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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우리가 오르지 못할 방주' 소설가 심너울
조현나 사진 오계옥 2022-04-07

"세상엔 이상한 일이 너무 많으니 소재가 부족할 순 없지"

신격화된 잉태인과 일개미와 다름없는 배양인. <우리가 오르지 못할 방주>는 완벽히 계급화되었으며 “은폐된 노예노동 없이는 지속 불가”한 현대사회의 단면을 비틀어 보여주는 작품이다. ‘행복은 희소한 자원이고, 희생하는 자가 없으면 아무도 행복할 수 없다’는 서지아의 신념에 대항할 이는 신원 등록조차 되어 있지 않던 미인가 배양인, 신록뿐이다. 서강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개발자로도 일하던 심너울 작가는 2018년 단편 <정적>으로 데뷔한 뒤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로 2019 SF 어워드 중단편 부문 대상과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 필름 마켓 토리코믹스어워드를 수상했다. 이후 수십편의 장단편을 발표한 그는 여전히 글 쓰는 일이 즐겁고, “가끔 내 글이 조금이나마 아름다움에 가닿았다고 생각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요즘 시나리오 작업을 한다고 쓰여 있던데, 어떤 작품을 작업 중인가.

= 리디북스에서 발표한 <달에서 온 불법체류자>의 드라마 각본을 작업하고 있다. 소설은 정보량을 자유롭게 줄 수 있는데 영상에서는 시각적, 청각적으로 보여줘야 하지 않나. 그 방식을 고민하는 게 쉽지 않지만 그만큼 재밌게 쓰고 있다.

- <우리가 오르지 못할 방주> 작가의 말에 ‘20만자를 썼다가 전부 지우고 새로 썼다’고 했다. 소설 한권 분량을 지우고 다시 쓴 이유는 무엇이었나.

= 처음에는 완전 다른 내용이었다. 지구는 망했고, 지구를 벗어나는 일종의 방주와 같은 우주선을 쏘아 보낸다. 우주선에서 아이들이 태어나고 새롭게 사회가 구성되면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쓰려고 했었다. 그런데 처음 태어난 아이들의 사회성과 같이 바닥에서부터 묘사해나가야 하는 게 너무 어렵더라. 지금 세상에 맞닿아 있는 이야기를 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처음부터 다시 썼다.

- 심너울 작가 소설의 특징은 굉장히 트렌디하고 아이디어가 돋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오르지 못할 방주>의 기본 골자는 굉장히 고전적이다. 이를테면 절대 악이 있고, 가장 밑바닥에 위치했던 주인공이 알고 보니 이 절대 악에 맞설 유일한 대항마라는 점 같은 것들 말이다.

= 단편과 장편의 분위기가 다르다는 말은 몇번 들었다. 단편에서는 소재의 힘만으로 타격을 주고 넘어갈 수 있는데 장편은 플롯, 인물, 드라마가 있어야 해서 골자가 달라지는 것 같다.

- 위트가 넘쳤던 전과 달리 문체도 훨씬 건조해졌다. 의도한 바였나.

= 길게 쓰다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어져서 그런 것 같다. (웃음) 문체 생각은 별로 안 한다. 문장에 별로 자신이 없는 편이고 문장까지 신경 쓰면 벅차서 진도가 잘 안 나가더라. 아마도 장편, 단편을 쓸 때 편한 문체가 다른 게 아닐까 싶다.

- 주인공 신록을 포함한 등장인물들은 고민과 혼란을 거듭하는 입체적인 캐릭터인 반면 서지아는 굳은 신념을 가진 순수악으로 묘사된다. 그런 차이를 준 이유는 무엇인가.

