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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영화'의 세 감독 - 쌀국수, 떡볶이, 라면…그리고 영화의 맛
이주현 사진 백종헌 2021-08-18

<맛있는 영화>의 세 감독을 만나다 - <나이트 크루징> 김정인 감독, <맛있는 엔딩> 정소영 감독, <좋은날> 황슬기 감독

배달앱 배달의민족과 영화사 아토ATO가 손잡고 만든 숏시네마 프로젝트 <맛있는 영화>가 8월 12일 온라인 플랫폼에서 공개됐다. <맛있는 영화>는 쌀국수, 떡볶이, 라면을 재료로 삼은 세편의 단편을 하나로 엮은 작품이다. 전설의 쌀국수 트럭을 찾아 나서는 두 친구 이야기 <나이트 크루징>(감독 김정인), 이별을 앞둔 커플 이야기 <맛있는 엔딩>(감독 정소영), 딸 보러 상경했다 한강에서 라면을 맛보는 두 중년 여성의 이야기 <좋은날>(감독 황슬기)은 각각 위로의 맛, 기억의 맛, 인생의 맛을 안기며 저마다의 솔푸드를 떠올리게 한다. 다만 문제는 공복에 보다가는 틀림없이 냉장고 문을 세차게 열거나 배달앱을 켜게 되리라는 것. <맛있는 영화>를 연출한 세명의 여성 신인감독 김정인, 정소영, 황슬기 감독을 만나 함께 영화의 맛을 나눴다.

*<맛있는 영화>는 IPTV(KT olleh tv, SK Btv, LG U+tv), 웨이브, 네이버 시리즈온, 구글 플레이, 카카오페이지, 씨네폭스, 티빙 등에서 볼 수 있다.

-<맛있는 영화> 프로젝트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황슬기 아토ATO의 김지혜 대표에게 제안을 받았다. ‘음식과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좋았고, 여성 신인감독들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한편으로 엮는 기획 의도와 취지도 의미 있는 것 같아 참여했다.

김정인 상업영화 현장에서 스탭으로 일하며 감독 입봉 준비를 했는데, 단편을 찍은 지 오래돼서인지 ‘신인감독으로서 당신을 신뢰할 만한 데이터, 연출자로서의 필모그래피가 부족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또 누구는 시나리오만 잘 쓰면 충분하다고 말하고. 이런저런 고민이 많던 차에 <맛있는 영화>의 제안을 받았다. 시기적절하게 단편을 연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이 영화를 출사표처럼 던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정소영 장편 시나리오를 너무 오래 쓰고 있어 지친 상태였다. 잠시 글 쓰는 걸 멈추고 현장을 경험하면 에너지도 생기고 지쳐 있던 마음을 새롭게 환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쌀국수, 떡볶이, 라면을 소재로 사뭇 다른 분위기의 단편을 완성했다. 각자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어 이야기를 발전시켜나갔나.

김정인 나의 솔푸드는 뭘까? 도무지 생각나지 않더라. 그럼 솔푸드가 없는 주인공이 그걸 찾아가는 과정을 찍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 뭘 먹고 싶은지 생각이 안 나는 건 내가 지금 힘들다는 거야’ 하면서 이야기를 써나갔다. 쌀국수가 영화에 들어오게 된 건, 새로운 동네로 이사 갈 때마다 ‘이 동네는 뭐가 맛있어’ 하고 맛집을 소개해주는 친구가 있는데, 망원동으로 이사갔을 때 장소를 이동해가며 밤에만 영업하는 쌀국수 트럭이 있다는 얘기를 해줬다. 언제 같이 쌀국수 먹자는 애기를 나눴고, 문득 그 트럭은 지금쯤 어디 있을까 궁금해졌다. 찾아보니 사장님이 푸드 트럭을 그만두고 가게를 냈더라. 사장님한테 영화 얘기를 했더니 본인의 청춘 시절 낭만이 서려 있는 트럭을 정말로 빌려주셨다.

정소영 먼저 떡볶이라는 음식을 정했고, 떡볶이에 관한 경험과 기억을 끄집어냈다. 미대 입시 준비하는 주인공의 상황은 내 경험에서 나왔다. 고등학생 때 서울에 전학 와서 미대 입시를 준비했다. 합격자 발표날, 친하게 지내던 친구는 입시에 떨어졌고 나는 붙었다. 학원에 불합격한 친구들이 많아서 기뻐하지도 못하고 괜히 눈치가 보여 혼자 집에 가려고 나왔는데 그때 친구가 밥은 먹었냐면서 내게 떡볶이를 사줬다. 그 기억에서부터 이야기에 살을 붙여나갔다. 특정 음식을 보면 특정 사람이나 순간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그런 순간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황슬기 인물들의 관계에 집중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중년 여성들이 어떤 음식을 먹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음식을 결정하기가 쉽진 않았다. 중년 여성들의 일상에서 잊지 못할 음식이 뭐가 있을까 한참 고민했는데, 그 시기에 아토ATO의 김지혜 대표, 정소영 감독과 셋이서 한강에서 라면을 먹었다. 마침 노을이 지고 있었고, 노을 지는 한강을 바라보며 ‘감독님, 대표님 우리 좋은 영화 만들어요!’ 그런 얘기들을 나누며 라면을 먹었다. 한강에서 라면을 처음 먹은 그때의 경험을 잊을 수 없었다. 시나리오 속 두 인물에게도 내가 경험한 그 순간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공통적으로 영화에서 서울이라는 공간이 부각된다.

