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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의 마음이 하는 일] 인문학의 위기는 영원해
오지은(뮤지션) 2021-09-23

나의 대학 전공은 외국의 문학 근처 어드메였다. 2000년에 입학을 했는데 그때도 이미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사방에서 들렸다. 뉴스 검색을 해보니 일단 <연합뉴스>의 1997년 5월 기사가 눈에 보인다.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세기말적인 ‘위기’- 知的인 위기, 특히 인문학과 문학의 위기가 운위되고 있는 가운데 (중략) <창작과비평>은 권두좌담 ‘지구화시대의 한국학’에서 전통적 대학이념의 쇠퇴와 맞물린 인문학의 위기, 그 가운데서도… (후략).”

당시 내 눈에 영문학이나 불문학 등에 큰 뜻을 품고 학과에 들어온 친구는 별로 없어 보였다. 동기들은 술이 들어가면 서로의 점수를 물었다. 생각보다 낮은 점수로 들어온 친구가 있다면 그 행운을 축하했고 높은 점수로 들어온, 즉 눈치작전에 실패한 친구가 있다면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문 닫고 들어온 사람이 승자였다.

문과대에는 잔잔한 패배의 기운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옆의 경영대는 입학점수가 우리보다 7점 정도 높았으며, 건물은 새것이었고 복도는 환했다. 그쪽은 일단 기금이 많았다. 학교는 의자를, 강의실을, 로비를 팔았다. 기부자의 이름을 붙이는 방식이었다. 좌우지간 깨끗하니 나도 그 화장실을 종종 썼다. 그럼 우리 건물에는 무엇이 있었느냐, 오랜 역사가 있었다. 침침한 복도가 있었다. 기금은 별로 없었다. 동기들은 일찍부터 방법을 강구했다. 많은 친구들이 당연하다는 듯 복수전공을 했다. 어떤 친구들은 회계사 또는 공무원 준비를 했다. 물론 학문에 뜻이 있어 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람도 있었다. 극히 적었지만.

강의실은 창과 방패의 대결이었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 왜 훌륭한 그림인지에 대해서 끝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교수님, 그리고 이 구도가 그렇게까지 혁신인지, 흔한 셀카 구도가 아닌지, 하고 생각하는 학생들간의 불꽃 튀는 90분. 최초의 근대소설이라고 불리는 <돈키호테>가 지금의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미 21세기인데. 동키 호테, 즉 호테라는 이름의 당나귀 이야기여도 별 상관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문학을 논하지 않는 우리를 보고 혀를 찼다. 주로 신문 사설에서 그랬다. 이렇게 중요한 인문학의 숨통을 철없는 애들이 끊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작은 산소통 하나를 손에 들려주고, ‘너는 왜 자유롭게 숨을 쉬지 못해?’ 하고 말하는 어른을 보는 기분이었다. 회계사 시험을 칠 생각도 없고, 수업에서 재미를 발견하지도 못한 나는 출석 일수가 모자라 제적을 당했다.

펨브로크라는 가상의 대학교가 있다. 긴 역사가 있고 아이비리그에서는 하위권이라는 설정이다(그노무 예일! 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그 학교에는 전통의 영문학과가 있는데 역사상 처음으로 유색인종 여성인 김지윤이 영문학과의 학과장, 체어 자리에 오르는 것으로 넷플릭스 드라마 <더 체어>는 시작된다.

여자한테 높은 자리를 줄 때는 다 이유가 있다는 설이 있다. 망해가는 배에 선장으로 앉히는 것이다. 운 좋게 살아남으면 뭐, 된 거고, 어려운 결정을 거듭하다가 결국 가라앉으면 ‘역시 여자는 안되나봐’ 하고 치우면 되니까. 간편한 방법이다.