= 항상 정의롭고 선한 행동만 하는 것보다는 가끔 유혹에도 빠지고, 흔들리기도 하는 캐릭터를 좋아한다. 다시 말해 욕망은 세속적이고 보편적인데 가장 중요한 순간 선한 행동을 해 인간에게 희망을 갖게 하는 캐릭터를 좋아한다. 신록도 그런 캐릭터를 쓰고 싶다는 마음으로 썼다. 서지아의 경우는, 사실 처음에는 좀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악한 인물을 쓰는 게 두렵다. 자라면서 악해진 거라면 사회구조적인 문제와 해결책을 이야기할 수 있는데, 날 때부터 순수악이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걸러내는 게 답일까? 어떻게든 딜레마가 생긴다. 그래서 악에 분명한 서사가 있는 걸 좋아하는데 서지아는 처음부터 반사회적 면모가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그렸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사회에 적응해 살아가는 사이코패스의 이야기를 더 깊게 하고 싶었는데 주제에서 벗어나는 것 같아 걷어냈다. 다음에 다른 작품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길 바란다.

-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 <꿈만 꾸는 게 더 나았어요> 등 항상 제목을 재밌게 짓는다. 특별한 비결이 있나.

= 제목은, 그냥 내가 잘 짓는 것 같다. (웃음) 고민도 별로 안 한다. 인터넷 세대라 그런지 낚시할 수 있는 자극적인 제목을 잘 쓰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잘 지었다고 생각하는 제목은 <내 손 안의 영웅, 핸디히어로>와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는 전업 작가로의 전향을 결심할 만큼 반응이 좋았던 단편집인데 여기에 제목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 2019년부터 현재까지 5편의 앤솔러지에 참여했고 2편의 장편, 3편의 단편집, 1편의 에세이를 냈다. 그간 발표한 단편도 10편이 넘는다. 단순히 다작하는 수준이 아니라 현시대의 이슈를 예리하게 캐치해 곧바로 결과물로 내놓는다는 점이 놀랍다. 소재는 주로 어디서 얻나.

= 소재는 항상 생각해두는 편이다. 사실 소재가 부족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떠올리기도 쉬운데, 세상엔 이상한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그걸 다 이야기로 만들 수는 없으니 그중 재밌는 걸 걸러내 글을 쓴다.

- 글을 쓰는 속도도 빠른가.

= 그렇다. 프로그래밍을 하다가 소설을 쓰게 된 이유 중 하나도 빨리 글을 쓰고 여가 시간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프로그래밍은 하루에 13시간씩 투자해야 했는데 소설은 하루에 2~3시간 정도 쓴다.

- 단편 <감정을 감정하기>를 쓸 때 캐릭터 성별을 돌림판을 돌려 무작위로 정하는 방법을 테스트했었다는 인터뷰를 흥미롭게 읽었다. 이런 식으로 최근에 또 시도해본 방법들이 있나.

= 요즘엔 작가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을 연구 중이다. 화자가 있고 이를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보는데, 말 그대로 작가가 말을 거는 것처럼 실험을 하는 거다. 곧 발표할 단편들도 이런 방식으로 썼는데 이 경우 독자들이 화자를 누구로 간주할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 시나리오 외에 진행 중인 차기작이 있나.

= 구상은 다 되어 있고 시간만 있으면 된다. 일부 사람들이 인간이 아닌 존재로 변이를 하는 세상, 말 그대로 괴물이 되는 세상이 배경이다. 그런 사람들을 배제하고 짓는 어떤 보통 사람들만의 낙원이 있다. 제목도 아마 ‘보통 사람들만의 낙원에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제목 괜찮지 않나?

심너울 작가의 최근 SF픽 3

김초엽 소설 <므레모사>, 디즈니+ 드라마 <만달로리안>, 스타니스와프 렘 소설 <사이버리아드>

심너울 작가의 루틴

사실 별다른 루틴이 없다. 작업하기 전 2시간가량 낮잠 잔다는 정도? 자면 뭔가 머릿속에서 만들어지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글이 잘 안 풀릴 때 그냥 자버리기도 한다. 가끔 러버덕 메소드라는 방법도 쓰는데 머릿속의 문제를 말로 구체화하는 거다. 주로 펭귄 인형에게 혼잣말을 하면서 정리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