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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오래된 도시를 걷다보면(그곳이 어디든 상관없다), 어느 순간 자신이 거대한 무덤 속에 들어와 있다는 불안을 느낄 때가 있다. 나무 한 그루 없어 생명이라곤 보이지 않는 딱딱한 돌길들(길에 흙이 없어 나무를 심을 수 없다), 몇 세기를 견뎌낸 돌집들, 인적 없는 적막한 분위기는 영락없는 무덤 그 자체다. 중세도시의 밤이면 그 불안은 더욱 강해진다. 돌로 된 거대한 공간, 그 속에 혼자 있다는 격리감은 얼핏 뒷목이 서늘해지는 ‘언캐니’(낯익은 두려움)의 기묘함마저 자극한다. 사실 이런 느낌은 무명의 중세도시뿐 아니라 관광지로 유명한 피렌체, 베네치아 같은 큰 도시의 중심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단, 어둡고 인적이 드문 새벽이면 가능하다. 돌길 위의 발자국 소리만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올 때, 그곳은 이승과 저승 그 사이 어디쯤 되는 듯한 묘한 현기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탈리아에는 그만큼 옛것, 곧 죽은 것을 지금까지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 많다. 역사와 현재가, 다시 말해
[트립 투 이탈리아] 볼테라, 비스콘티가 그린 데카당스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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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일렉트로닉 댄스 신은 요즘 대중성을 놓고 고민 중이다. 천상 비트메이커들이 멜로디도 잘 쓰려 노력 중이고, 잘 만들어도 미디어의 관심이 적어 홍보에 애를 먹는다. 꼭 인기나 명예를 바라서가 아니라 좁은 마니아 시장을 벗어나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싶은데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데 왠지 이 팀은 잘해낼 것 같다. 우자 앤 쉐인은 요즘 유행하는 하우스, 퓨처 베이스 같은 일렉트로닉 장르를 대중적인 팝에 훌륭히 녹여낸다. 두 사람 모두 음악 전공자라 작·편곡 기본기가 탄탄하고 요즘 세대답게 전자음악에 대한 애정도 깊어 장르 퀄리티도 높다. 캐스커 같은 친숙한 혼성 듀오 구성에 메인 보컬 우자는 마니아들의 뮤즈가 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이들은 웹드라마도 만들었다. 멤버 각각의 본명인 한솔과 도건이 주인공인 청춘물이다(주연은 전문 배우가 맡았다). 인터넷을 활용하려는 전략이기도 하겠지만 홍보 타깃을 소수의 마니아가 아닌 넓은 대중으로 잡았다는 이야기다. 마니아 음악이지만 전달
[마감인간의 music] 우자 앤 쉐인 《UZA&SHANE》, 이제부터 그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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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좋아하는 아이돌이 생겼다. 얼마 전 한 영화상 축하 무대에서 노래 가사를 영화 속 명대사들로 재치 있게 바꿔 부르는 그들을 처음 보았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지루하고 재미없는 관객일 영화인들을 앞에 두고도 그들은 각기 다른 개성과 매력을 거침없이 뽐냈고, 다정하고 장난스럽게 말을 건네며 호응을 이끌어냈다. 라이브마저 끝내주는, 여러모로 신박한 무대였다. 특히 내가 반한 포인트는 그런 내 멋대로 내 식대로 놀아보겠다는 당찬 태도의 멋과 아름다움이었다. 자신들을 꾸밈없이 솔직하게 또 누구보다 즐겁게 표현하고 주장하는 그들의 모습이 요즘 여러모로 의기소침해 있던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이후 한동안 그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그들이 출연한 방송 영상들을 돌려 보면서 빡빡한 일과 속에서도 숨을 고르며 웃는 일이 많아졌다. 왠지 모를 자신감도 조금씩 생겨났고 일도 일상도 더 재밌어졌다. 실제로 나는 조금 더 행복해졌다.
