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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루프탑' 김조광수 감독, MZ 세대 퀴어의 삶을 있는 그대로
김성훈 사진 최성열 2021-07-08

“주말 내내 무대 인사 다녔지. 체력? 힘들지 않아. 배우들이 한팀처럼 뛰어줘서 오히려 고마워.” 첫 장편 연출작 <두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2012) 이후 8년 만에 연출한 두 번째 장편영화 <메이드 인 루프탑>이 개봉한 지 딱 나흘이 지난 6월 27일, 김조광수 감독은 스튜디오에 들어오자마자 오랜만에 무대 인사를 돈 회포부터 털어놓는다.

<메이드 인 루프탑>은 연인과 이별을 한 하늘(이홍내)이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려는 친구 봉식(정휘)의 옥탑방에 들어가 함께 살면서 벌어지는 퀴어영화다. 커밍아웃(단편 <소년, 소년을 만나다>(2008), 단편 <친구사이?>(2009))이나 결혼식(<두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이 목표였던, 다소 진지한 전작과 달리 이번 영화는 두 남자주인공의 삶을 유쾌하고 밝게 그려낸 로맨틱 코미디다.

-개봉 일주일째인데 관객 평이 좋다.

=관객 평은 좋은데 아직 극장 반응이…. 사람들이 더 많이 오길 바라고 있다. 그간 퀴어영화로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의무감 내지 강박감이 심해서 영화를 퀴어 운동을 하기 위한 도구나 방법으로 접근하곤 했다. 전작이 지나치게 계몽적이었던 것도 그래서다. 이번에는 그걸 내려놓고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더군다나 청춘이 아닌 내가 몸에 힘을 빼야 진짜 청춘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그런 영화 있지 않나. 말로는 청춘영화인데 알고 보면 꼰대 영화. (웃음)

-그렇게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는 시대가 변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연출을 거듭하면서 깨달은 건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전작인 <두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을 연출하고 나서 복기해보니 영화감독이라면 퀴어 운동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서 벗어나 작가로서, 감독으로서 고민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이로서 퀴어영화를 만드는 것 때문에 얽매이는 생각들이 있는데 그걸 버리기로 했고, 주제나 소재에서 자유로워지기로 했다. 또 하나는 전작을 만들고 난 뒤 1990년대생 게이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형 영화는 재미있는데 너무 옛날얘기”라고 얘기해주었다. “지금 젊은 세대는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10대 때 다 끝내고 20대부터는 ‘어떻게 하면 인생을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나 ‘누굴 만나서 행복하게 연애를 할까?’ 이런 고민을 한다”라고 하더라.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땠나.

=20대 게이들의 생각이 그렇다면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명랑한 퀴어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그간 현실을 벗어날 수 없어서 커밍아웃 얘기를 했고, 그러다 보니 이야기가 엔딩에 이르면 무거워졌는데 내가 바란 색깔은 아니었다. 어른의 시선을 지나치게 담지 않으면서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펼친다면 퀴어영화를 로맨틱 코미디 장르로 충분히 풀어낼 수 있겠다 싶었다.

-인물을 구구절절 설명했던 전작과 달리 게이라는 정체성을 곧바로 드러낸 뒤 사건이 시작되는 오프닝 시퀀스는 서사 전개 속도가 빨라 인상적이었다.

=보도자료에 게이 용어를 따로 설명하는 란을 두었던 전작과 달리 지금은 주변에 게이와 레즈비언을 쉽게 볼 수 있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다 아는 세상이지 않나. ‘게이들은 이래요’라고 설명할 필요가 없는 거지, 그게 전작과 가장 큰 차이다. 밖에 나가면 눈치를 많이 봤던 우리 세대와 달리 90년대생 게이들은 거리낌이 없더라. 공원에서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뽀뽀하거나 손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봉식과 민호(곽민규)가 데이트하는 장면을 공원에서 찍는데 엄마 손을 잡고 산책하던 꼬마가 “엄마, 저 오빠들 뽀뽀해”라고 말하기에 경찰을 부르면 촬영을 못할까 봐 덜컥 겁이 났다. (웃음) 하지만 엄마가 “촬영하나 봐, 조용히 하자”라고 말하더라. 그걸 지켜보면서 격세지감을 느꼈다.

-이홍내, 정휘 두 주연배우에게 주문한 내용도 전작과 많이 달랐을 것 같다.

=<친구사이?> 포스터에 ‘순도 99.9% 게이 로맨스’라는 카피가 적혀 있다. 그때는 연우진, 이제훈 두 배우가 게이는 아니니까 게이란 어떤 것인지 알려주고, 실제 게이처럼 연기해야 한다는 주문을 과하게 했었다. 배우들 입장에선 게이 감독의 마음에 드는 연기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을 거다. 반대로 이번 영화를 연출하면서 느낀 건 지금 20대 게이는 이성애자와 큰 차이가 없다는 거다. 과거처럼 배우에게 ‘게이들은 이런 마음이야’라고 과도하게 주문하기보다는 ‘이런 상황에서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라고 배우들의 생각과 감정을 물어보며 함께 만들어갔다. 배우가 가진 특정 모습을 끄집어내는 데 집중한 게 전작과 큰 차이다.

