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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서 4인, 기획영화 10년을 말하다(3)
2002-07-26

˝우리,지금 독일이랑 4강전 앞둔 대표팀이야˝

제작사는 영화공장이어야지

신철 새로운 시도라면 우노가 만만치 않지.

차승재 맨땅에 헤딩하기가 우리 회사 모토니까. 저는 조금 다른 게 기획실 아닌 제작부에서 출발했거든요. 세경영화사에서 <걸어서 하늘까지> 제작부장을 하고 나서 철이 형네 회사로 가서도 현장 인력 책임지는 일을 맡았으니까. 그때만 해도 난 제작자가 되는 꿈 같은 거 없었어. 다만 영화사 상무나 극장 전무가 잘하면 이룰 수 있는 내 영화일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지. 2년 동안 신씨가 하는 걸 보고, 철이 형이 제작자로서 가는 걸 보면서 아, 나도 저렇게 해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시원찮은 아이템 하나를 들고 철이 형한테 반공갈을 때려가지고 프로듀서라는 타이틀로 신씨네로 들어간 거지.

신철 그게 뭐였지?

차승재 <백한번째 프로포즈>. 지금 보면 턱도 없어. 내 직원들 중에서 그런 기획 가져오면 안 시켰을 거야. 우노를 만들어 <돈을 갖고 튀어라> <깡패수업> 할 때만 하더라도 회사의 정체성을 별로 고민 안 했어. <돈을 갖고 튀어라> 할 때는 내가 제작부로서 출발했으니까 그럼 제작자가 종착역이겠구나 싶어서 한 거야. 이거 해보고 안 되면 영화는 접고 다른 길을 가자 그랬지. 그런데 그럭저럭 다음 영화를 만들 기반이 되는 거야. 내가 마케팅쪽에서 출발했다면 그 시점에서 관객의 문제를 많이 생각해봤을 텐데 그런 사고가 체화돼 있지 않으니까 그러면 남들이 안 하는 영화를 해보자, 그렇게 택한 거지. 기존에 없었던 이야기나 시각을 들이대는 영화, 그게 내가 생각한 기획영화였지. 철이 형이나 재명씨가 했던 방식은 훨씬 고도의 기획영화이고. 관객의 문제에 대해서 아주 직접적으로 생각하고 그 트렌드를 읽어가는 건데 우리는 별식을 제공한다고 할까.

심재명 ‘거대한’ 별식. (웃음)

차승재 <비트>가 시작이지. 오은하씨가 <씨네21> 설날 특집 기사로 추천한 만화 10편 중에 가장 보고 싶었던 게 <비트>였거든. 그래서 사서 봤지. 그보다 성수(김성수 감독)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사실 성수가 좋은 감독이지만 <런어웨이>가 좋은 영화는 아니거든. 들으면 화낼지도 모르겠지만. (웃음) 어떤 감독이든지 처음 장면부터 끝장면까지 자신 수준대로 찍어요. B급영화라면 다 B수준으로 찍는다고. 근데 성수 영화는 한 영화 안에 A도 있고, F도 있어. 어떤 장면은 굉장히 능숙한데 다른 건 안 그렇고. 그래서 성수한테 물어봤지. 그랬더니 제작 기일을 맞추느라 그랬다더라고. 그렇다면 그것만 해결되면 잘 찍겠구나 싶던 차에 <비트>가 성수하고 맞겠다 싶었던 거지. 그렇게 묶어서 간 거야.

신철 그 이후로 우노를 보면 왜 저렇게 많이 하는 거야 싶더라고. 정신이 없어서 못할 텐데. 그게 다 인맥으로 하드라고. 여하튼 일정한 작품 편수를 내놓는 영화사들이 몇개는 생겨나야 해. 퀄리티도 그렇고. 우노가 최초인데 그게 지속돼야 해.

이춘연/ 제작사는 영화공장이어야 한다고들 하잖아. 공장이라면 어디선가 상영되고 있고, 찍고 있고, 준비하고 있고, 1년 12달 계속해서 라인이 쉬지 않고 가동돼야지.

차승재 우노필름이 매스프로덕션을 한 건 알고보면 슬픈 거라고. 영화를 만들어야지만 회사가 유지되는 상황이었으니까. 자기 자본력이 없으니까 영화를 굴려야지만 회사가 굴러가고.

심재명 싸이더스가 몇편이나 만들었죠? 우노와 명필름이 출발하고 얼마간은 한두작품 차이였는데, 어느 순간 1.5배 차이가 나더라구요.

차승재 명필름도 이젠 탄력이 붙어서 1년에 3∼4편씩 하니까 실제 제작편수는 많다고.

심재명 그래서 요즘 계속 망하고 있잖아요. (웃음)

◀ 심재명/1964년생. 1988년 카피라이터로 서울극장 기획실에 입사. 이후 극동스크린등을 거쳐

전문홍보사 몀ㅇ기획을 차려 독립. 96년 창립작 <코르셋>을 내놓으면서 존재를 알린 명필름의 대표.<접속><조용한

가족><공동경비구역 JSA>등은 충무로에서 기획과 마케팅에 관한 한 빼놓을 수 없는 문제작들이다. 최근에는 <섬><와이키키

브라더스>등의 작가 영화도 제작.

