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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열기 속으로><워터 프론트>의 로드 스타이거 타계
2002-07-18

이젠 영원한 밤 속으로

<밤의 열기 속으로> <워터프론트> <닥터 지바고> 등 1950∼60년대 숱한 할리우드 명화 속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였고 <밤의 열기 속으로>로는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타기도 한 미국 배우 로드 스타이거가 향년 77살의 나이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스타이거는 담낭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으나 폐렴과 신장기능장애로 숨을 거뒀다고 대변인은 밝혔다.

스타이거는 스물여섯살 때인 1951년 프레드 진네만의 <테레사>에서 조연을 맡으며 영화에 데뷔, 일흔여섯살인 지난해 <일요일만 있던 한달>에 출연하기까지 무려 120편의 영화에서 연기했다. 50년 동안 한결같이 영화를 해온 스타이거는 최근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엔드 오브 데이즈> <허리케인> 등에서 조연도 마다않고 좋은 연기를 보여줘 배우로서의 성실한 삶이 무엇인가 모범을 보였다. “나는 언제나 그를 내가 연출하는 모든 영화에 출연시키고자 했다. 왜냐하면 나한테 그는, 다른 나머지 출연배우들에게 하나의 닻 같은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라고 <밤의 열기 속으로>와 <허리케인>의 감독 노먼 주이슨은 말한다. <밤의 열기 속으로>에서 로드 스타이거와 공연했던 시드니 포이티어도 “스타이거는 미국의 가장 위대한 배우들 중 한명으로 기억될 것이다”라며 스타이거의 죽음을 기렸다.

스타이거가 처음 주목을 받은 것은 말론 브랜도의 형 역을 연기했던 <워터프론트>로 오스카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면서. 이후 권투 프로모터 역을 연기한 <하더 데이 폴>로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밤의 열기 속으로>로 오스카 트로피를 쥐었다. 16살 때 자원 입대해 참전한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체험으로 인해 <패튼 장군>의 주연 역을 “이 영화는 전쟁을 미화한다”라며 거부하기도 한 로드 스타이거. 그는 “내 세대의 배우들은 완전히 다른 어떤 인물을 창조해내는 법을 터득해야만 했다. 그게 한명의 배우에게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