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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신제한' 조우진, 연기의 밀도
김현수 사진 오계옥 2021-06-16

출근 시간에 걸려온 발신제한 수신 전화 한통에 인생이 송두리째 뒤흔들린 남자가 있다. 그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한손엔 전화기를 든 채로 쉼 없이 액셀러레이터를 밟아야 한다. <마녀> <안시성> <명량> <설국열차> 등을 편집한 베테랑 편집감독 출신인 김창주 감독의 장편 데뷔작 <발신제한>은 폭탄이 설치된 차를 운전해야 하는 위기의 남자라는 극도로 제한된 상황만으로 끝까지 내달리는 영화다.

주연을 맡은 조우진은 이 영화에서 운전대를 붙잡고 휴대폰 너머의 목소리와 홀로 싸워야 하는 카 체이싱 원맨 액션에 도전했다. 극의 주요 배경인 부산 해운대, 수영만 일대를 누비는 <스피드>와 같은 영화를 상상해봐도 좋을 듯한데, 그가 인터뷰 도중 “부산 시민들에게 선물로 드리고 싶은 영화”라고 말했을 정도로 시민들의 적극적인 협조 아래 촬영한 실제 로케이션의 생생함이 영화 내내 펼쳐진다.

해운대 백사장을 배경으로 경찰과 정체 모를 범인에게 동시에 쫓기며 추격전과 심리전을 동시에 펼쳐야 했던 조우진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 상규는 금융계에서 잔뼈가 굵은 샐러리맨. 그는 이번 영화에서 차갑고 차분한 어조로 잔혹하고 충격적인 대사를 읊는 <내부자들>의 조 상무, 국가 위기 상황을 말 한마디로 쥐락펴락하던 <국가부도의 날>의 재정국 차관 등 전매특허라 할 만한 냉혈한 캐릭터와 다소 거리가 먼, 시종일관 질주하다 못해 폭주하는 인물을 연기해야 했다. VVIP 고객만 직접 관리한다는 PB 센터장 성규가 만들어갈 영화의 재미에 대해서, 그리고 생애 첫 단독 주연작에 출연한 소감을 물었다.

-<국가부도의 날> <> <봉오동 전투> <도굴>로 다른 배우들과 함께 <씨네21> 표지에 등장했다가 단독 주연작인 <발신제한>으로 첫 단독 표지를 장식했다. 소감이 어떤가.

=우선 민망하다. (한참 고심한 뒤) 이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감개무량. <내부자들>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했던 첫 인터뷰도 <씨네21>이었다. 6년이란 세월이 짧게 느껴진다. 눈 감았다 떴더니 이렇게 됐다.

-<발신제한>은 언제 처음 제안을 받고 대본을 받았나.

=2019년 여름, 한창 <서복>을 찍고 있을 때 대본을 받아 읽었다. 시나리오가 참 뜨겁더라. 속도감도 있고 타격감도 넘치고. 처음에는 겁이 나서 덮어뒀었다. 부정적인 의미보다는 자꾸 책 속으로 빨려들어갔기 때문이다. 마치 <쥬만지>에서 사람이 세계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김창주 감독이 그려내고자 한 주인공 ‘성규’의 상이 있었을까. 어떤 인물로 표현하길 원했나.

=감독님에게 물었다. “왜 저인가요?” <발신제한>은 성규의 감정을 따라가는 영화이기 때문에 짙은 농도의, 때로는 적확한 밀도를 지닌 감정과 연기를 보여줘야 해서 나를 찾아왔다고 하시더라. 지금까지 내가 했던 작품들 안에서 충분히 성규와 연관된 레퍼런스를 찾게 됐다고 하셨다. 그럼 감독님만 믿고 가겠다며 손을 덥석 잡았다.

-금융계에 종사하는 센터장 성규를 표현하기 위해 어떤 준비 과정을 거쳤는가.

=성공한 남자, 워커홀릭에, 가정에 무심한, 가정의 소중함은 알고 있지만 나름의 성장 과정을 거치는 인물. 이런 정도의 축을 만들어놓고 나라면 (성규와 같은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 상상해봤다. 다른 인터뷰에서 표현했던, “인간 조우진을 던졌다”라는 표현은 거창한 것 같다. 나라면 어땠을까를 최대한 진정성 있게 담아야 상황의 흐름과 작품 전체가 설득력을 지닐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영화의 상당 부분을 혼자 연기해야 했을 텐데 상대배우와의 리액션이 거의 없는, 원맨쇼에 가까운 연기를 해보니 어떻던가.

=내 연기의 데시벨을 혼자 조절하는 것이 어려웠다. 사전에 협의된 상태에서 설계해두고 연기하는 장면이 많았다. 감정의 밀도를 조절하는 것도 어렵고, 특히 운전하면서 연기하는 게 어려웠다. 연기하면서 도로 상황도 체크해야 했으니까. 살면서 이렇게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했던 순간이 또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나 스스로를 실험해보는 현장이었다.

-예고편만 봐도 각종 그립 및 촬영 장비가 총동원됐을 법한 장면들의 흔적이 보인다.

=도심 카 체이싱 장면을 찍을 때는 모든 스탭이 다 힘들었다. 사고가 안 나도록 하면서 긴장감을 유지해야 해서 급박함과 당혹스러움을 안고 연기했다. 정말 목숨이 오갈 것 같은 장면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지만 내가 연기하면서 감당해야 할 감정과 영화 바깥 상황을 파악하면서 연기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이전에 맡았던 캐릭터들의 공통점이라면 어려운 어휘를 잘 구사한다는 점이다. 오직 대사로만 긴장감이나 압박감을 주는 역할을 많이 맡았다.

=온도가 들끓는 상황에서 오히려 차갑고 직관적인 어조로 표현하는 말투를 보고 많이들 좋아해줬다. 관객 역시 배우가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장면을 차갑게 다뤘을 때 쾌감을 느끼는 듯하다. 에둘러서 관객의 등짝을 때리는 느낌이랄까. 과거에 연기했던 장면들이 적잖이 어필되다 보니 이후 만나는 감독님들도 내 과거 모습을 계속 변주, 확장해주는 것 같다. 연기할 때는 치밀하게 계산하지는 않는다.

-한편으로는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의 갈 사장이나 <미스터 션샤인>의 역관 혹은 최근작 <도굴>의 존스 박사처럼 천연덕스러운 코믹 연기를 할 때도 있다. 상반되는 캐릭터의 온도를 오가는 비결이 있나. 코미디 연기의 타이밍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는데 코미디 연기가 조금 더 진지해야 하더라. 그래서 더 어려운 것 같다. 상대배우의 리액션과 감독의 편집 타이밍이 조화를 이뤄야 완성되는 게 코미디 연기다. 비결은 모른다. 정확한 호흡을 담아내기 위해 진지하게 연기하는 것? 그게 첫 번째 과제인 것 같다.

-극중 성규는 6년 전 과거로 인해 지금의 위기를 겪는다. 조우진의 6년을 돌아보면 그 시작은 <내부자들>이었다. 지난 6년의 변화를 실감하는가.

=어느 해에는 11개, 12개 작품을 할 때도 있었다. 정우성, 송강호, 이병헌 배우와 함께 작업했다. 김혜수 배우와도 작업하는 호사를 누렸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늘 초심을 잃지 말고 흔들리지 말자고 생각한다. 연기하면서 제일 어려운 점 역시 한결같이 연기하는 것이다. 더 매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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