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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택배파업을 말하다
정소연(SF 작가) 2022-03-03

민주노총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의 총파업이 50일을 넘어섰다. 택배노조의 요구사항은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 이행을 위해 본사인 CJ대한통운이 직접 대화에 나서라는 것이다.

택배노조는 지난해 1월에 택배사들과 한번 합의를 했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비대면 물류가 크게 증가한 상황에서 안전망 없는 과로로 택배노동자들이 연이어 과로사하자, 택배업 종사자뿐 아니라 시민들도 두루 지지하여 일구어낸 성과였다. 이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에는 분류작업 전담인력 투입, 구조개선 비용부담, 성수기 택배사업자 보호, 갑질 방지 표준계약서 등의 내용이 담겼다.

택배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분류작업이었다. 건당 수수료를 받는 집화나 배달과 달리 책정된 대가가 없는 분류작업까지 택배기사들이 하는 것이 부당하고, 과로의 원인이 된다는 지적이 있었다. 2021년 ‘일과건강’의 택배노동자 과로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분류작업시간은 택배노동자 노동시간의 42.8%에 달했다.

사회적 합의문에는 ‘택배요금 인상분을 분류작업 개선,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 가입 등 택배기사 처우 개선에 최우선적으로 활용’한다고 적혀 있었다. 합의문에 쓰인 대로 택배비도 올랐다.

그러나 합의 후 반년, 상황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인상된 택배 단가 중 분류작업에 지급되는 돈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유독 CJ대한통운 택배노조가 파업에 이른 이유는 대화 자체의 부재 때문이다. 노사간 협의를 진행한 다른 택배사들과 달리 CJ대한통운은 노동조합과 협의하지 않았다. 노동조합의 요구를 내용적으로 거부한 것이 아니라, 절차적으로 대화 자체를 개시하지 않았다. 마주 앉아 견해차를 좁혀나갈 기회조차 얻지 못한 노동조합에 가능한 쟁의수단은 얼마 없다. 결국 택배노조는 총파업을 시작했다.

이번 택배파업은 지난해 6월의 사회적 합의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의 회사에만 남은 문제가 되어 파업의 영향력이 감소한 탓도 있을 것이다. 대통령 선거라는 큰 이슈가 차고 넘치는 시기 탓도 있을 것이다. 파업의 이유보다 소비자 불편이나 소상공인 피해를 훨씬 더 자세히 보도하는 언론의 탓도 하고 싶다. 소비자 입장에서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받는 택배가 노동조합의 주장을 외면하고 노동자를 착취한 결과라는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 무지를 방패 삼아 무력감과 죄책감을 덜고 싶은 마음도 조금은 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택배파업이 외면당한 사이에, 집회·시위에 참가한 조합원들이 형사사건으로 입건되었다. 파업하는 택배노동자들의 생계가 어려워졌다. 택배노조 위원장은 물조차 마시지 않는 아사단식을 시작했다고 한다. 두달 가까운 이 긴 파업의 요구사항은 ‘대화에 응해 달라’였다. 택배비 인상분을 전부 택배노동자에게 달라는 것도, 약속한 주 60시간 근로를 지켜달라는 것도 아니다. 고작, 정말이지 고작, 노동조합과 대화라도 시작하자는 것이다.위원장의 단식에도 사측은 대화를 한다 만다 아예 말이 없는 모양이다. 이토록 절박한 요구를 이토록 쉽게 외면할 수 있는 자본의 힘을 동시대인으로 목도하면, 어쩔 수 없이 느끼고야 만다. 집집마다 문 앞에 놓인 택배상자에 들러붙어 있는 끈적한 피를. 그리고 이런 글줄이나마,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