▶ 차승재/1960년생. 1991년 <걸어서 하늘까지> 제작부장을 했고, 이후 신철, 유인택, 안동규 등으로부터

프로듀서 수업을 받았다. 95년 우노필름을 차려,<비트><처녀들의 저녁식사><유령>,플란다스의

개>등의 영화를 내놓았고, 이후 싸이더스로 몸집을 불린 뒤 <무사><화산고> 등 대작들도 제작했다.

차승재 계속 나보고 무식하다고 그러는데, 그런 건 아니구 철이 형한테 배운 거야. 다만 제작현장 출신이다 보니까 영화 테크놀로지에 대한 욕심이 많아요. 미국 애들은 만드는데 우린 왜 못 만드나 그런 거 똑같이 있어요. 저거 만들어서 할리우드는 돈 벌어가는데, 우리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냐. 영화 볼륨이라든지 영화 안에서 쓰는 테크놀로지 습득에 대한 욕심 같은 게 있죠. 그래서 <유령>을 해봤던 거고. 사실 그것도 철이 형이 전에 <남벌> 해보겠다고 했을 때 부록으로 만들어낸 이야기였거든. 나중에 CG 이야길 듣고 그럼 좋은 환경이 뭐냐, 거꾸로 바다로 들어가보자 했던 거지. 미니어처도 그렇고 가장 쉬운 게 구형이거나 표면 질감이 울퉁불퉁하지 않은 동일한 표면 질감이면 되는데, 그렇다면 잠수함 이야기를 해보자 했던 거지.

이춘연 나는 사실 이 자리에 있을 사람이 아닌데, 왜 불렀는지 몰라. 난 어차피 기획자라고 보기 힘들거든.

차승재 <여고괴담> 같은 빛나는 기획영화가 있잖아요.

이춘연 <여고괴담>은 오기민이라고 하는 친구가 어디서 났는지 2년 이상을 갖고서 돌아다니던 것인데. 우연히 내 손에 들어왔어. 옆방에 있던 유인택도 그걸 버렸는데 난 이상하게 솔깃하더라고. 그래서 돈 생기면 만들자고 했던 거지. 그러던 중에 우연하게 일본을 가서 <학교괴담> 시리즈를 봤거든. 완전히 초등학교 아이들 소동 이야기야. 돌아와서 <여고괴담>을 보니까 새록새록 좋더라고. 이걸 만들면서 난 뒤로 빠졌어. 지금도 이미영 이사가 거의 다 하고. 내 할 일은 자금책이나 운반책이라고 봐야지. 그래도 전에 했던 <인터뷰>나 <마요네즈> 같은 건 안타깝지. 내 나름대로 공을 많이 들였거든. <마요네즈>만 하더라도 엄마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했는데 엄마들 하나도 안 와. 자식들도 안 와. 시간 많은 관객만 몇명 왔다 갔지. 그 이후에 프로듀서 시스템을 활용해서 2년 반 동안 여러 작품 준비해서 <서프라이즈>를 내놨는데, 사람들이 영화 보고 하나도 안 서프라이즈해. 어떤 관심도 없어. 그래서 내가 깜짝 놀라고 있어.

차승재 저도 놀라고 있어요. 하균이 다음 영화가 제 영화거든요. 이렇게 손님이 안 들면 어떡하나 싶어서.

굶어죽더라도 못하겠는 영화, 있다

이춘연 그런데 최근 한국영화 흥행베스트에 올라 있는 몇몇 타이틀은 조금 부끄러워. 물론 제작자의 솔직한 욕심은 돈 버는 거지만. 나는 지난해에 누구나 재밌어 하는 조폭영화 2편의 아이템을 버렸어. 굶어죽더라도 나는 못하겠더라고.

심재명 기획영화가 트렌드를 곧이 곧대로 따라가는 건 아니라고 봐요. 특히 저희는 예술영화의 산실이잖아요. (웃음) 대중영화라면 특별히 좋아하거나 호응받는 장르의 영화가 계속 나올 수밖에 없죠. 대신 영원히 먹히는 장르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죠. 변화란 있게 마련이고. 선점하는 작품이 있으면 아류가 달라붙고. 다만 올해는 이게 대세다, 라는 게 없어진 것 같아요.

차승재 3∼4년 전부터 없어졌지.

심재명 그런 건 프로듀서의 욕망이 작용한 거죠. 관객의 트렌드를 고민한다고 하지만, 일방적으로 따라가려고 했던 건 아니고, 만나는 지점을 새로운 실험이나 시도를 통해 매번 달리하려고 했다는 거죠. 기획영화가 트렌드만을 쫓는 작품을 양산해냈다는 것은 일면만을 보는 거죠.

차승재 고민의 강도가 없이 그냥 쫓아가는 걸 기획영화라고 보긴 어렵지. 아무 생각없이 만든 장르영화를 기획영화라고 부를 순 없다고.

신철 기획영화라는 개념 자체가 올드하지. 편의상 그렇게 부르긴 했지만.

