기 위해 애쓰는 인간의 서툰 감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문밖으로 걸어 나가는 백발마녀의 뒷모습은 언제나 구슬프다. 용서받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저 기다리는 것 외에는 무엇도 하지 못하는 탁일항, 그러니까 장국영의 눈빛 역시 애처롭다. 이번에도 나는 그 열린 문을 바라보며 상상했다. 탁일항은 그녀에게 돌아갈 수 있을까. 용서받을 수 있을까.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리하여, 그토록 원했던 자신들의 세계에 남을 수 있을까. 오로지 그들의 사랑만 존재하는 전설 속의 전설. 오래된 벽화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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