사실 10대 시절 나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
정말 수고했어요, 참 잘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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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불이 준호씨라고 불러도 될까요. 과묵이 기탁씨라고 불러도 괜찮을까요. 긴 시간은 아닐지라도 내가 곁에서 본 준호씨는 쾌활했습니다. 흥에 겨워 노래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지요. 상대적으로 입이 무거운 기탁씨와는 넉넉하게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우리는 각별한 우정을 나눈 사이더군요. 2015년 여름,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차광호씨가 408일이라는 유례없는 굴뚝 고공농성을 끝내고 내려오던 날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대들은 굴뚝 위 동료를 살려서 내려오게 해야만 할 피 말리는 임무수행 중이었지요. 그즈음 차광호씨는 “날마다 떨어지는 꿈을 꾼다”고 말했고, 그대들은 그 악몽이 현실이 되어선 안 되기에 가슴을 졸였습니다. 그 여름의 노사합의는 목숨을 걸고 싸운 끝에 이룬 귀한 합의였습니다.
2016년 겨울, 박근혜 국정농단과 블랙리스트 검열에 맞서 친구들과 광장노숙투쟁을 감행할 때 그대들과 결합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 여름의 합의가 휴지
[노순택의 사진의 털] 굴뚝 위의 준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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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배리 젠킨스 / 출연 마허샬라 알리, 알렉스 R. 히버트, 나오미 해리스 / 제작연도 2016년
6년 동안 영화를 수입·배급·마케팅하는 일을 해왔다. 사실 영화에 대한 애정만으로는 버티기 힘들고 외로운 일이었다. 그래도 가끔 <문라이트> 같은 영화와 함께할 수 있었기에 행복한 순간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일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지난해는 항상 체한 것 같은 기분으로 일을 했다. <문라이트>를 처음 본 곳은 2016년 토론토국제영화제 출장에서. 혼자 영화제에서 영화를 보고 구매를 하는 과정은 설레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외로운 시간이기도 하다. 회의도 결정도 포기도 혼자서 해야 하는 시간. 좋아하는 영화를 구매하는 일도 힘들지만 구매한 뒤에도 개봉과 마케팅에 대한 고민과 질문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수많은 한국영화와 대형 사이즈의 외화 사이에서 좋은 예술영화를 개봉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이유로 연속 거절을 당하
김시내의 <문라이트> 여전히 세상은 아름답고, 너는 세상의 중심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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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면서 항상 가지게 되는 의문이 있다. 나는 과연 행복한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나. 가만히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내가 행복했던 때는 생각보다 명확하다. 사랑하고 있을 때, 나는 행복했다.
SBS의 <짝>일까, 아니면 더 거슬러 올라가서 MBC의 <사랑의 스튜디오>였을까. 연애를 테마로 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채널A의 <하트 시그널>, 그리고 최근 SBS의 <잔혹하고 아름다운 연애도시>, 그리고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tvN의 <모두의 연애>에까지 다양한 포맷과 출연자로 진화해왔다. <모두의 연애>는 사랑을 다룬 드라마 중간에 연애 상담을 끼워넣는다. 신동엽과 성시경이 있는 바에 주인공이 등장해 고민을 토로한다. 첫 번째 주제는 ‘2년 만에 연락 온 전 여친’이고, 이들 사이에는 첫사랑과 짝사랑, 삼각관계, 선배와 후배의 다양한 연애관계가 얽혀 있다.