차승재 폼나게 부르면 ‘코리안 뉴시네마’라고 해야지.

신철 신한국영화라고 부르면 좀 이상하니까.

차승재 올해는 제작비 많이 들인 몇몇 영화의 흥행실패가 주는 후유증이 적지 않을 것 같아요. 한해에 한국영화에 투자되는 종자돈이 한 600억∼700억원 정도 될까. 1천억원 규모라고 보는 이들도 있지만, 휴면성 자금도 있을 테니까 대강 그 정도 될 거야. 활발하게 움직이지 않는 조합들이 있거든. 자금을 리볼빙하는 것까지 포함한 연자금이 아니라 실자금으로 칠 때 그렇다는 건데, 한번 실패해서 까먹으면 실자금이 없어지는 것이거든. 실자금을 200억원 까먹었다고 하면, 이게 리볼빙할 걸 감안하면 600억원은 날아간 것과 같은 파급효과가 나온다고. 최소한 15∼20편 정도는 진행할 수 있는 자금이 몇편 때문에 실종될 수도 있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죠.

이춘연 난 돈 들 만한 것을 아예 하질 않아. 자신도 없고. 제작하는 과정에서 단 1원이든, 10만원이든 아껴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야 100원이라도 남기지. 제작하는 사람들이 세뇌되지 말아야 해. 50억, 70억원짜리 안 만들면 영화 같지도 않다는 그런 느낌을 갖는단 말이야. 사람들이.

차승재 모든 일에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게 있는데, 한국영화의 경우 블록버스터라는 볼륨감이 있고 그 규모가 크고 틀이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이전까지 못해왔던 다양한 이야기를 다룰 수 있었다고 봐. 그걸 해냈기 때문에 한국영화가 아시아 시장에서 유통되기 시작하는 거라고. 다른 아시아 나라에서 그 정도 영화를 못 만들고 그래서 우리 콘텐츠가 일본이나 홍콩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는 거야. 큰 일을 해냈지. 문제는 그걸 보고 계속 똑같은 컨셉으로 만드는 영화들이 엎어지고 깨지는 거지. 좋은 기획이라면 성공할 가능성이 많아지는데.

심재명 블록버스터는 할리우드에서 2억달러씩 들인 영화이다보니 제도에 반발하거나 사회통념을 완전히 벗어나질 못하잖아요. 굉장히 돈을 많이 들이다보니까 시장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거죠. 우리는 돈 많이 들이면서 아주 심오한 이야기를 하거나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식인데, 관객이나 만드는 사람이나 훈련이 잘돼 있지 않아요. 몇분 안에 뭘 보여준다는 식의 정형성 같은 게 심어지지 않은 거죠. 스터디나 시뮬레이션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괴이한 과도기의 영화들이 나오는 거고. 지금까진 풍부한 자본의 뒷받침이 이를 가능케 했다면 이제는 좀 정리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차승재 우리 회사 영화를 말하는 건가. (웃음)

심재명 수치적으로 여전히 한국영화 점유율이 높은 이유는 제작편수가 10편이 늘어서라고 봐요. 내수시장에서 공급이 늘다보니까 절대수요가 어느 정도 상승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비용대비 효율성은 아무래도 좀 떨어지죠. 제작비 상승 등의 문제가 있으니까. 투자자들과의 관계에서 제작자로서 느끼는 체감기류는 상당히 불안해요. 손해액이 커지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니까. 무작정 들이붓는다고 수요가 오르는 건 아니잖아요. 하반기를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일단 우리 시장 안에서 규모나 기획에 걸맞은 예산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봐요. 모든 게 거품이라고 하기는 좀 뭣하지만, 사실 낭떠러지가 바로 앞에 있을 수도 있잖아요.

차승재 롤러코스터가 하강 추세를 그리고 있는 걸 앞칸에 있는 우리 같은 사람은 알지.

신철 난 자본의 효율이 떨어지는 문제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답답해. 영화제작자가 많아지는 건 좋은데,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좋았을 영화들이 만들어진다는 거지. 그런 건 사실 좀 엉뚱한 데서 만든 것 아닌가.

차승재 큰돈 벌어가는 것도 엉뚱한 데지. 나는 중간에 끼어서 X되고 있고. (웃음)

신철 아이템 선별기준이 좀더 명확해져야 해. 좋은 아이템도 많고 만들 수 있는 능력들도 많은데. 앞으로 훨씬 더 좋아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떨어질 생각을 하지 말고. 왜 떨어져. 여기가 꼭대기인가, 아직 한참 멀었는데. 독일하고 4강전할 때 이제 내려가고 싶은 심정 같은 게 있을 수도 있지만, 그건 아니야.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라서 두려움이 생기는 거지. 지금 이 시점에서 비효율적인 부분들을 어떻게 걷어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펀드들이 굉장히 많이 손해를 봤다고 그러는데, 그렇다면 난 물어보고 싶다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게 누구의 잘못인지 묻고 싶다고. 지금은 방안을 연구해야 할 때야. 해외시장 빨리 개척하고 수익을 거둬올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지.대담 정리 임범 isman@hani.co.kr/이영진 anti@hani.co.kr/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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