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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 / 출연 마리시아 안드레스쿠, 테오도르 코반 / 제작연도 2006년
1988년 겨울, 5공 청문회가 열렸다. 그해의 기억을 소환한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내게 1988년의 기억은 청문회만이 또렷하다. 7살에 불과했으니 텔레비전에 나와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던 군인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른다. 마찬가지로 무지렁이 같은 차림으로 중계 카메라 앞에 주눅 들어 앉아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몰랐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작은 화면으로 그것을 바라보던 어른들과 그들이 풍기던 분위기였다. 그곳은 광주였고, 할머니가 하던 함바집의 작고 두툼한 텔레비전 앞이었다. 그들은 화를 내다가 중얼거리다가 차갑게 돌아섰다 다시 돌아와 술잔을 기울였다.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는 1989년 독재자 차우세스쿠를 쫓아낸 루마니아의 혁명을 다룬 영화다. 그러나 혁명의 드라마틱함은 자료화면처럼 스치듯 지날 뿐이다. 남은 건 사람들
서효인의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 지속되는 우리의 삶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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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터슨>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패터슨>의 패터슨(애덤 드라이버)이 통근하는 시인이라면 아내 로라(골쉬프테 파라하디)는 재택 종합예술가다. 특히 로라의 열정은 페인팅에 집중된다. 방 벽부터 도시락에 넣는 귤껍질까지 그의 캔버스니 말 다 했다. 흑백을 편애하는 로라의 과감한 화풍은, 색과 패턴이 대범한 핀란드의 디자인 브랜드 마리메코를 연상시키는가 하면 짐 자무시 감독의 흑백영화 사랑이 변형된 결과 같기도 하다. 실존 아티스트 가운데 로라에게 영감을 줬을 법한 인물은 장 뒤뷔페. ‘아르 브뤼’ (Art Brut)의 옹호자였던 뒤뷔페는 훈련받은 프로 예술가보다 어린아이나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 등 소박한 정신이 자발적으로 그린 그림이 위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로라가 그린 반려견 마빈의 초상 중 한점이 유난히 뒤뷔페풍이다. 뒤뷔페의 이름은 영화 말미에 언급도 된다. 아마추어 예술을 예찬하는 <패터슨>과 어울리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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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일기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아마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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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고 동문들이 자신들이 입었던 옷에 얽힌 기억을 더듬어가는 책 <황홀한 앨범: 옷으로 본 한국의 현대여성 1946-2015>에는 양장점 ‘파랑새’의 디자이너 백희득에 관한 대목이 있다. 뻣뻣하고 서먹하게 굴어서 늘 엄마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그이가 어린 자신에게 어떤 디자인이 좋은지 의견을 물었다던 일화. 백희득의 옷을 입으면 “더이상 주변에 잘 보일지 어떨지 걱정하지 않고 자신 있게 움직일 수 있었다”고 회고하는 이는 중요한 업무가 있을 때마다 입었던 녹색 슈트 사진을 꺼내놓았다.
KBS2 드라마 <흑기사>에는 첫사랑 정해라(신세경)를 기다리기 위해 슬로베니아의 고성을 사들인 남자(김래원)가 있다. 하지만 판타지가 겹치는 쪽은 해라에게 옷을 지어 입히는 샤론 양장점의 디자이너 샤론(서지혜)의 존재다. 아무래도 성을 사버린 남자보다는 이쪽이 실용적이고, 옷이 심리에 끼치는 영향력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보통 자기 처지에 얽매여 있던 여주인공은 상황이 나아
[TVIEW] <흑기사> 현생의 위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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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신과 함께-죄와 벌> 저 지옥 안 가게 해주세요.
