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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끝과 시작'이 다 있다
이주현 사진 최성열 2021-12-11

<스프린터> 최승연 감독

올해 서독제 개막작 <스프린터>는 육상 100m 단거리선수들의 이야기를 담은 스포츠영화다. 영화는 국가대표 선발전의 출발선에 나란히 선 세 선수의 이야기를 매끄럽게 모자이크해 그들 각자의 녹록지 않은 처지를 보여준다. 30대의 현수(박성일)는 한때 한국 신기록을 두번이나 갈아치웠지만 지금은 소속도 없이 홀로 훈련을 이어가고 있으며, 고교 최고 기록을 세운 뒤 제자리걸음 중인 10대의 준서(임지호)는 육상부 해체에 직면해 마지막 기회를 잡으려 안간힘을 쓰고, 20대의 정호(송덕호)는 기록에 대한 압박감으로 약물에 손을 댄다. 운동선수들의 고민이 사실적이고 생생해 영화를 만든 감독이 체육인인가 싶었지만, <스프린터>는 공명, 맹세창 주연의 <수색역>(2015)을 만든 최승연 감독의 두 번째 영화다. 최승연 감독은 “뭔가 하려고 열심히 시도는 하는데 잘되지 않는 상황을 이야기하려고 여러 아이템을 찾다가 자연스럽게 육상이라는 소재를 만났다”면서 “운동선수로서 정점을 찍었지만 육상을 포기하기 싫은 현수의 심정에서 출발한 영화”라고 <스프린터>를 설명했다.

“대부분 울면서 끝나.” “어차피 그만두게 될 일이야.” “국가대표 해도 별거 없잖아.” 자라나는 육상 유망주에게 코치가 하는 말이다. 영화는 목표 지향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동선수들의 영광스러운 과거나 희망찬 미래를 아련한 향수와 아름다운 꿈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그저 땀 흘리고 아파하는 현재에 진득하게 눈길을 준다. “야구선수 이종범을 굉장히 좋아한다. 이종범은 끝까지 했다. 선수로서 정점을 찍은 뒤 점점 타율이 떨어지고 그래서 포지션을 바꿨지만, 끝까지 했다. 이종범 선수가 은퇴하던 날 눈물을 펑펑 흘렸는데, 시나리오 쓰면서 그 심정을 많이 생각했다.” 그러면서 최승연 감독은 이 대사들이 “허탈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언젠가 ‘끝과 시작’을 마주한다는 의미로 “공감”의 대사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100m 육상 한국 신기록 보 유자 김국영 선수, 한국체육대학교 이정호 교수 등에게 시나리오 감수를 받아 상황의 리얼리티를 확보했지만, 감독은 이 영화가 육상영화가 아니라 보편적 드라마로서 “우리의 이야기”가 되길 바랐다.

단거리 육상선수의 폼을 보여줘야 하는 배우들이 촬영 전 한달 이상 집중 트레이닝을 받아야 했던 고생담부터 코로나19로 인해 육상 트랙이 깔린 경기장 섭외에 어려움을 겪었던 일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는 <스프린터>를 만들며 “이 정도 규모의 저예산영화는 잘 소화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다”고 했다. “<수색역> 이후 준비하던 상업영화가 엎어지고 다시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스프린터>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 무렵 처음으로 내가 영화를 하지 못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했던 다짐은, 어떻게 해서든 꾸준히 영화를 찍어야겠다는 거였다.” 전력 질주의 스프린터가 아닌 마라토너의 자세로 그는 영화라는 트랙을 끝까지 달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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