김정인 믹싱 기사님이 얘기해줘서 알게 됐는데, 세 영화의 주인공 모두 지역에서 살다가 서울에 온 인물들이더라. 아마도 영화를 연출한 감독들이 다 비서울 출신이라 그런 개인적 배경이 캐릭터를 만드는 데도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나이트 크루징>에는 자전거를 타면서 봤던 서울의 풍경, 자전거를 타면서 느꼈던 자유로움을 담고 싶었다. 자전거를 타면서 갑자기 세상이 확 넓어진 듯한 경험을 했다. 달린 만큼, 밟은 만큼 나아가는 정직한 거리감이 정말 좋았다. 그런 마음으로 서울의 다양한 풍경을 담고 싶었다. 주인공이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타고 달리는데, 장시간 타고 촬영할 수 있도록 서울시에서 따릉이를 협찬해줬다. (일동 “와~”)

정소영 제주도에서 살다가 고등학생 때 서울에 왔다. 미술학원이 있던 홍대 일대는 내게 제2의 고향 같은 느낌이 있다. 그 공간의 느낌을 잘 담고 싶었다. 현실적으로는 코로나19로 인해 원하는 공간을 섭외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황슬기 고향은 창원이고, 영화 속 주인공들도 아귀찜의 고장 마산이 고향이다. 지역에 사는 주인공이 딸이 사는 서울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랜드마크인 한강에 다다라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마지막 배경이 평지의 물가여서 딸의 동네는 대조적으로 고지가 높으면 좋을 것 같았다. 지대가 높은 동네들을 찾아다녔다.

-음식 연출에도 공을 많이 들였겠다.

김정인 배달의민족에서 왜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을까 생각해봤다. 굉장히 순수한 프로젝트라는 생각이 들면서 프로젝트의 취지에 부합하는 음식영화를 정말 잘 찍어보자고 다짐했다. 음식을 맛있게 잘 찍는 게 일차적인 목표였다.

정소영 음식의 표현보다는 주제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향으로 접근했다. 음식 장면은 부족하면 나중에 추가하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다행히 아는 친구 중에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있어 떡볶이 요리하는 장면은 전문가의 손을 빌려 연출했다.

김정인 우린 쌀국수 사장님의 가게 직원 분이 푸드 트럭을 가져다주셨는데, 그분이 쌀국수를 말아주셔서 식당에서 만든 것 같은 비주얼이 나왔다. 촬영감독과 콘티 짤 때 쌀국수가 등장하는 장면만큼은 작정하고 CF처럼 찍자고 얘기했다.

황슬기 우리의 관건은 노을이 질 때 한강에서 라면 먹는 장면을 찍어야 하는 거였다. 노을도 빨리 넘어가고 라면도 빨리 불어서 결국 2회에 나눠 찍었다. 또 하나 간과했던 건 면치기였다. 한 호흡에 호로로록~, 한입에 호로로록~ 면을 끊지 않고 맛있게 소리내 먹는 게 쉽지 않더라. 두 배우가 라면을 몇봉이나 끓여 드셨는지 모른다. (웃음)

-단편영화로 주목받은 뒤 장편영화로 데뷔하기까지 긴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

정소영 세 번째 시도했던 작품이 안됐을 때 큰 슬럼프가 찾아왔다. 처음 두번까지는 괜찮았는데 세 번째 실패에는 태연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만두려고 하면 기회가 생기고 또 다른 길이 놓이더라. 그래서 계속 영화를 하고 있다. 지금은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영화를 준비 중이다.

황슬기 고비는 늘 찾아온다. <맛있는 영화>를 시작할 즈음에도 고비가 있었는데, 그때 한강에서 먹었던 라면 덕에 힘을 얻었다. (웃음) 아, 이런 아름다운 풍경도 있구나, 내 옆엔 좋은 동료들이 있구나, 혼자가 아니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조금 더 힘을 내봐야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현재는 중년 여성들이 에어로빅하는 이야기를 장편으로 쓰고 있다.

김정인 시나리오 쓸 때는 항상 괴롭다. 현장에서 일한다거나 실체가 있는 일을 할 때는 견딜 만한데, 시나리오를 쓰는 단계에선 보이지 않는 무엇과 혼자서 싸우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 시기가 지나면 기회가 생기고 새로운 사람도 만나게 된다. 1970년대 여공들의 이야기를 장편으로 준비하고 있고, 지난해 인천영상위원회에서 기획개발지원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영화란.