[정훈이 만화] <신과 함께-죄와 벌> 저 지옥 안 가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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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아쉬움을 토로하기가 무섭게, 12월 들어 <강철비> <신과 함께-죄와 벌> <1987> 등 화제작들이 한 주 차이로 개봉하고 있다.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나 많은 이들의 예측과 비평이 갈릴 정도로, 올해 연말처럼 뜨거웠던 적이 있었나 싶다. 두번의 명절과 여름으로 한정돼 있던 텐트폴 영화 시즌이 올해만은 예외다. 먼저 <강철비>는 양우석 감독의 새로운 면모를 느끼게 해준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진보와 보수 그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사람이라 느낀 적 있다. <변호인> 인터뷰 당시 그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만큼이나 관심 가는 인물로 전두환 정권 시절의 김재익 경제수석을 언급한 적 있다. 노무현과 김재익이 바로 한국의 80년대를 쌍둥이처럼 대표해서 보여주는 두 인물로서, 노무현이 2000년대를 향해 가던 한국 민주화의 얼굴이라면 김재익은 “전두환 대통령의 경제참모로 승승장구했고 미얀마 아웅산묘역 폭
[주성철 편집장] <강철비> <신과 함께-죄와 벌> <1987>을 모두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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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손에 커피포트와 커피잔이 놓인 쟁반을 들고 다른 한손으로는 목발을 짚은 아름다운 여인이 거실로 들어온다. 소파에 앉아 있던 남자가 벌떡 일어서서 여인을 도우려 하자 여인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힘으로 대접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남자는 약간 부끄러워하면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는다. 커피포트에 불빛이 어른거린다. 거실 전면 창밖의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불길한 불빛이 반영된 것이다. 여자와 남자가 창밖을 본다.
일렁거리는 불길한 불빛은 네개, 다섯개, 여섯개로 늘어나고 거실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한손으로 횃불을 들고 중세시대 사형 집행인 복면과 복장을 한 괴한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남자와 여자가 있는 집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남자는 총을 들고 거실 베란다로 달려나간다. “여기는 사유지다. 당장 나가라”라고 소리친다. 어둠 속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남자의 가슴에 화살이 박힌다. 비명을 지르며 베란다로 나온 여자의 가슴에도 어둠 속에서 날
[뒷골목 만화방] 모치즈키 미키야 <와일드 7> ‘목에 로프’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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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1990년대 한국 드라마를 다시 보고 있다. 얼마 전 <파랑새는 있다>를 다시 봤다. 최근의 한국 드라마에서 좀처럼 느낄 수 없는 정서와 색깔을 지닌 작품이었다. 차력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다음으로 다시 본 건 <느낌>이다. <모래시계> 전의 이정재, ‘더 블루’ 시절의 손지창과 김민종, 스무살의 우희진,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던 류시원과 이본이 출연한 1994년 드라마. 23년 전엔 몰랐는데 미장센이 대단한 작품이다. 특히 3형제의 집 내부는 그 당시에 얼마나 세련되게 보였을지 짐작이 간다. 드라마 속 손지창의 패션이 유행을 돌고 돌아 올해의 브루노 마스가 입은 옷이 되어 있는 것도 재미있다.
이 드라마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사운드트랙이다. 모두가 주제가 <그대와 함께>를 기억한다. 언! 언! 언제까지나~~! 하지만 사운드트랙 전체를 들어본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얼마 전 이 앨범을 LP로 구해 듣고
[마감인간의 music] <느낌> O.S.T, 드라마를 닮은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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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정류장 표판매소 옆에 구인광고가 오징어 모양으로 흔들렸다. 가족 같은 찬모 구함, 월 220만원, 오전 10시~오후 10시, 주1 휴무. 주 72시간을 일하고 정확히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조건. 사람이 쉽게 구해질 리 만무했다. 붙여놓은 분에게 알려드리고 싶었다. ‘가족 같은’이라는 말만 빼도 어쩌면 조금은 더 쉽게 구해질지도 모른다고. 내친김에 벼룩시장을 펴들고 구인구직란을 살펴봤다. 가족 같은 홀서빙, 가족 같은 여주방장, 가족 같은 분위기 요양보호사, 가족 같은 병원 간호조무사…. ‘가족 같은’이라는 수식어는 구인란에서 가장 월급을 적게 주고, 여성이 많이 몰려 있는 직업군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었다.