우리는 사랑하고 있을 때 행복하다. 하지만
[TVIEW] <모두의 연애> 모두 연애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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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1987>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정훈이 만화] <1987>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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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비 없는 놈들!”이라는 산적들의 욕에 동생이 화를 내자, 형이 잠자코 타이른다. “사실이잖아, 참아.” 그리고 “왜 그동안 편지를 안했니?”라는 엄마의 야단에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엄마 글자 못 읽잖아요.” “수도사가 애를 봐주고 있는데, 아이가 방귀를 계속 뀌어서 정말 미안해요”라고 고해성사하는 부모를 안심시키려고 신부로 위장해서는 온화하게 다독여준다. “괜찮습니다. 천사들도 방귀를 뀐답니다.” 이상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의 최고 흥행 시리즈라 할 수 있는 <내 이름은 튜니티>(1971) 시리즈에서 못 말리는 형제 튜니티(테렌스 힐)와 밤비노(버드 스펜서)의 ‘아무 말’ 대화 중 일부다. 이들은 장난처럼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기도 하는데, 특히 건달보다 더 건달 같은 괴력의 보안관이자 거구의 형인 밤비노를 연기한 버드 스펜서의 매력에 흠뻑 빠졌었다. 베니스 출신의 테렌스 힐과 나폴리 출신의 버드 스펜서, 게다가 외모도 전혀 닮지 않았는데 언제나 형제로 나왔던 둘은
[주성철 편집장] 마동석과 버드 스펜서 그리고 1987 신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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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흑백영화를 다시 보는 일은 영혼에 좋다. 교회에 가는 것보다 훨씬 영적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스크린과 관객 사이는 제단이나 강대상 아래만큼이나 치열한 영혼의 격전장이다. 카메라가 인간의 영혼을 찍을 수 있을까? 무드는 만들 수 있지만 공기(空氣)까지 영화에 담는 일이 가능할까? 나는 어느 시대 몇몇 작가에겐 그것이 가능했다고 답하고 늘 이 영화를 말한다. 혼자만의 송구영신(送舊迎新) 예배를 위한 영화, 데이비드 린의 <밀회>(1945)다.
처음에 우리는 알지 못한다.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어느 부인 앞에서, 열차 대기실에 선 여인 로라(세실리아 존슨)와 사내 알렉(트레버 하워드)이 왜 어색하고 불편한 얼굴을 하고 있는지 자초지종을 모른다. 알렉은 로라의 어깨를 한번 잡아주고 그곳을 떠난다. 짧은 한번의 행위, 아주 잠깐이지만 심상찮은 순간을 클로즈업으로 잡아주자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실시간이었던 영화에 어떤 특별한, 다른 성질의 시간이 만들어진다. 영화의
데이비드 린 <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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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니를 좋아했다. 그들의 음악을 듣는 것을 넘어서, 샤이니라는 그룹이 한국에서 더 넓은 인정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 또한 지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라디오 출연을 통해 종현이라는 친구를 만났다. 이후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 <푸른밤 종현입니다>의 코너 원고를 맡게 되면서 조금 더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래서 주변에 다음과 같이 종종 물어봤다. “종현이는 어떤 친구예요?” 맹세컨대, 이 질문에 부정적인 뉘앙스의 답변이 돌아온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여러분은 지금 <배순탁, 생선 김동영의 하라는 음악은 안 하고>를 듣고 계십니다.” 그는 나와 생선 작가가 진행하는 팟캐스트의 소개 문구도 기꺼이 녹음해줬다. 매 회 그의 음성을 플레이하며 함께 환호했던 추억이 이제는 슬프게 느껴진다. 그래. 원망 비슷한 것도 했었지. 아이돌 음악은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미리부터 재단하고 폄하하는 사람들. 드물게 그렇지 않은 사람들, 나에게 가끔씩 “아이돌 음악 중 누굴 먼저
[마감인간의 music] 종현, 고마워 덕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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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경제학 책을 읽다보면 과거엔 전문가와 예술가가 동일한 범주로 분류됐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애덤 스미스는 군인, 의사, 변호사, 음악가를 “비생산적 노동자”라 통칭했다. 그들의 노동은 다른 생산적 노동과 달리 한번 사용되면 사라져 새로운 가치를 추가하지 않기에 국부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볼테르는 <불온한 철학사전>의 ‘시인’ 편에서 이렇게 썼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젊은이는 변호사가 될지, 의사가 될지, 신학자가 될지, 시인이 될지 심사숙고한다. 사람의 재산, 건강, 영혼, 쾌락 중 어느 것을 보살피는 일을 할지 생각하는 것이다.”
과거 서양에서 시인은 여러 직업적 옵션 중 하나로 취급된 것 같다. 의사가 된 사람은 시인이 될 수 있었다. 시인이 된 사람은 의사가 될 수 있었다. 볼테르에 따르면 둘은 같은 고용주(교황)에 전속 계약돼 다른 종류의 비생산적 서비스(시중)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시인이 될 것이냐, 의사가 될 것이냐
대책 없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