김정인 나는 영화가 세상에 도움되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정신적으로 더욱 성숙하게 만들어주는 영화, 생각의 지평을 확장시켜주는 영화들을 좋아한다. 어떤 영화는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나 역시 그런 영화를 찍고 싶다.

정소영 영화는 새로운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매체인 것 같다. 판타지나 세계관이 있는 작품을 좋아하기도 하고, 극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영화가 다른 세상의 문을 열고 들어가게 해주는 것 같다.

황슬기 내게 영화란 계속 살게 하는 것?! 최근에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다시 봤는데 영화 하면서 계속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말 중 하나가 킵 고잉이다. 어떤 포지션이든, 어떤 작업이든 영화로 킵 고잉할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나 싶다.

-그렇다면 나에게 배달의민족이란.

황슬기 천생연분? (웃음) 배달의민족 천생연분 등급이다(배달의민족 고객 등급은 고마운 분-귀한 분-더 귀한 분-천생연분으로 나뉘어져 있다.-편집자).

정소영 내게 배달의민족은 거의 엄마 같은 존재다. (배달의민족 등급을 검색하더니) 어머, 나도 천생연분이네! (웃음)

김정인 나는 고마운 분인데. 다들 대단하다.

정소영 어쨌든 <맛있는 영화>는 음식에 대한 각자의 추억을 떠올리며 보기 좋은 영화다. 집에서 편하게 잘 즐겨주셨으면 좋겠다.

<나이트 크루징>

감독 김정인 출연 정연주, 조현철

송이(정연주)는 동네에서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 훈(조현철)을 만난다. ‘언제 밥 한번 먹자’는 인사를 기약 없는 다음으로 미루지 않고, 두 사람은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늦은 끼니를 때운다. 얼마 전 계약 연장이 불발돼 일자리와 함께 기력마저 잃은 송이는 자신이 뭘 먹고 싶은지도 모르는 상태. 그러다 문득 떠오른 음식은 밤에만 문을 여는 푸드 트럭의 쌀국수. 둘은 쌀국수 트럭을 찾아 자전거를 타고 한밤의 서울을 내달린다. 세편 중 먹는 행위와 관련한 대사와 음식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작품이며, 우리에겐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는 위로의 음식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영화다.

김정인 감독은 어릴 적 장국영을 좋아하면서 영화에 애정을 갖게 됐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에서 “영화적인 영화”를 고민하며 영화를 공부했다. <청이>(2012)로 제6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네레이션 K플러스 단편부문에서 상을 받았고, <패션왕> <남과 여> 등에서 스크립터로 일했다. 감독의 솔푸드는 “밥처럼 먹는 카페라테”.

<맛있는 엔딩>

감독 정소영 출연 손수현, 신재휘

관계의 끝에 다다른 예니(손수현)와 상혁(신재휘). 두 사람이 함께 보낸 시간의 흔적은 집 안 곳곳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 예니는 자신의 짐을 정리하다 빼곡하게 연애의 시간을 기록한 과거 다이어리를 발견한다. 미술학원에서 함께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 대학 합격자 발표날, 떨어진 상혁이 합격한 자신을 위로하며 떡볶이를 사주던 기억이 스쳐간다. 예니는 추억의 음식인 떡볶이를 만들어놓고 상혁과 함께했던 집을 나선다. 떡볶이에 관한 정소영 감독의 개인적 경험이 반영된 영화이며, 특정 기억을 소환하는 음식의 마법이 멜로드라마 안에 잘 녹아 있는 작품이다.

정소영 감독은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 학과 영화 소모임에서 영상 작업을 하다 20대 초반부터 상업영화 경험을 쌓았다. 단편 <달이 기울면>(2013)으로 제15회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 특별상을 수상했고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2016) 각본을 썼다. 떡볶이에 관해선 “떡은 밀떡”이라 말하는 밀떡파.

<좋은날>

감독 황슬기 출연 김금순, 이주영, 문혜인

단편영화감독인 딸(문혜인)을 보러 서울에 온 미금(김금순)과 딸과 발레 공연을 보러 서울에 온 정아(이주영). 두 사람은 딸 자랑을 하다 서로 마음이 상한 상태다. 정아는 공연 보러 갈 생각은 않고 미금을 따라다니고, 미금은 과장되게 꾸며낸 딸 자랑이 들통나 속상하다. 결국 서울에 온 애초의 목적을 잊고 한강으로 향한 둘은 즉석 라면을 끓여먹으며 마음의 앙금을 털어낸다. 딸 주려고 싸온 반찬통에서 김치까지 꺼내먹으며 서울 나들이를 즐긴다.

2018년 여성인권영화제에서 피움상을 받은 황슬기 감독의 전작 <자유로>(2017) 역시 중년 여성들이 주인공인 단편이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변부에 머물기 일쑤인 중년 여성을 극의 중심에 세우는 황슬기 감독은 “중년을 향해 가는 입장에서, 나의 선배들은 어떻게 살아왔고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며 그들의 삶을 계속 들여다보고 싶다고 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출신으로, 윤가은 감독의 <우리집> <우리들> 등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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