구직자에게 가족 같다는 말이 호감을 살 거라고 생각하는 거라면 완전히 틀렸다. 사용자는 따뜻하고 화목한 성장의 공간으로 이 문구를 사용했을 테지만, 노동자는 착취와 폭력에도 쉬이 문제제기할 수 없는 착취의 공간으로 ‘가족 같은’ 현실을 경험한다. 김보통 만화작가가 “조직의 끈
가족 같은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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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메리언 C. 쿠퍼, 어네스트 B. 쇼드색 / 출연 페이 레이 / 제작연도 1933년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지금은 방송 통폐합으로 없어진 TBC에서 토요일 심야에 방송되던 <주말극장>을 통해서였다. 그날 영화를 보고 형연할 수 없는 충격에 휩싸여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아마도 이 영화는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해서 감상한 최초의 장편영화일 텐데, 돌이켜보면 내 취향의 원형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이 영화를 통해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나이가 들수록 하게 된다.
<킹콩>이 담고 있는 그로테스크, 어두움은 물론이고 어린 내가 당시로서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실은 원치 않았던- 비극적인 슬픔이 나의 취향으로 각인되어버린 것이다. <내일은 죠>(일명 <도전자 하리케인>), <백경>(감독 존 휴스턴, 1956)- 역시 거대 괴물이 나온다- 모두가 어린 시절 내가 가장 ‘감
황덕호의 <킹콩> 누가 저 원숭이를 마천루에 올려놓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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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스토리>는 갑작스런 죽음 뒤에 사랑하는 사람과 살던 집으로 돌아온 남자 C(케이시 애플렉)의 이야기다. 놀랍게도 데이비드 로워리 감독이 택한 유령의 형상은, 유년기에 우리가 떠올리곤 했던 유령의 원초적이고 약간 코믹하기까지 한 이미지, 즉 두개의 눈구멍이 뚫린 흰 시트다. <고스트 스토리>의 지극한 아름다움 가운데 큰 몫이 이 과감한 디자인에서 나온다. C의 유령은 대사도 손동작도 없이 어깨와 고개의 각도, 실루엣만으로 생각과 감정을 드러낸다. 바닥에 끌리고 접히고 퍼지는 천의 모양새와 주름, 빛과 조명에 따라 변하는 흰 천의 색, 시트가 사각사각 끌리는 소리가 관객이 자율적으로 정서를 만들어내도록 유도한다. 귀신같은 한수다.
12/02
지나 데이비스, 톰 행크스, 마돈나가 출연하고 페니 마셜이 감독한 <그들만의 리그>(1992)는 1943년부터 10여년간 미국에 실존했던 여성 프로야구 리그의 역사를 극화한 드라마였다. 전미 여성 프로야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버스 드라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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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여진 생활 안에서 루틴(규칙적으로 하는 일의 통상적인 순서와 방법)을 되풀이하며 살아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데 현재의 생계를 유지하기도 어렵거니와 힘을 내라고, 이겨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한몫한다. 나는 한껏 힘을 내고 있는데, 더 힘을 내는 건 불가능한데 말이다. 그래서 그토록 우리는 여행을 꿈꾸고, 낯선 타국에서의 생활을 꿈꾼다.
JTBC의 <용감한 타향살이: 이방인>은 이방인으로서의 고독과 각성, 한껏 담은 감성을 풀어내려 노력한다. 최근 관찰 예능들이 그러하듯 세 지역의 이방인들이 교차하여 화면을 채워나간다. 뮌헨의 선우예권씨, 뉴욕의 서민정씨, 그리고 미국 텍사스의 추신수 선수 가족. TV에서는 이들의 화려함을 데커레이션으로 삼고, 이방인으로서의 외로움과 어려움, 그럼에도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동질감에 대해 그려내려 한다.
추신수 선수의 1천만달러가 넘는 저택, 서민정씨가 아이의 등교 후 맨해튼에서 시작하는 다이어트 댄스,
[TVIEW] <용감한 타향살이: 이방인> 이방인이 되고 싶을 때 볼 프로그램은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