-지난해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기생충>에 반지하방이 있다면 <메이드 인 루프탑>에는 옥탑방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웃음) 옥탑방을 주요 공간으로 설정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거 아나, 요즘 젊은 게이는 옥탑방을 루프탑이라 부른다. 옥탑방과 루프탑은 똑같은 공간인데도 루프탑이라 부르는 건 옥상을 자신만의 공간으로 예쁘게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있는 거다. 선베드를 두고 선탠도 하고, 채소도 직접 길러 따먹고, 전구도 달아서 예쁜 조명을 설계하고. 그게 MZ 세대의 특징이다. 무엇보다 루프탑이 성 소수자에게 어울리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옥탑방은 여름에 너무 덥고 겨울에 너무 추워서 살기 어려운 공간인데 생각을 한번만 뒤집으면 나름 낭만도 있고 좋은 곳이지 않나. 성 소수자의 삶도 아직까지는 차별이 많지만 생각을 한번만 뒤집으면 게이이기에, 레즈비언이기에 이성애자보다 훨씬 더 행복할 수 있다. 결혼에 대한 강박감도 없고, 아이도 없고, 버는 만큼 즐기면서 살 수 있으니까.

-요즘 젊은 게이들을 보면 부러울 것 같다. (웃음)

=늦게 태어났어야 했는데. (웃음) 이전에 나왔던 퀴어영화들이 반지하방을 주요 공간으로 설정했다면 시대가 바뀐 지금은 위로 올라와야지. 그렇다고 <기생충>의 박 사장처럼 저택에서 살 순 없으니 결국은 2020년대 게이들에게 적합한 공간은 루프탑이라고 보았다.

-이정은이 연기한 순자는 따뜻하고 이해심이 많아 하늘과 봉식이 편하게 기댈 수 있는 어른이더라. 대사로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의 따뜻한 표정 하나에 많은 것을 함축하는 힘이 있다.

=초고에는 순자라는 캐릭터가 없었다. 하늘과 봉식 두 인물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는 빠른데 뭔가 허전했다. 이 영화가 좀더 밝고 유쾌한 영화가 되려면 코믹한 조연 캐릭터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떠올린 인물이 젊은 시절 해방촌의 한 옥탑방에서 살았을 때 만난 아주머니 두분이었다. 그분들이 “남자 친구 있니?”라고 물어보셔서 “어머, 무슨 말씀이세요?”라고 대답하자 “척 보면 알아”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들도 원래는 게이나 레즈비언에 대한 거부감이 컸었는데 해방촌에서 그들을 많이 접하고 친해지면서 거부감이 없어졌다고 하더라. 그들을 만난 게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사람들이 게이를 만나고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바뀔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게 됐다. 순자의 비중이 크진 않지만 중요한 인물이라 이정은 같은 경험 많은 배우가 꼭 해주길 바랐고, 다행히 이정은 배우가 선뜻 수락해주었다.

-선캡을 쓰고 화장한 순자의 얼굴은 누구 아이디어인가.

=선캡은 이정은 배우가 제안한 거고, 순자의 화장은 기억을 떠올린 거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해방촌의 그분이 항상 예쁘게 꾸민 채 옥상에 올라온 기억이 났다. 그래서 그분은 게이들을 이해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게이는 이성애자보다 더 많이 꾸미는데 그런 면모가 이성애자들에게 거부감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분은 자신을 열심히 꾸미는 성격이라 역시 예쁘게 하고 다니는 봉식을 이해할 수 있는 거다. 이정은 배우는 아침 6시에 현장에 와서 밤 12시까지 딱 한회차 촬영하고 돌아갔다.

-엔딩으로 갈수록 분위기가 심각했던 전작과 달리 이 영화 속 게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삶과 꿈을 찾아 나서기에 마지막까지 밝고 명랑하며 씩씩하다.

=결혼을 하고 난 뒤 주변과 사회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동성 결혼이 법적으로 허용되든 안되든 상관없이 한국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구나라고 인식하게 됐다는 점에서 큰 변화다. 최근 한 레즈비언 커플도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나. 그런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과거 퀴어들은 ‘내 인생에 결혼은 없어’라고 인식했지만 지금은 ‘좋은 사람만 생기면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두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의 엔딩 신이 결혼식이지 않나. 그때는 관객도 평단도 그 장면을 두고 판타지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영화는 하늘과 봉식의 삶을 교차로 오가며 보여주되 극적인 반전을 꾀하지는 않는다.

=청춘의 삶은 이래야 한다고 제시하는 순간 꼰대가 된다고 보았다. 청춘에 대해 아는 척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잘 보여주되 왜 지금 청춘영화를 만들려고 하는가만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 청춘은 우리 세대와 다른 면이 있고, 그게 대한민국 퀴어의 미래라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아쉬운 점도 물론 있다. 엔딩도 인물도 고민을 좀더 보여줄 수 있는데 그럼에도 욕심 부리지 않으려고 했다. 다음에 비슷한 영화를 만든다면 이번보다 더 깊이 있게 다루어야겠다 싶었다.

-감독으로서 다음 작품은 무엇인가. 퀴어판 <미생>을 준비한다는 얘기가 있던데 무슨 이야기인가.

=쉽게 말해서 <미생>의 강하늘오민석이 사랑하는 이야기다. 직장에 비정규직으로 첫 출근한 남자와 그가 속한 조직의 파트장이 사내 연애하는 이야기와 주인공 인턴사원이 정규직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생존기가 섞인 이야기다.

-<미생> 속 강하늘과 이경영의 사랑이 아니라?

=어머, 정확하게 말하겠다. 20대의 강하늘과 30대의 오민석. 지난주부터 작가와 회의하며 캐릭터와 스토리를 만들고 있다.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가 아닌 깊은 멜로로 풀어내고 싶다. 진한 베드신도 넣고, 좀더 어른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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