김지윤(샌드라 오)은 의욕적으로 학과장에 취임하지만 바로 문서를 하나 받는다. 그 종이에는 영문학과 교수들의 연봉과 학생 수가 순서대로 적혀 있고 맨 위에 있는 3명의 이름 위에는 형광펜 표시가 되어 있다. 한때 미국 문학계의 스타였으나 지금은 공룡이 되어버린, 현재 수강 신청자가 6명 정도 되는 교수들을 치워달라는 부탁이었다. 김지윤은 꾀를 내어 인기가 많은 야즈와 공룡 중 한명인 엘리엇의 수업을 합친다. 둘 다 멜빌을 연구한다는 부분을 억지로 엮었다.

야즈는 젊고, 여성이고, 유색인종이고, 새로운 시각의 수업을 한다. 학생들은 <모비딕>을 랩으로 만들고 연극으로 만든다. 그걸 지켜보는 엘리엇은 당황스럽다. 그는 나이가 많고, 남성이고, 백인이며, 영문학이라는 학문에 큰 기여를 했고, 지금은 그 업적을 반복하고 있는 사람이다. 줄여 말하면, 정말 재미없는 수업을 한다는 뜻이다.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학계의 떠오르는 별인 야즈는 이 제안을 왜 승낙했을까. 종신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엘리엇의 추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정받기 위해선 능력 외에도 필요한 것들이 있다.

그런 와중에 빌이라는 교수가 있다. (김지윤 살려) 빌은 턱수염, 베스트셀러 책, 멋진 눈웃음을 가진 백인 남자 예술가 교수이고, 25년째 깽판을 치는 중이다. 깽판을 쳤으니 당연히 위기가 왔겠지만, 항상 괜찮았다. 세상은 웃을 때 눈이 반달이 되는 남자 예술가의 기행에 관대하기 때문이다. 이런 그가 결국 아주 큰 깽판을 치고 학과장 김지윤은 지옥의 소용돌이에 빠진다.

그 소용돌이에서 자기도 살아남고, 남도 살리려고 노력하다 가라앉는 김지윤에게 탈출 직전의 대학원생이 말한다. “제게 구명보트를 주신 거네요. 그런데 당신에겐 구명보트가 있나요?” 다음 장면에서 김지윤은 오열한다. 화장실에 숨어서.

인상적인 장면이 많았지만 가장 후련한 부분은 데이비드 듀코브니 부분이었다. (멀더 맞다.) 위기에 빠진 학교는 셀러브리티인 데이비드 듀코브니에게 교수 자리를 주려고 하고 김지윤은 할 수 없이 그의 저택에 간다. 그는 30년 전에 ‘쓰다가 만’ 베케트에 대한 박사 논문을 내민다. 나는 김지윤이 이 상황을 대충 넘길 줄 알았다. 구명보트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참지 못하고 이 나이브한 중년 남자배우에게 일갈한다. 마지막으로 학술지를 읽은 게 언제냐고. 30년 동안 학계에 얼마나 많은 이론이 나왔는지 아냐고. 신유물론, 젠더 연구 아냐고. 영문학은 진보했고 당신은 다른 시대에 갇혀 있다고. 물론 쏟아내고 나서 아차, 하지만.

인문학은 여전히 위기라고 한다. 기사를 검색해보니 요즘의 ‘소프트 인문학’에 혀를 차는 어르신들이 있었다. 나는 재입학을 하여 그전과 다른 마음으로 수업을 들었다. 벨라스케스와 세르반테스의 대단함에 대해서도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몇몇 수업은 지금 생각해봐도 돈이 아깝다.) 문과대는 수료 상태인 나에게 가끔 수강신청 문자를 보낸다. 업데이트를 안 한 것 같다. 십몇년째 받고 있어서 수정 요청을 할 법도 하지만, 누군가 그 축축한 건물에 앉아 문자를 쓰고 있을 걸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져서 그냥 둔다. 그 건물에서는 분명히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공룡을 쓰러트리고 있을 것이다. 새로운 공룡이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기금이 없어 티는 잘 나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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